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승준, 챔피언이라 불린 소년

최진우

TV 속 세계 챔피언을 보며 “저렇게 강하면 아무도 안 괴롭히겠지?”라고 묻던 아이.

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체육관으로 갔고, 그때부터 국승준은 아버지에게 멋진 아들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13년 동안 링 위에 섰다. tvN <아이 엠 복서> 우승자, 국승준의 복싱은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전진하고, 상대의 가드를 두드리며 몸통을 깊이 파고든다.

탱크톱, 셔츠는 드리스 반 노튼 제품.

tvN <아이 엠 복서>가 끝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네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국승준
프로그램은 끝났는데, 저는 계속 시합이 있어서요. 여전히 매일 운동해요. 특별히 달라진 일상은 없어요. 그냥 예전처럼 훈련하고, 또 훈련하고 있습니다.

전 복싱 챔피언을 비롯해 전국에서 주먹 좀 쓴다 하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서바이벌을 치렀죠. 결국 국승준이 우승을 차지했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나요?
글쎄요. 크게 바뀐 건 없어요. 주변에서 ‘이미지가 좋아졌다’라는 말은 듣는데, 저는 여전히 운동 열심히 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에요. 제일 좋은 건 부모님이 더 많이 웃으시는 거예요. 그게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죠.

알아보는 사람도 제법 있을 것 같아요.
며칠 전에 가족들과 마트에 갔는데 한 가족이 가까이 오셨어요. 다들 방송을 보신 것 같더라고요.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국승준 선수, 우승 축하합니다!” 하니까, 가족 전체가 다 같이 “축하합니다!” 외치셨어요. 저는 “감사합니다” 하고 바로 모자를 눌러쓰고 도망쳤죠(웃음).

아직은 그런 관심이 좀 어색한가요?
익숙하지 않죠. 사실 <아이 엠 복서>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관심 받는 경험도 없었을 테니까요. 복싱은 대중적인 종목이 아니잖아요. 특히 아마추어 선수는 더 그래요. 경기를 해도 관중석엔 가족이나 친구가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이런 관심이 아직은 낯설어요.

재킷, 니트 톱, 팬츠는 릭 오웬스 제품.

<아이 엠 복서> 결승에서 우승이 확정된 순간,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챔피언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제일 크게 와닿았어요. 복싱을 시작한 뒤로 아버지가 저를 늘 “챔피언!”이라고 부르셨어요. 그냥 장난처럼, 습관처럼요. 그런데 그 말이 현실이 된 거잖아요. 그게 가장 뜻깊었죠.

시청자는 그저 방송을 즐길 뿐이지만, 출연한 사람들이 겪는 시간은 꽤 다를 수 있잖아요. 방송 촬영 경험은 어땠어요?
재미있었죠. 근데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어요(웃음). 그러다 보면 긴장이 풀리잖아요. 그 상태로 링에 올라가서 경기하고, 또 다른 사람 경기하는 동안 기다리고, 인터뷰하고. 촬영과 대기의 연속이었어요. 방송을 보니까 제가 인터뷰 때 한 얘기는 대부분 안 나왔더라고요(웃음). 새벽 5시에 스튜디오에 모여서 다음 날 새벽 5시에 나오곤 했어요. 촬영은 2주에 한 번씩 했고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죠?
연예인을 본 게 제일 신기했죠. 제가 <범죄도시>를 진짜 재미있게 봤거든요. 쉬는 시간에 마동석 님이 “승준아, 이리 와봐!” 하며 챙겨주시는데, 영화에서 마 형사가 범죄자를 부를 때 딱 그 표정 같아서 웃음이 나왔어요(웃음). 덱스 님도 쉬는 시간마다 오셔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컨디션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요?” 이렇게 물어보는데, 저도 모르게 설레더라고요(웃음). 세계 챔피언 드미트리 비볼 선수를 바로 눈앞에서 본 것도 영광이었고요. 끝나고 같이 사진도 찍었어요.

복싱을 13년 넘게 했다고 들었어요. 처음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아버지가 TV로 세계 챔피언 경기를 보고 계셨는데, 어떤 선수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그때 학교에서 저를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제가 TV를 보다가 “아빠, 저렇게 강하면 아무도 안 괴롭히겠지?”라고 물었죠. 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아무 말 없이 저를 체육관으로 데려가 등록시켜주셨어요. 그때부터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아빠, 내가 세계 챔피언 돼서 우리 집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정말 드라마 같은 시작이네요. 처음부터 두각을 드러냈나요?
처음부터 잘했는지는 모르겠어요. 대신 줄넘기든 체력 훈련이든 시키는 건 군말 없이 다 했어요. 아버지도 자신감이 생긴 제 모습을 좋아하셨어요. 그게 더 힘이 됐던 것 같아요. 그때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어요. 아버지가 술을 자주 드셨는데, 제가 복싱을 시작한 뒤로 술을 끊으셨어요. 집에 웃음도 많아졌고요. 그래서 저도 복싱을 사랑하게 됐어요.

티셔츠, 데님 팬츠, 벨트는 앙팡 리쉬 데프리메 제품.

<아이 엠 복서> 7화에서 8강 시합이 끝난 뒤, 링 위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죠. “어렸을 때 TV에서 본 세계 챔피언처럼, 저도 지금 멋있습니까?” 그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어요.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을까요?
항상 못난 아들이었잖아요. 집이 힘들 때 복싱을 시작했고, 제가 운동하는 데 돈도 많이 들어갔거든요. 아버지 눈에 꼭 ‘자랑스러운 아들’로 보이고 싶었어요.

복싱을 하면서 생긴 변화가 또 있나요?
많아요. 일단 저를 괴롭히는 친구들이 없어졌어요(웃음). 원래는 밖에나가는 것도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랑 대화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성격이었는데, 지금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됐어요. 다시 태어나도 복싱을 할 거예요.

승준 선수는 키가 186cm로 아주 큰데, 보통 이런 체격이면 링을 크게 쓰는 아웃복싱을 선택하잖아요. 그런데 인파이트 스타일이에요. 묵직한 타격으로 ‘보디킬러’라는 별명도 얻었고요.
제가 마이크 타이슨이나 제럴드 맥클레란처럼 1라운드에 KO승을 거두는 스타일을 좋아해요. 동경하는 선수를 닮아가는 것 같아요. 무하마드 알리를 좋아하는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스텝 위주의 아웃복싱을 하더라고요.

동경하는 선수가 그 사람의 스타일을 만드는군요.
그 영향도 있고, 아버지 영향도 있어요. 아버지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죽더라도 화끈하게 부딪치자”는 마인드세요. 복싱 선수라면 ‘상대를 죽이겠다’는 각오로 싸워야한다고 배웠어요. 저는 링에 오르면 ‘상대가 우리 부모님을 욕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만약 제가 아웃복싱을 하더라도, 저는 결국 난타전으로 갈 것 같아요.

탱크톱은 돌체앤가바나, 네크리스는 드리스 반 노튼 제품.

국승준 선수가 생각하는 복싱의 매력은 뭔가요?
복싱은 원초적인, 날것의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재미있어요. 물론 제가 맞으면 재미없죠. 근데 제가 때리는 한방,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그 순간이 정말 짜릿해요. 그 맛에 하는 거예요. 그리고 복싱에서는 머리싸움도 커요. 상대가 어떤 스타일인지 분석하고 링에 올랐는데, 막상 전혀 다른 전략으로 나오면 그때부터 바로 다시 분석해서 대응해야 하거든요.

심지어 1라운드 경기 시간이 3분으로 짧죠.
그 짧은 시간 안에 분석하고 싸우는 게, 그게 흥분되고 재미있는 거예요. 3분도 경기마다 체감이 달라요. 제가 때릴 때는 너무 짧아요. 그런데 맞기 시작하면 ‘3분이 왜 이렇게 길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죠(웃음).

복싱을 하면서 ‘이건 정말 잔인한 스포츠다’라고 느낀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승부의 세계는 냉정해요. 결국 이겨야 제가 먹고살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잔인하죠. 누군가는 울어야 누군가는 웃을 수 있는 구조잖아요. 그런데 그 냉정함 때문에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극단적인 긴장감도 복싱의 매력 중 하나일 거예요.

링 위의 국승준과 링 밖의 국승준은 많이 다른가요?
링 위에서는 그냥 미친 놈 같아요(웃음). 눈빛이 달라져요. 저도 제 경기 영상을 보면서 ‘내가 저렇게까지 흥분했었나?’ 싶을 때가 많아요. 근데 링을 내려오면 180도 달라져요. 깍듯하고, 부끄럼도 많고요. 사실 낯도 많이 가려요.

링에서는 승부욕이 불타오르나 봐요.
승부욕 강해요. 주변에서 TV 보다가 “너 저 사람이랑 싸우면 이길 수 있어?” 이런 질문을 정말 많이 해요. 유치하죠?(웃음) 그 앞에서는 “에이, 제가 어떻게 이기겠어요” 하는데, 속으로는 ‘설마 지겠어? 해볼 만한데?’ 이런 생각을 해요. 승부욕은 타고난 것 같아요

데님 팬츠는 겐조 제품.

시합을 앞둔 밤은 대체로 어떻게 보내나요?
전날에는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번 해요. 어떤 전략으로 갈지,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머릿속으로 그려봐요. 그게 끝나면 잡생각이 안 들게 일부러 재미있는 영상을 봐요. 상상으로라도 진다고 생각하면 그게 안 좋게 작용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웃긴 유튜브 콘텐츠를 많이 봐요. ‘메타코미디클럽’이나 ‘보물섬’을 좋아해요. 또 무조건 푹 자요. 시합 전엔 잠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시합 당일은요?
보통 낮 12시나 1시쯤 경기를 하거든요. 그럼 새벽 5시 30분에 시합장에서 계체량을 하죠. 계체량이 끝나고 아침 먹고 숙소에 돌아오면 8시쯤 되는데, 다시 자요. 푹 자고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고, 링으로 갑니다.

선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언제예요?
2024년 105회 전국체전 결승전이요. 결승에서 만난 선수에게 이전에 한 번 진 적이 있어서, 아무도 저한테 기대를 안 했죠. 근데 제가 이겼어요. 금메달을 땄죠. 사람들도 놀랐고, 저도 놀랐어요. 그 경기는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반대로, 졌지만 많이 배운 경기도 있나요?
최근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손석준 선수와 붙었는데 졌어요. 전략을 잘못 세웠죠. 석준 형이 인파이터라서 저도 1라운드부터 맞부딪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형이 아웃파이터 스타일로 나오더라고요. 주먹을 날릴 기회가 안 왔어요. ‘이 형은 무조건 인파이터로 나오겠지’라는 고정관념에 제가 갇혀 있었던 거죠. 거기서 허를 찔렸어요. 그 경기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상대가 어떤 전략으로 나올지 훨씬 더 열어두고 준비해야겠다고요.

재킷은 엠포리오 아르마니, 로고 패치 스윔 쇼츠는 몽클레르, 슈즈는 드리스 반 노튼 제품.

슬럼프를 겪은 적도 있어요?
운동선수라면 슬럼프는 피하기 어려워요. 어느 날부터 복싱이 안 되는 시기가 있어요. 마치 상대가 내가 어떻게 할지 다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죠. 그게 하루이틀로 끝나는 게 아니라 꽤 오래가요. 그럴 때는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어요. ‘어차피 다른 길은 없어. 내 길은 이것뿐이니까 밀고 나가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요. 슬럼프를 겪는 사람 대부분이 그럴 거예요. 저는 집에 가서 가족 얼굴을 보면 다시 힘이 나더라고요.

가족이 정말 큰 동기군요.
사실 제가 복싱을 하는 이유 중에 금전적 이유도 커요. 집이 어려웠던 걸 잘 아니까, 다시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해서요. 가족을 보면 ‘내가 꼭 행복하게 해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요. 그게 제 원동력이에요.

복싱할 때 말고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예요?
요즘은 ‘배틀그라운드’에 빠졌어요. 복싱이 심리전이고 동체시력도 좋으니까 금방 적응할 줄 알았는데, 복싱과 전혀 상관없더라고요. 상대 팀에게 제일 먼저 당하는 사람이 저예요(웃음).

특이한 이력도 있더라고요. 2018년 제1회 인천 청소년 교복 모델 선발대회에서 2위를 했죠?
그때도 복싱이 잘 풀리지 않던 시기였어요. 슬럼프였죠. 그때 키가 182cm 정도였고, 지금은 186cm예요. 원래는 키가 작은편이었는데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갑자기 컸어요. 복싱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까 아버지가 “여기 한번 나가봐” 하고 추천하셨죠.

모델의 길로 나갈 생각은 안 해봤나요?
대회에 나가기 전에 아버지랑 약속했어요. “1등 하면 모델 할게.” 그런데 2등을 했잖아요. 그래서 그냥 복싱을 계속한 거죠. 소속사 면접도 보긴 했어요. 모델을 하려면 아카데미에 다녀야 하고, 수업료랑 기숙사 비용이 필요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바로 마음을 접은 점도 있어요. ‘그 돈이면 내가 빨리 복싱으로 성공해서 효도하는 게 낫겠다.’

재킷, 데님 팬츠는 겐조, 안에 입은 로고 패치 스윔 쇼츠는 몽클레르 제품.

프로 복싱은 라운드당 10만원씩 경기 수당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흔히 복싱은 가난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에요. 아마추어는 상금이 거의 없어요. 고등학교, 대학교 경기에는 1등을 해도 상금은 없고, 장학금 정도예요. ‘학교의 위상을 높였다’는 의미로요. 저는 대학교 졸업하고 실업팀에 온 이후부터 집에 돈을 드릴 수 있었어요.

한국에서 복싱 선수로 살아간다는 건 어때요?
힘들죠. 한국이 해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니 관심도 많이 줄었고, 시선도 예전 같지 않아요. 그래도 한국 선수들은 정신력과 끈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묵묵히 훈련하는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고 결국 예쁜 꽃을 피울 거라고 믿어요.

후배 선수들에게 복싱을 권하는 게 망설여질 때도 있나요?
복싱 선수로 살면 힘든 일이 많아요. 그래서 정말 사랑하고, 무슨 일이 생겨도 포기하지 않을 사람에게만 권하려고 해요. 저랑 같이 시작한 동기 대부분이 그만뒀어요. 근데 그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이래요, “계속 할걸!” 복싱하다가 다른 길로 가는 게 쉽지 않거든요. 중간에 그만둘 거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어떤 점이 힘든가요?
매일이 경쟁이에요. 지면 안 돼요. 이 스포츠는 누군가를 쓰러뜨려야 해요. 이겨야 하고요. 죄책감을 떨쳐내야 할 수 있어요. 경기는 경기로 받아들이는 멘탈이 필요해요. 그걸 견딜 수 있는 후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힘든데도 국승준은 복싱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죠.
복싱은 하나의 예술이에요.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보다 보면 ‘이렇게 하면 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어서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여요. 마치 제가 그 순간 링 위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선수 얼굴에 상처가 나면 ‘저건 정말 아프겠다’ 하고 찡그리게 되고, 또 그걸 버텨내는 걸 보면서 묘한 위안을 얻어요. 예술은 계속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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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복싱의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아이 엠 복서> 같은 프로그램이 생기는 건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 경기가 열려요. 그분들이 주인공이에요. 그 선수들 행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까운 체육관이 있다면 한번 배워보세요. 정말 재미있는 스포츠예요.

현재 승준 선수의 목표는 뭔가요?
국가대표가 되는거죠.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 챔피언이에요. 근데 이제는 막연하게 ‘세계 챔피언’이라고만 말하지 않아요. 구체적인 순서를 정했어요. 국내 1등을 해서 국가대표가 되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그다음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는 거죠. 차근차근 밟아가려고요.

2002년생이고 나이가 어려서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복싱계에서 선수의 에이징 커브는 언제쯤 온다고 보나요?
쉽게 단정할 수 없어요. 조지 포먼은 45세에 헤비급 챔피언이 됐잖아요. 김동희 선수도 마흔을 향해가지만 아직도 1위고요. 결국 노력의 문제라고 믿어요. 나이와 상관없이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어느 날, 더는 링에 오를 수 없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요?
그때쯤이면 저도 이미 알게 되었을 것 같아요. ‘아, 이제는 이길 수 없겠구나.’ 복싱은 그런 스포츠예요. 졌을 때,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과는 바뀌지 않아요. 인정해야 하죠. 그때가 오면 깔끔하게 인정하고. 어떻게든 돈 벌 궁리를 해야죠(웃음).

언젠가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사람들에게 어떤 복서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 친구는 복싱에 진심이었어. 매 순간 열심히 했다”고 기억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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