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프리즈 서울,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

전여울

무라카미 다카시가 세운 공장은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었다.

그곳은 작가가 태어나고, 미학이 공유되며, 하나의 시대가 조직되는 장소였다. 여기서 출발한 일본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는 무라카미표 ‘슈퍼플랫’ 미학을 품은 채 작동된다. 이 유쾌한 이들의 프리즈 서울 첫 데뷔전이 막 치러질 참이다.

베르디 다카시 무라카미 ‘VICK meets Kaikai &amp;amp; Kiki!’(2019) 83.5×104.4cm.<br>베르디와 무라카미 다카시가 협업해 완성한 작품. 캐릭터 ‘카이카이’와 ‘키키’, ‘빅’이 사이좋게 한 화면을 채우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는 해외 미술 시장에서 한순간에 ‘아시아의 앤디 워홀’이라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만화적 캐릭터와 상업적 아이콘을 뒤섞은 그의 작품은 팝아트의 다음 장을 열었고, 사람들은 ‘무라카미가 앤디 워홀의 왕관을 노린다’는 농담을 던졌다. 사실 무라카미는 워홀을 존경했다. 워홀의 돈을 부르는 미술뿐 아니라, 온갖 유흥과 음모가 뒤섞인 뉴욕의 ‘팩토리’가 보여준 펑크한 창작 분위기에 깊이 끌렸다. 공장에서 예술이 찍혀 나오고, 밤엔 파티가 열리며, 다음 날 세상 사람들이 열광하는 작품이 탄생하는 그 세계. 무라카미는 언젠가 그런 곳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워홀이 일찍이 증명했듯이 그 역시 예술은 공장 같은 시스템으로 생산될 수 있다는 확신을 품었다. 그렇게 1996년, 무라카미는 워홀의 팩토리를 모델 삼아 ‘히로폰 팩토리’를 만들었다. “처음엔 저의 개인 제작 스튜디오로 시작한 셈이에요. 조수들은 대부분 자원봉사로 일을 돕는 대신, 제가 그들의 작품을 비평해주는 식이었죠. 지금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를 대표하는 작가들인 미스터(Mr.), 다카노 아야(Takano Aya), 아오시마 치호(Aoshima Chiho), 치나추 반(Chinatsu Ban)은 모두 그 시절부터 쌓아온 인연이에요.” 무라카미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히로폰 팩토리는 처음엔 작은 작업실에 불과했으나, 곧 무라카미를 중심으로 수십 명의 헌신적인 조수가 분업 형태로 일하는 현대판 공방으로 진화했다. 그들의 예술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법인화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1년, ‘카이카이 키키’로 이름을 바꾼 이들은 전시 기획, 작품 제작, 신진 작가 발굴·육성, 미술 관련 상품 제작·판매를 아우르는 거대한 스튜디오를 완성했다. 이어 2008년에는 도쿄의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가 본격 운영을 시작했다. 히로폰 팩토리를 전신으로 둔 만큼,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는 여느 갤러리와 달리 작가들과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조직이다. 언젠가 이 갤러리를 두고 미국 큐레이터 데이나 프리스-한센(Dana Friis-Hansen)은 ‘마치 방황하는 예술가들의 집과 같다’고 평했을 정도. 실제 무라카미는 갤러리 작가들의 커리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일본 전통의 도제 시스템을 21세기에 맞게 재해석해 소속 작가들과 협업해왔다. “현재 카이카이 키키의 직원 수는 인턴을 포함해 300명 정도예요. 갤러리만 해도 엄격한 분업 아래 최대 10명 이상이 운영하죠. 이런 점에서 다른 갤러리와는 조금 다른 조직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전통 일본화를 전공했어요. 그 당시 엄격한 도제 제도를 경험했고, 그 거부 반응으로 현대미술로 전향했죠. 하지만 뉴욕으로 옮겨 작가 활동을 시작한 뒤, 제가 자란 환경과 역사가 아티스트의 가장 중요한 중심축임을 깨달았어요. 그 후 일본이 서구화되기 이전의 예술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에도 시대 화단을 지배한 장인 화가 집단 가노파(狩野派)의 활동에 주목하게 됐어요. 집단 제작을 기반으로 한 가노파의 방식은 지금 갤러리 운영에 반영돼, 가노파의 맥락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작가와 긴밀히 연결되는 것을 추구하죠.” 이쯤 갤러리 지붕 아래 모인 대표 작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스터는 만화와 오타쿠 문화에서 차용한 소녀 캐릭터로 ‘모에(萌え·캐릭터를 향한 애정과 욕망)’를 끊임없이 변주한다. 화려한 색과 큰 눈, 동글한 얼굴 뒤엔 탈출구 없는 고립과 불안이 숨어 있는데, 이 대비가 미스터표 네오팝 세계를 완성한다. 반면 다카노 아야는 우키요에에서 오사무 데즈카, 클림트까지 가로지르며 우주를 떠도는 무중력의 소녀들을 그린다. 가늘고 날카로운 선으로 그려진 소녀들은 도심과 달 사이를 넘나들며, 에로티시즘과 순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덩치 큰 세라믹 두상과 기괴한 동물을 빚는 오타니 워크숍(Otani Workshop)은 기묘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조각으로 ‘팝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방금 언급한 세 작가를 비롯해, 이 갤러리에 몸담은 다수의 작가들 역시 매체와 소재는 달라도 공통으로 무라카미 다카시가 주창한 ‘슈퍼플랫(Superflat)’ 미학을 공유한다. ‘평면성’에 주목하는 슈퍼플랫은 쉽게 말해 무엇의 위계도 따지지 않는 미학이다. 이 개념 아래에선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모두 평평해진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무라카미는 ‘나를 찾아온 신진 작가들이 대부분 만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만들었을 뿐, 내가 전략적으로 이를 갤러리 색깔로 정한 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단언했지만, 갤러리의 정체성은 기묘할 정도로 무라카미 개인의 미학과 분리되지 않은 채 유지되어왔다. 즉, 소속 작가들과 갤러리 프로그램의 다수가 슈퍼플랫의 자장 안에 있다. “전후 일본 고유의 표현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화·애니메이션적 특성이 짙어질 수밖에 없어요. 최근에는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만화 문화가 확산되면서 유사한 이미지 표현이 자주 보이고 있죠. 슈퍼플랫 이념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동시에 우리 갤러리만의 독창적인 해석과 표현을 더 부지런히 모색하는 중이에요.” 무라카미가 말했다.

아야 다카노 ‘a shoreline, present’(2024) 194.1×130.2x3cm.<br>가늘고 날카로운 선으로 그려진 소녀들. 해변가를 배경으로, 판타지적 여름의 한때를 묘사했다.
오타니 워크숍 ‘Singing Boy’(2025) 130.5×194.2×3.2cm.<br>세라믹 작업으로 유명한 작가의 회화 작업도 올해 부스에서 만날 수 있다.
치나추 반 ‘Long, Long, Long Time Ago in the Era That Was Hot’(2008) 130.3×162.1cm.<br>환상 동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화면은 ‘카와이’ 미학으로 유명한 치나추 반의 작품이다.

이 유니크한 미학을 나란히 품은 작가들과 함께 쌓아 올린 수많은 장면들. 그중 무라카미 다카시가 ‘결정적’이라 부르는 전시는 무엇일까? 그는 주저 없이 2008년 3월 열린 개관전 <카이카이 키키의 예술가들 Vol.1>을 꼽았다. 전시명 그대로 소속 작가들의 단체전으로 꾸려진 이 전시에는, 당연히도 ‘개국 공신’이라 부를 만한 미스터, 다카노 아야, 아오시마 치호, 치나추 반 등이 이름을 올렸다. “그 당시 ‘일본 현대미술계를 근본부터 뒤흔들겠다!’라는 야심 찬 목표로 준비한 전시였어요. 화려한 파티까지 벌이며 젊은 층의 시선을 사로잡았죠. 그런데 그 뜨거운 반응만큼이나 일본 아트 신과의 마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트페어 초대에서 제외되거나 탈락하는 일이 있었고, 해외 작가의 전시를 열어도 해당 작가의 해외 갤러리를 통해서만 미술관 전시가 성사되거나 작품이 판매되는 등 산전수전을 다 겪었죠. 이 경험을 통해 ‘일본 사회에서 지나치게 눈에 띄는 시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는 걸 배웠습니다(웃음).” 농담을 이어받아, 그는 2016년과 2024년 열린 오타니 워크숍의 두 차례 개인전을 ‘작가와 갤러리가 함께 성장한 여정을 압축한 순간’으로 회상했다 “2016년 첫 개인전에서는 작가가 세라믹 조각 중심의 설치 작업을 선보였어요. 그런데 2024년 전시에서는 브론즈와 FRP(합성수지) 조각, 대형 페인팅까지 표현 영역을 크게 확장해, 작가로서의 스케일 변화가 뚜렷이 드러났습니다. 작가의 표현이 시간과 함께 진화하고, 그에 맞춰 갤러리가 곁에서 함께하며 지지하는 관계의 형태를 다시금 실감하게 된 계기였어요. 그런 변화를 직접 목도할 수 있는 건, 갤러리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예요.”

적지 않은 갤러리가 도장 깨기 하듯 글로벌 아트페어를 순회하지만,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는 다소 숨을 고르며 무대에 올라온 편이다. 꾸준히 부스를 차려온 아트바젤 홍콩을 제외하면, 무라카미가 직접 연출하는 전시와 자체 프로젝트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온 셈이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다르다. 2월 프리즈 LA에서 첫 무대를 밟은 뒤, 3월 아트바젤 홍콩, 4월 아트 오앤오, 5월 타이페이 당다이를 거쳐, 오는 9월엔 마침내 프리즈 서울에 처음으로 깃발을 꽂는다. 무엇보다 한 해 안에 프리즈 LA와 프리즈 서울에서 연이어 ‘첫 데뷔’를 치른다는 건, 꽤 흥미로운 지점이다. “프리즈 LA의 경우 올해 산불로 불참하게 된 부스의 빈자리를 제공받아 참가할 수 있었어요. 그때 나름 활기차게 부스를 꾸린 덕분에 이번 프리즈 서울에도 무사히 설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있기에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가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 존재가 주는 이질감도 물론 이해하고 있어요. 너그러운 주최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매드사키 ‘Reclining Nude on Studio Sofa with Daffodils (Just a dream)’(2025) 160x145cm.<br>앙리 마티스의 ‘Reclining Nude’를 비틀어 작가만의 화풍으로 재탄생시켰다.
김민희 ‘Last Embrace’(2025) 194x130cm.<br>화단에 등장한 이후 꾸준히 여러 미디어 속 여성을 화면에 소환해온 작가는 올해 거칠고 빠른 붓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신작으로 관객을 맞는다.

무라카미의 표현을 빌려 올해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가 프리즈 서울에서 선보일 부스를 소개하자면, 한마디로 ‘한일 컬래버레이션’이다. 앞서 언급한 대표 소속 작가를 비롯해 한국 작가 김민희, 이한나, 장가노, 홍현준 등 총 23명이 참여한다. “작품 수가 생각보다 늘어나서 좀 더 넓은 부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일본에서는 한국 문화에 대한 공감대가 강해요. 아이돌 문화, 드라마, 음악 등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죠.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올해 페어가 소통의 현장이 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어요.” 이 의외의 한일 합작에 대해, 갤러리의 한국인 세일즈 디렉터 김다희가 설명을 보탰다. “저희의 작가 발굴은 대부분 SNS에서 시작돼요. DM으로 대화를 트고, 실제로 만나 갤러리와 궁합이 맞는지 살펴보죠. 이후 아트페어 등으로 경험을 쌓으면서 더 깊은 관계를 맺죠. 그런데 생각보다 일본 작가뿐 아니라 한국 작가를 보여드렸을 때 반응이 좋은 것도 신기했어요.” 평소 ‘SNS 헤비 업로더’로 유명한 무라카미의 습관을 알고 나면, 올해 프리즈 서울에 참여하는 회화 작가 김민희의 합류 과정은 한 편의 짧은 드라마처럼 들린다. 시작은 작년 11월, 김민희가 도쿄의 ‘갤러리 콘’에서 전시를 진행할 무렵이었다. “몰랐는데 저와 무라카미 다카시가 서로 인스타 ‘맞팔’ 사이더라고요 (웃음). 그냥 가볍게 ‘도쿄에서 전시 중이니 시간 되면 오세요’ 하고 DM을 보냈죠.” 며칠 후, 무라카미 및 갤러리 직원들과 연락이 닿았다. 그 짧은 방문이 계기가 되어 김민희는 올해 타이페이 당다이와 아트 오앤오를 거쳐 프리즈 서울의 부스에 서게 된다. 단 한 줄의 메시지가, 국경과 무대를 뛰어넘는 통로가 된 셈이다.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는 결국 운영하는 아티스트의 색과 호흡에 맞춰 움직이고, 그에 따라 수명이 결정되기 마련이다. 무라카미 다카시를 가까이서 지켜봐온 김다희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 갈등 속에서도 17년간 갤러리를 이어온 건 분명 이유가 있죠. 저는 그 핵심이 시대를 읽는 통찰력이라고 생각해요. 사장님은 특히 소셜미디어의 변화에 관심이 많으셔서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물으시곤 해요. 그럴 때마다 ‘이야!’ 하며 감탄하시죠. 그럼 저희가 신나서 ‘이런 작가, 이런 전시는 어때요?’ 하고 제안하면 ‘좋네’ 했다가도 막판에 뒤집는 경우가 많아요(웃음). 하지만 확실히 지금의 트렌드와 갤러리의 정체성 사이에 어떤 일치점이 있는지 끝없이 생각하고 모색하고 계시다는 거죠.” 그렇다면 사장 무라카미가 바라보는 ‘다음’은 무엇일까.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이기도 했던 이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최근 몇 달의 아트 신 동향을 보면 참 충격적인 일이 많았어요. 반대로 말하면,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는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저는 ‘슈퍼플랫’이라는 축을 유지하면서도, 그 위에 완전히 새로운 개념과 이야기를 쌓아 올리고 싶어요.”

사진
COURTESY OF THE ARTISTS AND KAIKAI KIKI GALLERY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