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일,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2026> 발간 행사가 베일을 벗었다.
이날은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에 상륙한 지 꼭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 세월 사이, 누군가는 별의 축배를 들었고, 누군가는 별을 잃은 채 무대를 떠났다. 별이 내려온 10년, 한국 다이닝 신이 통과한 변화의 풍경을 살폈다.

미쉐린은 한식을 어디로 이끌었나
정부 주도의 ‘관치 미식’이 뉴욕 한복판에서 비빔밥을 비비며 건수를 달성하던 ‘한식 세계화 1.0’의 투박한 시절을 지나, 이제는 셰프의 철학이 곧 장르가 되는 ‘2.0’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이 두 시대를 잇는 전환점에 2016년 미쉐린 가이드의 서울 상륙이 있었다. 이 프랑스산 평가 장치는 등장과 동시에 숱한 잡음을 몰고 왔다. 미쉐린의 서울 입성을 두고 정부의 전폭적인 유치 노력이 결정적 동력이었다는 점은 미식계의 지배적인 시작이다. 공정성을 사수해야 할 가이드북에 태생적인 얼룩이 묻은 셈이었으나,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이 작은 빨간 책이 한식 생태계를 확장하는 강력한 엔진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과거 한식 시장은 몇몇 중견 외식기업 중심으로 움직이는 ‘장사’의 영역이었어요. 이걸 셰프의 철학이 담긴 다이닝으로 인식하는 문화적 합의는 없었죠. 그런데 200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중반 무렵 다양한 시도가 있었어요. 이때는 ‘모던 한식’이라 부르는 곳들이 산발적으로 고개를 들던 모색기였죠. 이 과도기적 혼돈에 미쉐린 코리아의 등판은 강력한 기폭제가 되었죠.” 한식 커뮤니티 ‘난로회’의 구성원이자 아워홈 차승희 상무의 말이다.
미쉐린 코리아의 상륙은 폭발적인 촉매였다. 그러나 그 폭발이 남긴 흔적 속에서 젊은 셰프들은 또 다른 질문과 씨름해야 했다. 당시 모던 한식의 최전선에 서 있던 주역이자 첫해 별을 받은 ‘밍글스’의 강민구를 비롯한 주요 셰프들 다수는 해외 유수의 키친에서 수련을 거친 인물들이었다. “당시 서구식 다이닝 문법에 익숙한 셰프들의 요리를 두고 ‘저것이 과연 한식인가’라는 물음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어요. 실제로 초기 이러한 요리는 ‘한식’이라기보다 ‘제철 재료로 풀어낸 프렌치 혹은 이탈리안’ 같다는 과도기적 설명이 더 자연스러웠죠. 고추장이나 된장을 서양식 소스 구조에 접목하거나, 코스 중 일부에 한국적 터치를 버무리는 방식이 많았거든요.” F&B 브랜딩 디렉터 김혜준의 설명이다. 하지만 미쉐린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선명한 좌표로 작동하기 시작하자, 셰프들의 질문은 비로소 본질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 땅에서 나는 재료로 지금 계절의 요리를 한다면, 그것은 결국 무엇의 언어를 말해야 하는가’라는 치열한 자문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시점부터 모던 한식은 단순히 서구의 틀에 한식을 맞추던 단계를 넘어 한식의 정체성을 향한 탐구를 이어가기 시작한다. 강민구, 신창호(‘주옥’), 권우중(‘권숙수’), 안성재(‘모수 서울’) 같은 셰프들이 주말마다 농장으로 향하고,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이나 ‘한식의 대모’ 조희숙 셰프 같은 전통의 거목을 찾아가 무릎을 맞댄 배경도 여기에 있다. 장(醬)의 발효 원리를 파고들고, 반상의 구조와 지역 식문화의 맥락을 동시대적으로 복원해내는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의식 있는 셰프들은 점점 컨템퍼러리를 지향했죠. 컨템퍼러리의 본질은 결국 이 시대를 위한 요리인 셈이잖아요. 과거에는 해외에서 어렵게 공수한 모렐 버섯이나 트러플을 써야만 멋진 음식이라 여겼다면, 이제는 팜투테이블을 억지로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식재료의 본질을 찾아내고 그에 맞는 가장 적확한 조리법을 구현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되었죠. 그러다 보니 한식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차승희 상무의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식이 가장 크게 달라진 지점은 맛의 문법일지도 모른다. 이제 발효는 더 이상 박제된 전통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 서양식 소스에 고추장이나 된장을 점을 찍듯 가미하던 1차원적 결합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해외 셰프들까지 한식의 장을 ‘마더 소스’라 부르며 열광하듯, 장은 이제 한식을 지탱하는 핵심 자산이 됐다. 나아가 농부와 협업해 사라진 품종을 복원하고, 지역 식재료의 원형을 찾아 필드 트립을 떠나며, 전통주 페어링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움직임 역시 일상의 풍경이 됐다. 미쉐린이라는 필터를 거쳐 한식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셰프들은 비로소 ‘무엇이 한국적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스스로 써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화려한 별점 뒤에 가려진 한계도 여전하다. “아직도 홍콩이나 일본에서 먹는 2스타와 한국의 2스타가 왜 다르냐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거기에는 식재료의 한계가 절대적이죠. 생산자의 층위가 얇고, 다양한 식재료를 수입할 수 있는 판로 역시 경직되어 있거든요. 농업 기반의 전폭적인 지원과 통관 시스템의 유연함이 절실한 시점이에요. 나아가 현장을 지탱할 젊은 피가 마르고 있다는 점도 치명적이에요. 한식은 다른 장르보다 손이 훨씬 가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전문 교육기관은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죠. 현재 정부가 설립을 추진 중인 글로벌 한식 교육기관 ‘수라학교’가 실질적인 인재의 요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혜준 디렉터의 진단이다. 나아가 이 화려한 시상대의 폐쇄성을 꼬집는 이도 있다. “미쉐린 어워즈에서 정작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온 전통 한식이 얼마나 조명받았나 싶어요. 모두가 문제 제기하듯, 전통보다는 글로벌 문법에 충실한 모던 스타일의 타율이 압도적으로 높죠. 어찌 보면 미쉐린 시상대는 그들만의 정교한 리그인 셈이에요. 다양성이 없는 생태계가 훗날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입니다.” 셰프 A의 말이다. 일본이 스시, 덴푸라, 야키토리 등 카테고리를 세분화하며 미쉐린의 별을 다양한 식탁에 흩어놓았듯, 우리 역시 향토 음식 등 한국 고유의 정수가 깃든 요리들이 제 이름을 찾는 과정을 서둘러야 한다. 별빛이 닿지 않는 골목의 식탁까지 함께 성장할 때, 우리의 미식은 비로소 더 깊어진 풍경을 갖게 될거다.
– 전여울(<더블유> 에디터)
비밀주의와 공정성, 리스트가 남긴 질문
미쉐린 가이드가 내세우는 공정성의 제1원칙은 철저한 비밀주의다. 평가원의 정체도, 구체적인 규모도, 채점표도 베일에 싸여 있다. 하지만 비밀주의가 곧 방향성의 부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대중에게 발표된 리스트 전체를 관통하는 가이드의 철학과 메시지는 분명하게 읽혀야 한다. 10년 전, 미쉐린 가이드 서울 발간을 공표하는 기자 간담회로 돌아가보자. 당시 글로벌 디렉터 그웬달 풀레넥은 “한국 특유의 정서를 배제하고 오로지 미쉐린의 5가지 글로벌 기준으로만 평가하겠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의 리스트 궤적을 분석해보면, 과연 그 선언이 잘 지켜졌는지를 두고 물음표가 남는다.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반영하는 것과, 외부의 시선을 다분히 의식한 길을 택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첫 발간인 2017년 에디션에서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한식 편중 현상이었다. 총 24개의 스타 레스토랑 중 절반에 가까운 11곳이 한식으로 분류된 것은 개최국의 환대를 다분히 의식한 게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데, 당시 업계의 진짜 아쉬움은 숫자가 아닌 형태에 있었다. 이런 편중된 리스트에도 불구하고 한식 고유의 특수성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 특히 빕 구르망 리스트에서 불고기, 비빔밥, 만두 등 관광객의 가이드북에 등장할 법한 전형적인 메뉴 선정에 집중되며 한국의 식문화를 겉핥기식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매서운 비판에 직면했다.
미쉐린 가이드가 이러한 비판에 귀를 닫은 것은 아니다. 그 의지가 특히 명확하게 드러난 기점은 2020년 에디션. 당시 1스타 레스토랑은 신규 등재된 7곳을 포함해 총 22곳으로 늘어났는데, 한식 편중의 꼬리표를 떼어내고 프렌치, 이탈리안, 스패니시 등 장르의 다채로움을 리스트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서울 다이닝 생태계의 다양성을 반영하려 노력한 시기였다. 지난 3월 5일 발표된 2026년 에디션을 포함해 최근 2~3년의 통계를 살펴보면, 더 이상 ‘한식 VS 비한식’이라는 장르 논쟁도 이제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올해 별을 받은 총 42개 레스토랑 중 절반 이상이 컨템퍼러리나 이노베이티브다. 지난 10년간 서울의 파인 다이닝 신에서 서양식 조리법에 한국의 발효 기법이나 로컬 제철 식재료를 결합하고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기본 문법’으로 자리 잡았음을 가이드가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긴 호흡의 테이스팅 코스를 제공하는 파인 다이닝에 쏠려 있는 것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고급 파인 다이닝과 빕 구르망 사이를 채우는, 탄탄한 허리 역할을 하는 캐주얼 다이닝 생태계 역시 리스트에 더욱 다양하게 존재하길 바란다면 욕심일까. 비판을 수용하며 다변화를 이뤄낸 가이드가, 다가올 새로운 10년에는 코스 요리라는 형태적 틀마저 유연하게 허물고 서울 미식 신의 더 넓은 허리층까지 포용할 수 있을지 기대해볼 시점이다.
– 장새별(F&B콘텐츠 공방 ‘스타앤비트’ 대표)
별을 처음 안은 날
모르는 번호였다. 작업복 소매를 걷어붙인 채 다소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어디시죠?” 수화기 너머로 정중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미쉐린 코리아입니다. 혹시 모월 모일에 시간이 되시나요?” 2019년, 해방촌 꼭대기 가파른 경사로 위에 ‘소울’을 오픈하며 미쉐린 별을 따겠다는 원대한 기대를 품은 적은 없었다. 파인 다이닝과 해방촌이라는 조합은 당시만 해도 모두가 만류하던 무모한 도박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상식 케이터링 협조 요청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별과 관련이 있는지 물었으나, 철저한 비밀주의로 무장한 관계자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결국 안내장을 따라 도착한 현장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의 주인공들이 밝혀지는 언베일링 행사였다. 그곳에서 생애 첫 별을 안았다. 마침내 거친 파도를 헤치고 목적지에 닿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셰프에게 미쉐린 별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증’이자, 평생을 바쳐 나아가는 이들이 받는 가장 명예로운 트로피다. 하지만 환희는 짧았고, 별은 곧 거대한 산이 되어 눈앞에 찾아왔다. 별이 등재된 이후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미식가들이 해방촌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고, 외국인 손님의 비율은 월등히 높아졌다. 그러나 그 뜨거운 기대는 곧 날카로운 검이 되어 돌아왔다. ‘여기가 과연 별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듯한 서늘한 시선을 견뎌내는 데는 수만 번의 채찍질이 필요했다. 1스타 이후 레스토랑 외적으로도 수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럭셔리 브랜드의 케이터링이나 외부 행사는 수익 면에서 분명 매혹적인 선택지였다. 하지만 별의 광택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되는 고정 비용 역시 그에 비례해 치솟았다. 음식의 퀄리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기본, 기물의 미감을 완성도 있게 다듬으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고, 직원들의 호스피탤리티 역시 극한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오픈 키친인 ‘소울’의 특성상 직원의 걸음걸이 하나까지 교정한 적이 있다. 손님이 무언가를 요청할 때 급하게 뛰어가지 말 것. 대신 “네, 부르셨습니까?”라는 응대와 함께 여유롭게 걸어갈 것. 당신을 정성껏 서비스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품격을 보여주면서도, 공간의 격조를 높이는 디테일의 미학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별의 무게는 이토록 사소한 발걸음 하나조차 놓치지 않는 집요한 미학을 완성하게 했다.
별 하나에서 둘로, 혹은 셋으로 가기 위한 소문은 무성하다. 인스펙터(평가원)가 최소 서너 번은 방문한다거나, 마지막에는 반드시 외국인과 동반한다는 이야기, 특정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을 유심히 봐야 한다는 기묘한 속설들이 업계에 떠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미쉐린의 인스펙터들은 철저한 은폐와 익명 속에 존재하고, 그 공정성 덕에 권위를 유지한다. 사람인 이상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우리의 어떤 강점이 별을 만들었는지, 무엇이 모자라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하는지’에 매몰되어 밤잠을 설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평가의 잣대에만 마음을 쏟다 보면, 정작 눈앞의 손님과 소통하는 일은 등한시하게 된다. 트렌드에 휩쓸려 본래 가지고 있던 고유의 색채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실시간으로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SNS가 범람하고,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대중의 눈을 사로잡아도, 미쉐린은 여전히 셰프들에게 가장 준엄한 기준점이다. 하지만 그동안 깨달은 진리는 명확하다. 결국 모든 평가는 식탁 위에서 시작해 식탁 위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별점이라는 숫자와 인스펙터의 시선을 걷어내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마주 앉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평가서에 적힐 화려한 수식어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이곳을 찾은 손님이 문을 나설 때 가져갈 기억의 농도다. 그래서 매일 별의 중압감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자세로 손님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 단순한 진심이야말로 해방촌 꼭대기까지 손님을 불러 모으는 나의 진짜 ‘소울’이기에.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뵙고 싶습니다.”
– 김희은(‘소울’ 오너 셰프)

별이 만든 직업들
미쉐린 가이드의 상륙 이후 국내 다이닝 신에서 가장 선명하게 포착된 변화는 인력의 위상이다. 과거 레스토랑의 중심이 오로지 셰프 한 사람에게만 쏠려 있었다면, 홀에서 고객을 맞이하는 이들은 흔히 ‘서버’라는 평면적 호칭 속에 머무르곤 했다. 와인을 제안하는 소믈리에 역시 식사 보조자 정도로 인식된 시절이 있었으나, 지난 10년 사이 이 구조는 비약적으로 진화했다. 특히 2023년 ‘소믈리에 어워드’, 2024년 ‘서비스 어워드’ 등 미쉐린이 신설한 특별상들은 레스토랑이 결코 셰프 혼자만의 무대가 아님을 제도적으로 증명했다. 정교한 와인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수백 종의 컬렉션을 관리하며 미식의 서사를 완성하는 소믈리에의 역할은 이제 독보적인 전문 영역으로 조명받는다. 서비스 또한 단순한 응대를 넘어 고유의 스타일과 철학이 깃든 기술로 재정의되었다. 자연히 핵심 인력에 대한 처우와 연봉은 가파르게 상승했고, 전문 직군으로서의 커리어 패스도 선명해졌다. 다이닝 현장이 ‘잠시 거쳐가는 아르바이트’가 아닌, 평생을 건 ‘전문가의 무대’로 재인식된 점은 미쉐린 10년이 남긴 값진 수확이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흐름도 형성되었다. 미쉐린 스타가 커리어의 중요한 지표로 자리 잡으면서 인력의 쏠림 현상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다. 젊은 시절 몇 년의 수련이 향후 이력서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면, ‘스타 레스토랑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분명 강력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이 반복될수록 다이닝 생태계 전반의 균형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별을 따지 못하거나 승격에 실패할 경우, 스타 발표 시점 전후로 인력 이동이 발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셰프들에게 미쉐린은 단순한 명예를 넘어 팀의 동기부여와 안정성, 나아가 업장의 지속 가능성과도 직결되는 요소로 작용한다. 나아가 ‘미쉐린 스타’ 자체가 목적지가 된 시장에서는 내실보다 외형이 앞서는 기현상도 목격된다. 오랜 수련을 통해 체화해야 할 요리사의 통찰과 판단 대신, 스타 레스토랑의 문법인 정교한 플레이팅과 세련된 인테리어, 계산된 서비스 형식을 먼저 ‘복제’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미쉐린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는 개인의 욕망과 시장의 기대, 글로벌 기준이 교차하며 빚어낸 복합적인 현상이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특정 업장으로의 과도한 인재 편중이 산업 생태계의 저변을 약화시키는 흐름이다. 한국 미식이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들이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커뮤니티 전체를 지지하는 역할을 고민할 필요도 있다. 이는 의무라기보다 공동체적 책임에 가깝다. 인력양성, 협업, 지역과의 연계, 후배 세대에 대한 멘토링 등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 미쉐린 10년이 인력의 전문성을 끌어올린 시간이었다면, 다가올 10년은 그 전문성이 보다 넓고 깊은 토양 위에서 지속적으로 자라날 구조를 설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 이정윤(‘다이닝미디어아시아’ 디렉터)
3스타 빈자리가 말하는 것
모든 별들이 저마다의 땀방울을 보상받는 축하와 격려의 장이지만, 초미의 관심사는 단연 3스타의 주인공이다. 2016년 말, 처음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 에디션에서 그 영예의 자리는 ‘라연’과 ‘가온’이 차지했다. 가이드 발간 첫해에 단번에 2곳이나 최고 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은 뜨거운 환호와 동시에 적잖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전 세계 레스토랑 중 3스타의 영예를 안은 곳은 150여 곳 남짓. 이 지독한 희소성을 고려했을 때, 이제 막 파인 다이닝의 싹을 틔우던 서울에서의 결과치고는 다소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의 타임라인을 살펴보면, 미쉐린 가이드 서울은 최고 등급 부여에 있어 상당히 보수적 잣대를 유지해왔음을 알 수 있다. 가온과 라연은 이후 각각 7년과 6년 동안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화제를 위한 일회성 ‘별 뿌리기’가 아님을 증명했다. 이 견고했던 3스타 체제가 변화를 맞이한 건 2023년. 라연이 2스타로 내려가며 생긴 빈자리를 ‘모수’가 새롭게 채웠다.
이후 가온의 폐업, 모수의 이전 준비로 인한 잠정 영업 중단으로 2024년 에디션에서는 서울 내 3스타 레스토랑이 단 한 곳도 없는 공백기를 맞이했다. 무리하게 자리를 채우는 대신 ‘해당자 없음’을 택하면서 가이드는 그 신뢰성을 한층 높였다. 이후 2025년 에디션에서 ‘밍글스’가 3스타로 승격했고, 최근 발표된 2026년 에디션에서도 국내 유일의 3스타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지켰다. 2017년 1스타, 이듬해 2스타를 획득한 밍글스는 무려 7년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세간의 팬들은 아쉬움을 넘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보였지만, 강민구 셰프는 과거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인 스타 레스토랑들을 봤을 때, 우리의 자리는 여기가 맞다”라며 자평하기도 했다. 이는 셰프의 겸양일 수도 있으나, 서울의 별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3스타의 높은 문턱은 2스타 레스토랑들에게 명확한 지향점과 동기부여도 제공한다. 실제로 밍글스는 3스타를 목표로 삼은 뒤, 테이블 숫자를 줄여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손님 수를 제한하고 직원은 대거 늘려 접객 서비스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메뉴의 섬세함을 극도로 가다듬는 과정을 거쳤다. 양적 확장이 아닌 질적 성장에 집중한 것이다. 결국 미쉐린 가이드 코리아가 지난 10년간 한국 미식 신에 남긴 가장 긍정적 유산은 ‘쉬운 칭찬’이 아니었다. 전 세계 150여 곳에 불과한 좁은 문턱을 함부로 낮추지 않는 고집, 그리고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 변화를 택한 셰프들의 땀방울이 지금의 서울을 진정한 글로벌 미식 도시로 완성한 것이 아닐까.
– 장새별(F&B콘텐츠 공방 ‘스타앤비트’ 대표)
‘파인’해진 서울의 식탁
지난 10년은 한국 파인 다이닝이 단순히 외형의 정교화를 넘어 재료의 근원과 철학, 그리고 독자적인 문화적 자의식을 탐구하는 단계로 이행한 결정적 시간이었다. 미쉐린 가이드의 상륙이 우리 식탁에 남긴 가장 거대한 유산은 바로 ‘기준의 세계화’다. 서울과 뉴욕의 별이 동일한 무게를 가진다는 사실은 국내 셰프들에게 명확한 좌표를 제공했다. 세계적 기준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게 된 셰프들은 조리 테크닉의 세밀한 제어부터 코스의 흐름 설계까지, 파인 다이닝의 물리적 완성도를 국제적 수준으로 빠르게 끌어올렸다. 초기 몇 년이 글로벌 파인 다이닝의 문법을 서울이라는 도시의 맥락 안에 이식하며 ‘총체적 경험’으로서의 형식을 갖추는 과정이었다면, 이후의 성장은 표면에서 본질로 급격히 이동했다. 요리의 기술적 완결성을 넘어 식재료의 출처와 경작 방식 자체가 셰프의 철학을 증명하는 척도가 된 것이다. 셰프들은 주말마다 농장으로 향했고, 농부와 협업해 시장에 없던 특수 품종을 함께 재배하는 풍경이 일상이 됐다. 과거에는 수익이 불확실해 쉽게 시도하기 어려웠던 장기적 투자가 이제는 경쟁력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쉐린이라는 제도가 존재함으로써 이러한 연구와 실험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가치 있는 시도’로 사회적 정당성을 얻은 측면이 있다.
이러한 성장의 정점은 ‘한국 셰프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과거에는 서양식 소스에 고추장이나 된장을 가미하는 식의 단순한 결합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전통 반상의 개념, 발효의 시간성, 지역 식문화의 맥락을 동시대 언어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주류를 이룬다. 이는 마치 일본이 프렌치를 자국만의 감수성으로 재해석해 ‘일본적 프렌치’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파인 다이닝 역시 국제적 기준을 흡수하는 단계를 지나, 그 안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성숙기에 진입했다. 나아가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생산자의 고집스러운 미학을 알아보고 지지해주는 성숙한 소비 시장을 만나 비로소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다는 사실이다. 셰프가 내놓는 복잡한 메시지를 읽어내고, 코스 뒤에 숨은 철학을 기꺼이 학습하며 즐기는 소비자층이 두터워졌기에 가능해진 성장이다. 이처럼 안과 밖의 시선이 조우하며 쌓아 올린 겹겹의 층위는 이제 서울의 식탁을 지탱하는 단단한 지반이 되었다. 결국 미쉐린 가이드는 한국 미식이 세계와 대화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갖추게 한 촉매제였다. 그 언어를 바탕으로 이제 한국의 셰프들은 비로소 자신만의 깊이 있는 ‘맛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 이정윤(‘다이닝미디어아시아’ 디렉터)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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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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