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대양을 항해하는 작고 강한 배, 검정치마 호에는 선장이자 조타수이자 선원이 단 한 사람이다. “내가 어떻게 이 바다 위에서 살아 남을지 나도 궁금해” 하는 조휴일.

조휴일이 입은 데님 재킷은 Mc Q by Published, 헐렁한 티셔츠는 Kris van Assche by 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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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많이 달라졌다. 1집과 2집 사이에 무엇이 있었나?
일단 공백이 있었고 (웃음) 검정치마의 위치가 달라졌다. 1집 때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음반으로 증명해야 했지만 2집에서는 기회를 얻은 느낌으로 편하게 작업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느낀 아쉬움 회의감 기쁨 슬픔… 그런 희로애락을 담은 앨범이다. 희는 많지 않았던 것 같지만(웃음).

앨범 전체의 스토리텔링이 강하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알레고리 안에서 여러 가지 은유를 전달하고 있는데.
아주 용의주도한 사람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콘셉트를 정하고 맞춰 쓰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이번 앨범의 노래들은 2주 동안 만들었기 때문에 곡들 사이에 음악적 유사성이 확실히 있다. 가사에서 유일하게 정해놓은 틀은 검정치마를 배, 한국 음악 시장을 바다에 비유한 거다. 그 설정 안에서 새, 바람 같은 단어들을 일관되게 같은 상징으로 반복 사용했다.듣는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그랬다.

CD 부클릿이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펼쳐보면 파도가 배를 에워싸는 이미지라거나, 닻 모양으로 여백을 남기고 텍스트를 배치한 레이아웃이 인상적이다
한국은 CD 패키징이 매우 발달한 편이다. 화려하게 사진 넣고 빤딱한 종이 재질로 책처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다. 나는 CD로 음악을 듣던 세대인데, 두껍고 질 좋은 부클릿이 아니라 달랑 한 장짜리 슬리브가 더 음악을 좋아할 수 있게 만들어줬던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뮤지션에 대해 상상할 여지를 주었다.

삶을 여행과 동일시하는 비유는 문학/ 음악에서 보편적이다. 하지만 ‘항해’가 되면 더 위험해진다. 거대한 바다 속의 인간은 연약하고 파괴되기 쉬운 존재니까.
여행은 한가롭지만 항해는 목숨을 걸고 하는 거다. 뱃사람들은 돌아올 기약 없이 매번 바다로 나간다. 2집 곡들을 쓸 때가, 한국 와서 1집을 내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바다를 두고 항해한 건 맞다. 내가 사랑한 사람, 친한 사람, 나를 배신했던 사람들을 바다 이쪽에 두고, 세상에서 제일 큰 바다 저 편으로 멀어진 거다. 여행은 자발적으로 즐길 수 있다면 항해에선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한 배를 탔다’는 식으로 밴드를 배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뭔가 이겨내고 극복하는 이미지를 위해서 항해라는 테마를 정했다.

항해의 필수 요소는 뭍에서 걱정하며 기다리는 누군가의 존재이기도 하다. 위태로운 처지 때문에 더 낭만적인 로맨스랄까. 앨범 타이틀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 을 그런 맥락으로 해석해도 좋을까?
2집은 결국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전하는 안부 메시지 같은 거다.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고, 대중적이지 않은 노래라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들었을 때만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의 반응은 예상 못했다. 검정치마의 새 앨범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들어도 무방할 거 같다.

노랫말을 듣고 사람들이 이런저런 추측을 한다. 불편하거나 싫진 않나?
사랑 노래에도 이를테면 애틋한 사랑 노래가 있고 덤덤한 사랑 노래도 있는데 그 대상은 다 다르다. 특정 곡마다 특정 인물이 다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언급하는 대상이 복수일 수도 있다. 물론 2009년을 회상하며 쓴 노래들이기 때문에 타이틀에 반영된 진정성 있는 사랑의 대상은 하나지만.

‘외아들’이라는 노래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언제부터 내 주위엔 형님이 많네/ 우리 집엔 아들이 나 하나뿐인데’ 미국에서 오래 살았는데, 그래서 형님 동생 하는 한국식 문화에 거부감이 있나?
문화적으로는 백퍼센트 이해하고 있었는데 적응이 쉽지 않기는했다. 검정치마에서 키보드를 치던 야광토끼도 나보다 어린데 두목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오빠라는 말이 싫어서. 선후배 형동생 관계 맺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경험해보면 그런 남자들이 제일 위험하더라. 진실성이 결여된 사람일 때가 많았다. 사회성이 좋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음악 하는 여자는 징그러’ 하는 노랫말도 있다. 이 노래를 듣고 음악 동료이자 여성인 야광토끼의 반응은 어땠나?
그 뒤에는 이런 노랫말도 나오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가삿말에 진심을 담지 마’(웃음). 음악 하는 여자들 가운데는 기분나쁘게 받아들이거나 자기 노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오버다. 원래 떠오르는 대로 노래를 만들고 수정도 잘 안 하는 성격이라 쭉 써내려갔지만 누군가를 지목해서 진지하게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는 노래로는 해석이 안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실제로 음악하는 여자들에게 매력을 못 느끼는 건 사실이다. 기자님도 글 쓰는 남자 싫지 않나? NBA 선수도 WNBA 선수랑 서로 안 사귀는 거랑 비슷하다.

바다 건너를 오가는 건 언제까지 하나? 매번 교포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부모님이 영구 귀국하셔서 거주지도 완전히 한국으로 옮긴 상태다. 내가 커리어를 쌓는 건 여기 한국이고, 음악만으로 평가하면 되는데 뉴요커다 미국에서 살다 온 애다 이런 얘기는 불필요한 것 같다. 미국과 한국 양쪽에서 다 환대받지 못하는 이질감 혹은 거꾸로 어디서도 적응할 수 있는 편리함 같은게 공존하는 것 같다. 이민 1세대나 2세와도 완전히 섞이지 못하는 1.5세들끼리만의 공감대가 있기도 하다.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 당신의 노래 ‘안티프리즈’가 등장하는데 읽었나.
노래가 나오는 대목 3페이지 정도만 읽었다. 솔직히 책을 잘 못 읽는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작가는 찰스 부코스키. 자기 얘기만 쓰니까 쉬운데, 나도 노래 가사나 블로그에나 내 얘기밖에 쓰질 못한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게 내 자신이니까. 한때 미대 가려고 생각했는데 그림도 내 얼굴밖에 못 그린다.

1집의 ‘강아지’ 가사에서는 ‘시간은 29에서 정지할 거야’라고 했는데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이다.
내가 서른 살을 맞을 거라고는 만큼도 생각해본 적 없다. 그 노래 가사를 썼을 땐 아마 만으로 물대여섯이었을텐데 그때 스물아홉은 막연한 나이였다. 지금은 그 나이가 되었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미국은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21이다. 스무 살이 돼서는 몹시 설렜는데 막상 스물한 살 되고 나니까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더라. 단지 바에 가서 당당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거 외에는. 어른도 마찬가지겠지.

그래도 ‘열아홉 살 때도 스무 살이 되고 싶진 않았어’라고 노래했지 않나. 돌아갈 수 있다면 스무 살보다는 열아홉이 되고 싶나?
더 어려서 열일곱이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때가 누구나 그렇듯 힘들었지만 쉽게 회복할 수 있는 나이였던 것 같다.
살아오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누군가?
어릴 때 좋아하던 가수들. 잡지 인터뷰의 한 마디를 성경처럼 마음에 새겼다. 말도 안 되는 가사에 불타오르기도 하고. 어쩌면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한 얘기겠지만.

수영 잘하나?
앨범 나오기 한 달 전에 수영하다가 발견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헤엄을 치는데, 그러지 않아도 가라앉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가라앉는 데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던 건데, 그게 마치 내 처지 같았다. 월급 받는 고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창작에 대한 반응이나 감정상태나 경제적 상황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거다. 그때 내려갈 때 다시 올라간다는 걸 믿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걱정하지 마 자기야”?
다시 올라갈 거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