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운석의 노래, 26 SS 크리스챤 디올 오트 쿠튀르 컬렉션

명수진

CHRISTIAN DIOR 26 SS 컬렉션

바로 직전 디올 남성복 쇼를 마친 조나단 앤더슨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오트 쿠튀르 무대로 향했다. 이번 26 SS 크리스챤 디올 오트 쿠튀르는 그가 하우스에서 선보이는 첫 쿠튀르 데뷔작이다. 출발점은 존 갈리아노가 조나단 앤더슨에게 선물한 시클라멘 부케였다. 게스트들에게도 인비테이션으로 하얀 상자에 담긴 시클라멘 꽃다발이 전달되며, 이번 컬렉션을 티징했다. 조나단 앤더슨은 ‘미래 고고학(Future Archaeology)’이라는 테마로 오트 쿠튀르를 과거의 유물이 아닌, 끊임없이 변형하며 진화하는 생태계로 재정의했다.

‘자연은 완성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직 변화와 적응, 지속만을 보여줄 뿐이다’라는 쇼노트는 이번 컬렉션의 철학을 정확히 드러낸다. 베뉴인 파리 로댕 미술관은 온실과 유적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비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천장에는 수천 송이의 시클라멘과 이끼가 거꾸로 매달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숲 아래를 걷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쇼의 오프닝은 블랙, 화이트, 오렌지 레드 드레스가 장식했다. 둥그스럼한 알뿌리 모양의 실루엣은 조각가 막달레네 오둔도(Magdalene Odundo)의 도자기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 초경량 실크 튤과 미세한 와이어로 뼈대를 세우고, 마치 물레를 돌리듯 그 위에 입체적인 플리츠를 소용돌이처럼 감아 중력을 거스르는 형태를 완성했다. 어깨에는 실크로 만든 시클라멘이나 오키드를 장식해 생동감을 더했다. 네 번째 룩에서는 앤더슨의 조형적 언어가 더욱 분명해졌다. 철재 그물처럼 보이는 시스루 원피스가 상체를 돔 형태로 감쌌고, 하체는 유려한 드레이핑으로 흘러내렸다. 블랙과 화이트, 그레이가 뒤섞인 컬러 레이어는 빛에 따라 유기성과 금속성을 오가며 새로운 질감을 드러냈다. 이어 등장한 풀오버와 팬츠의 레이어링은 독특한 질감이 눈길을 끌었는데 이는 표면 전체를 깃털처럼 잘게 찢은 시폰과 오간자 조각으로 덮어 완성한 것이다. 멀리서는 나비 날개의 매크로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극도로 정교한 수공 가공의 집합체다. 이처럼 소재의 활용은 고전과 실험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빛을 흡수하는 특수 실크 벨벳으로 완성한 블랙 드레스는 모델의 움직임에 따라 명암의 결이 조각처럼 갈라지며, 고대 조각상을 연상시켰다. 반면 극도로 정교한 시폰과 오간자 드레스를 일상적인 오버사이즈 니트와 결합하거나, 담백할 정도로 모던한 블랙 코트를 파이톤 소재로 선보인 시도는 대담했다. 디올의 상징적인 바 재킷 역시 재해석의 대상이 됐다. 조나단 앤더슨은 해체와 재구성의 접근법으로 허리를 극단적으로 조이면서도, 도자기처럼 둥글게 부풀린 골반 라인을 통해 형태 그 자체에 긴장감을 부여했다.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구조만을 남긴 결과, 고전적 우아함과 현대적 미니멀리즘이 동시에 살아 있는 새로운 바 재킷이 탄생했다.

한편, 액세서리는 ‘미래 고고학’의 개념을 다시 한 번 확장했다. 18세기 프랑스 패브릭을 활용한 백, 조각적 형태의 몰드 백은 디올 사부아 페어(Savoir-faire)의 현재를 보여줬다. 실제 운석 조각을 사용한 주얼리는 이번 세계관을 가장 직관적으로 풀어낸 오브제였다. 섬세한 실크 드레스와 우주의 암석이 만나며 가장 연약한 것과 가장 영원한 것 사이의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무당벌레와 부케 모티프 미노디에르, 미니어처 레이디 디올, ‘갓 발굴한 보따리’ 같은 대형 파우치 백 등은 고고학적 상상력을 한층 강화했다. 털처럼 보이는 슈즈는 실제 퍼 대신 잘게 찢은 오간자와 시폰을 층층이 쌓아 만들어, 런웨이의 이끼 질감을 발끝으로 옮겼다.

하이라이트는 실크 시클라멘 꽃잎으로 뒤덮인 드레스였다. 디올 쿠튀르의 핵심 아틀리에인 플루(Flou)와 타이외르(Tailleur) 팀이 수개월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수천 장의 꽃잎을 손으로 염색하고 수놓아 실제 꽃이 피어난 듯한 착시를 연출했다. 무슈 디올이 사랑한 꽃에 대한 오마주이자 하우스의 장인정신을 집약한 정수다. 피날레는 비대칭 컷아웃의 브라이덜 룩이 장식했다. 걸을 때마다 스팽글이 파도처럼 흔들리며 빛을 반사했다.

‘오트 쿠튀르는 아이디어의 실험실이다. 전통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식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쇼노트의 문장처럼, 조나단 앤더슨의 첫 디올 쿠튀르 컬렉션은 하우스의 역사와 동시대적 실험을 통해 미래를 향한 쿠튀르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제작 스케줄까지 재조정해 장인들이 디테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쇼가 끝난 후 1월 27일부터 2월 1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형태의 문법(Grammar of Forms)>은 이 여정의 연장선상에 있다. 로댕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쇼 무대와 주요 룩을 재구성해 누구나 쿠튀르를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영상
Courtesy of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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