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부산비엔날레는 무엇이 다른가?

전여울

언어의 한계에서 시작된 ‘불협하는 합창’. 2026 부산비엔날레의 공동 전시감독 에블린 사이먼스(Evelyn Simons)와 아말 칼라프(Amal Khalaf)와 나눈 대화의 기록.

2026 부산비엔날레의 키 비주얼. 여러 개의 타이포그래피 에셋을 반복·중첩 배치해 다양한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지는 ‘합창’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W Korea> 오는 8월 29일, 부산비엔날레가 막을 올립니다. 지금 한창 부산을 리서치 중일 텐데, 도시를 탐구하며 특히 흥미롭게 다가온 발견이 있었을까요?
아말 칼라프 제가 부산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바다’가 특히 결정적인 키워드였어요. 바다는 추상적인 관념이라기보다, 언덕 위에 올라야만 비로소 보이는 수평선이자 냄새, 파도의 리듬, 노동의 현장, 부두의 교대 근무가 만드는 흐름 같은 지극히 구체적인 경험으로 다가왔거든요. 부산을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작가와 기획자들을 만나고, 시장과 작은 클럽, 물가를 정처 없이 거닐기도 했죠. 그들과 나눈 대화 자체가 곧 제게는 리서치였던 듯해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이 도시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모이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는데요. 부산은 이미 다양한 리듬 속에서 사람들이 결속하고 머무는 법을 잘 알고 있는 도시더라고요. 바다를 통해 기억과 문화적 실천이 특정 경계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며 이어진다는 점을 다시금 체감했죠.
에블린 사이먼스 작년 8월이 첫 방문이었어요. 며칠간 차로 도심 곳곳을 훑으며 전시장 후보지를 답사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초량 이바구길 언덕에 올랐는데, 그곳에서 마주한 전경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던 기억이 있어요. 사실 부산의 지형은 단번에 이해하기 쉬운 구조는 아니에요. 바다가 도시 깊숙이 침입하듯 스며 있고, 섬과 산이 겹쳐지는 사이로 거대한 고속도로의 미로가 펼쳐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초량에 서자 비로소 이 도시의 정체가 선명하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어요. 특히 저항과 생존의 역사 속에 형성된 ‘피난의 도시’로서의 부산을 이해하게 된 건, 비엔날레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죠. 이번 비엔날레가 부산현대미술관뿐 아니라, 과거 다른 용도로 쓰였던 장소들을 전시장으로 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이런 방식이 도시의 역사와 현재의 사회적 맥락을 연결하는 가장 유효한 방식이라 믿으니까요.

올해 비엔날레의 방향키를 쥔 공동 전시감독 아말 칼라프(왼쪽)와 에블린 사이먼스(오른쪽).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불협하는 합창>입니다. 흔히 ‘합창’은 조화를 상징하지만, 이번에는 그 전제로 ‘불협’을 내세웠어요. 이 역설적인 결합을 통해 어떤 담론을 끌어내고 싶으셨나요?
아말 칼라프 저와 사이먼스 감독은 ‘언어’가 제 기능을 상실한 순간에 주목하면서 논의를 시작했어요. 작가 오마르 엘 아카드(Omar El Akkad)의 통찰처럼, 오늘날의 언어는 미디어나 권력에 의해 장악되어 폭력을 완화된 표현으로 포장하곤 하죠. ‘부수적 피해’나 ‘안보’ 같은 단어들이 참혹한 현실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처럼요. 언어가 현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때, 우리의 ‘몸’은 침묵하는 대신 콧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내요. 이러한 신체성을 중심으로 실천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플랫폼을 제안하고 싶었어요. 이번 비엔날레에서 말하는 ‘합창’은 깔끔한 조화를 의미하지 않아요. 리듬과 울림을 통해 사람들이 잠시 서로의 몸을 맞추며 만들어내는, 다소 어수선하고 일시적인 공명에 가깝죠. 바로 그런 방식 속에서 사람들이 계속해 정치적 목소리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요.
에블린 사이먼스 제 작업의 많은 부분은 언어에 기반해 있지만, 때로 말과 글은 너무 공허하게 느껴져요. 특히 지금은 가짜 뉴스를 확산시키고, 사회를 양극화하며, 담론을 피상적인 수준으로 되돌리는 방식으로 언어가 무기화되고 있잖아요. 5년 넘게 브뤼셀의 전자음악 페스티벌 ‘호르스트 아트 앤 뮤직’에서 일하며, 제 큐레이토리얼 실천 역시 자연스럽게 리듬과 사운드 쪽으로 기울게 됐어요. 음악에는 즉시성이 있고, 또 관객에게 즉각적이고 신체적인 방식으로 말을 거는 직관적인 힘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간 음악과 연관되어 있거나, 다학제적으로 작업에 접근하는 작가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이 지점에서 칼라프 감독과 서로 잘 맞는다고 느껴요. 감독님 역시 사운드와 음악을 폭넓게 연구해오셨으니까요. 작년엔 노동요와 돌봄의 서사를 다룬 아름다운 저서 <라디오 발라드>를 발표하시기도 했죠. 그래서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명료한 언어에만 기대지 않는 소통의 방식을 탐색하고자 해요. 구호나 허밍, 심지어 레이브처럼 몸에 체화된 지식의 형태를 들여다보려 해요. 투명하게 설명되지는 않지만, 함께 경험할 때 공동체를 하나의 주파수로 정렬시키는 그 에너지를 따라가 볼 생각이에요.

2024 부산비엔날레의 풍경

올해 부산은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청각적 장으로 변모할 듯하네요. 음악과 영화, 퍼포먼스, 회화, 액티비즘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참여 작가를 선정하며 특히 중요하게 고려한 기준이 있었을까요?
아말 칼라프 사이먼스 감독과 저는 취향이 비슷하면서도 각자 다른 실천적 관점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선정 과정 자체가 서로의 사각지대를 깨워주는 배움의 연속이었던 듯해요. 저는 지난 10여 년간 ‘몸의 경험’을 중심에 두고 ‘듣기’라는 개념을 확장해온 작가들과 꾸준히 협업해 왔는데요. 세계가 깊은 슬픔을 통과하고 있는 지금, 이미 세상을 떠난 거장부터 동시대의 젊은 작가들까지 폭넓게 아우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슬픔과 희망 사이에서 행동하려는 용기를 보여준다는 것에 있죠. 단순히 메시지를 던지는 데 그치지 않고, 작업을 만드는 방식 그 자체로 저항을 실천하고 가장 분열된 시대에도 깨어 있는 감각을 유지하는 법을 일깨워주는 이들에 자연히 눈길이 갔던 듯해요.
에블린 사이먼스 무엇보다 진정성에 뿌리를 둔 작업을 초대하고자 했어요. 작가의 정치적 관점이나 사회적 비판 의식이 작업을 구현하는 태도와도 일치하는 이들이었죠. 또 세대 간의 대화 역시 놓칠 수 없는 핵심이었어요. 신진 작가부터 확고한 위치를 다진 작가, 그리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깊은 잔향을 남기는 예술가들의 유산까지 한데 모아 그 울림이 더 멀리 퍼져나가길 바랐거든요. 주로 유럽에서 활동해온 저에게 이번 비엔날레는 한국을 비롯해 몽골, 태국, 일본 전역을 리서치하며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어요. 또 칼라프 감독이 지닌 풍부하고 다성적인 네트워크와 참조 지점들은 큐레이터로서 제게 큰 자극이 되었고요. 결국 저희는 직관과 호기심을 믿고 나아가되,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 이성적으로 전체 구성을 점검하고 예술적 장르와 주제 사이의 균형이라는 퍼즐을 정교하게 맞추어 나갔던 듯해요.

부산비엔날레의 주요 무대가 되는 부산현대미술관.

이번 비엔날레는 부산 전역이 전시장으로 탈바꿈한다는 점에서 더욱 기대됩니다. 특히 로컬 클럽과 LP 바까지 전시 무대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이러한 시도가 관객의 경험을 어떻게 확장하길 기대하시나요?
아말 칼라프 그런 공간들은 이미 모임이 일어나는 장소예요. 예술 작품이 작은 클럽, LP 바 같은 곳에 놓일 때, 사람들은 단순한 관객에 머물지 않고 그곳의 템포와 숨결, 심지어 예기치 못한 리스크까지 공유하게 되죠. 이 지점에서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제한된 물리적 전시를 넘어 도시 전반에 흐르는 하나의 거대한 ‘행위’가 될 예정이에요. 특히 과거 뜨거운 밤문화가 펼쳐졌던 장소들을 전시와 연계 프로그램의 일부로 소환해 공간이 품은 기억을 새롭게 깨워보는 건, 기획자인 저에게도 무척 흥미롭게 다가와요.
에블린 사이먼스 저와 칼라프 감독은 장소에 반응하는 커미션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작업은 대개 화이트 큐브 바깥에서 이뤄져 왔어요. 미술관이 작가와 함께 완결된 세계를 구축하는 몰입의 장이라면, 외부의 장소들은 부산이라는 지역성, 그 과거와 현재의 현실이 직접 대화하는 통로가 돼요. 특히 저희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이나 작은 LP 바 같은 음악 신의 파트너들과 협업해, 때로 지나치게 분리되어 있던 두 세계를 잇고 관객의 흐름이 서로 교차하길 바라고 있어요. 권력의 장소가 아닌, 거친 세상으로부터 잠시 숨을 고르는 ‘피난처’이자 세계를 새롭게 구성해보는 이 은밀한 장소들에서 작가들이 음악 프로듀서나 DJ로서 자신의 또 다른 예술적 층위를 드러내길 기대하고 있어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산비엔날레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무엇이고, 다른 비엔날레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아말 칼라프 저희가 던지고 있는 질문들이 바로 부산이라는 도시의 생생한 현실 속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죠. 항만 노동과 이주, 그리고 파도처럼 굽이치는 역사가 지금도 일상의 리듬으로 이어지는 부산이야말로, 이러한 담론들이 가장 선명하게 발화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외부의 어떤 이론을 이 도시에 덧씌우려는 게 아니에요. 이미 이곳에서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실천과 경험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세계 다른 지역의 맥락들과 유연하게 연결해보고자 하죠.
에블린 사이먼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긴급성과 당위성을 지닌다고 생각해요. 지역 미술계가 지향해야 할 기준점을 제시하고 문화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물론, 지역 작가와 예술 노동자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중앙 집중화된 미술계에 맞서는 중요한 ‘균형추’ 역할을 하는 것이죠. 부산비엔날레는 오랜 역사 속에서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유연하게 조정해온 저력이 있어요. ‘바다미술제’를 포함해 순수 미술 제도의 틀을 넘나들며 쌓아온 조직의 전문성과 독자적인 프로젝트 경험은, 부산비엔날레를 그 어떤 곳과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위치에 올려두었다고 믿어요.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전시장을 떠나며, 관객들이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길 바라시나요?
아말 칼라프 ‘언어는 어느 지점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그 이후 몸은 어떻게 계속해서 말할 수 있을까? 반복과 리듬, 그리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돌봄과 저항의 방식이 될 수 있을까?’
에블린 사이먼스 관람객들이 스스로 내면에 잠재된 ‘힘’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것은 개인으로서의 힘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모였을 때 발휘되는 집단적 힘이기도 하죠.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수행하고 생산하며 소비하도록 강요받는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늘 바쁘게 움직이지만 역설적으로 점점 더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가 되어가곤 하죠. 그래서 저희는 시위와 불복종, 대중 집회, 그리고 춤과 레이브 같은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장면들을 빌려와 우리가 가진 자율성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감각을 되찾고자 합니다. 그 감각을 절대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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