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수집가 4인이 소개하는 자신과 가장 닮은 향수

W

His Scent Edit

오래 곁에 둔 향수들은 그의 취향과 이미지를 짐작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향수 수집이 일상적인 4인이 진열장 가운데 가장 자신을 닮은 향수를 소개한다.

SEHAN LEE: 마니아의 기록이자 일기장

패션 월드에서 향수 러버로 알려진 모델 이세한은 지난해 자신의 프레이그런스 브랜드, 나흐(Nahes)를 론칭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관능적이고 직관적인 그의 컬렉션에는 여행지에서 발견한 향수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그에게 향수는 취향의 결과물일 뿐 아니라, 지나온 도시와 순간을 담은 일기장에 가깝다.

향을 고르는 기준은? 섹시한가, 머리가 아프지 않은가, 오래 가는가, 그리고 충분히 색다른가. 새로운 향수를 구매할 땐 아직 맡아보지 못한 향을 경험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다. 비슷한 계열의 향이라도 낯선 포인트가 있다면 끌린다. 직접 착향을 해보고, 몸에 입었을 때 어떤 인상을 만드는지를 고심한다. 사람의 분위기를 만드는 요소인 만큼 설명적인 것보다는 직관적이면서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향을 선택한다.

요즘 가장 손이 많이 가는 향수는? 내가 스스로 입고 싶은 향을 구현하기 위해 만든 브랜드인 만큼 아무래도 애정이 가는 건 나흐의 ‘차일드 오브 더 90s’. 다른 하우스에서는 쉽게 맡아보지 못한 독 특한 뉘앙스의 파촐리가 매력적이다. 다듬어지고 정제된 파촐리보다는 날것에 가까운 짙은 흙 내음에 가까운데, 어린시절 지하의 아지트에서 보내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만의 공간에 향을 진열하는 방법은? 컬렉션이 방대하다 보니 전시하듯 진열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손이 자주 가는 것들을 가까운 자리에 두는 편이다. 향도 결국 공간의 일부라고 생각하기에 너무 장식적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편을 선호한다.

오늘날의 취향을 만든 결정적 향의 순간은? 미국에서 3년을 보내며 준비한 전시가 가장 큰 영향을 줬다. 영상을 매개로 ‘냄새’에 관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때 공간을 채우는 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향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경험이 지금의 나흐가 만들어지는 데 일조했다.

1 Ormaie 오 드 퍼퓸 레 브휨 오렌지 과수원에서 맞이하는 아침의 추억을 표현한 향. 동도 트지 않은 유럽의 아침, 풀이 무성한 공원을 산책하던 기억이 떠오르는 향수다.
2 RAER 09: 안젤리카 루트 베를린의 비건 향수 브랜드. 지속 가능하게 조달한 식물성 원료만 사용해 베를린 미테 아틀리에에서 소량 수작업으로 생산한다. 천연의 싱그럽고 생생한 향이란 이런 것.
3 Carner Barcelona 암바르 델 수르 2010년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된 가족 경영 향수 하우스. 지중해 무드를 향으로 풀어낸다. 베를린의 편집숍에서 발견했는데, 앰버 특유의 따뜻하고 깊은 결이 느껴져 자주 사용한다.
4 Amouage 아타르 상탈 소하르 오만 황실에서 손님들에게 선물하던 향수로 알려진 아무아주의 아타르 컬렉션은 꼭 소장하고 싶었던 위시리스트 중 하나. 아부다비 공항에서 구매했는데, 100% 오일 성분 특유의 농밀하고 깊은 향이 피부에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는다.
5 Visvim 블레즈 모탱 독특한 보틀 디자인에 이끌려 구매했다. 방에 뿌리면 당시 여행하던 도쿄가 떠오른다. 나에겐 시간을 다시 열어주는 향과도 같다.
6 Nahes 차일드 오브 더 90s 나흐를 기획하면서 구상한 첫 번째 향. 날것처럼 거친 지하 아지트의 공기에서 느껴지는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
7 Véronique Gabai 미모사 인 디 에어 빛과 공기,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로, 이름은 밝고 산뜻하게 느껴지지만 고급스럽고 중후한 머스크 향이 돋보인다.
8 Headspace 튜베로즈 파리 여행 중 백화점에서 우연히 만난 향. 투베로즈 특유의 깨끗한 흰 꽃 향이 중성적이며, 그 묘한 분위기가 잔잔하게 오랫동안 유지된다. 

YOUNGPYO LEE: 향친자의 사적인 수납장

스스로를 ‘향친자’라 표현하는 마케팅 에이전시 DANCE의 이영표 대표는 인스타그램 스레드에 향수 리뷰를 기록한다. 향수의 노트와 TPO, 옆에서 그 향을 함께 맡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후기는 꽤나 상세하고 전문적이다. 향수 편집숍이자 조향 컨설팅 회사 메종 드 파팡의 김승훈 대표와의 친분 덕분에 취미의 감도가 한층 깊어질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향수를 구매하는 데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향기를 구성하는 노트에 호기심이 많다. 하나에 꽂히면 그 노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해당 향수들은 기회가 닿는 대로 많이 경험하고자 발품을 판다. 시향한 후에는 시향지를 들고 건물 밖으로 나와 또 한 번 맡아본다. 매장이나 백화점에서는 수많은 향이 뒤섞여 그 향기를 온전히 음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향을 입고 고르는 나만의 철학은? 나쁜 향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날 내가 뿌린 향수가 적절했는지, 엉뚱했는지가 중요할 뿐. 알데하이드, 그린 노트 계열은 봄에, 시트러스와 시프레 향수는 여름에, 우디는 가을, 토바코와 오우드는 겨울에 자주 찾듯, 크게는 계절로 구분한다. 그다음은 그날의 날씨, 만남의 성격 등을 고려한다. 스시나 해산물 등 향에 민감한 요리를 먹을 때는 향수를 뿌리지 않는 것처럼 메뉴도 중요한 결정 요소다.

오늘날의 취향을 만든 결정적 향의 순간은? 메종 드 파팡 김승훈 대표와는 절친 사이다. 덕분에 향수에 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이탈리아로 떠난 휴가에서 로컬 퍼퓨머리를 방문해보기도 했고, 작년에는 파리에서 조향사, 퍼퓨머 하우스들과의 미팅에도 함께 참석했다. 향수에 대한 관심 이 방대했다면, 그와 함께하며 취향이 더 날카롭고 더 정제됐다.

나에게 향이란? 예전에는 자기 과시적 개념이었다면, 향수를 수집하는 것이 요즘엔 일종의 ‘배려’처럼 느껴진다. 내 몸에서, 혹은 내 공간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를 가려준다는 뜻도 있지만, 상황에 알맞은 적절한 향은 분위기를 환기하니까.

1 Serge Lutens 세르귀 벌꿀에 흠뻑 적셔진 폭닥폭닥한 담뱃잎 향. 꿀과 담뱃잎 모두 아끼지 않은 듯, 풍부하고 농밀한 향을 맡고 있으면 달콤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2 Celine 나이트클러빙 늦은 저녁 약속, 그리고 그 만남이 자정을 훌쩍 넘길 것 같을 때 찾는 향. 갈바넘, 오리스와 바닐라가 조화롭다. 위스키 노트는 없지만 달콤한 위스키 베이스의 칵테일과 같은 향이다.
3 Marie Jeanne 브륌 마차 말차, 바질, 베르가모트, 민트, 시더우드 등 무거운 분위기를 한순간에 산뜻하게 바꿔주는 마법 같은 향.
4 Van Cleef & Arpels 문라이트 패출리 특유의 흙 내음으로 주로 베이스 노트에 활용되는 파촐리를 과감하게 메인 노트로 내세운 향수. 차분하면서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5 Maison Crivelli 오우드 마라쿠자 요즘 가장 ‘하입’한 향수 브랜드인 메종 크리벨리의 우디와 머스크 노트가 조화로운 향. 신선하면서도 레더의 향취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앙상블이 매우 오묘하다.
6 AquaFlor 코르프 디플로마티크 피렌체 여행에서 알게 된 로컬 퍼퓨머리 아쿠아플로르는 니치 향수 탐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브랜드다. 향에서 처음으로 어떤 텍스처가 느껴졌다. 시트러스, 샌들우드, 베티베르의 섬세한 결이 돋보이는 향기.
7 Orto Parisi 보카네라 다양한 향수를 섭렵한 나에게 제법 도전적으로 느껴졌던 향. 카카오와 초콜릿 향이 지배적이지만 칠리, 페퍼의 뉘앙스가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8 Trudon 메디 발리로 떠난 여행길에 픽업한 향수. 여행 내내 뿌렸을 만큼 맑고 쾌청한 향은 이국적이고 한적한 휴양지에 제격이었다.
9 27 87 제네틱 블리스 바르셀로나의 니치 향수 브랜드. 평생 반려자처럼 데려가고 싶은 향수다. 시향지에 뿌리면 공기처럼 거의 아무 향이 느껴지지 않는데, 피부나 섬유에 닿는 순간 매력을 발산하는 신비로운 향수다.

JUNO: 갓 세탁한 옷깃의 향

모델이자 ‘유노주노(youknowjuno)’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작사가, 패션 브랜드 친다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다양한 본업을 지닌 주노의 드레스룸은 이제 막 세탁을 마친 빳빳한 셔츠에서 나는 냄새처럼 깨끗하고 상쾌한 향으로 채워져 있다.

나만의 향기 철학은? 독특하지 않으면 매료된다. 나에게서 나는 향이 편안하면서도 깨끗한 느낌을 주길 바란다. 그러다 보니 향수를 구매할 때의 시행착오도 많은 편이다. 어느 날은 한 브랜드에 이끌려 모든 향을 시향하거나, 친구에게서 풍기는 새로운 향에 꽂혀 충동구매를 하지만 조금이라도 향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것이 느껴지면 곧바로 진열장 맨 안쪽에 집어넣고 다시 찾지 않는다. 결국 그렇게 내게 남은 향수들은 클린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다.

가장 사랑하는 향수를 꼽는다면?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꼴론 앙델레빌’. 1년 중 300일 이상 사용하는 것 같다. 그만큼 다 비우고 남은 공병만 해도 집 안에 한가득이다. 런던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꾸준히 써온 향수인데, 이토록 애착을 가지는 향수는 앞으로도 없을 정도다. 지속력이 강한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네롤리 베이스의 플로럴 노트가 페미닌하지 않으면서 상쾌한 느낌을 준다.

나의 컬렉션을 키워드로 이야기해본다면? 빨래. 평소 다양한 목적에 따라 옷을 나눠 세탁하는 습관이 있는데, 향수 또한 그렇다. 깔끔한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 향들을 그 안에서도 분류해 진열한다.

나에게 향이란? 명함이다.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가끔 곤혹스러울 때도 있는데, 누군가의 시그너처 향이 있다면 그를 알아채는 순간이 많다.

1 Louis Vuitton 선 송 네롤리가 주는 특유의 화사하고 신선한 향취를 좋아하는데, 이 향수는 네롤리만의 매력을 잘 살린 향수다. 여름 햇살처럼 맑고 가벼운 향기를 두른 느낌을 준다.
2 Comme Des Garcons DOT 비터오렌지의 산뜻한 시트러스 위에 우디 노트와 스파이스가 겹쳐지는 향. 페퍼 노트가 날카로운 향취를 더해 세련되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 
3 Edition de Parfum Frederic Malle 꼴론 앙델레빌 런던 유학 시절, 리버티 백화점에서 처음 시향한 이후 인생 향기가 되어버린 향수. 네롤리와 시트러스가 중심이 되는 향은 눅눅한 도시 공기 속에서도 상쾌함을 준다.
4 Our Legacy 코튼 오 드 콜론 2015년, 단 한 번만 출시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죽 케이스 안에 담긴 코튼 향수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부드럽고 편안한 기운을 주는 향이라 공병에 담아 휴대하곤 했다.
5 Maison Margiela 레플리카 바이 더 파이어플레이스 다른 향기 컬렉션에 비해 개성이 강하지만, 춥거나 흐린 날에 찾게 된다. 장작불 앞에 앉아 있는 듯 포근한 우디 향이 심신에 안정을 준다. 
6 Hermès 오 드 루바브 에칼라트 갓 잘라낸 과일의 신선함이 느껴지는 향. 상큼하지만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향은 더운 날 가볍게 뿌리기 좋다.
7 D.S. & Durga 아이 돈 노우 왓 디에스 앤더가의 향수는 다른 향과 레이어링하기에 좋다. 머스크, 암브록산의 중후한 노트들이 돋보이지만 너무 묵직하지 않고 담백한 느낌이다.
8 D.S. & Durga 로즈 아틀란틱 장미 향을 담은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살짝 흐트러뜨리며 스치는 기분을 주는 향. 시트러스와 은은한 미네랄 노트가 감미롭다.

DJ CONAN: 절제된 관능의 잔향

다양한 음악 장르를 넘나들며 절묘한 믹스를 만들어내는 DJ 코난의 향수 세계는 화려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절제되고 신비롭다. 과시하기보다는 은근한 방식으로 존재감을 남기는 것. 좋아하는 수집품을 가득 모아놓은 수납장 위 그의 향수 컬렉션은 결국 한 가지 취향으로 자연스럽게 수렴한다.

향을 고르는 나만의 철학은? 멀리서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는 강렬한 향보다는 가까이에서 맡았을 때 더 매력적인 머스크, 우디 계열의 은은한 향을 선호한다.

향수를 구매하는 데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이 향이 나라는 사람의 캐릭터를 얼마나 또렷하게 완성해줄까?” 향수를 고를 때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은은하면서도 미묘한 분위기를 주는 향이어야 한다. 너무 가볍거나 휘발되는 인상보다는 묵직한 우디, 머스크 계열의 노트처럼 오래 남는 잔향을 선호한다. 강렬한 첫인상보다는 잔잔하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향이 좋다.

최근 가장 많이 뿌리게 되는 향수는? 불가리의 ‘맨 인 블 랙 오 드 퍼퓸’. 가죽이 연상되는 우디 노트가 느껴지는 스파이시한 향이지만 조금도 답답하거나 무겁지 않다. 봄이지만 밤공기가 서늘한 요즘, 외출 전에 꼭 뿌리게 되는 향수. 관능적인 남성미를 완성시켜준다.

나에게 향이란? 내 매력을 돋보이게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파트너. 음악이 분위기를 만들 듯 향은 누군가의 인상을 결정하니까.

1 Karen Low 인디센스 블랙 포 맨 지금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향수라 더 애착이 간다. 오래전, 명동의 한 향수 편집숍에서 시향 후 바로 구매해 해외 재고를 찾아다니며 구했다. 상쾌한 우디 향으로 시작해 이어지는 머스크의 향이 매력적이다.
2 Entre D’eux 비터 비테 처음엔 밝고 산뜻하게 시작되는 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피부에 스파이시한 우드의 잔향을 남긴다. 은근한 존재감을 추구하는 내게 페르소나와 같은 향수다.
3 Acqua Di Parma 미르토 디 파나레아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지중해 해안을 떠올리게 만드는 향.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찾게 된다.
4 Bvlgari 맨 인 블랙 주로 밤에 외출할 때 뿌리곤 한다. 세련되고 심플한 디자인의 스웨터나 맨투맨 티셔츠 위에 사용하면 보기도 맡기에도 좋은 밸런스의 아우라를 완성해준다.
5 John Varvatos 아티산 상쾌한 시트러스와 허브 노트가 어우러진 향은 은은한 섹시함을 품고 있다. 사계절 내내 데일리로 사용하기 좋은 향수.
6 Le Labo 상탈 33 샌들우드와 가죽, 스모키한 우디 노트가 절묘한 균형을 이룬 향은 클래식하면서도 강단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오랫동안 꾸준히 사용해온 것 같다.
7 Le Labo 떼 누아 29 천천히 깊어지는 음악과 어울리는 향. 씁쓸하면서도 차분한 나무 향이 묵직한 여운을 준다.

프리랜스 에디터
송가혜
포토그래퍼
박종원
세트
이예슬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