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더캣이라는 스펙트럼

권은경, 김현지

밴드의 전면에서 베이스 연주로 큰 무대의 긴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걸출한 연주자.

음악으로 스스로를 표출하듯, 패션으로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스타일 아이콘. 그리고 음악만큼이나 피카츄와 게임,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마니아. 그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썬더캣(Thundercat)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의 드넓은 스펙트럼을 구성한다.

시어링 장식 재킷, 니트 톱, 가죽 팬츠, 부츠는 릭 오웬스 제품.

제17회 서울재즈페스티벌의 둘째 날인 5월 31일 토요일 초저녁, 올림픽공원 KSPO 돔에 썬더캣이 나타났다.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드는 그는 얇지만 볼륨감 있는 검정 패딩 재킷 곳곳에 주렁주렁 발랄한 액세서리를 단 차림이었다.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머리핀 역시 가르마 양쪽에 머리카락과 한 몸처럼 부착되어 있다. 연주자의 정체성을 지닌 아티스트라 하면 곧잘 묵직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썬더캣은 그런 선입견과 틀을 보기 좋게 배반하는 경우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커다랗게 박힌 베이스를 들고 신나게 연주하는 걸출한 베이시스트다. 손바닥에는 고양이 발바닥 문신이 있다. 한국으로 치면 <TV유치원>의 음악 집중 버전인 <Yo Gabba Gabba>에 출연해서는 귀와 꼬리가 달린 털 옷을 입고즐거운 표정으로 공연한 적도 있다. 썬더캣의 아버지는 전설적인 음악가들과 함께 작업한 드러머, 로널드 브루너 시니어다. 썬더캣과 그의 형제들은 색소포니스트 카마시 워싱턴을 비롯한 동네 친구들과 음악 속에서 자랐고, 썬더캣은 열다섯 살 무렵인 1990년대 후반부터 프로 베이스 연주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밴드의 후방에서 조력하는 포지션인 베이시스트의 한계를 넘어 밴드의 전면으로 진출한 대표적인 베이시스트가 되었다. 6현 베이스 기타로 연주하지만, 기타리스트는 물론 보컬리스트 역할도 수행한다. 존재감 뚜렷한 베이스 연주, 그래미 2관왕, 탈장르적 혹은 범장르적 뮤지션, 패션 아이콘 등등 그를 수식하는 표현은 많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성격을 더욱 잘 보여주는 것은 ‘Them Changes’, ‘Dragonball Durag’ 등의 대표곡과 자기의식이 원하는 대로 만든 듯한 여러 뮤직비디오 쪽일 것이다. 공연을 코앞에 둔 시간에 화보 인터뷰를 진행하겠다는 여유를 보이고, 소품
으로 마련한 피카츄를 반갑게 맞이하며, 카메라 앞에서 엉뚱한 표정과 포즈를 취하는 베이시스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안에 자리한 음악적 DNA와 음악에 대한 간명한 철학, 그리고 비바체의 템포로 손가락을 놀리며 90분 동안 쉼 없이 무대를 이어가는 모습까지, 그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썬더캣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의 스펙트럼을 구성한다.

<W Korea> 오늘 서울재즈페스티벌 공연을 앞두고 화보 촬영을 진행했는데, 어땠어요?
Thundercat 환상적이었어요. 정말 즐거웠어요. 제가 패션을 사랑하는 거 알죠? <더블유> 매거진에서 준비해준 아이템 중에 제가 아는 의상도 있더라고요. 그 옷도 입고 촬영했어요.

커다란 피카츄 피규어도 소품으로 사용했죠.
오, 맞아요. 저는 피카츄를 사랑합니다.

혹시 왜 피카츄를 들고 있어야 하는지 에디터에게 물어봤나요?
왜 피카츄를 들고 있냐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피카츄는 이 세상에 일어난 최고의 일인데요? 피카츄는 유일무이한 존
재죠. 피카츄!

화보에 등장한 피카츄가 당신 소장품은 아니죠?
<더블유>에서 소품으로 준비해준 거예요. 지금 제가 묵고 있는 호텔에도 피카츄가 몇 마리 있기는 하지만(웃음).

이번이 두 번째 내한인가요?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그럴 거예요.

당신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더 자주 찾았죠. 한국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한국을 사랑해요. 한국과 일본은 아주 다르죠. 저는 대도시를 좋아합니다. 대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대도시에 압도되거나 기가 빨리는 성향은 아니에요.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죠. 그런데 서울 역시 너무 큰 도시이다 보니 어디에 한 번 나가면 여정을 떠나는 기분도 들어요. 그리고 이 말이 하고 싶네요. 당신네들 교통 체증 엄청나더구만!(웃음) 우리 LA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서울이 큰 도시라고요?(웃음) LA 얘기가 나왔으니 어린 시절에 대해 좀 물어볼게요. 당신의 아버지 로널드 브루너 시니어는 대단한 드러머였어요. 모타운 레코드의 뮤지션들을 비롯해 전설적인 이들과 작업한 분이죠. 자라면서 저명한 음악가들을 자주 봤을 텐데,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같이 연주를 배우며 자란 동네 친구 중 한 명이 바로 어제 이곳 서재페에서 연주했어요. 잔디마당의 헤드라이너였던 카마시 워싱턴요. 그런 음악가와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적에 그와 그의 아버지가 저에게 음
악을 가르쳐주기도 했거든요. 덕분에 제가 이렇게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죠. 카마시는 예전부터 대단한 스승이자 리더였습니다. 우리에게 음악은 먹고, 자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과 같았어요. 오로지 음악, 음악, 음악뿐이었죠. 긴 시간이 지나서도
어린 시절 친구들이 각자 자기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아요. 카마시를 보면 여전히 우리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이번에 서울에서 카마시를 만날 틈이 있었나요?
그럼요. 어제 잠깐 스치듯이 만난 거지만. 언젠가 또 같이 공연할 날이 있겠죠.

카마시는 색소폰을 연주했고, 당신 아버지는 드럼을 연주했잖아요. 그런데 당신은 왜 베이스를 선택한 거예요? 어릴 때는 관악기나 피아노, 기타 같은 악기에 더 끌릴 것 같거든요.
남들이 하는 것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했거든요. 다들 드럼을 치니까 나는 드럼을 치기 싫은 느낌 같은 거 있잖아요?

슬리브리스 톱, 디스트로이드 팬츠는 아크네 스튜디오 제품.

당신이 어릴 적부터 음악뿐 아니라 게임과 애니메이션에도 푹 빠져 지낸 건 팬들이 잘 아는 사실이에요. 지금도 게임을 하나요?
그럼요. 당연하지.

혹시 새로 나온 닌텐도 스위치2도 예약 구입하셨나요?(웃음)
솔직히 말할게요. 요즘 닌텐도에 실망했어요. 그들도 시스템을 통제하려고 드는 거겠죠. 그렇다고 인터넷 연결 없이는 게임을 즐기지도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돼요? 스팀(Steam)에서도 오프라인 모드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데 말이죠. 저는 닌텐도를 사랑하지만, 이번에는 게임기를 안 살지도 몰라요.

어린 시절부터 즐긴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당신의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고요.
당연하죠. 지금도 그렇고요. 저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음악의 멜로디와 감성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당신의 커리어에서 전환점 같은 게 있을까요?
하나의 순간을 꼽는 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제 인생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순간이 있을까요?

모든 순간이 영향을 미쳤다?
그렇죠. 비디오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즐기다가 베이스를 연주하고 싶어진 것처럼.

그럼 가장 큰 영향을 준 음악가는 누구인가요? 당신은 켄드릭 라마, 에리카 바두 같은 수많은 레전드와 일했잖아요.
더 말할 것도 없이 에리카 바두죠. 그녀는 재즈 베이시스트 론 카터와 함께하기도 했고, 그녀의 음악에는 힙합부터 재즈까지 모든 게 담겨 있어요. 아버지를 포함해 우리 가족 모두 에리카 바두의 음악을 좋아했어요. 저는 그녀의 음악을 듣고 자랐죠. 우리 가족에게 그녀의 음악은 보물이었어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정말 어린 나이였는데도 서로 평생 알고 지낸 듯한 느낌이었어요. 2000년대에는 바두의 밴드에 합류해서 거의 10년 정도 연주했고요. 두 장의 앨범을 녹음했고, 저는 그녀와 함께 투어하면서 성장했어요. 그녀에게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에리카 바두에게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뭔가요?
너무나 많지만 하나를 고르자면 ‘너의 것을 지켜라’,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일 거예요. 그녀가 저한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어요. “오리의 등에서 물이 떨어지는 거 봤어?” 오리의 등에 있는 물이 오리에 흡수되는 게 아니라 그냥 바닥으로 뚝 떨어지듯이,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것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그 말은 평생 제 마음속에 남아 있어요.

류이치 사카모토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네요. 2013년에 발표한 앨범 에서 그의 곡을 샘플링했잖아요. 원래부터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좋아했나요?
네. 제가 어렸을 때, 칼 그레이브스(유명 소울 뮤지션이자 썬더캣의 동료인 캐머런 그레이브스의 아버지) 아저씨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준 적이 있어요. 개막식에서 지휘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이 담긴 영
상이었죠. 저희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자꾸 그 영상을 좀 보라는 거예요. ‘나는 베이스 연주자인데 왜 자꾸 저 사람을 보라고 하지?’ 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걸 보면서 점점 빠져들었어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죠. 이후에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그리고 그가 속해 있던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의 음악을 들으면서 점점 더 빠져들었고요. 20대에 제가 프로듀서들을 디깅하기 시작하면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까 제 친구들도 이미 다 그를 알고 있었더라고요.

꼭 전자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음악을 디깅하다 보면 YMO 시절의 류이치 사카모토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12년, 제가 그에게 연락할 일이 있었어요. 오스틴 페랄타(피아니스트이자 썬더캣의 동료)가 세상을 떠났을 때 류이치 사카모토의 ‘El Mar Mediterrani’를 샘플링해서 추모곡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샘플링 허가를 받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에요. 원작자가 자기 곡을 망치는 짓이라고 생각해서 충분히 거절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사카모토는 오스틴 페랄타를 알고 있었고, 자신의 곡을 꼭 써달라고까지 했어요. 이후 그와 멋진 순간들이 더 이어졌죠. 플라잉 로터스라는 프로듀서와 제가 사카모토와 작업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사카모토에게 헌정하는 앨범에 참여하면서 ‘1000 Knives’의 리믹스 작업도 했죠. 참 엄청난 일이에요. 제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친구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처음으로 연락을 했고, 시간이 흘러서는 또 제 음악으로 사카모토를 떠나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당신 역시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음악가입니다. 그와 함께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요?
작곡의 미지에 두려움을 갖지 말라는 것.

당신의 음악에는 정말 많은 게 녹아 있어요. 장르적 구분이 당신에게 의미가 있을까요?
없어요. 장르라는 건 음악을 포장하고 팔기 위한 수단일 뿐이죠.

하지만 음악을 만들 때 장르의 특성을 생각하게 되지 않나요? ‘이번 곡은 펑키하게 만들어야겠어’ 혹은 ‘조금 더 소울풀하게 해볼까’ 같은.
저는 그런 생각으로 시작하지 않아요.

데님 소재 집업 베스트와 치마 바지는 굼허, 부츠는 맥퀸 제품.

그럼 작곡할 때 시작점은 어디인가요? 화성, 멜로디, 리듬 같은 지점이 있을 텐데요.
느낌이죠. 창작자를 제약하는 틀이랄까,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류이치 사카모토는 저에게 ‘다르다고 해서 스스로를 한정짓지 말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 생각에서부터 장르가 없는 음악, 혹은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고 봐요.

당신은 독창적인 패션으로도 유명합니다. 스타일에 대한 철학이 있나요?
음악과 패션은 대단히 비슷해요. 둘 다 한마디로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이죠. 미술, 패션, 디자인, 건축 모두 자신의 주장을 하는 거예요. 누가 저더러 어떻게 입으라는 말을 하는 게 싫어요. ‘음악가라면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한다’는 식의 그런… 뭔지 잘 알죠?

재즈 뮤지션이면 좀 더 포멀하게 빼입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맞아요.

그런데 패션이 당신의 음악이나 연주에도 영향을 끼칠까요?
그럼요. 패션과 음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패션을 통해 제가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를 표출할 수 있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안 입어도 되는 거예요(웃음).

프로 연주자로 대략 25년을 지나왔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돈 받고 연주하기 시작한 시간을 말하는 거죠?(웃음) 아름다운 여정이었어요. 제가 마주한 모든 것들에 감사해요.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만난 것, 어려운 시간을 지나온 것에도 감사하고요.

어려운 시간에 대해서도요?
네. 그 시간을 포함해 지나오면서 지금까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고통은 즐거움이기도 하다는 거. 그 둘은 닮기도 했죠. 가령, 악기를 잘 연주하고 싶다면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아주 괴로워요. 하지만 그 고통은 곧 즐거움이기도 해요.

후회되는 시간도 있나요?
없어요. 저는 모든 순간이 감사할 뿐이에요.

명쾌하네요.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당신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스펙트럼.

포토그래퍼
HYEA W.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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