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EAUTY: After the Hype
전 지구적 사랑을 받은 K-뷰티, 2026년은 어떤 한 해가 될까?

나도 뷰티 브랜드 하나 만들어봐?
뷰티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듣게 되는 얘기가 있다. “너도 브랜드 한번 만들어보지 그래?” 예전 같았으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며 내가 할 수 없는 101가지 이유를 늘어놓았을 테지만, 요즘 같아선 뭐랄까, ‘안 될 것도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야흐로 도래한 K-뷰티의 황금시대. 누가 무슨 세럼으로 해외에서 몇억을 벌었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뉴스들은 희망찬 미래를 예견해주는 것만 같고, 마치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어버릴 것만 같다. 일종의 FOMO가 느껴진달까?
그러나 모든 일이 그리 쉬울 리 없다는 것, 이런 슬픈 예감이야말로 틀린 적이 없다. 화장품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제정신으로 버티기 어려운 요즘, ‘매출 몇억 돌파’ 같은 기사에서 알 수 없는 그런 이야기가 궁금했다. K-뷰티는 지금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보여지며, 어떻게 팔리고 있을까? 이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각계각층 뷰티업계 전문가들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화장품 한번 만들어볼까?’ 생각했거나, ‘이건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했다면, 또는 ‘이 많은 화장품 중 어떤 걸 써야 하나’ 답답했다면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시길. 언제나 치열했고 앞으로도 치열할 이 시장에서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나름의 해법을 고민하는 이들과 더블유가 대화를 나눴다.

최원서, Pattern of Industry_PF60_Stool 02, 2019, 알루미늄 프로파일, 420 360 460mm.
기능적 재료 ‘알루미늄 프로파일’을 활용해, 한옥의 꽃 창살문을 연상시키는 단면을 반복 배치한 스툴.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Beauty Note
수채화처럼 맑게 물든 컬러 표현은 K-뷰티의 전매특허다. 컬러가 마치 피부에서 배어나온 듯 연출하기 위해, 비디비치 ‘페탈 글로우 크림 블러시(피오니 밀크)’로 얼굴 가장자리와 광대뼈에 물들이듯 터치하고, 맥 ‘글로우 플레이 쿠션 블러쉬(히트 인덱스)’로 볼 중앙에 포인트를 더했다. 마스카라로 아래 속눈썹만 한 올 한 올 쓸어 퓨어한 눈매를 연출하고, 입술은 샤넬 ‘루쥬 코코 밤 샤인(블러싱 핑크)’으로 촉촉하게 마무리했다.
나만 잘나가
출세한 K-뷰티, 지금이라도 숟가락 하나 얹어야 될 것 같은 이 느낌엔 아주 구체적인 근거가 있다. 한때의 유행으로 소비되던 K-뷰티는 그야말로 ‘수출 역군’으로 우뚝 섰다. 요즘 K-뷰티는 정말 잘 팔린다. 그것도 전 지구적으로. 지난해 수출 실적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한국의 화장품 해외 수출액은 2024년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돌파하더니, 지난해 무려 114억 달러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간 K-뷰티의 최대 시장이던 중국을 제치고, 대미 수출이 1위로 등극했다는 것. 2위 중국과 3위 일본은 여전히 핵심 시장이지만, 북미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메인 스트림으로의 이동은 K-뷰티가 특정 국가 의존을 뛰어넘어 글로벌 트렌드가 됐음을 의미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은 2025년 전 세계 202개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수출 국가 비중 역시 과거 중화권이 70%를 차지했던 데 비해 최근엔 20%대 중반으로 줄어든 반면, 미국, 동남아, 유럽, 일본, 중동 국가로 비중이 고르게 확대되고 있다. 세력만 넓어진 것이 아니고, 화력까지 세졌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K-뷰티가 전통적인 화장품 수출 강국 프랑스를 제치고 수입 화장품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아니 세계 최대의 뷰티 격전지 미국에서 프랑스 화장품을 제쳤다고? 이 업계에 오래 몸담아온 한 사람으로서 눈물이 찔끔 날 만큼 감동적인 지점이다. (물론 미국에서는 여전히 자국 브랜드 제품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린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2024년 전 세계 상위 수출국의 화장품 수출액은 역성장하거나 유지 정도였던 반면, 한국만 20%에 달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즉 시장이 좋아서 파이가 커진 것이 아니라 K-뷰티만 홀로 무럭무럭 자랐다는 뜻이다. 이 모든 숫자들은 단 하나의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 한국은 화장품 분야에서만큼은 ‘내가 제일 잘나가’를 불러도 된다. 모두가 한국을 부러워한다.
K-뷰티 3.0의 기세
K-뷰티의 이런 성장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2000년대 한류 드라마, K-팝의 인기와 함께 BB크림과 시트 마스크로 사랑받던 K-뷰티는 중국과 동남아의 뜨거운 지지 속에 보따리상과 함께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잠시 사드 사태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한풀 꺾이는 듯 보였으나, 사실 이때 브랜드들은 중국 시장 의존을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었다. 그러다 K-컬처가 다방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전 세계로 바이럴이 확산되었고, K-뷰티는 글로벌 빅 트렌드에 등극했다. 화장품 해외 유통을 진행하는 P&M 인터내셔널의 차여진 대표는 지금의 인기가 이전과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예전에는 잠깐 반짝이는 유행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K-뷰티가 하나의 ‘카테고리’가 된 느낌이에요. 이전엔 피킹 아이템, 액세서리 같은 존재였다면 이제는 기본값이 된 거죠. 해외 나가서 세포라 독점 제품들 써보면, 솔직히 끝까지 못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한국 사람들은 써보면 바로 알아요. 우리나라 기술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1만원대 제품도 몇만원짜리 제품이랑 비교해서 절대 뒤지지 않는데다가 사용감도 좋고요. 그간 국내 ODM, OEM 회사들은 수많은 브랜드를 맡으면서 한방도 해보고, 자연주의도 해보고, 더마도 해보고 이렇게 계속 연습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와 R&D가 이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거죠.”
해외에서 선전하고 있는 브랜드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더 흐뭇하다. 이미 전 세계 48개국에 진출한 라네즈는 K-뷰티 대표 브랜드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라네즈 글로벌 마케팅 디비전장 최필경은 라네즈가 미국 시장에서 거둔 지속적인 성과를 기반으로, 주요 글로벌 시장에서 두 자릿수의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는 물론이고, 인도, 일본 등 신흥 시장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미국 세포라에서는 스킨케어 카테고리 톱 3 브랜드로, 유럽과 중동 세포라에서는 톱 5 브랜드로 랭크되는 성과를 거두고 있죠.” 라네즈의 글로벌 히트 아이템은 ‘립 슬리핑 마스크’. 컬러가 아닌 맛과 향에 방점을 찍은 이 립 제품은 코로나 시기, 보습에 관심을 기울이는 소비자들의 기대에 부응해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신제품 및 한정판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최근 시장에서 10조원 이상 규모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으며, 전통적인 국내 뷰티 대기업을 제치고 시가 총액 1위에 올라선 에이피알의 성장세도 놀랍다. 미국, 유럽, 일본을 중심으로 빠른 글로벌 확장을 이어가고 있는 에이피알의 뷰티 디바이스 브랜드, 메디큐브 ‘에이지알(AGE-R)’은 카일리 제너, 헤일리 비버 등이 사용하는 모습으로 유명세를 타며, 2025년 9월 기준 누적 판매량 500만 대를 돌파했다. 이제는 자체 생산 공장인 ‘에이피알 팩토리’를 가동하며 ‘기획-연구개발-생산-유통’을 아우르는 뷰티 디바이스 밸류체인 내재화를 완성해 이 분야의 넘볼 수 없는 강자가 되고 있다.
베이스 메이크업 브랜드 티르티르의 선전은 스킨케어 위주의 K-뷰티에서 특히 더 반갑다. 티르티르 브랜드 MC팀 김선미 팀장은 ‘마스크 핏 레드 쿠션’이 미국 아마존에서 파운데이션 카테고리 1위, 전체 뷰티 카테고리 1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인지도를 입증했다고 전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파운데이션 중심의 메이크업 문화 속에서 쿠션이라는 형태 자체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졌고, 높은 커버력과 고급스러운 광채를 동시에 구현한 제품력이 차별점으로 작용했죠. 여기에 다양한 피부 톤을 고려한 폭넓은 셰이드 구성 역시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선택 요인이 되었습니다. 베이스 메이크업에 대한 기준이 매우 높은 일본 시장의 경우, 밀착력과 지속력, 마무리감 등 기본적인 완성도가 신뢰를 얻으며 꾸준한 반응으로 이어졌고요.”

김은하, Faded Lotus, 2025, 쓸모를 잃은 옷들, 철사, 가변 설치.
버려지는 옷의 조각들이 하얗고 순결한 연꽃으로 다시 피어났다.
시작은 쉬운, 아니 시작만 쉬운
아니 이렇게 잘된다는데, 나도 숟가락 하나 얹어도 되지 않을까? 한 10년 전만 해도 사람 몸에 바르는 화장품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라는 말이 맞았다. 지금은? 진짜 쉽다. 돈도 생각보다 얼마 안 든다. 어떤 용기와 성분을 쓰느냐, 초도 물량이 몇 개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기본 5,000개를 만든다고 했을 때 몇백만원만 있으면 3개월 만에 제품 하나가 뚝딱 완성된다(다른 나라는 최소 1년 정도의 리드 타임을 갖는다). 전 세계에서 최고의 퀄리티와 속도를 자랑하는 한국의 ODM, OEM 사들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시작은 쉽다. 문제는 시작만 쉽다는 것이다.
2024년 기준, 식약처에 등록된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는 약 2만8,000개에 이른다. 지금 당신이 알고 있는 화장품 브랜드 수를 대충 세어보라. 너무 궁금해서 나도 한번 세어봤다. 결과는? 20년 차 뷰티 에디터가 알고 있는 브랜드조차 400개가 안 된다! 이제 화장품은 소수 대기업이나 뷰티 전문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코스맥스 아트 디렉터를 거쳐 클레이코리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헤어 브랜드 내주(Nejoo)의 대표 이사로서, 여러 브랜드의 기획 및 컨설팅을 맡아온 최대균은 요즘의 뷰티 시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제조사들 덕에 뷰티 시장의 진입 장벽이 예전에 비해서 훨씬 낮아진 건 사실이에요. 제품에 관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죠. 근데 그렇게 시작하면 다 망해요.” K-뷰티가 된다 싶자, 브랜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그만큼 경쟁도 과열되고 있다. “책임판매업자로 등록했다는 것은 제품을 하나 이상은 만들었다는 뜻이에요. 약 2만8,000종의 제품 중 총 몇 가지나 팔렸을까요? 10%만 잡아도 2,800종이죠. 그렇다면 나머지 2만5,200개 브랜드는 손실을 감수하고 있거나 이미 문을 닫았을 가능성이 커요. 그 중 소비자가 아는 브랜드는 1%도 채 되지 않을 거예요. 1%라고 해도 280개나 되니까요.”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내가 운이 좋아 제품을 판 10%에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소비자 가격 1만원짜리 선크림 5,000개를 팔았을 때, 제작 원가와 유통 및 물류 비용, 시딩이나 리뷰 등 아주 최소한의 광고 마케팅 비용을 빼고 나면? 순익은 잘해야 10% 이하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이게 가장 희망적인 수치라는 것을 기억하라. 한 자릿수 초반이나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순익 500만원에서 아차, 아직 임대료와 나의 인건비를 계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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