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자의적으로 그리고 넓게 사용되는 형용사가 있다면 ‘젊은’ 작가라고 할 때의 ‘젊은’이 아닐까. 더블유가 주목하고 경애하는 세 사람의 아티스트 권오상, 함진, 손동현에게도 젊다는 수식어가 더없이 어울린다. 출생년도가 아닌, 차가운 문제의식과 뜨거운 작업 과정으로 초여름의 느티나무처럼 무장한, 젊은 그들.

지구영웅전설

손동현

손동현은 눈에 띄는 작가다. 동시대 아티스트들 가운데 앤디 워홀의 수제자만 모아도 학급을 하나 너끈히 꾸리고 남을 테지만, 그 가운데서도 유난하단 얘기다. 할리우드 스타나 가상의 캐릭터를 소재로 회화 작업을 하는 건 국내외 아티스트들에게 보편적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타란 잘 팔리는 상품인 동시에 닮고 싶은 아이콘이고, 숭배받는 영웅이니까. 그 욕망을 들여다보고 갖고 노는 게, 아티스트들의 일이고.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손동현을 특징짓는 건 전통 한국화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점이다. 가장 고전적인 형식의 한국화 화폭에 옮기는 대상들은 요즘 사람들이 열광하는 영화 속 슈퍼히어로, 마이클 잭슨, 글로벌 브랜드의 로고, 카툰 캐릭터 같은 대중문화의 알갱이들이다.

오래된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다루는 그의 작업에는 엇박의 미가 존재한다. 커다란 120호 화폭 속에 담긴 슈퍼맨, 배트맨, 울버린 같은 영웅의 초상화들은 波押芽益混(파압아익혼- 팝아이콘)이라는 제목의 전시로 선보였다. 예전의 왕이나 장군, 고관대작들이 차지할 법한 위상에 대신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이 오른 것이다. 손동현은 10월로 예정된 개인전을 준비 중이며,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특별 전시에 그의 작품이 포함되었다. 아마 김홍도나 신윤복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에 나타났다면 씨름하는 풍속도 대신에 이런 그림을 그릴지 모른다는 점에서 손동현은, 맥도날드를 먹고 자란 유튜브 세대의 감수성을 대변한다. 그래서 이 80년생 작가의 동년배들이 본격적으로 미술 시장의 소비자가 되는 가까운 미래에 이 작가를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최근 갤러리 11 서울 아트페어에서 당신의 신작을 봤다. 프레디와 제이슨부터 브이 포 벤데타, <킥 애스>의 힛걸 까지 영화 속 캐릭터의 얼굴, 마스크만 그린 작품을 수십 개 모아두었는데, 임팩트가 강하더라.
그 작업은 나에게 일종의 과도기적인 의미가 있다. 10월로 잡힌 개인전에서 다시 재구성해 선보이겠지만, 일단 다양한 재질 같은 걸 한꺼번에 그려볼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 공부가 많이 됐다. 수묵 작업을 하다가 채색으로 갈 때, 혹은 그 반대의 경우에 자동차 기어를 바꾸는 것처럼 손이 덜 풀릴 때가 있다. 그런 테크닉적인 면에서 과도기적인 작업을 필요로 할 때가 있는데, 마스크 연작이 나에게 그렇다. 수묵과 채색, 두 개가 완전히 다른 건 아니지만 그림 그릴 때 느끼는 건 다를 수가 있다.

10월 개인전에 대해 스포일링을 좀 해준다면.
기본은 다시 초상화가 될 거다. 전신으로 큰 사이즈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겠지만, 내가 항상 120호만 가지고 많이 놀아서 사이즈의 문제라면 좀 다양하게 가보고 싶어졌다. 물론 그 안에 인물이 하나 들어가야 하니까 큰 변화로 보이진 않을 수도 있지만.

작업실이 연희동의 오래된 동네다. 젊은 작가들이 요즘 연희동- 연남동 인근에 모여 산다고 하던데.
2007년 여름에 여기로 들어왔다. 홍대 앞에 있고 싶었던 건데 너무 비싸니까 계속 밀려나서 여기까지 온 거다. 2006년 쌈지스페이스 레지던시로 1년 살아보니 좋더라. 작가들도 이 근처에 많이 살아서 길 가다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인사를 안 튼 사람인 경우 카페나 술집 같은 데서 보면서 아, 저 사람 작업 끝내고 왔구나, 짐작한다.

할리우드 수퍼히어로 영화나 그래픽 노블을 보면서 감성을 형성한 세대이리라 짐작한다. 당신의 성장기에 대해 이야기해준다면?
이런 얘기 시작하면 재미없어진다. 워낙 스토리가 별로 없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정말 평범하게, 남들 누리는 만큼 누리면서 자랐다.

전통적인 한국화의 형식, 그리고 최신 대중문화의 내용이 충돌해서 당신 작품 속에 긴장을 자아낸다.
충돌이라고는 별로 생각해본 적 없다. 동양화가 다뤄온 소재나 주제가 늘 일관돼왔다면 거기에 대중문화라는 주제를 들여와서 변용하거나 확장하는 걸 고민하는 것뿐이다. 처음에는 충돌이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지만.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이다. 같은 전공을 가진 작가들 가운데 당신처럼 전통적인 매체로 작업하는 경우가 흔한가? 혹은 다른 매체 작업을 많이 하나?
한국화를 계속 그리는 사람도 왕왕 있는데 내가 다루는 이미지가 대중문화에서 가져온 거라 튀는 거 같다. 학교 다닐 때는 여러 가지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동양화 매체 외에 다른 작업이 더 많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고전적인 방식의 한국화를 고집하나?
다른 작업도 많이 해봤다. 학교 다닐 땐 서양화과 수업도 듣고 이것저것 시도해봤는데 한국화가 가장 재밌었다. 전공이 동양화면 당연히 가장 많이 배우겠지 생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대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학교가 좀 답답해서 이것저것 혼자 찾아가면서 배우다 보니까 채색화를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더라. 수묵 가지고도 혼자 놀면서 많이 배웠고. 결국 다른 매체는 그만한 재미를 못 느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작가로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굉장히 많은데 최근 많이 보게 되는 이가 리커란(이가염)이다. 중국 현대 산수화 작가인데 50년대 전후에 활동했다. 작가는 누구나 기복이 있게 마련인데 리커란은 끊임없이 자기를 낮춰가면서 배웠던 사람이다. 테크닉적으로 완성됐다고 할 수 있는 단계에서 새로운 스승을 찾아서 들어가고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곤 한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산수화라는 장르 안에서 기술적으로 정점에 올랐다고 스스로 착각에 빠질 수 있는 시점에서 번번이 새로워지는 그런 면이 좋더라.

실존하지 않는 인물의 초상을 그린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내가 그린 가상의 인격들이 수많은 텍스트를 만들어내고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미학적으로도 한 사람의 손끝에서 슥 그려서 완성된 게 아니라 숱한 디자이너들이 연구하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손보고 애니메이터들이 공을 들여서 탄생한 거니까. 영화나 이야기 속에서도 자기 나름의 서사가 있기도 하고.

실재했던 인물 가운데서는 마이클 잭슨을 그렸다. 40여 점의 연작이 탄생할 정도로 큰 작업이었는데 특별히 그를 고른 이유가 있나? 어린 시절의 우상이었다거나.
늘 호흡을 짧게 가져가다가, 긴 이야기를 오랜 시간 들이며 공부하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어떤 인물이 가장 적합할 것인지 고민했는데, 대중문화의 맥락 안에서 마이클 잭슨이라는 판단을 했다. 앞으로도 실존 인물 가운데 그리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을 40개 연작하는 큰 스케일은 아직 계획에 없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도 했고, 그동안 몇 차례의 해외 그룹전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형식 속에 낯익은 주제를 담은 신선한 작업일 것 같은데 반응이 어떻던가?
여기서와 똑같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싫어하고, 호오가 뚜렷하게 갈리는 편이다.

당신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영웅 한 명만 꼽으라면?
배트맨이랑 조커, 독립된 공간이 처음으로 주어졌을 때 그렸던 거라서.

120호짜리 커다란 그림을 그리는 데 작업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
천차만별이다. 인물화 초상화의 경우에는 사용하는 색감에 따라 다르고 피부가 얼마나 드러나 있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표현하는 데 공이 많이 든다. 다스베이더 같은 경우 검은색이라 시간이 많이 들었다.

당신에 대해 가장 흔한 오해는?
작품을 보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들 생각하는 모양이다. 실제로는, 이렇다. 특강 같은 걸 나가면 학생들이 지루해서 놀란다.

요즘 20대들은 무엇을 가장 궁금해하나?
작가로서 다른 일 하지 않고 먹고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내가 학생일 때도 관심 있는 문제긴 했지만 그 질문이 필수적으로 먼저 나오지는 않았는데, 아티스트로서 존재론적인 화두가 요즘 후배들에게 정말 절실한 문제인 것 같다.

초상화 외에 스타벅스, 아디다스 등의 로고를 가지고 작업한 문자도 시리즈도 흥미로웠는데 요즘은 손을 뗐나?
방법을 생각 중이다. 다시 나왔을 때 어떤 시점에 나오는 게 좋을까를 고민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당신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나.
중장년층이 볼 때는 이미지가 낯설 테니까.

컬렉터나 시장, 갤러리가 원하는 것과 자신의 관심사를 어떻게 조율하는 편인가?
안 하면 그만이다. 시장의 반응 같은 거 생각하면 어떻게 작업을 하나?

작업 안에서 찾는 재미 말고는 무엇에 관심이 있나?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야구팀이 있는데 정말 오랫동안 엉망이었다. 요즘 좀 잘해서, 오래 잊어버리고 살던 그런 기분을 요즘 되찾았다. 그게 좀 특별하다.

삶이 꿈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끝엔 뭐가 있을까?
어려운 걸 수도 있지만 아주 오래 이 일을 하고 싶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사실은.

유희왕의 귀환

함진

조각가 함진의 시작은 미약했다. 작가로서의 존재감이 아니라 작품의 물성에 대한 이야기다. 손가락 두 개면 망가뜨릴 수 있을, 채 1cm가 될까 말까 한 초소형 점토 조각이 그의 출발점이었다. 좁쌀이나 곤충만한 몸집을 지닌 존재들의 작지만 뚜렷한 기쁨과 슬픔, 그리고 두려움은 돋보기를 가져다 대야 비로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얼마 전 함진의 개인전이 열린 화동 PKM갤러리에서는 수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도쿄 모리미술관, 에스파스 루이 비통 파리 등에 다녀갔던 소인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전시장을 채운 건 생물과 무생물이 엉겨붙은 듯한 무채색 덩어리들이다. 선명하던 이미지는 모호해졌고, 작업의 규모는 두 손 안에 뿌듯하게 얹힐 정도까지 자라났다. 함께 공개된 알록달록한 색감의 수채화 역시 작가에게는 새로운 시도다.

하지만 여전한 사실은 신작의 본질 역시 유희라는 점이다. 한층 강조된 즉흥성은 작품의 이야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더한다. 모든 페인팅과 조각은 붓이 가는 대로, 점토가 이겨지는 대로 놀이하듯 완성한 것이다. 누군가는 직관적으로 읽히던 전작에 비해 난해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진 자신은 전보다 작업이 더 즐거워졌다고 이야기한다. 일상과 비일상이 교차하는 SF에 매번 매료되며 자신이 무척 대중적인 취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천진한 바람은,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월-E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8월 10일부터 6개월 간 구 서울역사에서 열릴 그룹전 <카운트다운>(가제)은 함진의 유쾌한 현재를 엿볼 또 한 차례의 기회다.

6년 만의 개인전이다. 작가 스스로는 예전 작업과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간단해졌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전보다 더 유희적이고 즉흥적으로 작업했다. 대충 보면 색만 검정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깊게 볼수록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띌 거다. 담긴 의미, 치중하는 이야기 등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점, 선, 면을 퍼지게 하거나 응축시키는 과정에서 조형적인 재미를 새삼 찾게 됐다. 새로운 놀이를 발견한 기분이다.

변화의 계기로 꼽을 만한 사건이 있었나?
페인팅이다. 몇 년 전 참여한 영국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작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작업의 재미를 많이 잃어가는 기분이라고 털어놓았더니 인도 출신의 빈두라는 작가가 페인팅(혹은 드로잉)을 권했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거다. 결국 그 덕분에 조각도 바뀌게 된 듯하다. 예전 작품들은 굉장히 구상적이고 사실적이었다. 파리를 날리는 소년, 배꼽 안에서 잠자는 소년 등 보는 즉시 파악이 가능한 이미지였으니까. 페인팅을 하면서 구상이 반추상이나 추상으로 옮겨갔다. 전과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조형적인 이야기는 여전히 가득 차 있는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만드는 입장에서도 재미있다. 아예 정답이 없으니, 무엇이 완성될지 모르는 상태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흥미로운 길이 넓게 열린 느낌이다.

페인팅은 조각의 중간 단계일 뿐인 건가?
중간 단계가 맞다. 난 그냥 물감과 물, 붓을 가지고 논 것뿐이다. 그런데 전시를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계속 그리긴 할 것 같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싫어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미를 느낀다. 기분 전환에도 도움이 되고.

예전 작업과 달리 신작들은 제목이 없다. 제목을 붙이는 일만큼이나 붙이지 않는 일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페인팅이든 조각이든 계획을 세워서 한 게 없다. 그러니 제목을 붙이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냥 번호만 매겨뒀는데 나중에 헷갈릴까 봐 좀 걱정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 2번을 구입했는데 어떤 게 2번인지를 내가 모르면…?

오래전부터 자신의 작업에 대해 ‘유희적’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순수한 놀이에 가까워졌다고 보나?
유희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예전 작업은 프러포즈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를 웃게 만들기 위해 정성껏 준비하는 기분이 있었다. 요즘 건 댄스 같다. 파트너가 발을 내밀면 뒤로 한 발짝 물러나야 하는 춤처럼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내 움직임 역시 변화무쌍하게 바뀐다. 이를테면 재료와 나의 댄스라고 할까?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변화는 색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구상적으로 단번에 읽히지 않는 무채색 덩어리라서 언뜻 전작보다 어두워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을 더욱 집중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외계의 물질 같은 검정 덩어리가 보일 뿐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그 안에 수겹의 레이어가 있다. 한눈에 읽히도록 하고 싶지가 않았다. 어쩌면 예전에 내가 아주 작은 작품들을 전시장 곳곳에 숨겼던 것과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좀 더 촉각적인 작업이 됐다.

자세히 뜯어볼수록 기이한 형상들이다. 생물인 것 같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 아이디어를 가져온 곳이 있나?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로 곤충들을 한참 바라볼 때가 많다. <간츠>, <호문쿨루스> 같은 만화도 좋아한다. 일상과 비일상이 뒤섞이는 SF에는 늘 끌린다. 좋아하는 게 많은 편인 것 같다. 내가 ‘자기만의 세계’에만 머무른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스스로는 굉장히 대중적인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49일>이나 <최고의 사랑>도 열심히 봤고.

작업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나?
길게는 작품당 일주일?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해서.

작업실 없이 카페에서 주로 일한다고 들었다. 요즘도 마찬가지인가?
늘 그렇진 않다. 작품 크기가 예전에 비해 커지다 보니 ‘쪽 팔려서’ 안 되겠더라. 주로 홍대앞 카페를 찾는데 가끔은 옆 테이블에서 이렇게 수군대는 소리도 들린다. “난 저렇게 밖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

카페에서 일할 때의 장점은 뭔가?
안 졸게 된다는 것. 내가 잠이 많은 편이라 집에서는 일을 못한다. 그나마 밖에 나와야 정신이 번쩍 든다. 창피해서 잘 졸지도 못하고.

자거나 멍 때리는 것도 본인에게는 작업의 준비 과정이라고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랬었나? 난 뭐든 잘 잊어버리고 말도 잘 바꾼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대답하겠나?
작업을 해야 작업이다(웃음). 작업 전에 생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그렇게 대답했던 것 아닐까? 일단 머릿속이 정리되면 졸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비평가들은 자꾸만 작업에서 의미를 읽어내려고 한다. 가끔은 독해한 내용이 창작자의 원래 의도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다. 본인 작품에 대한 리뷰를 챙겨 읽나?
아직까지 내 작업에 관해 깊게 쓴 사람이 없다. 쓸 말이 별로 없나 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평론가들의 식성을 자극하는 지적인 작업은 아니다. 늘 스스로가 쉽고 대중적인 작가라고 생각해왔다.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나?
나에 대한 글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셔서 혼자만의 놀이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자폐적인 성향이 있어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나오려 들지 않는데다…. 그런데 정말로 난 그런 타입이 아니다. 작품의 분위기 등 여러가지가 맞물려 그런 이미지를 얻게 됐나 보다 추측할 뿐이다.

대체로 작고 치밀한 작업이라 지켜보는 것만도 조심스럽다. 파손 없이 보관하는 데도 적잖은 공이 들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사람들이 구입하기를 두려워하더라. 비싸게 주고 사서 망가뜨릴까 봐. 생각보다 많이 못 팔고 살았다.

이제는 작업의 규모가 전에 비해 한결 커졌다. 함진의 작품을 구입하려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나?
사실 파는 게 겁나고 아깝기도 하다. 어쨌든 똑같은 게 다시 나오진 않을 테니까.

작품이 분실되거나 훼손되는 데 개의치 않는 편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파는 일은 아깝게 느껴지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신경이 쓰이더라. 말을 바꾸게 되는 건 그사이 생각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몇 년 전 인터뷰를 읽으면 창피할 때가 많다. 도대체 왜 이런 소리를 했을까 싶어진다. 거짓말은 아니었는데 당시 기분에는 그게 맞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파리와 소년의 사랑이나 폭탄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묘사한 전작들은 관람객에게 선명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방식은 다르지만 신작 역시 ‘조형적인’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다고 앞서 밝힌 바 있다. 함진에게 이야기란 어떤 의미인가?
이야기에 집착하는 경향이 분명 있다. 재미있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아닐까 싶다. 그리고 힘든 건 정말 싫다. 합성 점토를 쓰는 건 틀로 찍어내는 캐스팅 과정이 귀찮아서다. 난 유화는 하지 않는다. 24색 수채 물감으로 쓱쓱 그리니까 고급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다. 들고 다니기 편하고, 금방 마르고, 그 위에 금방 덧칠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재료를 쓴다.

10년 이상 작업을 해오며 작가로서 힘들고 재미없는 순간이 분명 있지 않았을까?
나이를 먹으면서 문득 인생이 재미없어졌다. 그냥 매일매일이 똑같으니까. 내 삶의 큰 낙이 여행인데 한동안 떠나지를 못했다. 그 탓이 크지 않나 싶다. 이번 전시 끝나고 돈이 생기면 여행부터 갈 생각이다. 다른 땅에 가면 먹는 것부터 보는 것까지 모든 게 다 새로워지니까 즐겁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심이 큰 편인가?
삶이 지루하다 보니 그걸 잊게 해줄 무언가를 필요로 하나 보다. 어쩌면 목숨을 건 문제다. 정말 죽을 듯한 지루함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요즘 새롭게 찾은 낙이 바로 작업이다. 점점 더 작가로 살기를 잘했구나 싶어진다. 이 일에는 스릴과 재미가 있고, 완성한 만큼의 뿌듯함도 있다. 삶의 재미를 다시 찾게 해주는 휴식처라고 할까? 작업에만 몰두하며 며칠 지내면 지겨웠던 일상을 재고하게 되니까. 외국 다녀온 뒤에 한국이 새롭게 보이는 것처럼.

가벼운 것이 좋아

권오상

조각가 권오상을 오후 2시에 만났다. 작가란 오후 2시에 느지막이 일어나, 4시 즈음 홍대앞 카페에 앉아 한가하게 놀아도 되는 직업이라 믿는 그가 막 서교동 작업실에 출근한 시각이었다. 1999년 권오상은 한 명의 모델을 수백 수천 개의 부분으로 나눠 촬영한 후, 그 사진을 다시 가벼운 스티로폼 덩어리에 붙여 만든, 일명 사진 조각을 발표했다. 그걸 두고 사람들은 2차원의 사진을 3차원의 조각으로 치환한 새로운 조각이라며 찬사를 보내거나, 과연 이걸 조각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며 의심했다. 정작 작가 자신의 목표는 혼자서는 도저히 들 수 없는 기존의 조각을 들고 나르기 편하게끔 가볍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가벼운 조각이란 게 사실은 무수히 많은 사진을 정교하게 이어 붙여야 하는 것이라, 더 힘을 들이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두 번째 미션이었다. 그리고 잡지에서 오려낸 연약한 종이 이미지를 얇은 철사를 이용해 세운 후 다시 사진을 찍어 완성한 ‘더 플랫’ 연작은, 바로 그 게으른 천성 덕분에 탄생했다. 그러니 그의 작품을 보며 작가의 의도를 궤뚫어보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거나, 그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의미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무거운 일상을 버티고 있는 그 시간에, 나 대신 그가 카페에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떠올린 엉뚱한 발상을 바라보며, 잠시 가벼워지면 충분하다.

지난 6월 두산 갤러리에서 ‘더 플랫’ 연작 중 10점을 전시한 전을 마쳤다. 단일 아이템으로 구성했던 기존의 ‘더 플랫’ 시리즈에 비해, 이번엔 그야말로 오만 가지 상품이 등장하다. 같은 시리즈의 이전 작품과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인가?
그렇진 않다. 새로운 작업에 들어간다고 작품에 대한 생각이 바뀌진 않는다. 그저 작가는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니까, 일종의 소명의식 때문에 변화해 보이도록 만든 거라고 할 수 있다. 맨 처음엔 아무래도 자주 보는 남성지에 가장 많이 나오는 시계를 선택했고, 그다음엔 여성지에 등장하는 보석을 다루되 한 잡지에 일정 기간 동안 등장한 모든 보석을 모으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이번엔 오직 <월페이퍼>를 월별로 오려서 작업했다.

그렇다면 2003년 처음 ‘더 플랫’ 연작을 시작하면서 했던 생각은 무엇인가?
나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잡지들을 뒤적거렸다. 동시에 간단하게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이전의 사진 조각 시리즈는 조각을 말 그대로 가볍게 만들고 싶다는 목표는 이뤘지만, 작업 과정이 워낙 복잡했기 때문이다. 천성이 게으른데 하고 싶은 건 많다. 그래서 그럴싸한 이미지들이 담긴 얇은 종이를 철사로 일으켜 세우면, 간단하게 조각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언제나처럼 이 작품을 조각과 사진 중 무엇으로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전시 제목을 떡하니 <조각(Sculpture)>이라고 단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조각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언제나 내 작품이 조각이었으면 좋겠고, 조각의 역사 안에서 읽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왜 ‘더 플랫’을 잇는 세 번째 시리즈 ‘더 스컬프처(The Sculpture)’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의 조각을 시도했나? 사실 처음엔 조각가의 혼이 담겨 있는 터치가 아니라, 담겨 있는 듯한 터치가 목표였다. ‘너희들이 조각을 원해? 그럼 보여줄게’ 하면서. 그런데 막상 재료가 손이 닿으니 자꾸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거다. 왼손으로 만들 듯이 만들자던 처음 의도는 어디로 가고, 결국 손발을 다 써도 끝이 안 날 만큼 열중하게 됐다.

‘데오도란트 타입’으로 대표되는 사진 조각으로부터 출발해 ‘더 플랫’, ‘더 스컬프처’ 시리즈를 차례로 발표했다. 그런데 하나의 시리즈가 완결된 이후 새로운 연작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맞물려 돌아가는 듯하다.
작품마다 수명이 있는 것 같다. 그 수명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엔 이 사진 조각 작품들을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작업들을 보면서 너무 좋아 떨어질 줄 모르던 큐레이터들도, 결국 전시는 사진 조각으로 하자고 한다.

그렇게 ‘권오상’ 하면 사진 조각이 따라붙는 상황이 답답하지 않나?
아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상황도 안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덕분에 사진 조각에서 나온 수익으로 하고 싶은 다른 작업도 할 수 있지 않나.

학생이었던 1999년에 데뷔해 2005년엔 아라리오 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발탁됐다. 수많은 국내, 해외 전시를 치르기도 했다. 꽤나 좋은 조건에서 작업을 해온 셈이다.
무명이었던 시간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누구에게나 불안한 시간이 있겠지만, 스스로도 어려운 적이 별로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뭐랄까 해맑은 면이 있지 않을까. 전시장이 어두운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사진 촬영 중에도, 이번 전시장을 밝게 만들기 위해 애썼다는 이야기를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어두운 게 너무 싫다. 작가라고 하면 빛 안 들어오는 지하에서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을 싫어한다. 그래서 전시를 준비하면서 갤러리의 노란 조명을 형광등으로 바꿨다. 너무 과한 것 같아 뜯어내긴 했지만, 바닥도 흰색으로 깔아보고 별짓 다했다.

잡지 속 이미지를 잘라 활용한 ‘더 플랫’이야 말할 것도 없고, 사진 조각 또한 잡지에 등장하는 모델들의 포즈를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잡지를 보면서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당시에는 <계간 미술>이었던 <월간 미술>을 구독하면서, 잡지를 통해 부르델과 같은 유명한 조각가를 만났다.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보자면 제3세계에 살고 있는 작가인지라, 원화를 볼 기회가 많지않았으니까. 그게 습관이 되어서 정작 미술관에 가서는 대충 보고, 대신 책을 살 때가 많다.

특히 잡지 속의 광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작가 자신의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일까?
조각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모두 물욕을 가진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그러한 물질에 대한 관심과 욕심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잘 만들어진 조각을 보는 것은, 잘 만들어진 공산품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이디어를 통해, 비싸지 않은 걸 굉장한 무언가로 만드는 게 더 멋지긴 하다.

그렇게 좋은 물건들이 작품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일까,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기 때문일까. 작품을 보면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조각은 당연히 만져야 하는 거다. 만졌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느끼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마치 아이폰이 그러하듯 모든 덩어리가 있는 물건은 그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손에 쥐고 싶게끔 만드는 속성이 있다. 그게 조각의 매력이다.

잡지나 브랜드와의 협업, 대중 가수의 음반 커버 이미지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대중 매체를 익숙하게 느끼는지?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작가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때 교정에서 야외 조각전을 했다. 당시 데뷔한 이후였는데, 사진 조각을 광고하는 광고판을 만들어 그 안에 ‘미디어가 작가를 만든다’는 슬로건을 적어서 내놓기도 했다. 미술은 혼자 가는 분야가 아니다. 사회와도, 그 사회 속의 대중 매체와도 함께 움 직인다. 그건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또 다른 사진 조각을 작업 중인 것으로 안다. 기존의 작품과 어떤 면에서 다른지?
지난해 <토르소>전을 준비하면서 70년대 모터사이클을 만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구해 촬영할 수가 없어서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이미지들이 참 많더라. 그때 허공에 떠다니는 정보를 이용해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제 모델을 부분 부분 촬영하지 않고, 인터넷상에 떠다니는 이미지들로 작업 중이다.

그 외에 또 구상하고 있는 다른 작품이 있나?
2000년 즈음 사루비아 다방이 처음 생겼을 때, 개인전 하고 싶어서 응모했다가 떨어진 프로젝트가 있다. 우선 공간의 내부를 촬영해서 사진 조각으로 공간을 만드는 거다. 그런데 다시 만들어진 공간은 네모난 게 아니라 둥그레질 수도 있고, 어느 한 부분이 과장되게 늘어날 수도 있다. 큰 작업 규모 탓에 어떻게 벌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시각적으로 낯선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개인전을 2001년에 열었으니, 꼭 10년이 흘렀다. 변한 점이 있나?
내 돈으로 꾸리는 건 아니지만 작업실이 생겼고, 계속 작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게 되었다. 하지만 작품 밑에 깔리는 생각들은 바뀌기보다 오히려 명확해지고 있다. 구조는 그럴싸해도, 내부는 빈 통이 되었으면 하는 것 말이다. 작업을 할 때마다 대단한 의미를 집어넣지는 않는다. 이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관객에게까지 가 닿지 않을 거라는 소통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기도 하고, 현대미술에서의 소통이란 그런 게 아니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작가의 역할이 뭘까. 작가는 오후 2시에 느지막이 일어나 4시 즈음 홍대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손가락만 돌리고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의 기분, 거기에서 나오는 엉뚱한 발상을 통해 작업을 하고,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잠시 뇌를 환기시키면 그게 소통이라고 여긴다. 귀를 자르고, 폐렴에 걸린 삶을 사는 화가? 화가라서 귀를 자르고 폐렴에 걸리는 건 아니다. 정신적인 병 때문이거나, 건강을 돌보지 않아서겠지.

요즘 ‘아티스트’라는 편리한 단어를 많이 쓴다. 그런데도 여전히 조각가로 불리기를 원하나?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불렸으면 한다. 국립미술관에서 소장품을 구입할 때 작품의 장르를 분류한다. 그때 나는 자꾸 서류에 ‘더 플랫’을 조각 파트에 넣는다. 그러고는 떨어진다. 그럼 나는 ‘왜 이게 조각이 아니냐고!’라며 흥분한다(웃음). 거기엔 장난, 재미, 심술, 로망이 다 섞여 있다. 가끔 조각가라고 말하면 쑥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래도 공항에서 입출국하면서 쓰는 서류의 직업란엔 ‘조각가’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