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론디노네가 좇는 시간의 궤적

전여울

스위스 출신의 예술가 우고 론디노네는 작품을 통해 관객 저마다가 자신만의 ‘영적 지도’를 완성하도록 이끈다.

그런 그는 2025년, 도시와 도시 사이를 건너고, 매체와 매체를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지도를 묵묵히 갱신해왔다. 그가 남긴 것은 어떤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온 흔적에 가깝다.

©MARU TEPPEI

2025년, 스위스 출신의 예술가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는 장소가 곧 메시지가 되는 전시들로 한 해를 써 내려갔다. 밀라노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대규모 회고전 에서는 남부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서 자신의 뿌리를 정면으로 호명했고, 아트바젤 파리 기간 동안에는 권력의 중심으로 통하는 프랑스 학술원 앞마당에 7m 높이의 청석 거상을 세워 무고하게 희생당한 익명의 존재들을 소환했다. 벽과 바닥, 천장까지 온통 무지갯빛으로 물들이며 미술관 전체를 하나의 장면처럼 재구성한 미국 애스펀 미술관의 역시 공간 그 자체를 감각의 매개로 삼은 전시였다. 서로 다른 도시, 서로 다른 매체의 작업들이지만 론디노네가 끝끝내 되돌아오는 좌표는 명료하다. 돌과 나무, 태양과 무지개 같은 원형적 기호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맞닿는 지점을 더듬고,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을 형상으로 붙잡는 일 말이다.

이렇듯 굵직한 기관전이 연달아 선 한 해의 끝자락에서, 2016년 세상에 첫선을 보인 그의 대표작 ‘세븐 매직 마운틴’이 또 하나의 시간을 예고한다. 라스베이거스 사막 한복판에 세운 형광색 토템은 2026년이면 어느덧 10주년을 맞는다. 작품은 본래 이동 가능성을 열어둔 채 시작됐지만 최근 현재 위치에 남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새로운 운명을 얻었다. 이제 사람들은 카지노와 공연의 환락을 제쳐두고, 사막 위 기묘하게 세워진이 예술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 네바다주를 찾는다. 이 장면은 론디노네가 오랫동안 믿어온 공공미술의 힘, 예술의 입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빛의 예술가’를 자처하며 관객 앞에 벽이 아닌 문과 창을 열고자 하는 그의 태도는, 2025년의 전시들을 관통해 10년을 버틴 사막의 조각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한 해를 가로지른 작업의 궤적과 다가올 시간들 위에서 론디노네와 대화를 나눴다.

밀라노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terrone>의 풍경. 올리브나무 조각 연작 ‘Singing Moon’이 미술관 안뜰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W Korea> 세계 각지를 무대로 활동해온 만큼 한국과의 인연도 깊습니다. 2024년 뮤지엄 산에서 대규모 개인전 <Burn to Shine>을 개최한 데 이어, 2025년에는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in beauty bright>로 다시 한국 관객과 만났죠. 한국에서 마주한 경험들을 어떻게 기억하나요?
우고 론디노네 한국과 인연이 시작된 것도 벌써 20여 년 전 이야기네요. 2007년 1월 이탈리아 큐레이터 밀로반 파로나토의 초대로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린 그룹전에 처음 참여했어요. 그 이후로 여러 전시를 통해 한국과 인연을 이어왔죠. 제 작업이 한국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은 것은 큰 행운이에요. 단순한 공감이나 동의를 넘어, 그 너머에 서로 공유하는 감각이 있다고 느껴요. 미적 질문을 비슷한 결로 받아들이는 조용한 공명 같은 것이죠.

불과 얼마 전의 일이죠. 지난 10월 아트바젤 파리 기간 동안 가장 화제를 모은 작품 가운데 하나로, 프랑스 학술원 앞마당에 설치한 7m 높이의 청석 조각 ‘the innocent’를 빼놓을 수 없어요. 본래 정치가의 동상이 서 있을 법한 장소에 원시적 기운을 품은 돌을 놓은 셈이죠.
제가 지속적으로 이어온 석상 연작의 일부예요. 거칠게 다듬은 돌들을 층층이 쌓아 올린 형상인데, 2013년 이 연작을 시작하면서 각각의 돌 형상에 감정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어요. 생명이 없는 돌조차 감정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이죠. 작품은 어딘가 신석기 시대의 거석 기념비를 연상시켜요. 조각을 프랑스 학술원 앞에 둔 이유는 갈등과 권력 투쟁, 정복의 역사 속에서 희생된 무수한 익명의 삶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에요. ‘무고한 존재들(the innocent)’이라는 제목은 전쟁으로 인해 언어와 문화, 그리고 땅을 잃어버린 전 세계의 순수한 아이들을 가리켜요. 파리 시민들이 이 조각 앞에서 자발적으로 애도의 마음을 표하며 작품 발치에 꽃, 촛불, 인형을 놓아두었다고 들었어요. 그 순간 이 작업이 공공의 영역과 예술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냈다고 느꼈죠.

돌은 당신에게 어떤 재료인가요? 2013년 록펠러 광장에서 선보인 ‘휴먼 네이처’, 2016년 라스베이거스 사막 한복판에 설치한 ‘세븐 매직 마운틴’같은 대표작 역시 모두 돌로 완성됐죠. 인류 문명과 함께한 이 오래되고 원시적인 재료는 당신의 손끝에서 유독 변화무쌍하게 변주되었어요.
돌이라는 재료는 여러 면에서 매우 개인적인 의미를 지녀요. 부모님은 남부 이탈리아의 도시 마테라에서 태어나셨는데, 고대의 석굴 주거지인 ‘사씨(Sassi)’로 알려진 곳이죠. 마테라는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간 정착의 역사를 지닌,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람들이 거주해온 도시 중 하나예요. 협곡의 석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집, 교회, 수도원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그 역사는 9,000년이 넘죠. 어린 시절 여름마다 마테라에 계신 조부모님 댁으로 휴가를 떠나곤 했는데, 그곳의 동굴들은 저에게 놀이터나 다름없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돌을 사용한 작업이 1998년 현대미술 잡지 <파케트(Parkett)>를 위해 제작한 리미티드 에디션 작품 ‘이곳에서 시간은 멈추고 우리는 모든 기억이 된다(All Moments Stop Here and Together We Become Every Memory That Has Ever Been)’예요. 이 제목 자체가 돌이라는 원초적 재료에 품고 있던 제 관심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돌은 사유와 고요, 고대의 기원, 시간과 숭고한 자연의 힘과의 연결을 불러일으키죠.

라스베이거스 사막 한복판에 설치된 기념비적 작품 ‘세븐 매직 마운틴’을 보기 위해 매해 42만5,000명이 찾는다. 어느덧 2026년이면 작품이 첫 선을 보인 지 10주년을 맞는다.

2025년은 유독 굵직한 기관 전시가 이어진 해이기도 했어요. 특히 밀라노 현대미술관(GAM Milano)에서 열린 전시 〈terrone〉는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아들로서 당신의 뿌리를 되돌아보는 회고적 성격이 짙었죠. 밀라노에서의 첫 대규모 기관전이라는 점도 의미 있지만, 당신의 주요작들이 미술관의 19~20세기 이탈리아 미술 컬렉션과 나란히 호흡하는 풍경이 특히 인상적이더군요.
‘테로니(Terroni)’라는 단어는 이탈리아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녀요. 주로 남부 이탈리아인을 비하하는 멸칭으로, 인종적 편견을 상징하는 대표적 표현이죠. 어느 날 미술관을 찾았다가 이곳을 상징하는 작품이기도 한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의 ‘제4계급’을 마주한 적이 있어요. 그때 문득 그림 속 인물들이 모두 진정한 의미의 ‘테로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흔히 제4계급은 농민이나 노동자를 의미하는데, 작품 속 인물들은 곧 땅을 사랑하고 땅과 함께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볼 수 있어요. 그 지점에서 이번 저의 전시작들을 다시 바라보게 됐는데, 올리브나무, 농부의 도구, 흙으로 빚은 누드 조각 같은 모티프들이 공통적으로 ‘땅’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요. 일종의 도약을 감행해 전시명을 ‘테로네’로 했죠. 이번 전시는 이 단어가 지닌 시적 기원을 다시 드러내고, 비하와 멸시의 자리에서 그것을 끌어올리기에 가장 적절한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이는 모욕적인 낙인을 되찾아오는 과정, 다시 말해 재전유의 과정이기도 해요. 저처럼 부모가 남부 출신인, 오랫동안 낙인찍혀왔던 사람들이 그 단어를 스스로의 이름으로 의식적으로 사용할 때, 상처를 주던 언어가 비로소 자부심의 표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믿어요.

특히 미술관 안뜰에 자리한 올리브나무 조각은 이번 전시를 상징하는 작품처럼 다가와요. ‘Singing Moon’ 연작은 이탈리아 마테라에서 수천 년 동안 자라온 올리브나무를 주형으로 제작한 작업이죠?
맞아요. 2006년 마테라에서 멀지 않은 이탈리아 남부 바실리카타 지역에 있는 고대 올리브나무 숲을 소유하게 됐어요. 그곳에서 수령이 1,500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나무들을 선택해, 나무에 손상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직접 주형을 뜨고, 이를 알루미늄으로 주조해 마치 유령처럼 희게 채색했어요. 2,000년의 시간을 품은 올리브나무 조각은 응축된 시간의 기념비와도 같아요. 주형으로 떠낸 올리브나무를 통해 우리는 실제로 흘러온 시간을 하나의 형상 안에서 멈춰 선 상태로 경험할 수 있죠. 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율된 시간성을 체험하는 것이고, 시간은 이때 ‘살아 있는 추상’이 돼요. 고대 올리브나무의 형상은 오랜 시간의 축적과 함께 공기, 물, 바람, 불이라는 자연의 힘이 겹겹이 작용하며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무지개 색상이 전면에 드러났던 미국 애스펀 미술관 개인전 <the rainbow body>.

‘형형색색의 무지개 속으로 뛰어드는 듯한 체험.’ 한편 지난 3월까지 미국 애스펀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the rainbow body>는 이렇게 빗댈 수 있을 듯해요. 미술관 벽, 바닥, 천장까지 온통 무지갯빛으로 마감한 것에서 나아가, 널찍한 전시실 바닥에는 마찬가지로 무지개색을 띤 무용수 조각 ‘Nude’ 시리즈가 듬성듬성 앉아 있었죠. 이번 전시에서 ‘무지개’가 전면에 드러난 까닭은 무엇일까요?
전시 제목이기도 한 ‘레인보 보디’는 티베트 불교에서 죽음에 이르는 순간 육신이 빛으로 변환되는 영적 의례를 가리켜요. 오래 엄격하게 수행해온 라마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로, 궁극적인 깨달음의 상태를 의미하죠. 이 과정에서 인간의 육신은 사라지고 무지갯빛의 찬란한 광채 속으로 사라져요. 이번에 선보인 무지개 누드 조각은 초기의 흙·왁스 조각에서 한 단계 진화한 형태라 할 수 있어요. 초기의 누드가 재료 자체를 통해 땅과 연결되어 있었다면, 무지갯빛의 프리즘 색채를 입은 이번 조각들은 신체가 빛으로 전환되는 변형의 상태를 암시해요.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레인보 보디’ 현상, 즉 궁극의 영적 성취를 직접적으로 환기하죠.

아이들에게 이번 전시장은 거의 놀이터나 다름없었을 듯해요. 일단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눈부신 무지갯빛 일색이잖아요. 벽에 기대거나 웅크리거나 무릎을 꿇고 있는 무용수 조각들의 포즈를 장난스레 따라 했을 법도 하고요. 당신의 작업에는 종종 ‘아이 같다(Childlike)’는 수식이 따라다니죠. “나의 예술이 최대한 단순하고 비워져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적도 있고요. 유년의 시선처럼 순수한 접근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전히 마법과 경이로움을 믿는 태도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제 작업에는 일종의 순진함이 깃들어 있어요. 저는 ‘유아적(Infantile)’이라는 표현을 좋아해요. 작품이 가능한 한 단순하고 바보 같을 정도로 비어 있기를 바라거든요. 저는 주로 단순하고 고대적인 모티프를 다뤄요. 이를테면 무지개도 그중 하나죠. 칼 구스타브 융은 <레드 북>에서 태양, 달, 원, 십자가, 사각형 같은 상징들이 모든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다고 말해요. 세대와 문화를 초월해 모두가 이해하지만,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집단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저는 바로 그 상징의 힘을 기반으로 작업해요. 브론즈 조각 연작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2011년부터 2013년 사이에 세 가지 동물군을 브론즈로 제작했어요. 새, 말, 물고기, 즉 공기, 땅, 물을 상징하는 존재들이죠. 각 그룹은 ‘원시적(primitive)’, ‘태초적(primordial)’, ‘근원적(primal)’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어요. 모든 조각은 점토로 직접 빚었고, 표면에는 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지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죠. 즉흥성과 원초성을 위해 모든 조각은 1시간 안에 완성했고요. 이 조각들은 얼핏 유아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우리보다 훨씬 거대한 것을 상징하죠.

아트바젤 파리 기간 동안, 프랑스 학술원 앞마당에 설치된 청석 조각 ‘the innocent’.

스스로를 종종 ‘Flâneur(산책자)’라 부르시죠. 그렇다면 이 지구의 플라뇌르로서, 최근 당신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글쎄요. 저는 도시를 탐색하고 관찰하는 플라뇌르는 맞지만, 동시대 정치적 사건에 직접 반응하는 작가는 아니에요. 슬픔과 애도를 인지할 수는 있지만, 그보다 저는 스스로를 ‘빛의 예술가’라 생각해요. 관객을 빛으로, 우리 모두에게 비추는 태양으로 이끌고 싶어요. 제 작업이 종종 유아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일 거예요. 제 작업은 관객을 환대해요. 저는 관객과 나 사이에 벽을 세우고 싶지 않아요. 대신 창과 문을 열고 싶어요.

라스베이거스 사막 한복판에 설치한 기념비적 설치작 ‘세븐 매직 마운틴’이 2026년이면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합니다. 이제는 카지노나 공연도 제쳐두고 이 예술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 네바다주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죠. 최근 뉴스를 통해 작품이 현재의 위치를 떠나지 않고 존속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이는 마치 작품의 운명을 다시 쓰는 결정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 작업에 새롭게 더하는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매년 약 42만5,000명이 ‘세븐 매직 마운틴’을 찾아요. 이런 공공적 성공은 사실 계획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작품이 지역 주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도박과 쇼를 넘어 새로운 경험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목적지가 되었다는 점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공공미술을 믿고 모든 미술관은 무료로 개방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해요. 이를테면 2021년 설치미술가 크리스토 자바체프가 파리에서 선보인 ‘포장된 개선문’은 예술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훌륭한 사례였어요. 평소 미술관을 가지 않던 사람들까지 온통 은빛으로 뒤덮인 개선문을 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고, 이는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예술적 경험에 얼마나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죠. 전 세계 대부분의 미술관이 세금으로 운영되면서도 실제로는 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다는 현실이 여전히 의문스럽게 다가와요. ‘세븐 매직 마운틴’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힘을 축적하고 매 순간 사람들에게 스며들 수 있기를 바라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결국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죠.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지금, 어느덧 2025년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올해 당신이 마음속 깊이 품고 살았던 문장은 무엇인가요?
‘예술의 핵심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고, 의식을 확장하는 데 있다. 작품은 그저 그 과정을 촉발하는 계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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