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호텔 객실의 침대 위에 몇 점의 미술 작품들이 흐트러져 있다면, 미술관에서의 에티켓은 잠시 잊어버리고 침대 위로 올라앉아 한 번쯤 만져보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관객으로 하여금 은밀한 유혹에 시달리게 만드는 아시아 탑 갤러리 호텔 아트 페어(AHAF)가, 홍콩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1. 최소영 ’런던 밤거리’ 2. 서용선 ‘쌍계사’ 3. 장 미셸 바스키아 ‘Jawbone of an Ass’ 4. 줄리안 오피 ‘Sarah.1’ 5. 고레히코 히노 ‘Lying down’ 6. 타카노부 고바야시 ‘Portrait-cloud’ 7. 요시토모 나라 ‘STAR’

1. 최소영 ’런던 밤거리’ 2. 서용선 ‘쌍계사’ 3. 장 미셸 바스키아 ‘Jawbone of an Ass’ 4. 줄리안 오피 ‘Sarah.1’ 5. 고레히코 히노 ‘Lying down’ 6. 타카노부 고바야시 ‘Portrait-cloud’ 7. 요시토모 나라 ‘STAR’

허름한 모텔 방 혹은 화가의 작업실. 그 방 안에서 그림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종종 묘한 기류가 감지되곤 한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 속의 모텔 방에서 3류 화가 루드 콕스의 이젤 앞에 선 야스민이 나체가 되었을 때에도, 역시나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화가 베르메르가 열여섯 살 소녀 그리트에게 아내의 진주 귀걸이를 걸어주고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 작업실에서도 그랬다. 그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작가와 피사체만이 공유할 수 있는 아주 사적인 행위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방에서 나와 전시실로 들어간 작품들이 그토록 농밀한 기운을 잃어버리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전시실로 들어간 순간, 작품은 그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의 소유물이 되기 때문이다.

2008년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서 첫 행사를 시작해 곧 4회를 맞는 아시아 탑 갤러리 호텔 아트 페어(AHAF)는, 누군가의 방에서 탄생했을 미술 작품을 다시 방으로 돌려보낸 색다른 아트페어다. 회화, 조각 등의 다양한 작품이 일반적인 큐브 형태의 전시실이 아닌 침실 혹은 욕실에 놓여 있어, 마치 작가가 작업하다 옆에 놓아둔 작품들을 몰래 만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물론 작품과 단둘이 대면할 기회를 포착하기가 쉽지는 않다. 오는 8월 27일부터 사흘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AHAF 서울의 경우, 90여 개 객실에 아시아 지역 70여갤러리의 총 30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는 꽤나 큰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작품과 관객의 소개팅이 아니라 많은 사람과 작품들이 한꺼번에 만나는 사교계모임에 가깝다는 얘기다. 게다가 최고 20억원에 달하는 가격을 지닌 작품도 있어, 가까워지기도 전에 신분의 벽에 부딪히지 않으면 다행이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다채롭게 선보이는 특별 프로그램에선, 그 방을 찾아온 관객과 친밀해지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8인의 일본 현대 작가들의 특별 기획전 <이미지의 모험가들>은 참신한 일본 현대 미술의 면면을 진하게 드러내고, 한국 중견 조각가들의 그룹전에서는 한국 현대 조각의 단면을 근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공모전을 통해 발굴한 젊은 작가들의 특별전 <AHAF 영 아티스트>, 사진작가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배우 조민기의 특별전은 관객 그리고 한국 미술의 현재와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읽히는 대목이다. 특히 VIP라면이 모든 전시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아트 투어, 미술품의 감상과 구매를 위한 아트 컬렉팅 강좌, 한국 무용과 영상 아트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오프닝 파티에 참여할 수 있어, 작품들과 한데 어울려 노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전시 형태는 출품된 작품들을 있는 그대로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곳에서는 일렬로 박은 못에 좌우 균형을 맞춰 똑바로 걸어놓은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세면대에 무질서하게 걸쳐 있거나, 침대 위에 늘어져 있거나, 심지어 불경스럽게 변기 위에 올려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 반듯하게 걸려 있는 작품들을 볼 때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은밀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침대로 올라가 작품을 향해 돌아 누워 쳐다보고 싶고, 자꾸 만져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정형화된 아름다움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무질서한 빈 구석에 눈이 가고, 손이 가고, 덩달아 마음까지 따라가기 마련이니까. 만약 ‘Love is touch’라고 노래한 존 레넌을 믿는다면, 만져보고 싶다는건 그 작품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는 가장 원초적인 증거이니, 이번 기회에 호텔객실에서 내 방으로 이사를 시켜주는 것도 좋겠다. 이번에 결심하지 못하면 또 다시 반년을 기다려야만 한다.

8. 미술관 가는길 갤러리 전시장 9. 판 앤 웨이 갤러리 전시장 10. 아트사이트 갤러리전시장 (현장 사진은 모두 AHAF 2009 자료)

8. 미술관 가는길 갤러리 전시장 9. 판 앤 웨이 갤러리 전시장 10. 아트사이트 갤러리전시장 (현장 사진은 모두 AHAF 2009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