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모르고 추락했던 지난 1년을 겪으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팝의 ‘디바’로서 누렸던 화려한 시절도 결국 막을 내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서바이벌 쇼 〈더 보이스〉의 멘토가 되어, 다시 정상을 향해 도약하는 꿈을 꾸고 있다.

고작 여섯 살이었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가족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줄리 앤드루스가 부른 노래들을 떠올리는 것뿐이었다. “들판에서 빙글빙글 도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자유로워 보였거든요.” 새 음반의 실패와 이혼, 연이은 구설수 그리고 그 모든 걸 뒤집을 만한 최근의 성공까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만나 지난 1년간 타블로이드지를 도배한 이야기들을 들으려던 참이었다. “폭력이 난무하는 집안에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유일한 해방구였어요. 내 방 창문을 열고 주인공 마리아처럼 노래를 부르면, 이미 영화 속 드넓은 언덕에 서 있는 것 같았거든요.” 아길레라가 잠시 말을 멈췄다. 왜소한 체구의 그녀는 말을 뱉을 때마다 지나치게 거대하고 푹신한 소파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지난 여섯 달 동안, 다시 예전처럼 창문을 활짝 열고 노래를 부르며 모든 걱정을 날려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소를 머금고 바닥을 쳐다보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살짝 흔들더니 말을 이었다. “요즘엔 많이 웃어요. 모두 제가 울고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무언가 잘못되어 갈 때도 난 항상 웃죠.”

올해 서른이 된 그녀에게 겉잡을 수 없는 사건들이 터지기 시작한 건 〈Bionic〉 앨범을 발표한 지난해 6월 즈음 부터였다. 열두 살에 이미 스타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3천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고, 지금껏 그래미상을 네 번이나 수상했다는 이력 따위는 소용없었다. 힙합 비트와 디스코 리듬 그리고 멜로디가 돋보이지 않는 보컬이 뒤섞인 새 노래엔 그 누구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뉴욕 타임스>의 존 패럴스는 ‘그저 예쁘게 생긴 여인이 클럽 비트에 맞춰 유혹하며 소리지르는’ 노래라고 폄하했다. 강렬한 테크노 사운드는 몇 옥타브를 넘나드는 크리스티나의 가창력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파워풀한 가창력을 지닌 작은 소녀라 불리던 크리스티나는, 레이디 가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언론에서야 레이디 가가에게 별 관심 없다는 듯, 아니 잘 모른다는 듯 말하곤 했다. “아, 그 신참요? 최근에야 들었는데 사실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헷갈리니까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성 정체성까지 들먹이며 레이디 가가의 영향력을 부정했으면서도, 의 첫 번째 싱글곡 ‘Not Myself Tonight’의 뮤직비디오는 가가의 히트작 ‘Bad Romance’와 신기할 만큼 닮아 있었다. 크리스티나의 오랜 팬들은 더 이상 애정을 보내지 않았고, 새로운 팬은 생겨나지 않았다. 새 앨범이 삐걱거리자 20개 도시에 예정되어 있던 투어 콘서트는 표가 팔리지 않았고, 결국 수백만 달러의 손해만 남기고 취소되었다. 소속사에서 그녀를 내보내고 싶어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상황은 나쁘게만 흘러갔다.

같은 해 10월 그녀는 더 심한 나락으로 떨어졌다. 음악 프로듀서인 남편 조던 브래트먼과의 이혼 때문이다. 결혼 이후 크리스티나는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듯했다. 어느 기사에서는 비벌리 힐스에 위치한 어마어마한 자택에서 남편과 나체로 뛰어놀곤 한다며, 사적인 일상을 떠벌리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크리스티나와 조던 모두, 다른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가정의 평화가 사라지면서, 내 어린 시절의 집안 모습이 겹쳐 보였어요. 이제 세 살이 된 아들을 그런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물론 언론이 나를 비판하리란 걸 알고 있었죠. 하지만 남들이 하는 말과 시선에 신경 쓰느라,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 수는 없어요. 그건 내가 지금까지 불렀던 노래와 맞지 않은 일이잖아요. 난 내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주인공은 스물다섯 살의 뮤지션, 매트 러틀러였다. 그들은 지난 추수감사절에 개봉한 크리스티나의 영화 데뷔작 <버레스크> 촬영장에서 처음 만났다. 재능 있고 천진난만하지만 어두운 과거를 지닌 여자아이가 작은 시골 동네에서 도망쳐, 로스앤젤레스의 나이트 클럽에서 가수로서의 꿈을 키워간다는 줄거리는 마치 크리스티나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제작비가 무려 5천5백만 달러나 든 첫 영화 또한 추락하는 그녀에게 돌파구가 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영화에 출연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촬영하는 동안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이른바 ‘팝 스타’는 어딜 가든 수행하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살아요. 무대 뒤에서도, 심지어 집에서도요. 그런데 영화 촬영장엔 내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요. 그리고 촬영을 모두 마쳤을 때,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닌 어른이 되어 있었죠.”

매트에게 끌린 이유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내 모든 걸 그 사람에게 기댈 수 있었어요. 함께 영화 작업을 할 때에도 지금도, 언제나 저를 지지해주니까요. 우리는 참 많은 일을 함께 겪어왔죠.” 그는 잘생기고, 남자답고, 예의가 바른, 게다가 언제나 크리스티나의 편에 서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둘이 함께 큰 이벤트에 설 때마다, 순탄치 않은 일이 생겼다. 지난 2월 댈러스에서 열린 슈퍼볼 경기에서 미국 국가인 ‘The Star-Spangled Banner’를 불렀을 땐, 갑자기 가사를 잊는 바람에 즉흥적으로 노랫말을 만들어내야 했다. 꼬마일 때부터 스타였던 까닭에 수십 번도 더 부른 그 노래를 말이다. “경기장에 있던 모든 것들이 밝게 빛났고, 어느 순간 완전히 노래에 몰입했어요. 하지만 감정 이입이 지나쳤는지 갑자기 가사가 뒤엉켜버렸죠.” 그리고 그 새로운 가사는 곧바로 신문 헤드라인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언론에서 달려들 줄 미리 알고 있었어요. 그날 매트와 저녁을 먹으면서, 농담 삼아 퀴즈쇼에 나올 법한 문제까지 만들었는걸요. ‘2011년, 국가를 부르면서 가사를 잊어버린 가수는?’ 하면서요.”

게다가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사실 그 몇주 전, 그들이 함께 배우 제레미 레너의 생일 파티에 갔을 때도 사건이 하나 벌어진 터였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흩어져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나는 손님방의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단 한 사람이 거짓말을 시작하면, 모든 사람이 뛰어들어 그 이야기를 완성하죠.” 제레미는 그녀가 술이나 마약에 취했거나, 미쳤거나, 그도 아니면 둘 다라고 넌지시 이야기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할 무렵 열린 그래미 시상식에서, 크리스티나는 무대에서 넘어질 뻔했다. 그리고 그 미미한 사건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큰 재난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그녀가 매우 취해 있었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망가져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대에서 넘어질 뻔한 그 순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지 상상이 됐어요. 그래서 신을 욕했죠. ‘이게 말이 되나요? 매번 힐을 신었지만 문제가 없었는데, 심지어 아이를 가지고 무대에 올랐을 때 조차. 그런데 지금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가요?’라고요.”

미디어가 그녀를 사고뭉치로 몰아갈 무렵,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음악 서바이벌 쇼 <더 보이스>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네덜란드에서 크게 성공한 이 프로그램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에게 등을 보이고 평가를 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참가자들을 보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외모나 몸짓에 현혹되지 않고, 오지 노래만으로 실력을 심사하기 위해서다. 만약 그들의 노래가 마음에 든다면 버튼을 누른 후 의자를 무대를 향해 돌리면 되고, 각각의 심사위원들은 자신이 멘토가 되어 도와주고 싶은 8명의 참가자를 선정한다. “저는 <아메리칸 아이돌>을 한 번도 끝까지 본 적이 없어요. 너무 못됐잖아요. 누가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을 듣기 위해 쇼에 나가고 싶겠어요?” 하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더 보이스>에 합류하기로 했다. “저는 가수가 되고 싶은 그들을 거칠게 다루고 싶지 않아요. 다만 우승을 원한다면 간절히 꿈꿔야 하고, 힘든 걸 겪어내야 한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그렇지 못하다면 더 이상 이 경쟁에 참여할 수 없다는 현실을요.” 꿈 많았던 아홉 살 소녀 크리스티나 역시 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Sunday Kind Of Love’라는 노래를 불렀고, 준결승에서 탈락한 기억이 있다. “제가 누구한테 졌는지 다들 기억이나 하시나요?”라며 웃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때 <더 보이스>라는 쇼가 있었다면 당장 참가했을 거예요. 내 노래를 이끌어줄 멘토가 생긴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니까요.”

크리스티나는 이 쇼가 추락하는 자신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으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 직감은 들어맞았다. 시청자와 관객은 방송을 통해, 그녀가 가장 잘하는 건 다름 아닌 노래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린 것이다. 게다가 심사위원으로서의 그녀는 침착하고, 또렷하고, 전문적이고 게다가 경험까지 풍부했다. <더 보이스>의 성공을 자축하며 매트와 저녁을 함께하고 돌아오던 날, ‘심한 음주 상태’라는 죄로 경찰에게 체포당해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기까지 했지만, 이 끔찍한 사건 또한 좋은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매트가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캘리포니아의 음주운전 기준에 어긋나는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 증명돼, 무죄 선고를 받은 것이다. “심지어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경찰들은 나를 감옥으로 밀어넣더군요. 아마 그날 밤 꽤 심심했던 모양이에요.” 게다가 그렇게 불법 체포된 지 8주 후 <더 보이스>는 1000만 시청자를 돌파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 프로그램으로 올라섰다. 그녀를 비난하던 수많은 언론과 평론가들은 잠잠해졌고, 불운으로 점철되었던 지난 1년이 해피엔딩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일어난 모든 나쁜 일들 또한 크리스티나의 미래에 도움을 줬는지도 모를 일이다. 대중은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스타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그가 언제라도 타블로이드를 도배할 수 있는 인물이기를 바라는 모순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프랭크 시내트라부터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그리고 마돈나에서부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스타란 영원히 늙지 않는 완벽한 모습과 대중이 흥미를 잃지 않을 만큼 자극적인 모습을 동시에 지녀야 했다. 그러니 길게 본다면 최근 아길레라에게 일어난 최고의 기회는,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휘청거린 그 순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말이다.

“난 정말 역사에 남은 모든 스타들을 존경해요. 그들 모두 행복과 좌절을 겪었겠죠. 저 역시 싸워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아직도 꿈꾸는 순간이 있거든요. 아주 늙은 후에 무대에 올라, 여전히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고, 모두가 기억하는 히트 송을 부르는 날. 바로 그날을 기다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