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산에서 이배 작가의 30년을 조망하는 전시 <En attendant: 기다리며>가 열린다.
나무가 불타면 숯이라는 정수가 남습니다. 이배(1956~) 작가는 파리로 건너간 이후인 1990년부터 그 숯의 가능성과 함께해왔죠. 숯이라는 물질에 내재된 생성과 소멸, 순환의 원리를 일관되게 탐구한 이배의 세계와 자연 속에 자리한 뮤지엄 산은 더없이 잘 어울리는 만남입니다. 4월 7일부터 12월 6일까지,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에서 열리는 <En attendant: 기다리며>는 이배의 작가 생활을 대규모로 조망하는 전시입니다.


“뮤지엄 산에는 존경하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메시지가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자연을 배려한, 자연과 소통하려는 흔적이 보여요. 여기서는 현대적인 수도원에 와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과연 내가 무엇으로 내 생각을 세울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전시해본 곳 중 가장 큰 공간이기도 하고요. 잘못하면 작가의 생각이 잘 수용되지 않을 거라는 부담이 있었어요.”

이배로 말할 것 같으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럼으로 괴로워하지 않을까 싶은 사람입니다. 이를 테면 뮤지엄 산이라는 안도 타다오의 걸작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 ‘안토니 곰리 전시와 같은 훌륭한 전시를 내가 과연…!’ ‘나는 예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 같은 고민과 반성은 이번 뿐만이 아니라 그가 오래전부터 반복해온 것이죠. 이배는 전시 준비를 위해 뮤지엄 산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파리와 한국을 오가며 떠돌이처럼 살다가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근원’에서 시작한다는 그 느낌에 집중하며 이번 전시를 완성했죠. 6일 기자간담회 날, 그는 청도에서 옮겨온 흙으로 구현한 작은 논 위에 맨발로 서서 붓질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농부의 아들’이라는 이배의 정체성과 이배의 제스처를 드러내는 붓질 작업이 결합된 퍼포먼스였습니다.


미술관 입구에는 높이 약 8미터, 무게 7톤에 달하는 거대한 숯기둥, ‘불로부터(Issu du feu)’가 위용 있게 자리잡았습니다. 전시 동선상 가장 마지막에 볼 수 있는 야외공간의 브론즈 조각 6점은 주변 나무나 산세, 건축물 지붕과 호응하는 높이를 지녔죠. 브론즈 조각들에선 상당한 양감을 느낄 수 있지만, 적어도 이번 조각들에서 중요한 건 중량감이나 속보다 겉입니다. 이배는 조각 표면에 붓질이라는 몸짓을 새겼죠. ‘나는 누구인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 지금까지 왔는가’ 하는 정체성 문제와 더불어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키워드는 ‘염원’입니다. 기자간담회 때 이배는 2019년 강원도 지역에 발발한 큰 산불을 몇 번 언급했습니다. 산불이 난 후 동료 작가들과 현장을 찾았던 일화도 들려주었고요.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다시는 큰 재앙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일종의 토템을 세우듯 거대 조각을 세웠습니다.


“작가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쩌면 작가가 하는 일에는 순수해지려는 노력도 포함되지 않을까 했고요.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그런 나의 마음 상태에서 나온 전시 제목이 <기다리며>입니다.” 작가로서 어떤 순간을 기다린다는 점 역시 스스로에 대한 이배의 염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작품으로 차 있어야 하지만 되도록 비워낸 전시 공간의 여백의 미, 흙과 배치된 큰 스크린을 타고 흐르는 멋진 영상, 숯이라는 자연물, 뮤지엄 산의 아름다움과 이배의 사람됨이 어우러진 이 전시를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 어시스턴트
- 황수현
- 사진
- Courtesy of Museum S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