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하게 전진하기, 조이 크래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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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걸의 정석, 혹은 생 로랑의 뮤즈. 그런 수식어 뒤에서 조이 크래비츠(Zoë Kravitz)는 사실 엉뚱하고 괴짜스러우며, 오랜 영화광으로 살아왔다.

첫 연출작인 <블링크 트와이스>를 거쳐 첫 에미상 후보 경험을 안겨준 <더 스튜디오>, 그리고 최근작 <코트 스틸링>에 이르는 동안, 크래비츠의 경험치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 그녀는 보다 힘을 뺀 태도로 어린 시절의 경이로움을 되찾고자 한다.

조이 크래비츠(Zoë Kravitz)는 그간 주목받는 배우로서, 또 감독이자 프로듀서로서 커리어의 밀도를 차분히 채워왔다. 그런 그녀에게서 최근 들어 힘을 빼고 재미를 추구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주어진 역할과 상황을 좀 더 유연하게 즐기는 것 같달까. 그 결과는 꽤 훌륭하다. 애플TV+ <더 스튜디오> 중 후반 세 편에 출연해 에미상의 코미디 시리즈 부문 게스트 여우상 후보에 올랐으니. 이는 그녀의 첫 에미상 후보 경력이다. 세스 로건이 주연과 공동 창작을 맡은 <더 스튜디오>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풍자물로, 최근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TV 시리즈 –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더 스튜디오>에서 크래비츠는 자아도취에 빠진 자기 자신, 즉 ‘조이 크래비츠’ 로 등장한다. 그리고 ‘올드스쿨 할리우드 뷔페’ 식 파티에서 환각버섯이 다량 든 초콜릿을 먹어버리는 바람에 취한 연기를 길게 보여준다. 스튜디오의 신임 대표인 세스 로건을 ‘흑인 유대인 퀸’이라 부르기도 하면서. “그 대사는 제 애드리브였어요. 꽤 뿌듯했죠(웃음).” 크래비츠는 HBO의 <빅 리틀 라이즈>나 안타깝게도 한 시즌으로 막을 내린 훌루의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크래비츠는 조기 종영에 대해 ‘정말 최악’이라고 말한다) 같은 작품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환각 상태로 업계 동료들을 두고 ‘스킨 소시지’(소시지에 가죽만 씌워 놓은 인간, 고깃덩어리)라 말하며 유쾌한 소동극을 이끌어가는 <더 스튜디오>야말로 배우로서 조이 크래비츠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 작품이다.

촬영장에서 줌으로 인터뷰에 임한 조이 크래비츠는 검정 캡 모자와 오버사이즈 티셔츠 차림이었다. 늘 그렇듯이 편안하면서도 쿨한 모습이다. 타투가 새겨진 손에는 런던의 주얼리 브랜드 제시카 매코맥의 다이아몬드 핑키 링이 두 개나 빛나고 있었다. 인터뷰 당시 크래비츠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함께 연기한 바 있는 니컬러스 홀트와 <하우 투 롭 어 뱅크> 막바지 촬영 중이었다. 이 영화는 정치 액션 스릴러물인 만큼 코미디와 거리가 있지만, 크래비츠는 유머를 놓지 않았다. 적어도 촬영 중 대기 시간만큼은 그렇다. 영화광으로서 최애 코미디로 가족물인 <꾸러기 클럽>(1994)과 ‘핑크팬더’ 시리즈로 유명한 피터 셀러스 주연의 <파티>(1968), 또 <퀸카로 살아남는 법>(2004) 등을 꼽은 그녀는 슬랩스틱에 가까운 익살스러운 유머에 끌린다고 털어놓았다. 패션 아이콘이자 스핑크스처럼 생 로랑을 지키는 앰배서더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다소 의외다. 자칭 ‘연극부 출신의 괴짜’. 크래비츠는 어릴 적부터 장난기 넘치고 엉뚱한 편이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토팡가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어머니인 리사 보넷은 딸이 어떤 영상물을 얼마나 오래 볼 수 있는지 엄격하게 정해두었다. 놀거리가 딱히 없었던 어린 크래비츠는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옷을 차려입고 즉흥적으로 캐릭터와 장면을 만들어가는 놀이를 하며 재미를 찾았다. 최근 그녀는 어릴 적 사진들을 오랜만에 발견했다. 소녀 크래비츠가 초록색 가발에 더듬이 장식과 날개를 단 채 장난감 칼을 든 모습과 비밀의 정원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저는 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성인이 된 지금 그녀가 얻은 결론은 분명하다. ‘지루함’은 때로 도움이 된다는 것.

모두가 알다시피 조이 크래비츠는 연예계의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이다. 배우 리사 보넷과 전설적인 로커 레니 크래비츠를 부모로 뒀을 뿐 아니라, 그녀의 할머니는 1970년대 시트콤 <제퍼슨 가족>에 출연한 록시 로커다. 크래비츠는 2007년 로맨틱 코미디 <사랑의 레시피>에서 단역으로 데뷔한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활동했다. <더 배트맨>이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같은 블록버스터에 출연했고, 작품 집필과 연출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다. 2024년에는 감독으로서 첫 작품인 <블링크 트와이스>를 발표했다. 페미니스트적 분노가 가득한 이 심리 스릴러물은 ‘미투’ 시대에 대한 크래비츠의 사회적 메시지라고도 할 수 있다.

크래비츠의 최근작은 2025년 늦여름 북미에서 개봉한 <코트 스틸링>이다. <블랙 스완>, <마더!>, <재키>, <더 웨일> 등으로 오스카의 단골 감독이 된 대런 애러노프스키 연출에, 찰리 휴스턴의 소설이 원작인 블랙코미디. 199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를 배경으로, 야구선수에서 바텐더로 전직한 인물이 이웃의 고양이를 잠시 맡아주었다가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오스틴 버틀러가 주연을 맡았고, 크래비츠는 그의 여자친구로 등장한다. 크래비츠가 연기한 여자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웬만해서는 쉽게 동요하지 않는, 남자친구와 진지한 사이로 발전할 여지가 보이지만 어딘가 주저하는 듯한 느낌의 캐릭터다. 애러노프스키는 처음엔 크래비츠의 쿨함에 이끌렸다가, 이내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그녀의 매력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스틴이 연기하는 행크는 시골 출신으로 뉴요커가 된 인물이에요. 그런 남자가 정말로 뉴욕에서 나고 자란 여성과 데이트한다면 드라마가 더 풍성해질 거라 생각했죠.” 애러노프스키의 말이다. 사실 애러노프스키는 크래비츠가 뉴욕 태생인지도 몰랐지만, 그녀를 만나자마자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오스틴 버틀러와 조이 크래비츠의 호흡을 스크린 테스트로 확인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첫 만남 후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문자를 보내 역할을 제안했다. “우리 영화의 분위기를 채워줄 사람임을 알아봤죠. 오스틴 버틀러와도 잘 맞을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문자 섭외’ 상황을 흐릿하게만 떠올리는 애러노프스키와 달리, 크래비츠는 당시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감독님이 문자로 시나리오를 보내주셨는데, 재밌더라고요. 다 읽고 나서 내용이 정말 좋고 캐릭터도 훌륭하다고 답장했어요. 그랬더니 ‘좋아요, 한번 해볼래요?’라고 하셨죠.” 영화에는 두 남녀 외에도 리브 슈라이버, 빈센트 도노프리오, 레지나 킹, 맷 스미스, 그리핀 던, 그리고 현재 라틴 음악으로 세계를 점령한 배드 버니가 신인 배우로서 본명인 베니토 안토니오 마르티네스 오카시오로 출연한다. 이 정도면 화려한 출연진이다. 대런 애러노프스키와 오스틴 버틀러는 작년에 산후안에서 열린 배드 버니 콘서트에 다녀오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첫 연출작 <블링크 트와이스>를 내놓은 이후, 크래비츠는 전과 다른 방식으로 영화에 접근하고 있다. “배우들은 사실 복잡하고 어려운 한 편의 영화 제작 과정에서 꽤 보호받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 점을 깨닫고 나니 <코트 스틸링>에 임할 때는 제 관점이 아예 달라졌어요. 그래서 더 재밌기도 했죠. 영화를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감독이 얼마나 큰 압박감을 받는지 저도 너무나 잘 알게 됐거든요.” 촬영 기간 동안 크래비츠는 쉬는 날에도 세트장에 나가곤 했다. ‘킴스 비디오’를 비롯해 오래전 사라진 이스트 빌리지의 명소들을 재현한 세트장에서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충분히 흡수하고 싶어서였다. 영화감독들이 대형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과정을 ‘출산’에 비유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크래비츠 역시 예전에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블링크 트와이스>는 그녀의 첫 출산일 뿐아니라 삶 전반에 적잖은 흔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채닝 테이텀과 크래비츠는 촬영 도중 연인으로 발전했지만, 개봉 직후 그 관계도 끝나버렸다는 뉴스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매체와 소셜미디어 상의 온갖 말들, 파파라치의 감시 등 동전의 양면처럼 명성 뒤에 따르는 어려움 탓에 하고 싶은 일이 가로막히고 있는지 묻자, 크래비츠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예술 작업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에요. 하지만 큰 규모로 하게 되면 당연히 장단점이 있죠. 적어도 저에겐 제가 왜 예술을 하는지, 언제든 그 ‘이유’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모든 걸 견딜 만하게 해줘요. 덕분에 모든 게 진절머리 난다거나 소모된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요. 복잡하고 기묘한 삶의 방식이긴 하지만, 그걸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한 괜찮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인생 자체가 기묘하잖아요. 우리는 그냥 껍질에 둘러싸인 고깃덩어리일 뿐이니까요.”

우리 모두가 그저 고깃덩어리라면, 크래비츠는 유독 화려한 고깃덩어리가 아닐까? 패션은 크래비츠의 자기 표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녀는 이제 그 점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런 고민은 그냥 스타일리스트가 하도록 맡기고 싶다고. 우리는 도시를 돌아다닐 때는 더 로우를 입은 크래비츠를, 레드카펫에서는 그녀가 절친한 친구로 여기는 안토니 바카렐로의 생 로랑 룩을 입은 크래비츠를 여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녀는 요즘 일상에서는 매일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 유니폼 스타일로 전환하고 싶어 한다. 이런 행보는 어쩌면 셀럽이자 패셔니스타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일지도 모른다. 덧붙이자면, 크래비츠는 자신이 ‘쿨걸의 정석’이라는 시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는다. “제가 그런 이미지로 불리는 건 정말 영광이에요. 그런데요, 얼마 전 화장실에서 나오고 보니 바지 지퍼가 열려 있더라고요. 아마 제 생활의 75퍼센트는 그런 식일 거예요(웃음).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저를 쿨하다고 생각한다는 게 웃겨요.”

크래비츠는 2025년 하반기를 빡빡한 일정으로 채워둔 상태였다. 로버트 패틴슨이 보내준 <하우 투 세이브 어 매리지> 시나리오 개발을 비롯해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크래비츠의 태도는 한결 느긋하다. 일에 접근하는 방식이 좀 더 느슨해진 느낌이다. 이제 그녀의 목표는 중독성 강한 각종 기기와 앱에서 벗어난 시간을 더 많이 보내며, 어린 시절의 경이로움을 되찾는 것이다. 바삐 돌아가는 할리우드에서 자신만의 보폭으로 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종종 한낮에 영화를 보러 가거나(“제가 바로 극장에서 항상 메모지에 뭔가를 쓰는 성가신 사람이거든요”), 저스틴 비버의 최신 앨범에 빠져들기도 한다. 어떤 날에는 최근 그녀가 즐겨 하는 일, 그러니까 사랑과 관계를 다룬 책을 읽는 데 몰두한다. 가끔은 다른 게 아니라 ‘인간의 의식을 확장하는 행위’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를 테면 ‘에미상 수상 가능성을 위해 시간을 쏟았던 일’ 같은 것이랄까. “사실 한동안 환각버섯을 멀리했거든요. 그런데 <더 스튜디오> 대본을 읽다가, 그걸 아주 살짝 맛보기로 결심했어요. 어떤 감각인지 떠올리고 싶어서요. 그러고서 다시 대본을 봤죠.” 그 결과는 어땠을까? “재밌었어요. 아주 자유로운 상태였죠!”

포토그래퍼
STEVEN MEISEL
SARAH CRISTOBAL
스타일리스트
Karl Templer
헤어
Guido(for Zara Hair)
메이크업
Pat McGrath(for Pat McGrath Labs)
네일
Jin Soon Choi(for JINsoon Beauty at Home Agency)
프로덕션
PRODn
프로듀서
STEVEN DAM, WESLEY TORRANCE, STEPHANIE GE, MITCH BAKER
스티븐 마이젤 스튜디오 매니저
RUK RICHARDS
스티븐 마이젤 스튜디오 아트 디렉터
PAULIE BROWNE
포토 어시스턴트
JEREMY HALL, JOHN GRIFFITH, ALEX HOPKINS, JEREMY GOULD, ALEX JOHNSTONE
디지털 테크니션
KEVIN LAVALLADE
리터칭
GLOSS STUDIO
패션 어시스턴트
CAROLINE HAMPTON, ADRIAN REYNA, RAQUEL CASTELLANOS
프로덕션 어시스턴트
DANIEL WEINER, AARON PIMENTEL, NOAH CONBOY, TORRANCE HALL, SIERRA SKY, SEAN ENGLISH
네일 어시스턴트
CHRISTINA MALLETT, ELENA LEGER
테일러
RAUL ZEVALLOS(at R-ZEE TAILO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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