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애호가 4인의 향수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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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은밀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누군가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향수 애호가 4인이 자신의 컬렉션 가운데 가장 아끼는 수집품을 공개했다.

YEJIN KIM: 향기 레이어링의 달인 

비디오그래퍼 김예진은 아이돌과 배우들의 얼굴을 통해 장면의 분위기와 서사를 섬세하게 설계한다. 향을 즐기는 방식도 비슷하다. 완벽한 각도와 배열로 아름답게 진열하기보다는 자신의 동선을 따라 향수를 랜덤하게두고, 손에 닿는 대로 여러 향을 레이어링하며 그날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향을 고르는 나만의 철학은?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대신 외출 준비를 마친 직후, 바로 손이 닿는 위치에 향수들을 두는 편이다. 그날 입은 옷, 만 나게 될 사람들을 떠올리며 향을 고른다. 향수를 구매하고 받은 작은 샘플 여러 개를 가방 안에 늘 휴대하고, 사무실 책상과 차 안, 집 안 곳곳에 향수를 일상적으로 두고 3~5가지의 향수를 레이어링하곤 한다. 동일한 브랜드의 다른 향수를 여러 개 섞어 뿌리는 것도 좋아한다.
가장 사랑하는 향수는? 여러 브랜드의 향수를 사용하다 보면 유독 내 피부처럼 느껴지고 지속력이 뛰어난 향기가 있다. 그런 점에서 톰 포드의 향수가 나와 찰떡궁합이다. ‘쏠레이 블랑’, ‘쏠레이 드 푸’, ‘튜베로즈 누’, ‘로즈 익스포즈드’ 등등. 특유의 강렬하고 관능적인 머스크와 남다른 장미 노트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오늘날의 취향을 만든 결정적 향의 순간은? 타고나길 후각이 예민한 편이다. 20대 시절 독일에 잠시 거주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다양한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하며 향의 호불호 기준이 명확히 생겼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 안에서, 옆에 앉은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에 매료돼 내리는 그를 붙잡고 어떤 향수를 사용하는지 물어본 순간이다.
나의 향수 컬렉션을 키워드로 요약한다면? 잔향. 첫 아우라가 강렬하기보다는 가까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하게 풍기는 향을 선호한다. 머스크, 우디 노트처럼 내 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향은 레이어링하더라도 부담스럽지 않고, 공기처럼 나만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1 Tom Ford 로즈 익스포즈드 장미 향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면세점 쇼핑을 하며 시향 후 구매하게 됐다. 여행 중 이 향을 뿌리고 다니다 지나가던 관광객이 향수를 물어본 경험도 여러 번. 장미 향을 중심으로 가죽과 스파이시함이 은은하게 섞인, 드라이하고 묵직한 로즈 향이다.
2 Ex Nihilo 블루 탈리스만 엑스트레 드 퍼퓸 최근 가장 많이 뿌리게 되는 향수. 시트러스와 머스크를 중심으로 깨끗하고 세련된 향을 전개한다. 깔끔한 인상을 주면서도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싶을 때 제격이다.
3 Memo Paris 이타크 친한 뷰티 에디터의 추천으로 접하게 된 향. 파리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익스클루시브 라인이다. 상쾌한 시트러스, 차분한 머스크와 우디 향의 조화가 맑고 정돈된 분위기를 완성한다.
4 Creed 실버 마운틴 워터 깨끗하고 시원한, 공기가 느껴지는 향. 따뜻한 봄부터 더운 여름까지 애용한다. 시트러스 노트와 은은한 차 향이 매력적이다.
5 Tom Ford 튜베로즈 누 화이트 플로럴 향에 머스크가 풍부하게 섞인 향기다. 이 향수를 뿌린 날은 어떤 섬유유연제를 사용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6 Byredo 언네임드 바이레도에서 10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한정판. 재출시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달려가 구매한 기억이 있다. 머스크와 우디 노트가 중심이 되는 담백한 향이라 다른 향수와도 무난하게 레이어링된다.
7 Tamburins 블루 히노키 이 향수의 론칭을 기념한 촬영을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진행했다. 하루 종일 공간에 머물다 보니 온몸에 히노키 특유의 나무 향이 배었는데,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이 좋았다.
8 Armani Beauty 프리베 블랑 코가네 화이트 플로럴 노트와 우디 노트, 머스크가 조화를 이룬 부드러운 향.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재구매가 쉽지 않다. 면세점 재고 알림을 설정해둘 만큼 아끼는 향수.

HYEMIN LEE: 나를 위한 마지막 터치

‘사는 재미가 없으면, 사는 재미라도’를 모토로 화장품, 인테리어 오브제, 테크, SNS 바이럴 아이템까지, 출중한 안목으로 고른 온갖 문물을 리뷰하는 미디어 채널 <디에디트>의 이혜민 대표는 현관 입구에 작은 향기 컬렉션을 진열했다. 집을 나서기 전, 그날의 기분과 룩에 맞는 향을 분위기처럼 입기 위함이다.

그날의 향기를 고르는 나만의 철학은?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 갑옷처럼 두르는 ‘전투용’ 향, 습도가 높고 끈적이는 날을 위한 시트러스, 화이트 셔츠와 어울리는 깨끗한 향 등 외출 직전 향을 고를 수 있도록 현관에 몇십 가지의 향수를 놓아둔다. 비슷한 무드의 향수끼리 모아두고 어떤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지,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를 생각하며 향수를 택한다.
오늘날의 취향을 만든 결정적 향의 순간은? 20대 초반 시절, 자주 만나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관람하던 썸남과 어느 날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축축하고 어두운 조명 아래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그가 화장실에 갔다 돌아와 맞은편에 앉은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은은하게 풍기던 젖은 나무와 쌉쌀한 풀 내음이 섞인 향. 오래된 소파와 담배 연기가 뒤섞인 호프집의 공기가 갑자기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최근 가장 많이 뿌리게 되는 향수는? 마감할 업무가 쌓여 있고 머릿속이 복잡한 날, 그런 날은 고르는 일조차 피곤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줄리엣 헤즈 어 건의 ‘낫 어 퍼퓸’에 손이 간다.
나에게 향이란? 나를 위한 가장 확실한 사치.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위해 누리는, 가장 조용하고도 사적이며 그 무엇보다 호사스러운 감각. 

1 Astier De Villatte 투손 중대한 업무 미팅, 결정을 앞둔 순간 장엄한 마음가짐으로 찾게 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도 살아남은 식물들의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향이다.
2 Edition de Parfum Frederic Malle 아크네 스튜디오 파 프레데릭 말 아크네 스튜디오의 스테디셀러인 모헤어 체크 스카프를 녹여 향수로 만든다면 아마 이 향일 것. 따뜻한 복숭아 티를 마시는 것처럼 부드럽고 포근하게 남는다.
3 Diptyque 르 그랑 투어 교토 뿌리고 나서면 사람들이 햇볕에 바짝 말린 태양초 고춧가루 향이 난다고 말하는 향수다. 묘하게 알싸하고 매운 느낌이 있는데, 그 독특한 스파이시함이 매력적이다.
4 Juliette Has A Gun 낫 어 퍼퓸 ‘살내음’의 정석과도 같은 향. 그날의 컨디션을 그대로 드러내는 리트머스 종이 같은 향수다.
5 Aesop 어보브 어스 스테오라 겨울비가 내린 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먼지 냄새, 비에 젖은 풀의 쌉쌀한 향이 떠오른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 속에서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향기.
6 Edition de Parfum Frederic Malle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장미 향을 이토록 강렬하고 섹시하게 해석한 향수가 있을까? 너무 아름다워서 가시를 품어야 하는 장미를 떠올리게 만든다.
7 Lush 카르마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현실에 발이 묶였을 때 찾게 되는 향. 뿌리는 순간 낯선 나라의 공기가 느껴진다. 내가 동경하는 1960년대 히피의 자유로운 정신을 연상하게 만드는 향수다.
8 Le Labo 어나더 13 벌써 리필만 두 번째. 체취에 따라 영안실 냄새처럼, 또는 따뜻한 살냄새처럼 느껴지는 향으로 유명한데 내게는 포근한 느낌.

HYEMI LEE: 공간에 은은하게 스며드는 향

직접 구운 조형적인 자기 위에 은을 반복적으로 쌓은 은빛 오브제로 유명한 도예가 이혜미의 향수 진열장. 향을 고르는 그녀만의 철학은 바로 시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조화’다. 공간의 습도와 온도에 반응하는 그녀의 작품과도 일맥상통한다. 

오늘날의 취향을 만든 결정적 향의 순간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남들이 좋다고 추천하는 향수, 매장 진열대 위의 ‘베스트셀러’ 스티커가 붙은 제품을 이것 저것 사용했으니, 그 역사가 꽤 유구한 편이다. 결국 내 취향을 완성한 건 “무슨 향수 뿌리셨어요?”라는 질문이었다. 정확한 인과관계를 따지긴 어렵지만 그 물음을 받을 때 사용한 향수가 가장 만족스러웠다. 나폴리를 여행하던 중, 미술관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유럽인 커플이 향기를 따라 쫓아왔다며 향수를 알려달라고 물었던 일화가 있다. 다시 마주칠 때마다 눈인사를 하는데 많은 대화 없이도 깊은 교감을 나눈 기분이었다.
향수를 구매하는 데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시향 후 마음에 든다고 해서 바로 구매하지는 않는다. ‘나’라는 사람과 가장 잘 어우러지는 향인지, 피부에 스미는 향인지를 며칠간 고심한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향수는? 지금은 공병이 되어버린 퍼퓸 드 말리의 ‘발라야’. 플로럴 향을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이 향수는 뿌린 뒤 한두 시간 후에 느껴지는 잔향이 좋았다. 계절을 타지 않고, 각 계절에 맞게 조금씩 다른 이미지를 주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 향이란? 바쁜 일상 중, 잔잔하게 코끝에 느껴지는 바람 같은 것이다. 작업실에서, 외부에서 사람을 만날 때 느껴지는 후각적 인상은 기분 좋은 선물과도 같다.

1 Olfactive Studio 뤼미에르 블랑쉐 공간에 간직하고 싶은 향. 스파이시한 향신료와 감미로운 아몬드의 대조가 조화롭다.
2 Dior 라 콜렉시옹 프리베 크리스챤 디올 쟈스망 데 장주 룸 스프레이처럼 집에서 뿌리곤 하는 향수. 집에서 기르는 재스민이 내뿜는 신선한 향기와의 앙상블이 매력적이다.
3 Aesop 로즈 우드, 흙 내음이 돋보이는 이솝의 향기 컬렉션 대부분을 좋아하는데, 특히 이 향은 이솝의 다른 향수와 레이어링했을 때 활기찬 분위기를 더해준다.
4 Armani Beauty 프리베 베르 말라키트 보틀 디자인과 향이 주는 묵직한 존재감을 좋아한다. 평소 쓰는 향수보다 향기가 강렬한 편이지만 중후한 그린 노트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5 Atelier Cologne 울랑 앙피니 다도 교실에 앉아 있는 듯 차분하고 잔잔한 느낌을 건네는 향수. 은은한 차 향에 이국적인 기운이 스며 있다.
6 Parfums De Marly 발라야 누군가가 나를 떠올렸을 때 자연스레 연상됐으면 하는 단정하고도 부드러운 향. 시원하고 산뜻하며, 포근한 잔향은 살결에 간직하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쏙 든다.
7 Matier Premiere 바닐라 파우더 컨디션이 저조할 때 기분 전환을 위해 뿌리게 된다. 온몸에 바닐라 빈을 두른 듯 달콤함이 충전된다.

SERIAN HEU: 향을 연출하는 방식

빌리프랩의 비주얼 디렉터 허세련에게 향은 스타일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다. 이미지와 공간의 균형을 섬세하게 잡아가는 직업답게, 향수 역시 하나의 오브제처럼 다룬다. 그녀의 컬렉션에는 조향사의 의도와 브랜드 철학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니치 향수들이 자연스럽게 자리한다.

향수를 구매하는 데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꽤 신중한 편이다. 처음 맡았을 때 바로 ‘이거다’라고 느껴지는 향은 그리 많지 않다. 1시간 이상 매장에 머무르며 향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본 뒤 결정한다. 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텍스처를 드러내기 때문에 첫인상보다는 잔향까지 충분히 경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렇게 구매한 제품은 전체적인 컬러 톤을 맞춰 공간에 진열하는 편이다. 독특한 오브제나 작은 액자, 빈티지 조명과 함께 두고 공간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요소처럼 활용한다.
향을 고르는 나만의 철학은? 조향사의 의도나 미학이 느껴지는 향에 끌린다. 자연스럽게 니치 향수를 좋아하게 된 이유다. 특히 샌들우드, 머스크를 베이스로 활용한 향을 선호한다, 시간이 지나며 피부에 남는 긴 여운이 좋다.
최근 가장 많이 뿌리게 되는 향수는? 꼼데가르송의 ‘콘크리트’. 거친 콘크리트 소재의 보틀이 인상적인데, 투박한 외형과 달리 품은 향은 의외로 부드럽다. 우디와 머스크가 조화로운 따뜻한 향이라 묘한 반전 매력이 느껴진다.
나에게 향이란? “It’s me.” 나의 취향을 후각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무기.

1 Astier De Villatte 콜론 오 휘가쓰 룸 스프레이처럼 활용하는 코롱. 현관 옆 신발장 위에 두고 사용하는데, 집에 들어오는 순간 느껴지는 상쾌한 향이기분을 환기시킨다.
2 Celine 라뽀뉴 드물게 충동적으로 구입한 향수. 화려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는 체취와 자연스럽게 섞이는 향이라 부담 없이 사용하기 좋다.
3 Aqua Flor 메디테라니아 피렌체에서 잠시 혼자 지내던 시절 구매한 향. 조향사들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이 브랜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향들을 선보인다. 레몬과 베르가모트가 중심이라 샤워한 직후처럼 깨끗하고 산뜻한 인상을 주는 향인데, 시간이 지나면 재스민과 화이트 플라워의 부드러운 잔향이 퍼진다.
4 Cgs Lab 플라워 스터디 좋아하는 사진작가 조기석이 론칭한 향수. 그의 예술적 취향이 디자인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어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작품을 후각적으로 소유한다는 경험을 안기는 향수다.
5 Creed 히말라야 가장 최근 진열장 위에 올려둔 향수다. 남성적인 스킨 향이 느껴지는 동시에 깨끗한 비누 향이 난다. 오래 고민한 끝에 구매했지만 남편이 더 자주 사용하고 있다.
6 Dior 라 콜렉시옹 프리베 상탈 누와르 포멀한 자리에 참석할 때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구입할 때 종종 조향사의 인터뷰도 찾아보는데, “샌들우드의 어두운 면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표현에 끌렸다. 포근한 샌들우드 뒤에 스파이시한 면이 숨어 있는 향.
7 Louis Vuitton 오라쥬 평소 블랙 계열의 의상을 즐겨 입는 편이라 중성적인 분위기의 이 향을 자주 매치한다. 기본적으로 우디한 향이지만, 마무리에는 화이트 머스크가 느껴지며 세련된 균형을 완성한다.
8 Loewe 001 맨 우먼 버전의 달콤한 향보다 맨 버전의 강렬한 우디 노트를 좋아한다. 남편과 함께 사용하는 향수.
9 Comme Des Garcons 콘크리트 스모키하거나 스파이시한 향이 날 것만 같은 모습이지만 더없이 따뜻한 향. 뿌리고 난 다음 시간이 지나 피부에 남은 향기가 매력적이다. 

프리랜스 에디터
송가혜
포토그래퍼
박종원
세트
이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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