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문화의 성지 클라이맥스 북스의 파운더 이사벨라 벌리를 만나다

김현지

단 하나의 책장으로부터

뮤지션 데본테 하인즈, 배우 존 워터스,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같은 인사들이 찾으며 패션과 문화의 성지로 불리는 곳. 열 평 남짓한 공간에 책장은 단 하나만 둔, 작지만 도발적인 ‘클라이맥스 북스(Climax Books)’는 규모보다 취향과 태도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북스토어의 파운더이자 전 아크네 스튜디오 CMO, 최연소 편집장이라는 이력을 지닌 올라운더 이사벨라 벌리(Isabella Burley)를 만나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되는 클라이맥스 북스의 거대한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위치한 클라이맥스 북스. 각종 사진집과 희귀한 빈티지 서적, 의류, 문구류 등 다양한 굿즈를 만나볼 수 있다.

<W Korea> 클라이맥스 북스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요?
이사벨라 벌리(Isabella Burley)
클라이맥스 북스가 지닌 방대한 세계관을 직접 경험해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클라이맥스 북스는 사물들이 존재할 수 있는 맥락을 제공합니다. A24의 같은 신간이든, 1995년에 발간된 이든 클라이맥스 북스의 유니버스 안에서는 묘하게 어우러지며 설득력을 얻거든요. ‘Climax’ 레터링이 적힌 티셔츠나 후디, 라텍스 쇼핑백조차 이 맥락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죠. 결국 제가 가진 다양한 관심사와 사물들이 한데 모여 존재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 그리고 그 틀을 제공하는 것이 클라이맥스 북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Books, Videos and more’는 어떤 의미인가요?
클라이맥스 북스의 유니버스를 암시해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상의 것(More)은 대체 뭘까?’, ‘비디오는 또 뭐지?’라고 생각하게 만들죠. 이 문구는 한계가 없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 이상이 무엇이 될지는 파운더인 저조차 모릅니다. 미래에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겠죠. 저에게는 그 지점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서점에 책장이 단 하나뿐입니다.
다들 그 점에 대해 불평하곤 하죠(웃음). 클라이맥스 북스는 아주 작은 공간입니다. 때문에 자신감 있는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싶었어요.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요. 어느 정도는 ‘싫으면 말고(Take it or leave it)’라는 식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클라이맥스 북스가 믿는 확실한 큐레이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클라이맥스 북스의 엄격하고 압축적인 큐레이팅이 느껴지는 책장. 패션, 음악, 예술 등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컬렉션을 소개한다.

도서 목록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끊임없이 변합니다. 만약 다음 주에 클라이맥스 북스에 다시 방문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라인업을 보게 될거예요. 엄격하고 압축된 큐레이팅이야말로 클라이맥스 북스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큐레이션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대상이 될 수 있어요. 다만 하나의 공통된 맥락이 있습니다. 경계를 허물고 남다른 방식으로 작업하는 아티스트와 이미지 메이커에 대한 관심이죠.

‘Books’ ‘Ephemera’ ‘Publishing’ ‘Wearables’. 웹사이트의 카테고리 중 ‘에페메라’라는 단어가 꽤 흥미롭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에페메라는 버려질 것을 전제로, 즉 일시적 용도로 제작된 문화적 자료를 말합니다. 영화 <처녀 자살 소동 (The Virgin Suicides)>의 전단지가 대표적인 예죠. 이런 홍보물들은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도록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본래 폐기돼야 했을 것들이 시간이 흐르며 아이코닉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놀랍지 않나요?

컬렉터 기질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아주 오래전부터요. 어떤 문화적인 순간을 기념하는 물건의 가치를 특별하게 여겨왔습니다.

첫 수집품이라 말할 수 있는 컬렉팅은 무엇인지요?
일본의 설치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의 잡지 <오르기(Orgy)>와 퍼포먼스 아티스트 코지 파니 투티(Cosey Fanni Tutti)의 VHS 테이프 작품 <어 스터디 인 스칼렛(A Study in Scarlet)>입니다.

파운더 이사벨라 벌리가 추천하는 세 권의 책. 각각 1999년과 2025년에 발간된 영화 <처녀 자살 소동(The Virgin Suicides>의 사진집과 포토그래퍼 히로믹스(Hiromix)의 포토진, <오 마이 러버(Oh My Lover)>.

매력적인 책의 기준은요?
긴장감이 느껴지는 구성을 좋아해요. 표지가 아주 강렬하거나 파격적인데, 내지는 그와 정반대인 경우처럼요. 또 물리적으로 놀라움을 주는 요소들도 사랑합니다. 종이의 재질이나 제본 방식, 판형의 크기 같은 것들이요. 결국 발견의 순간이 주는 즐거움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즐겨 찾는 북스토어가 있나요?
뉴욕의 대시우드(Dashwood), 마스트(Mast), 코덱스(Codex), 스트랜드(The Strand)요. 런던에서는 운영자 코너 던론(Conor Donlon)의 훌륭한 큐레이션이 돋보이는 던론 북스(Donlon Books)를 애정합니다. 도서 문화를 패셔너블하게 만드는 길을 개척한아이디어 북스(IDEA Books)도요. 이 분야의 초기 선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죠.

클라이맥스 북스에는 어떤 사람들이 일하는지 궁금합니다.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자질은 무엇인가요?
친절함입니다. 저에게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해요.

뮤지션 데본테 하인스, 모델 팔로마 엘세서, 배우 카일 매클라클런이 참여한 영상 시리즈 <Under the Cover>도 인상적입니다.
책에 대한 영감을 나누는 일은 무척 중요합니다. 또 다른 영상 시리즈인 와 에서도 알 수 있듯, 새로운 아티스트를 소개하거나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 역시 의미 있는 일입니다.

클라이맥스 북스의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대중문화(Pop Culture), 도서 문화(Book Culture), 그리고 패션 문화(Fashion Culture)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위치한 클라이맥스 북스. 각종 사진집과 희귀한 빈티지 서적, 의류, 문구류 등 다양한 굿즈를 만나볼 수 있다.

바로 어제, 고하 월드(Gohar World)와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협업을 위한 연간 플랜이 있나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올 초, 라일라(Laila)가 클라이맥스 북스에서 무언가 해보자며 문자를 보내왔어요. 그들은 책갈피를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종이를 상상했는데, 그들은 티파니 북마크에서 영감을 받은 아름다운 금속 재질의 콩 모양 북마크를 보내왔죠. 협업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타인의 아이디어와 클라이맥스 북스에 대한 그들만의 해석에 활짝 열어두는 태도요.

올해 계획하고 있는 단기 및 장기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곧 미국 이커머스 사이트를 론칭합니다.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그리고 올해 말인 11월에는 글로벌 풋웨어 브랜드와 스니커즈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아직 브랜드는 밝힐 수는 없지만요(웃음). 무척 설레는 일입니다.

클라이맥스 북스를 운영하며 얻은 교훈은요?
직감을 믿는 법을 배웠습니다. 무엇이 좋고 싫은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마음에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남기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기분이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거든요. 결국 자신의 취향과 관점을 신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시대의 기획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자기만의 관점을 갖는 것, 그리고 훌륭한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포토그래퍼
DANIEL PAIK
통신원
윤소원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