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더 아커만이 재건한 톰 포드의 밤, 26 FW 톰 포드 컬렉션

명수진

TOM FORD 2026 FW 컬렉션

2026년 3월 4일 저녁 7시, 파리 방돔 광장(Place Vendôme)은 지독하게 탐미적이고 은밀한 밀실로 탈바꿈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하이더 아커만이 이끄는 세 번째 시즌, 톰 포드 26 FW 컬렉션은 하우스의 관능적인 DNA를 하이더 아커만 특유의 서정적인 퇴폐미로 치환하며 브랜드의 완전한 부활을 알렸다.

쇼장의 분위기는 압도적이었다. 미니멀한 화이트 런웨이에 한편의 누아르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모델들은 단순히 앞만 보고 걷는 워킹 대신, 서로를 훔쳐보거나 멈춰 서서 응시하는 연출을 통해 관객을 관찰자가 아닌 관음자로 전복시켰다. 인위적인 장식 없이도 모델들의 나른한 시선 교환만으로 공간은 충분히 은밀하고 관능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다. 누군가의 사적인 밤을 엿보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방돔 광장을 가득 채웠다.

컬렉션을 연 화이트 스커트 수트는 하이더 아커만이 정의하는 새로운 순수와 타락이었다. 한쪽 손에만 낀 하얀 장갑과 레드 립, 스타킹처럼 밀착된 스틸레토 하이힐은 빈틈없는 완벽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등장한 룩들은 완벽함 속에 숨겨진 방탕한 잔상을 드러냈다. 깊은 컷아웃이 가미된 크롭톱과 골반에 걸친 로우 라이즈 팬츠, 맨살 위로 비껴 매어진 가느다란 벨트는 톰 포드 전성기의 도발적인 섹슈얼리티를 하이더 아크만식 보헤미안 감성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었다.

기술적으로는 제냐 그룹의 탄탄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 파워 드레싱이 돋보였다. 80년대 무드를 투영한 핀스트라이프와 블랙, 화이트의 비정형적 도트 패턴은 단순한 프린트를 넘어 옵아트(Op Art)적인 착시를 일으키며 구조적인 강렬함을 선사했다. 날카로운 어깨 라인의 더블 브레스트 재킷과 대비되는 흐르는 듯한 하이웨이스트 팬츠, 바닥을 쓰는 롱 코트 실루엣은 하이더 아커만의 미학이 톰 포드라는 날개를 달았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증명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관능적인 컬렉션이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더 아크만은 톰 포드 우먼이 비 오는 날에도 자신의 우아함을 포기하지 않기를 원했다. 비닐 소재의 맥코트와 스커트를 비롯해 그린 컬러의 니트 셋업, 그리고 카키 유틸리티 재킷은 언제, 언디서나 스타일을 유지해야 하는 도시 여성의 필요를 정확히 관통했다. 짙은 초콜릿 브라운의 크로커다일 바이크 재킷과 풍성한 모피 코트는 하우스의 럭셔리한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마침표였다.

하이더 아커만은 창립자 톰 포드가 90년대 구찌에서 보여주었던 도발적인 에너지를 보존하면서도, 그것을 더 섬세하고 예술적으로 끌어올렸다. 한때 모호했던 브랜드의 방향성은 하이더 아크만의 손끝에서 명확해졌다. 그것은 흐트러진 긴장감 속에서 피어나는 가장 지적이고도 탐욕스러운 우아함이었다.

영상
Courtesy of TOM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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