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의 탄생지이자 하우스의 아카이브가 자리한 피렌체에서 열린 2026 구찌 크루즈 컬렉션
‘꽃이 피다, ‘번성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Florentia’에서 유래한 도시 피렌체는 이름처럼 근대 인류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미학의 시작점이다. 1921년 구찌가 처음 세상에 나온 탄생지이자, 하우스의 아카이브가 자리한 심장부. 2026 구찌 크루즈 컬렉션이 이곳에서 새롭게 피어났다.


‘팔라초 세티마니(Palazzo Settimanni)’. 근대를 연 15세기 피렌체를 대표하는 르네상스 건축물이자, 구찌 장인들이 솜씨를 연마하고 젊은 견습생들이 기술을 배우고 익혀온 곳. 수 세기에 걸쳐 숱한 장인의 시간이 스며든 이곳은, 구찌의 헤리티지를 품은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과거가 응축되고 현재가 열리며, 미래를 품은 이 상징적인 공간 속에서 2026 구찌 크루즈 컬렉션이 펼쳐졌다. 이곳을 컬렉션 무대로 정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올해 2월 사바토 데 사르노가 떠나고,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를 기다리는 시점. 브랜드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긴 시간 쌓아온 하우스의 역사와 유산을 기리며 다음 챕터를 선언하고자, 팔라초 세티마니를 이번 크루즈 컬렉션 장소로 정한 것 아닐까?
쇼가 시작되기 전,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슈트케이스들.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증명이라도 하듯 빼곡히 자리 잡은 슈트케이스들은 앞으로 진행될 쇼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벽에 새겨진 15세기 프레스코화와 목조 천장이 어우러진 공간 속, 고요한 런웨이 공간으로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컬렉션은 르네상스 시대 궁정 문화의 미학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무심한 듯 완벽하게, 절제된 듯 과감하게.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버사이즈 퍼 재킷과 슬립을 매치한 글램한 룩을 입은 모델이 헝클어진 머리를 휘날리며 걸어 나왔다. 처음으로 등장한 룩을 보며 톰 포드(Tom Ford)가 하우스를 이끌던 그 시절의 감성에 젖을 즈음, 프리다 지아니니(Frida Giannini) 스타일의 미디드레스,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 시절의 리본 디테일 블라우스가 연이어 등장했다. 80년대의 맥시멀리즘부터 90년대 모더니즘 스타일까지, 모든 시대를 교차하는 실루엣의 향연. 구찌의 아이코닉한 터치를 과감하게 보여주는 룩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한 편의 서사시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다채로운 소재 또한 재미를 주었는데, 브로케이드, 자카드, 실크, 벨벳 등 다종다양한 소재의 변주는 무척 흥미진진했다. 겹겹이 레이어드된 레이스 위에 더한 반짝이는 스트라스(strass)와 섬세한 자수 장식 디테일은 수 세기 전 장인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피렌체 직물과 공예 전통을 되짚어주었고, 구조적인 어깨 라인과 슬림하게 흐르는 실루엣은 시대를 넘나드는 애티튜드를 제안했다. 레드, 그린, 블루, 핑크와 같은 원색의 룩부터 모노톤으로 뒤덮인 룩까지 전반적으로 레트로한 무드의 컬러 팔레트는 런웨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사이사이 등장한 과감한 패턴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강렬한 사선 스트라이프와 플로럴 무늬가 등장했으며, 이 또한 과거 하우스를 거쳐 간 디자이너들을 상기시켰다. 구찌의 근간이 된 가죽도 빠지지 않았다. 피렌체 가죽 공방에서 시작한 하우스의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전에는 보지 못한 디자인의 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반이 접힌 채로 무심하게 모델들의 손에 들려 있는 토트백. 하우스 아카이브에 보존된 기법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구찌 질리오(Gucci Giglio)’ 핸드백이다. 이탈리아어로 백합을 뜻하는 ‘질리오’는 피렌체의 상징과도 같은데, 이는 피렌체의 역사와 구찌의 기술 두 전통을 결합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외에 다채로운 색과 패턴을 사용해 전보다 캐주얼하게 등장한 하프 홀스빗 디자인과 베니티 백도 눈에 띄었다. GG 모노그램과 싱글 G 모티프는 벨트 버클과 패턴, 슈즈 굽 등에 주요 모티프로 사용되어 아이코닉한 구찌의 디자인을 계승하며 새롭게 재탄생했다.
쇼가 끝나갈 무렵, 한층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지자 모델들은 아카이브 공간을 지나 산토 스피리토(Piazza Santo Spirito) 광장으로 나갔다. 일반적인 컬렉션 쇼와 달리 이번 크루즈 쇼의 피날레는 그렇게 광장에서 모두가 어우러진 채로 마무리되었다. 이는 하우스에 수많은 영감을 안겨준 도시, 피렌체에 바치는 우아한 헌사이자, 다시 이 도시로 돌아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것임을 암시하는 은유적 연출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구찌는 피렌체이고, 피렌체는 곧 구찌라는 메종의 명쾌한 메시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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