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찢어지고 메이크업이 망가져도, 쇼는 계속되어야만 해.” 퀸의 노래 ‘The Show Must Go On’ 가사 같았다. 폭우가 쏟아지고 황사가 도시를 에워싼 가운데서도 공연을 멈추지 않았던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1. 4월 30일 오후 8시는 비와 음악만 있던 시간이었다.

1 옥상달빛 2오지은과 늑대들 3 노리플라이 4 토마스쿡 5 가을방학 6 10cm 7 박지윤 8 언니네이발관 9,13 비옷과 우산으로 중무장한 관객들에게는 음악이 폭우를 이겼다 10 검정치마 11 브로콜리 너마저. 12칵스

1 옥상달빛 2오지은과 늑대들 3 노리플라이 4 토마스쿡 5 가을방학 6 10cm 7 박지윤 8 언니네이발관 9,13 비옷과 우산으로 중무장한 관객들에게는 음악이 폭우를 이겼다 10 검정치마 11 브로콜리 너마저. 12칵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같은 기분이었다. 4월의 호우주의보라니. 한 해 중 가장 날씨가 좋을 이 시기인데도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에는 비 올 확률이 무려 100%였다. 지난 15년간의 일기 통계를 배신하는 날씨고, 뷰티풀 민트 라이프에는 치명적인 날씨다. 올해 두 번째인 이 축제는 이미 50일 전에 모든 티켓이 매진된 상태였다. 잔디밭으로 둘러싸인 야외 원형 극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봄날의 음악 소풍이, 첫 해에 이미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어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후, 일산을 향해 떠나면서 트위터를 열었다. “지금 뷰민라 분위기는 어떤가요?” 폭우 속에 슈퍼스타K2 출신 장재인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지만 제대로 관람하기 어렵다는 멘션들이 속속 달렸다. 관객들의 마음도 몹시 흐리고 바람 부는 상황이었다.

‘없는 게 메리트’ 인 청춘을 잔잔하고도 발랄하게 노래하는 옥상달빛이 이토록 구슬프게 들릴 수 있을지 몰랐다. 점점 굵어지는 빗발 가운데 관객들 대부분은 비옷을 입은 채로 우산을 쓰고 앉아 있었다. 메인 스테이지에서 무대에 오를 7팀 가운데 3팀째의 공연. 저녁 헤드라이너를 향해 갈수록 관객들이 늘어나는 게 보통이지만, 공연을 포기하고 이탈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상황. 가벼운 옷차림으로 소풍 즐기듯 마실 온 다수는 상당히 힘겨워 보였다. 비가 안 온 적이 드물었던 한여름 인천 펜타포트의 뻘밭에서 단련된 관객들에게는 사실 버텨볼 만도 했으나 봄의 음악 페스티벌에, 이건 아무래도 가혹한 악천후다. ‘피크닉 같은 야외 공연’을 표방하는 취지는 이미 무색해진 터였다. 공연을 보는 사람들도, 보다가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들도, 그리고 누구보다 뮤지션을 비롯해 준비한 이들이 속상한 상황이었다.

봄의 뷰민라, 그리고 가을의 GMF는 온화한 쌍둥이 같은 축제다. 뙤약볕 아래의 한여름 페스티벌과 달리 돗자리를 펴고 드러누워 한가롭게 음악을 듣는 게 묘미. 하지만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니, 비옷 입은 몸을 최대한 웅크려 계단식 좌석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 마이앤트메리의 보컬 정순용의 솔로 프로젝트인 토마스 쿡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이 무대에 섰었는데 햇살에 눈이 부셔서 제대로 뜨질 못했거든요. 작년 생각하며 신나는 노래들로만 골라왔는데 어쩌죠?” 빗나간 예상 덕분에 ‘공항 가는 길’ ‘골든 글러브’ 같은 경쾌한 레퍼토리가 빗속으로 던져졌다. 조용하게 앉은 객석에도 호응의 물수제비가 동그랗게 번져나갔다.

홍보 영상을 생략하는 식으로 세팅 시간을 조금씩 단축하면서, 공연은 날씨를 감안한 듯 기민하게 진행됐다. 2집을 준비하는 중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검정치마의 조휴일은 ‘오늘 공연을 도저히 진행 못할 거라 생각했다’며 자리를 지킨 관객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자리를 지키게 한 게 근성인지, 록 스피릿인지, 티켓 값 본전 생각인지, 혹은 곧 갈 생각이었지만 음악이 좋아서 남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검정치마의 노래 ‘Antifreeze’ 가사가 그날 상황의 처절한 낭만성을 한껏 고조시키며 관객들과 공명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하늘에선 비만 내렸어. 뼛속까지 다 젖었어….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빗줄기는 내내 굵었지만 다행히 바람은 잦아들었다. 무한도전에까지 데뷔하면서 홍대 최고 스타로 부상한 10cm가 등장했을 때는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릴 무렵이었다. 앰프로 증폭되지 않은 젬베와 기타, 멜로디온의 어쿠스틱 연주는 사방을 에워싼 빗소리 볼륨을 더 키우는 듯했다. 비옷에 우산에 부딪쳐 흘러내리는 투두둑 소리는 마치 효과음인 양 음악과 녹아들었다. 어느 순간 신기하게 추위라거나 젖은 소매 끝이라거나 장화 속에서 살짝 불어난 발가락 같은 건 희미해졌다.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천장을 두드리는 비와 함께 음악을 들으면 집중할 수 있는 것처럼 그 밤에 노래와 나만 남았다. 마지막 헤드라이너 브로콜리너마저가 무대에 올랐을 때, 주최측의 공지 멘트가 있었다. 오늘 공연의 유료관객들에게 관람료를 전액 환불해준다는, 쉽지 않았을 결정이었다.

다음 날 거짓말처럼 비가 멎었다. 대신 올해 들어 최고의 황사가 찾아온다고 했다. 아무 고민 없이 다시 이틀째 공연장으로 향했다. 2011년 4월 30일 저녁 8시 뷰민라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쁜 날씨는 있어도 나쁜 축제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