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 영화감독, 뮤지션, DJ, 타투이스트 등이 서로 만났고, 그 선택의 결과는 탁월했다. 뮤지션 이상은과 아이돌을, 디자이너 한상혁과 쎄시봉을, 그리고 영화감독 이해영과 영화 속 금자씨 의상을 논하는 새로운 인터뷰.

왼쪽부터 | 블로그‘ 유어 보이후드’를 통해 서울의 풍경이 담긴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찍는 패션 블로거이자 칼럼니스트인 홍석우. 앤디&뎁의 듀오 디자이너인 김석원과 윤원정. 김석원은 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며 신진 디자이너들의 멘토 역할을 했다. 엠비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이 인터뷰의 게스트 에디터인 디자이너 한상혁이 마스크를 쓴 채 위트 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을 제작한 온스타일의 이우철 PD.

왼쪽부터 | 블로그‘ 유어 보이후드’를 통해 서울의 풍경이 담긴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찍는 패션 블로거이자 칼럼니스트인 홍석우. 앤디&뎁의 듀오 디자이너인 김석원과 윤원정. 김석원은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며 신진 디자이너들의 멘토 역할을 했다. 엠비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이 인터뷰의 게스트 에디터인 디자이너 한상혁이 마스크를 쓴 채 위트 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스타일 매거진>을 제작한 온스타일의 이우철 PD.

 

#1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시간: 2월 7일 저녁 6시
장소: 삼청동의 카페, D_55 d’Industry
모인 이들: 김석원(패션 디자이너), 윤원정(패션 디자이너), 이우철(온스타일 PD), 홍석우(포토그래퍼 블로거)

이우철: 서울 컬렉션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한상혁: 아, 이제 시작하고 있어요. 그런데 좀 늦어져서… 엊그제 최종적으로 어느 정도 정리를 했거든요. 결론은 착장 수를 확 줄이는 걸로….
김석원: 맞아. 사실 그게 스타일리스트와 작업해보면 다 디자이너 욕심이거든. 객관적으로 보면 그 옷 때문에 결국 흐름이 깨진다는 걸 아는데도 왜 매번 욕심을 부리는지.
한상혁: 거기에 배어 있는 땀방울 때문에 그런 거겠죠. 한 땀 한 땀… 그렇지 않나요? 하하. (중략)
한상혁: 자, 오늘 인터뷰가 레어 인터뷰입니다.
김석원: 레어? 뤠어?
한상혁: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 다른 분야에 있잖아요. 사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분야이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서로 궁금한 점을 나누는 거죠. 어떻게 하면‘패션’이란 것을 대중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두고 말이죠. 사실 전 최근에 TV에서 ‘쎄시봉’을 보면서 콘텐츠의 힘을 새삼 느꼈어요. 아, 이거 괜찮다. 짜릿짜릿하고. 쎄시봉 보셨어요?
김석원: 아, 저는 다 봤어요. 사실 감흥은 1부 오리지널 때가 더 강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 이장희 씨 나와서 편지 읽을 때 뭉클하더라고요. 그렇게 자기가 가진 걸 놓아가면서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홍석우: 전 집에 갔는데 어머니가 계셔서 같이 봤어요. 저희 어머니가 75학번, 그 당시에 딱 스물이었는데 누가 인기 있었고 하면서 현장에 직접 가서 봤던 것들을 얘기해주시는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쎄시봉’이라는 콘텐츠에 감동을 받는다는 건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그 뭔가가 있다는 얘기죠. 발굴할 수 있는 시선들만 있으면… 패션도 뭔가 그런 게 있지 않을까요?
김석원: 요즘 콘텐츠나 문화가 한 세대만을 위한 것, 특히 아이돌이나 젊은 문화 쪽에 집중되고 다른 세대들이 소외되어 있었어요. 그러다가 ‘쎄시봉’ 같은 게 나와서 사람들의 욕구가 제대로 맞아들어가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 거죠. 이걸 통해 아직 한국에는 다양성이란 게 부족하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이우철: 전 PD 입장에서 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제작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리고 그들도 분명 이 콘텐츠가 일회성이 될까, 아니면 지속할까 이런 고민을 했을 거예요. 사실 패션계도 디자이너 지춘희 선생님 한 분을 모시려고 해도 너무 어렵거든요. 분명 세대마다 옷을 만드는 관점이 달랐을 거고 대중들에게 그걸 보여주고 싶은데 일단 안 나와주시니까 저희도 늘 트렌드에만 얽매이는 방송을 만들게 되는 거죠.
한상혁: 사실 디자이너들이 등장하면서 대중들이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되고 수준도 높아지는 거잖아요.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일단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이우철: 요즘은 모델 한혜진과 <스타일 매거진>을 진행하면서 그냥 우리들끼리 화보를 찍어요. 어색한 설정을 더하느니 아예 패션 쪽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들이 일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걸 더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공중파가 운영하는 케이블 채널을 보면 패션이라는 콘텐츠를‘ 예능’으로 풀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패션을 희화화하고 싶지는 않아요.
한상혁: 희화화라… 그게 왜 그런 걸까요?
이우철: 요즘 패션이란 게 계속 새로운 걸 찾고 있잖아요. 방접점이 패션이 되고, 패션 쪽에서 다루는 내용이 재미있고. 그러다 보니 스타일리스트가 나와서 MC들과 함께 연예인들의 옷을 평가하는 거죠. 베스트, 워스트다 이렇게 나눠서요.
한상혁: 옷에 워스트가 있을까요?
홍석우: 그게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말이죠. 패션에 정확한 기준이 없는 대중들은 자칫 그 내용을 맹신할 수 있으니까요.
김석원: 사실 디자이너들이 방송에 출연 안 하려고 하는 게 다른 쪽에 한눈 안 팔고 본연의 일에 충실하려는 일종의 고집이기도 하죠. 저도 한 10여 년을 그렇게 고집하다가 그걸 깨고 나온 게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의 심사위원이었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검의 양날과 같은 건데… 패션이라는 콘텐츠를 알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서야 하는 거고, 결국 다양한 사람이 관계를 맺으면서 콘텐츠의 양과 질이 성장하는 거잖아요. 패션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방송에 관여하는 걸 꺼리다 보면 결국 공중파에서 이걸 오락화하고, 출연한 사람들이 희극화되고,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어요. 지금 현대 사회에서 소셜 네트워크 얘기가 나오는 마당에 나만의 세상에서 모든 걸 닫고 패션을 얘기하기에는 좀… 어쨌든 우리가 자기 일에 대한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어요.
한상혁: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젊은 친구들이 나도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대중들의 옷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게 사실이죠. 이처럼 방송은 패션을 바라보는 이들의 평균적인 수준을 높이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석원: 그 좋은 예가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첫 회에서 우승한 이우경 씨의 경우죠. 한때 ‘영국 디자이너의 옷을 카피했다’ 이런 논란이 있었거든요. 그때 나온 디자이너 이름이 ‘가레스 퓨’였고요. 그런데 일반 사람들이 가레스 퓨에 대해서 다 알기는 어려운데 누구나 아는 것처럼 얘기를 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저도 디자이너이지만 가레스 퓨의 옷을 몇 번 못 본 사람인데 말이죠.
이우철: 그런 부분을 고민해본 적이 있는데, PD들 중에서도 스타일 프로그램 관련 PD가 가장 어렵다는 얘기를 해요. 저는 좋아서 하는 거지만… 그게 왜 어려울까 하고 PD들끼리 얘기해봤는데 음악과 영화는 저렴한 가격에 그것을 계속 접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패션은 잡지만 봐선 안 되거든요. 결국엔 사서 입어보든지 해야 하는데 이게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김석원: 흠, 그러니까 이런 측면에서라도 디자이너들이 부업을 많이 해야 해요. 브랜드와 협업을 해서 저렴한 라인을 선보인다거나… 대중과 쉽게 소통할 어떤 창구를 만들어야죠.
한상혁: 어떤 영화를 1백만 명의 관객이 봤다고 했을 때 그 파급력은 대단한 거죠. 옷을 입히지 않고도 영상 콘텐츠를 통해서 대중들이 어떤 패션을 접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홍석우: 전 그런 면에서 패션계가 스스로 좀 더 순화해서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잡지에 글을 쓸 때와 신문에 글을 쓸 때가 다르거든요. 신문은 엄마나 할머니도 보시는 거니까 너무 어렵게 쓸 수는 없죠.
김석원: 하지만 패션의 성격이라는 게 가까이하기도, 멀리 바라보기에도 어려운 점이 있거든요. 패션은 사람의 욕망이 담겨있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손에 잡히면 매력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서 보면 아예 다른 나라 사람 얘기가 되어버리니까 적절하게 응용이 되어야 하죠. 그러니까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참 어려운 얘기인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쎄시봉’이라는 콘텐츠에 감동을 받는다는 건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그 뭔가가 있다는 얘기죠. 발굴할 수 있는 시선들만 있으면… 패션도 뭔가 그런 게 있지 않을까요.”

한상혁: 윤원정 이사님은 남편(디자이너 김석원)이 방송에 나간다고 했을 때 어땠어요? 어떤 조언이라도 해 주셨나요?
윤원정: 파우더라도 바르고 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한상혁: 하하. 디자이너의 저변 확대를 위해 파우더라도.
윤원정: 그런데 재밌는 건 미국에서 다니던 저희 모교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너무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한국에서 프로젝트 런웨이를 해? 앤디가 마이클 코어스야? 너 혹시 질투하지 않았어?’이렇게 묻더라고요.
김석원: 질투했지. 하하.
윤원정: 그런데 방송의 힘이란 게 정말 무섭더라고요. 앤디&뎁이 그전에는 대중들이 요만큼만 알고 즐기는 브랜드였다면 방송 이후로 정말 더 많은 사람들이 아는 브랜드가 되었죠.
이우철: 이처럼 대중들과 콘텐츠를 제대로 공유하면 패션 미디어도 훨씬 탄탄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희화화하지 않고도요.
한상혁: 희화화라는 게 좀 더 얘기해볼 만한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콘텐츠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도 생각해봐야겠죠?
이우철: 저희 제작자들도 그게 가장 큰 딜레마예요.
한상혁: 희화화하니까 고 앙드레 김 선생님이 떠올라요. 정말 우리나라에 꼬맹이부터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우철: 개그맨들이 여러 번 선생님을 희화화하긴 했지만 그래도 본연의 모습은 지켰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그래서 패션을 하는 분들과 어느 정도까지 그 캐릭터라는 걸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하죠. 충돌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본인이 어느 선까지 할 수 있는지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윤원정: 그러니까 막연한 기대치가 있을 때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와 고객의 관계도 그렇고요. 사실 그런 캐릭터가 연기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앙드레 김 선생님이 대중을 웃기려고 한 건 아니잖아요. 결국엔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때 대중들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려 있는 거죠.
한상혁: 그래서 대학 때 의상 전공한다고 하면 ‘앙드레 한 되는거야’ 이렇게 얘기하곤 했던 거 같아요. 그러면 패션 콘텐츠를 가지고 어떤 기획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김석원: 미국에서 재미있게 본 한 케이블 채널이 있는데, DIY방식으로 가구 등 집안의 온갖 물건을 만드는 걸 보여줬어요. 그것처럼 디자이너가 직접 옷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죠. 약간의 오락적인 요소도 넣어서 시청자로 하여금 원단과 단추, 재봉틀을 사고 싶게 만드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오늘은 프레야(플레어) 스커트를 만들겠습니다. 이런… 하하. 궁금한 사람들에겐 재미있겠죠.
한상혁: 석우 씨는 블로그를 통해서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의 스트리트 패션 사진도 찍고 그걸 모아서 책도 낼 거라던데 어떻게 되어가요?
홍석우: 네, 아직은 좀 더 사진들을 많이 찍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언젠가 꼭 만들어야죠.
김석원: 일본에 갔는데 점퍼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담은 책을 3만 엔에 팔고 있었어요. 한 30~40만원? 그런데 결국 그 책을 안 살 수가 없게끔 만드는 게 콘텐츠의 힘인 것 같아요.
홍석우: 그래서 패션이 동시대적인 것을 다루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아카이브’가 중요한 거죠. 영국 V&A 뮤지엄만 보더라도 학자들이 패션을 얘기하고 다루고, 현대 디자이너들이 작업에 참여하고 그게 다시 아카이브가 되고….
김석원: 진짜 메트로폴리탄 코스튬에 가면 거긴… 정말 짱이에요. 수백 년도 더 전 시대의 레이디 의상이 다 나오죠.
홍석우: 그래서 지금 뭔가 만들고 있는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가령 3년 전에 만든 브랜드가 굳이 재고를 떨쳐버리기 위해 모든 것을 팔아버리는 게 아니라 관계했던 것들을 갖고 있는 거죠. 물론 이사 갈 때 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김석원: 그런 게 비즈니스 하는 입장에서 보면… 사실 론칭하고 1, 2년째는 내년에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재고 관리가 안 되죠. 일단은 생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상혁: 그래도 한 피스씩이라도 남겨두면 안 될까요?
김석원: 한 피스 한 피스 하다 보면 나중에 이만큼이 나와요. 그러다가 나중에 좀 비즈니스를 할 만하면 ‘아, 그것들이 다 어디 갔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홍석우: 사실 제가 패션 스냅으로 분류되는 사진을 시작한 이유는 외국인들이 서울에 오면 인사동, 남산, 명동만 찾는데 실은 서울에도 정말 옷 잘 입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예요. 한 마디로 패션으로‘ 아카이브’를 한다는 자각을 가지려고 해요. 몇 년 하다 보니까 사진이 쌓이고… 아마 블로그 회사의 하드가 날아가지 않는 한 거기 남아 있겠죠? 하하.
김석원: 선진화가 될수록 옛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한상혁: 그게 맞는 얘기인 것 같아요. 미래학자들이 과거의 아카이브 없이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자,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우리 조만간 한번 더 모이는 거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