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로저 비비에 메종에서 만난 시간의 흔적

장진영

시간을 품은 집

1937년 무슈 비비에는 파리 루아얄가 22번지에 자신의 아틀리에 ‘로저 비비에’를 열었다. 곡선 형태의 ‘버귤(Virgule)’ 힐이 창조되고, 오늘날 하나의 아이콘이 된 버클 장식이 탄생한 역사를 거치며, 하우스는 켜켜이 축적된 세월의 아름다움을 품었다. 오랜 시간의 흔적, 그 끝엔 유서 깊은 건축물인 호텔 ‘파티큘리에’에 새롭게 둥지를 튼 메종의 공개라는 최신의 기록이 쓰여 있다. 바로 이곳에서, 미소를 띤 채 ‘파리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따듯한 인사를 건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게라르도 펠로니를 만났다.

새롭게 오픈한 메종에서 포즈를 취한 로저 비비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게라르도 펠로니.

<W Korea> 새 메종의 오픈을 축하한다. 소감이 어떤가?
리브 고슈(Rive Gauche, 센강의 남쪽; 사르트르, 피카소, 헤밍웨이 등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사랑한 거리로 유명하다)에 위치한 아름다운 건물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지극히 파리지앵다운 곳이다. 아카이브를 포함해 로저 비비에의 모든 것이 이 메종에 있다. 앰배서더, 셀러브리티, 기자 등 많은 사람들을 이곳에 초대할 수 있다는 점도 너무 좋다.

패션위크 기간이라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오가고 있다. 몹시 바쁠 텐데, 피곤하진 않은가?
소화해야 할 일정이 정말 많다. 하지만 메종을 오픈하고,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이 나에겐 피곤하면서도 더없이 설레는 일이다. 그러니 행복한 피곤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공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가?
정원이다. 왜 아니겠나? 나는 정원을 가꾸면서 스트레스를 풀 정도로 정원을 사랑한다. 봄여름이 되면 이곳은 정말 아름다워질 거다.

패션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대학생들도 이곳에 초대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창의적이고, 용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과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패션은 역사니까. 물론 과거를 존중하고, 배울 건 배워야 하지만 그대로 카피하거나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늘 미래도 생각해야 한다.

당신 말처럼 과거와 미래는 둘 다 중요하기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방식은 다 다르다. 어떤 브랜드는 급진적으로 새로운 것을 취하는가 하면, 로저 비비에는 헤리티지를 근사하게 다루는 브랜드 중 하나다. 정답이 없는 문제다. 둘을 어떻게 아우르는지, 그 구체적인 방향성이 궁금하다.
맞다. 딱 잘라 정의할 수 없어 어려운 문제지만, 분명한 건 아카이브가 있으면 무언가를 창조하기가 더 수월하다는 거다. 출발점과 표준을 제공해주니까. 이때 중요한 것은 균형을 찾는 것이다. 아카이브에서 느끼는 무언가를 오늘날의 여성을 위한 것으로 바꾸는 과정. 이렇게 아름다운 유산을 지닌 메종에서 일할 때는 그런 균형 감각이 무척 중요하다.

18세기에 지어진 호텔 ‘파티큘리에’를 정교하게 복원한 로저 비비에의 새로운 메종. 소중하게 보관해온 아카이브와 아틀리에 그리고 파리지앵의 미감이 느껴지는 정원을 품고 있다.

당신 역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현실과 비전 사이를 고민하는 순간이 많을 것 같다. 현실에서 타협을 보는 편인지?
물론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분명 있고,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하지만 동시에 대중의 반응도 살펴야 한다. 현실을 의식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접근하다가, 어느 순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둘러보고, 현대 여성이 실제로 입고 싶어 하는 스타일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말 중요한 포인트다. 꿈꾸도록 만들되, 최종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의 평가에는 좀 예민한 편인가?
아주 그렇진 않다. 의견을 당연히 듣지만, 그렇다고 남들의 말에 크게 휘둘리지는 않는다. 결국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을 하는 편이다.

요즘 당신에게 가장 영감은 주는 것은 무엇인가?
난 어디에서든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아카이브다. 아카이브는 정말이지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꽃과 정원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자수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를 추상적으로 풀어내려고 했다. 인상주의처럼, 실제로 꽃 모양을 볼 순 없지만 그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이번 컬렉션에서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벨 비비에 슈즈가 탄생한 지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아이코닉한 버클을 오마주하기로 했고, 모든 기법 역시 아카이브에서 가져왔다. 오늘날의 방식과 흐름, 스톤 장식, 장인 정신을 버무려 재해석했다. 브랜드가 동시대성을 유지하고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것이 내 목표고,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컬렉션을 착용한 여인은 어떤 걸음에,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태도를 갖고 있을까? 당신의 머릿속 비비에 우먼을 묘사해달라.
비비에 우먼은 뭘 입을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며, 자유로운 여성이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분홍색 구두를 신고 거리를 자유롭고 당당하게 활보하는 거다. 내가 만든 신발을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그 뒤에 담긴 장인의 섬세한 손길까지 이해해준다면 더욱 좋겠다.

아이코닉한 모델 ‘벨 비비에’를 오마주한 새 컬렉션 제품들.

일 외적으로 요즘 관심 있는 것은?
젊은 디자이너들의 가구 디자인에 푹 빠져 있다. 테이블, 의자, 카펫 같은 것들 말이다. 떠오르는 디자이너들이 어떤 새로운 감각으로 가구를 만드는지 지켜보는 게 무척 흥미롭다.

지금까지 걸어온 로저 비비에의 여정 중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은 언제인가?
어느 한때라고 말할 수 없다. 처음 이곳에 와서 아이코닉한 모델들을 다시 부활시켜온 순간들이 자랑스럽고, 오늘 이렇게 새로운 메종의 문을 열 수 있다는 것도 자랑스럽다. 이번 컬렉션에서 ‘벨 비비에’를 오마주할 수 있는 것도 영광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음… 파리로 놀러 오세요! (웃음)

SPONSORED BY ROGER VIVIER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