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국내 비엔날레 미리보기

전여울

비엔날레 리퍼블릭

올해 국내에서는 비엔날레가 줄지어 열리며 ‘비엔날레 공화국’의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광주, 부산, 제주, 경기, 창원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5개 주요 비엔날레의 방향과 질문을 짚어본다. 이 여정을 따라가기 위한 작은 나침반을 여기 모았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는 권병준의 ‘중심에서 피어나는; 잠재태의 황금꽃’(2025).

광주비엔날레

2026.09.05~11.15

광주는 우리에게 ‘변화’를 명령한다.
싱가포르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 호추니엔(Ho Tzu Nyen)이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릴케의 시구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를 화두로 던지며, 예술이 삶에 개입하는 강렬한 변화의 지점을 응시한다.

<W Korea> 광주비엔날레는 언제나 광주라는 도시의 역사적·지역적 맥락과 깊이 호응해왔다. 이번 비엔날레를 준비하며 광주를 탐구하던 중 특히 인상 깊게 다가온 장면이 있었나?
호 추 니엔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순간이 있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오월어머니회’를 방문한 어느 날 오후다. 5·18의 비극과 트라우마를 겪은 여성들이 모인 곳이다. 그곳 수납장에는 회원들이 집단 치료 과정에서 그린 작은 정사각형 그림이 가득했다. 사무총장은 그림 하나하나에 담긴 장면과 기억을 차례로 들려주었다. 그 작은 그림에 담긴 감정의 에너지, 삶의 경험, 비극, 그리고 이를 이겨내는 놀라운 회복력에 깊이 압도된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물’의 생명력을 다룬 제14회 비엔날레가 기억에 남는다. 역대 광주비엔날레 중, 광주라는 장소성이 특히 설득력 있게 다뤄졌다고 느낀 에디션이 있나?
2018년 에디션인 <상상된 경계들> 당시, 도시 곳곳의 역사적 장소에 흩어져 있던 ‘GB 커미션’들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옛 국군광주병원을 무대로 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작업이 가장 강렬했다. 우선 작품이 설치된 장소 자체가 흥미롭지 않나. 폭력을 수행했던 군사 권력의 시설인 동시에, 회복과 돌봄의 장소인 셈이다. 트라우마와 치유가 같은 공간 안에서 겹쳐지는 그 긴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올해 전시 주제는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다. 이는 릴케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속 마지막 구절이기도 하다. 이 문장을 2026년 광주로 다시 호출해야 한다고 느낀 계기가 있을까?
이 유명한 마지막 문장을 하나의 ‘재즈 스탠더드’로 생각해볼 수 있다. 가령 ‘My Funny Valentine’ 같은 곡도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 빌 에반스에 의해 전혀 다른 해석으로 연주되지 않나. 반복은 차이를 낳는다. 새로운 연주는 각기 다른 목소리와 순간의 고유성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문장을 지금 광주로 다시 호출하는 순간, 그 의미는 곧바로 열리고 변형된다. 시의 미학적 틀을 넘어, 살아 있는 역사적 경험의 강도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조건 역시 이 문장을 다시 바꿔놓는다. 릴케가 이 문장을 썼을 때, 그것은 예술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열린 실존적 요구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 명령은 어디에서나 울려 퍼진다. 피트니스와 수치화된 신체, 자기계발서와 유튜브 튜토리얼, 성형수술과 장수를 위한 바이오해킹, 소셜미디어를 통한 끊임없는 정체성 재구축까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기술이 이토록 증식했음에도 역설은 존재한다. 시스템은 요지부동인 채, 우리는 신체와 습관, 이미지만을 끝없이 리디자인하도록 요구받는다. 바로 이 긴장이 전시의 출발점 중 하나였다.

‘변화’가 올해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이번 비엔날레의 방향성과 특히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참여 작가의 작품을 몇 점 소개해줄 수 있을까?
우선 권병준과 박찬경이 공동 작업한 커미션 신작 ‘불림’을 소개하고 싶다. 공동체에서 모은 금속 조각을 녹여 악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영혼을 부르는 한국의 무속 의례 ‘쇠걸립’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광주와 전남 시민들이 기부한 수저, 자투리 금속 등은 사운드 설치물의 핵심이 되어 리듬과 진동, 그리고 공동의 소리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불림’은 물질적·사회적·영적 차원에서 동시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 인상 깊은 작품은 다이스케 코스기의 영화 <A False Weight>(2019)다. 영화는 한평생 합리적 통제와 효율이라는 근대적 이상을 따라 살아온 일본 건축가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주인공은 은퇴 후 보디빌더가 되며 그러한 가치를 신체적으로까지 구현하려 한다. 그러나 퇴행성 뇌질환 진단을 받으며 거동과 언어에 불편이 생기고, 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감독의 부친을 모델로 도쿄 아파트를 배경 삼아 촬영한 이 영화는 단순한 일상의 관찰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부친을 연기한 부토(Butoh) 무용수와 밀도 높게 협업한 결과물이다. 질병이라는 제약 안에서 발견한 예기치 못한 자유를 무용수의 몸짓으로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참여 작가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본 기준이 있었나?
전시의 출발점으로 ‘변화’라는 키워드를 선택한 건, 그 단어가 지닌 개방성 때문이다. 처음부터 큐레이토리얼 메시지가 개별 작가들의 독창성과 충돌하거나, 작가를 주제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전시는 피하고 싶었다. 변화에 대해 말하는 작가가 아니라, 자신의 실천 안에서 이미 변화가 역동하고 있는 이들을 찾는 데 집중했다. 우리가 ‘변화’의 짝으로 고른 핵심 개념은 ‘실천’이다. 실천이란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반복적 훈련과 실천을 의미한다. 몸과 습관, 지각을 오랜 시간 훈련하는 과정 속에서 작은 변화들이 축적되고, 그 변화는 분자적 수준의 조정에서부터 개인의 행동, 집단의 체계, 나아가 우주적 상상력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스케일을 가로지르며 확장될 수 있다. 그렇기에 단절된 ‘점’으로서의 개별 작품보다는 시간을 가로지르며 그려온 예술적 ‘선’에 주목했다. 우리가 초대한 작가들은 정치적 압박이나 경제적 불안, 개인적인 풍파, 혹은 아이디어 자체가 품은 완고한 저항 속에서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온 이들이다. 우리를 감동시킨 건 그들의 꾸준함이었다. 장애물을 새로운 에너지로 전환하며 작업을 계속해나가는 힘.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를 엮어낸 가장 중요한 기준은 예술가들의 ‘회복탄력성’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분자적 변화’에서 ‘우주론적 변화’로 이어지는 구성은 관람객의 사유를 점차 확장시키는 동선처럼 읽힌다. 이 구조를 설계하며 특히 신경 쓴 지점이 있다면?
이번 전시가 관람객을 서로 다른 층위의 경험으로 실어 나르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길 바랐다. 관람객은 분자 단위의 미세한 변화에서 시작해 개인과 시스템, 나아가 우주적 변화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과하게 된다. 평소라면 각각 분절되어 경험했을 현상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신체와 인프라, 환경과 세계 사이를 유영하며 서로 다른 질서의 경험과 서사, 사유가 마주치도록 설계했다. 우리가 의도한 바는 일종의 ‘스케일 간의 연결’이다. 한 층위에서의 변화가 다른 층위의 변화와 공명하고, 서로의 형태를 다시 빚어내는 그 찰나의 순간을 목격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번 전시 구조의 핵심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는 수많은 비엔날레가 범람한다. 그럼에도 광주비엔날레가 여전히 유효하며,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내가 보기에 비엔날레라는 형식이 여전히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고정된 모델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엔날레는 늘 변화의 가능성에 열려 있다. 모든 장소와 모든 역사적 순간은 그 시대에 걸맞은 비엔날레를 스스로 낳는다. 그래서 나는 비엔날레가 무엇인지, 혹은 그것이 여전히 필요한지 묻기보다는, 그것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 비엔날레는 새로운 관계와 대화, 실천들이 잠시 교차하고 증폭되었다가 다시 각자의 궤적을 따라 흩어지는 일시적인 구조물이다. 그 찰나의 마주침을 위한 조건을 형성하는 것, 그것이 비엔날레가 여전히 이곳에 존재해야 할 이유다.

작가로 활동해온 당신에게 ‘총감독’이라는 역할은 어떤 전환이었나? 비엔날레를 준비하며 자신의 세계관이나 작업 태도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느낀 지점은 없었나?
물론 몇 가지 조정은 필요했다. 규모의 문제도 있었고, 광주비엔날레 재단이라는 거대 조직 특유의 메커니즘을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율해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다만 좋든 나쁘든, 내 세계관이나 작업 방법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느낀 적은 없다. 오히려 나는 이 총감독으로서의 경험 역시 하나의 작업 과정처럼 통과해보려 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와 같은 태도로 이 역할에 임하고자 했다.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자리에도 예술가가 임명된 것인지도 모른다.

비엔날레를 떠나는 관람객의 마음속에 어떤 질문이 남기를 바라는가?
‘오늘, 어떤 변화가 내 안을 지나가고 있는가?’

지금 개인이자 예술가로서 삶에서 가장 크게 체감하고 있는 ‘변화’는 무엇인가?
몇 년 전부터 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 물꼬를 터준 이가 바로, 놀랄 것도 없이 릴케다. 지하철에서 그의 후기 대표작인 <두이노의 비가>를 읽다가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미학적 경험 중 하나를 했다. 한 세기 전 인물이 쓴 문장에서 거대한 에너지와 가능성을 발견한, 생애 가장 강렬한 미적 체험 중 하나였다. 북적이는 열차 안, 내면의 휘몰아치는 강렬함과 외부의 평온한 무관심이 대비되던 그 기묘한 상황은 예술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신뢰하게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제안을 받은 시기가 그때였다. 전시 제목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릴케 사후 100주년이 되는 해에 비엔날레가 열린다는 사실 또한 우연이 아니다. 때때로 이 제목은 나의 ‘선택’이라기보다, 내가 그저 하나의 통로가 되어 전해진 것이라 느낀다.

KWON BYUNGJUN, OPENING BLOOMING FROM THE CENTER; GOLDEN FLOWER OF POTENTIAL, 2025. COMMISSIONED FOR THE 13TH SEOUL MEDIACITY BIENNALE.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HONG CHEOLKI. IMAGE COURTESY OF SEOUL MUSEUM OF ART
HO TZU NYEN, ARTIST DIRECTOR OF THE 16TH GWANGJUBIENNALE, COURTESY OF GWANGJU BIENNALE, PHOTO BY LEE IL CHUN.

2024 부산비엔날레의 풍경

부산비엔날레

2026.08.29~11.01

부산은 하나의 거대한 ‘합창’이 된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겹치고 쌓일 때 어떤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이러한 ‘불협하는 합창’이 지닌 가능성에서 출발했다.

비엔날레의 주무대가 되는 부산현대미술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8월, 2026 부산비엔날레의 방향키를 쥔 공동감독 에블린 사이먼스(Evelyn Simons)와 아말 칼라프(Amal Khalaf)는 초량 이바구길 언덕에 도착했다. 비엔날레를 준비하며 무엇보다 이 도시와 친밀해지기 위해 곳곳을 탐방하던 중이었다. 완만한 평야가 대부분인 유럽에서 온 이들에게 부산의 지형은 쉽게 독해되지 않았다. 바다는 도시 곳곳으로 스며들고, 섬과 산이 겹쳐지며, 그 사이로 거대한 고속도로가 미로처럼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쁜 숨을 내쉬며 마침내 원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섰을 때를, 에블린 사이먼스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곳에 섰을 때 비로소 이 도시의 정체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저항과 생존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피난처’로서의 부산을 이해하게 된 것은 비엔날레를 구상하는 방식에 결정적 영감을 주었죠.”

두 큐레이터의 이력은 사뭇 흥미롭다. 에블린 사이먼스는 브뤼셀 외곽의 폐군사 부지에서 열리는 전자음악 페스티벌 ‘호르스트 아트 앤 뮤직’의 예술감독으로 활약한 바 있다. 지난해 <아트 리뷰> ‘파워 100’에 이름을 올린 아말 칼라프 역시 노동요와 돌봄의 서사를 다룬 저서 <라디오 발라드>를 출판하며 소리의 정치학을 탐구해왔다. 둘 다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인 셈이다. 올해 부산비엔날레가 <불협하는 합창>이라는 타이틀 아래 하나의 거대한 합창단처럼 설계된 배경에는 이러한 큐레이토리얼적 필연이 숨어 있다. “때때로 글이나 말 같은 ‘언어’는 너무 공허하게 느껴져요. 특히 지금은 가짜 뉴스를 확산하고 사회를 양극화하며 담론을 피상적인 수준으로 되돌리는 방식으로 언어가 무기화되고 있죠. 시간이 흐를수록 저의 큐레이토리얼 실천도 점점 ‘음악’과 ‘리듬’ 쪽으로 기울게 됐어요. 음악에는 즉시성이 있고, 관객에게 매우 직접적이고 감각적이며 신체적인 방식으로 말을 걸 수 있는 힘이 있거든요.” 단지 언어에만 기대는 소통에서 벗어나 ‘소리’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태도에는, 아말 칼라프 역시 깊이 공감한다. “그래서 언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순간에서 이번 비엔날레를 출발하고자 했어요. 특히 작가 오마르 엘 아카드의 글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했죠. 그는 오늘날 언어가 미디어와 정부에 장악되면서 폭력을 완화된 표현으로 바꾸고, 참혹한 현실을 무감각하게 만들며, 파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말로 변형시킨다고 말해요. 언어가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 몸은 침묵하지 않아요. 콧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공간을 만들어내죠. 이번 비엔날레에서 말하는 ‘합창’은 깔끔한 조화를 의미하지 않아요. 그것은 리듬과 울림을 통해 사람들이 잠시 서로의 몸을 기대며 만들어내는, 다소 어수선하고 일시적인 공명에 가깝죠. 그리고 바로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정치적 목소리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청각적 장으로 변모한다. 음악, 안무,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교차하는 주파수를응시한다. 아직 참여 작가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소리와 시간, 신체성을 탐구하는 작가가 다수 참여할 예정이라는 것이 두 감독의 전언이다. 비엔날레의 주무대인 부산현대미술관의 정제된 화이트큐브 안에서는 참여 작가들의 몰입적인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동시에, 이번 비엔날레가 특히 기대되는 이유는 부산의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작은 LP바가 전시 무대로 변신한다는 점이다. 에블린 사이먼스는 기대감을 담아 말했다. “미술 전시장과 음악 공간, 때로는 지나치게 분리된 이 두 세계를 연결해 관객의 흐름이 서로 마주치도록 하고 싶거든요. 클럽과 LP바는 권력의 장소가 아니라, 거칠고 요구가 많은 세계로부터 잠시 숨을 고르고 쉴 수 있는 피난처예요.” 올가을, 그 어느 때보다 다성적 울림으로 가득할 도시, 부산을 찾은 이들은 어떤 질문을 품게 될까? 아말 칼라프는 이렇게 말한다. “부산을 떠나며 관객의 마음에 이런 질문이 남았으면 해요. 언어는 어디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그 이후 몸은 어떻게 계속 말할 수 있을까? 반복과 리듬, 그리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돌봄과 저항의 방식이 될 수 있을까? 모두가 자신이 가진 힘을 다시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요. 그것은 개인의 힘이기도 하고, 함께 모였을 때의 집단적 힘이기도 하죠.”

‘변용과 북방’을 탐구하는 올해 제주비엔날레의 포스터.

제주비엔날레

2026.08.25~11.15

제주는 ‘북방’의 길을 따라간다
출범 10주년을 맞은 제주비엔날레. 지난 회차가 던진 ‘표류와 남방’이라는 화두를 이어받아, 올해는 ‘변용과 북방’을 좌표 삼아 그 흐름을 구조적으로 완성한다. 올해 비엔날레를 3개의 전시 키워드로 살펴봤다.

KEYWORD 1 유배
고려와 조선 시대, 제주는 권력의 궤도에서 이탈한 정객과 학자, 문인들이 당도하는 최남단의 유배지였다. 그렇기에 이 고립된 섬은 역설적으로 북방 대륙의 학문과 예술이 유입되는 가장 뜨거운 창구가 되었다. 그 정점에는 8년여의 유배 생활 동안 독창적 서체인 ‘추사체’를 완성하며 조형의 정수를 남긴 추사 김정희가 있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추사의 견지에서>는 이렇듯 결핍과 고립의 시간이었던 유배가 제주의 조형 미학과 맺어온 계보와 경로를 추적한다.

KEYWORD 2 신화
제주는 일만팔천 신이 깃든 ‘신들의 고향’이라 불린다. 서울 남산에서 발원해 제주로 건너온 여신 ‘백주또’는 제주 신화의 뿌리가 북방 대륙과 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움직이는 증거다. 반면 거대한 몸으로 섬을 빚어낸 창세 여신 ‘설문대할망’은 전 세계 화산 신화들과 공명하며 제주의 서사를 우주적 층위로 격상시킨다. 예술 공간 이아와 갤러리 레미콘에서 펼쳐지는 <큰 할망의 배 꼽>은 이 두 여신을 이정표 삼아, 섬에 새겨진 태초의 기억을 예술 언어로 풀어낸다.

KEYWORD 3 돌
제주는 약 17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돌의 땅이다. 동시에 섬 곳곳에 흩어진 80여 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어 북방에서 유입된 거석 문화의 흔적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 돌은 단순한 자연환경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원초적 재료이자 문화의 근간이었다. 바람을 막아내던 밭담과 섬의 안녕을 지키던 돌하르방에는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제주인의 집요한 생존 지혜와 공동체적 연대가 서려 있다. 30만 평의 곶자왈 위에 세워진 제주돌문화공원에서 펼쳐지는 <검으나 돌은 구르고 굴 러>는 이 검은 돌들을 단순한 사물이 아닌, 제주의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해온 역사의 증인으로 호명한다.

창원조각비엔날레의 프롤로그 전시 &lt;레조넌스 튜닝&gt;에 소개된 백정기의 ‘능동적인 조각’(2023).

백정기, 능동적인 조각, 2023, 금속분말 캐스팅, 송신기, 라디오, MP3 플레이어, 스테인리스 파이프, 나무, 혼합재료, 가변설치, 작품이미지 아라리오 갤러리 제공.

창원조각비엔날레

2026.09.30~11.15

김종영, 문신, 박종배, 박석원, 김영원 등 한국 조각사의 거장들을 배출한 ‘조각의 성지’ 창원이 올해도 새로운 조형적 파동을 일으킨다. 지난해 12월, 본전시의 예고편 격으로 열린 프롤로그전 <레조넌스 튜닝: 공명장을 위한 서곡>은 창원이라는 도시가 지닌 역사와 공간, 산업의 결을 새롭게 공명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각은 어떻게 다시 세계와 인간을 잇는 감응의 매개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올해 비엔날레는 공명과 관계, 재맥락화의 가능성을 탐색할 예정이다.

경기도자비엔날레

2026.09.18~11.01

“도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인터페이스다. 신석기 토기부터 현대 우주 항공 기술의 핵심 소재에 이르기까지, 점토는 늘 문명의 곁을 지탱해왔다.” 이대형 예술감독의 말처럼, 올해 경기도자비엔날레의 주제 <땅이 만든다>는 창작의 주체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창작의 주어를 인간에서 ‘땅’으로 확장하고, 도자를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 인간과 재료, 지구 환경이 공모해 빚어낸 공동의 산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여주, 이천, 광주를 아우르며 개최되는 이번 비엔날레는 예술의 주권을 인간에게서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과감한 선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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