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매력적인 향기 트렌드

이현정

향수에 진심인 당신이 알아두어야 할, 지금 가장 매력적인 향기 트렌드.

Chanel N°5 오 드 뚜왈렛 150ml, 35만5천원.

비틀린 꽃 한 송이

다마스크 로즈, 재스민, 가드니아, 네롤리… 이제 더는 사용된 꽃 이름만으로 최근의 향수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기존 플로럴 향수가 장미나 화이트 플라워처럼 꽃향기 자체를 깨끗하게 살리고 강조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 플로럴은 주연과 조연을 넘나들며, 차(Tea)나 가죽, 인센스, 우드, 캐러멜, 코코아, 카다멈, 블랙페퍼 등과 같은 다양한 원료와 조합되고 있기 때문. 샤넬에서 기존 N°5를 재해석해 새롭게 선보인 ‘N°5 오 드 뚜왈렛’이 그 좋은 예다. 샤넬 하우스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가 ‘은은한 우디 노트가 돋보이는 모던하고 추상적인 플로럴 향수’라고 표현한 것처럼, 장미, 재스민, 일랑일랑의 플로럴 부케에 알데하이드, 샌들우드와 베티베르가 깊이와 질감을 더한 ‘N°5 오 드 뚜왈렛’은 ‘N°5 중 가장 우디하고 젠더리스한 향’이라는 평가처럼 중성적이고 신비로운 무드로 발현된다. 이제 꽃 향은 더 이상 유일무이한 ‘여주’도 아니고, 우드도 더 이상 플로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연’이 아니다. 어둡거나, 먹음직스럽거나, 혹은 차갑거나 더 서정적으로 변화하는 플로럴 향은 이제 주인공에서 물러났지만 더 매력적이고 신선해지고 있다.

Kilian Paris 허 마제스티 50ml, 42만원.

우아하고 미묘한 과일 향

그 누가 프루티 향수가 유치하다 했나. 지금 퍼퓸 시장에선 구어망드 노트와 함께 가장 핫한 반열에 오른 프루티 노트의 눈부신 변신이 목도되는 중이다. 이전 과일 향이 인공적인 캔디 향 같거나 진짜 과일을 한 입 베어 문 듯 ‘하이퍼리얼(hyperrealistic)’했다면, 멜론, 수박, 배와 같은 투명하고 물기 어린 향이 새로운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상큼, 발랄, 유쾌의 대명사였던 베리 향은 입생로랑 뷰티 ‘리브르 베리 크러쉬’의 예에서 보듯 플로럴이나 코코넛, 머스크 같은 향료와 짝을 이루며 센슈얼해지거나, 그린, 스파이스, 미네랄과 같은 노트와의 조화로 보다 섬세하고 성숙한 무드를 선사한다. 랑콤의 ‘이돌 피치앤 로지스’처럼 복숭아를 톱 노트로 한 향수도 눈에 많이 띄는데, 킬리안 파리의 ‘허 마제스티’는 특히 복숭아의 달콤함과 부드러운 면을 표현하는 향수. 밝고 화사한 복숭아 향을 장미와 암브레트가 고급스럽게 감싸안고, 시더우드와 파피루스가 고혹적인 잔향을 드러내며 기품 있는 여운을 선사한다. 프루티는 더 이상 단순하지도 귀엽지만도 않다. 소녀에서 이제 막 여자가 되는 어떤 시기처럼 복잡 미묘하며 우아하게 성장 중이다.

조용한 럭셔리, 스킨 센트

“향은 힘주지 않아야 해요. 그냥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아름다움을 드러내야 하죠.” 퍼퓨머 에이치의 조향사 린 해리스의 말은 최근의 스킨 센트의 인기를 집약적으로 설명한다. 압도하지 않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향기로 각인된 갓 세탁한 빨래 향기, 체온에 데워진 안온하고 부드러운 ‘살내음’은 이제 클래식이다. 그리고 최근엔 이러한 스킨 센트에 이전보다 훨씬 포근하고 풍성한 질감이 추가되고 있다. 캐시미어처럼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텍스처는 마치 로고가 가려진 명품처럼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를 지향하며, 나와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친밀한 무드를 만들어준다. 이와 함께 향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최근의 ‘센트 스태킹(Scent Stacking)’ 트렌드의 기본도 바로 스킨 센트다. 고요하고 잔잔하게 피부에 머물던 향조가 이제는 레이어링의 베이스 노트로 주목받고 있는 것. 대표 주자 머스크를 비롯해, 아이리스, 암브록산, 파우더 향은 깨끗한 향기 그 자체로 피부 위에서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줄 뿐 아니라, 다른 향과도 잘 섞여 여러 향기를 조합해 개인화된 향취를 만드는 요즘 향기 트렌드에 꼭 필요한 요소로 등극했다.

순수하고 포근한 살내음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만 허락된, 따뜻한 포옹같은 향기.

1. FUEGUIA 1833 다마 데 노체 스페인어로 ‘밤의 여인’을 뜻하는 ‘다마 데 노체’. 낮에는 주변 풍경에 스며들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지만 밤이 되면 피어나 강렬한 향을 뿜어내는 재스민의 달콤함, 물기를 머금은 생기, 부드럽게 퍼지는 파우더리함이 감각적인 여운을 전한다. 100ml, 72만2천원.
2. NARCISO RODRIGUEZ 퓨어 머스크 블랑 포 허 오 드 퍼퓸 인텐스 청순한 순백의 아우라와 부드러움, 그 안에 감춰진 깊이감. 빛나는 재스민이 청량한 첫인상을 선사하고, 실키한 머스크, 크리미한 화이트 플로럴 어코드가 아늑한 여운을 남기며, 따뜻한 시더우드와 바닐라가 더해져 매혹적인 잔향으로 마무리된다. 100ml, 23만1천원.
3. PERFUMER H 포 스튜디오 니콜슨 솝 오 드 퍼퓸 스튜디오 니콜슨과 협업한 향수. 막 세탁한 옷이 피부에 닿는 순간의 깨끗하고 포근한 감각을 향으로 구현했다. 카다멈과 화이트 페퍼의 미묘한 조합에 소프트 알데하이드와 오렌지 플라워, 화이트 머스크가 어우러지면서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50ml, 35만원.
4. LE LABO 비올렛 30 그늘에서 피어나는 흰 제비꽃을 중심으로, 맑고 투명한 푸른 플로럴 노트에 화이트 티, 시더우드, 가이악 우드가 더해져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단순하지만 복합적인 향을 선사한다. 100ml, 45만8천원.

Molton Brown 티 세레모니 오 드 퍼퓸 100ml, 24만원.
오픈백 보디슈트는 320showroom 제품.

이토록 투명한 초록빛 향기

우리가 바라는 건 오직 마음의 평화! 불안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은 현대인에게 지금 가장 사랑받는 향조 중 하나는 풀과 잎, 나무, 흙과 같은 푸른 자연의 향이다. 바질, 로즈메리와 같은 허브류, 마차, 블랙티 같은 차 향은 정서적 안정감을 선사하는 향조. 날 선 풀의 향기는 맑고 편안하고 보다 자연스러워졌으며, 무겁고 건조하고 묵직했던 우디 향은 허브나 과일, 허니나 밀키 노트와 조합돼 보다 투명하고 크리미하며 촉촉하고 감각적인 무드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차는 웰니스 트렌드의 부상과 함께 다시 주목받는 노트. 몰튼 브라운의 ‘티 세레모니 오 드 퍼퓸’은 가볍고 싱그러운 그린티, 흙 내음이 감도는 차분하고 깊이 있는 말차 어코드에 히노키 우드와 앰버 우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크리미한 잔향으로 숲속의 고요한 휴식을 선사한다.

다재다능한 시트러스

그저 밝고 화사한 ‘톱 노트’에 불과했던 시트러스가 이렇게나 다채로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니! 상쾌한 톱 노트를 넘어 향의 중심 구조로 확장되고 있는 시트러스 향조가 전에 보지 못한 조합으로 새로움을 경신하고 있다. 과거 시트러스가 레몬이나 베르가모트처럼 빠르게 휘발되는 향이 주류였다면, 최근엔 수분감 있는 과일과 결합해 물기 있는 상쾌함을 전달하거나, 바질이나 차와 함께 어우러져 보태니컬한 노트로 신선함을 더하기도 한다. 또 바닐라나 샌들우드에 더해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질감으로도 선보이는 향수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일부 향수는 코코넛이나 솔트 노트와 결합한 ‘솔라 프레이그런스(Solar Fragrance)’로 햇빛과 휴양지 무드를 선사하기도 하는데, 여행이나 휴식 같은 감정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

달콤 쌉싸름한 대조의 매혹

때론 명상적이고 때론 야성적으로 꿈틀거리는, 땅과 흙, 나무와 잎의 향조들.

1. CREED 와일드 베티베 정제된 가든의 우아함과 자연의 야생적인 에너지가 조화를 이루는 향. 상큼하고 선명한 컬러감의 티머 베리, 우아하고 관능적인 로즈 센티폴리아, 바람에 흔들리는 듯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베티베르 에센스가 풍성한 하모니를 완성한다. 100ml, 56만원.
2. EDITIONS DE PARFUMS FREDERIC MALLE 콩트르 주르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그 찰나, 따뜻하고 스파이시한 에버라스팅 플라워와 거칠고 도발적인 펑크 로즈, 두 가지 상반된 노트의 대비를 샌들우드가 부드럽게 조율하며 매혹적인 무드를 남긴다. 50ml, 45만원.
3. ATELIER COLOGNE 울랑 앙피니 새로운 패키지로 리뉴얼해 선보이는 아뜰리에 코롱의 베스트셀러. 우롱티 어코드에 베르가모트와 가이악 우드가 어우러진 시트러스 머스키 향으로, 부드럽고 투명한 향기가 차분한 여운과 평온함을 선사한다. 100ml, 26만5천원.
4. L:A BRUKET 오버나투르 스웨덴 숲속, 대지가 숨 쉬듯 고요히 움직이는 순간에서 영감을 받았다. 은은한 전나무 바늘 향, 흙 내음의 파촐리, 스프루스 수액과 오크모스 이끼의 따스함이 어우러졌다. 비 갠 숲속을 거닐 때의 고요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향. 100ml, 28만9천원.

포토그래퍼
신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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