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기본을 생각한다. 새해, 변하는 세상 속에 움직이지 않는 삶의 가치를 되짚어보는 세 개의 대화를 준비했다. 철학, 심리학, 법학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질문해보는 더블유의 인문학 강의.

“우울증 권하는 세상에서 미치거나 죽지 않고 살기”

곽금주 심리학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한국인간발달학회 회장. tvN 신년 스페셜 <곽금주 교수의 심리 콘서트>, 손바닥 TV <박명수의 움직이는 TV> 등 다양한 방송을 통해 대중적인 화법으로 심리학적 지식을 전하고 있다.

상실과 우울의 시대

우울증은 연령과 어느 정도 상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시기는 바로 사춘기다. 40~50%의 청소년이 중증 우울증에 해당하는 증상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 배우자를 잃고 자식과 떨어져 지내며 허망한 심정에 젖게 되는 노년기 역시 우울증에 예민해지는 시기다. 성별이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남성보다는 여성이 이런 증세에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특정 연령이나 성별에 국한되지 않는 광범위한 우울감이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무기력하고 의욕이 낮은 상태가 굉장히 흔한 것이 됐다. 심지어 젊은 층에서는 이런 우울함을 즐기는 경향까지 나타난다. 그게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해주는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렇게 감정 속으로 침잠하다 보면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우울감이 우울증, 즉 치유가 어려운 질병으로 발전할 경우 때로는 자살처럼 극단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한국인은 왜 우울할까?

한국에서 모든 연령대와 성별에 걸쳐 우울감이 증가하고 있는 원인으로는 몇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사회 전반의 경쟁이 과도한 상태다. 청소년에게는 성적이 현재의 서열과 미래의 대학을 좌우하는 중요한 가치다. 성적에 대한 비관은 무력감을 낳고 결국 우울증까지 부추기게 된다. 20대 역시 낮은 취업률 때문에 많이 불안하고 우울하다. 직장에 들어간다 한들 경쟁이 느슨해지진 않기 때문에, 자신의 성취나 존재감이 미미하다고 느낄 경우 의기소침해지기 일쑤다. 한편 워낙 젊음의 가치를 높이 여기는 시대다 보니 40대 이상의 장년층은 쉽게 박탈감을 느낀다. 고령화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한국의 중장년은 자신의 나이를 필요 이상으로 의식한다. 이러면 나이를 먹는 일에 쉽게 적응하질 못하고 은퇴도 빨라진다. 더 길어진 남은 인생에는 우울감이 수시로 파고든다. 게다가 집단주의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남을 의식하는 정도가 크다. 이게 나쁜 특징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의 눈을 생각하고 그와 자신을 견주다 보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한다. 일례로 몇백 년 된 건물도 고스란히 보존하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거리의 풍경이 몇개월 간격으로 바뀐다. 그 속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이들은 세상의 흐름으로부터 도태되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기가 쉽다.

위로를 바라는 20대

현재의 우울에선 어떤 세대도 자유롭지 못한 듯하지만 최근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20대의 불안이다. 이들의 아픔을 가볍게 볼 생각은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비해 요즘 젊은이들이 상황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탓도 크다고 본다. 여러 형제들과 부딪치며 성장하던 과거의 한국인은 갈등을 겪거나 해소하는 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 학습한 뒤 사회에 진출했다. 하지만 한두 자녀 세대가 대부분인 지금은 그 같은 교육 자체가 쉽지 않다. 결국 사회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배우는 것이다. 욕심을 갖고 목표를 높게 두는 건 좋은 일이지만 모두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다. 기대가 자주 꺾이다 보니 자신과 사회에 불만을 품게 되고, 자꾸만 비관하게 되고, 결국 따뜻한 위로를 찾게 된다. 작년에 다정한 말로 청춘을 다독인 책들이 인기를 끈 이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강해져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위로의 유행은 과도기를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 한 해 동안 충분히 공감의 말을 듣고 위로를 받았으니 올해부터는 꿋꿋이 서서 걸음을 내딛는 20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심리학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

가장 가까운 상대지만 나 자신을 안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끈기 있게 스스로를 반추하면서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원하는지 진단해야 한다. 자신의 상태에 깨어 지낸다면 우울한 기분이 닥쳤을 때도 정확히 자각할 수 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사방이 막힌 우리에 개를 가둔 채 바닥에 전기 자극을 주는 실험을 했다. 처음에는 놀라서 펄쩍거리던 개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포기하고 가만히 바닥에 웅크려 앉는다. 흥미로운 건 벽을 다 허문 뒤 동일한 자극을 줘도 개가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진 탓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일단 무거운 기분에 자신을 내맡기고 나면 상황을 쉽게 개선시킬 수 있을 때에도 좀처럼 행동하질 않게 된다. 우울증이 깊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따라서 초기에 기분을 환기시킬 수 있는 자가 치유법을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상황을 털어놓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방법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데 요긴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자신 안에 갇혀 지내는 대신 거기서 빠져나와 나를 열어보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확장해 생각하는 습관을 갖는 건 중요하다. 일단은 스스로 극복을 시도하고 너무 힘들 경우에는 전문가에게 조언을 요청해야 한다.

우울증에 무릎이 꺾이지 않고 행복하게 걷기 위한 방법

심리학자 존 가트너는 <조증 : 성공한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기질(원제 The Hypomanic Edge)>이라는 책에서 가벼운 조증을 지닌 사람이 성공에 유리하다는 주장을 폈다. 오프라 윈프리 같은 유명 인사들의 위트나 자신감이 경조증에서 비롯된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건 미국 사회에 특히 잘 들어맞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대외적인 성공을 거두고도 그에 따른 부담에 시달리다 못해 목숨을 끊는 경우가 적지 않게 목격된다. 그래서 나는 긍정적인 착각이 필요하다고 늘 강조한다. 한때는 심리학도 자신을 분석하고 현실을 잘 파악하는 데만 중점을 뒀다. 그런데 나를 분석해보니 별 볼일 없는 존재일 뿐이고, 미래에도 큰 희망이 없다면? 정확한 인식보다 약간의 긍정 착각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내게도 분명 잘난 면이 있다는 생각, 자신이 충분히 상황을 통제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뭐든 잘될 거란 낙관적인 태도가 우울증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는 연습을 통해 충분히 습득이 가능한 자세다. 연구를 해보면 매사에긍정적인 사람들이 실제로도 높은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회사에서 채용을 진행하면서 탈락자 중 유독 긍정적인 사람 일부를 추려 특별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합격자 그룹과 특별팀이 이후 2년간 각각 거둔 실적을 비교했는데 후자가 27%나 높은 성취를 이룬 걸로 조사됐다. 뭐든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까지도 바꾸어놓는다는 뜻이다. 지금은 냉철한 판단보다 착각이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