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지난 밤의 전리품, 26 FW 디젤 컬렉션

명수진

DIESEL 2026 FW 컬렉션

디젤이 2026 FW 시즌, 밀라노 패션위크의 문을 열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글렌 마틴스는 브랜드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소환해 ‘디젤 메모라빌리아(Diesel Memorabilia)’라는 테마로 쇼를 구성했다. 전 세계 디젤 사무실과 창고에서 모은 캠페인 소품, 장난감, 심지어 음식 모형까지 약 5만여 개의 오브제가 쇼장 중앙에 산처럼 쌓였고,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설치 미술이 되었다. 22 FW 시즌 등 과거 쇼에서 사용했던 튜브나 풍선 등 인플레이터(Inflatable)를 재활용해 브랜드의 역사를 한자리에 응축한 점도 인상적이다.

디젤은 이번 시즌, 일명 ‘수치스러운 귀가길(Walk of Shame)’로 불리던 장면을 당당한 ‘영광의 행진(Walk of Fame)’으로 바꿨다. 귓가에는 아직 어젯밤의 음악이 어지럽게 맴도는데, 거울 앞에서 외모 체크를 할 시간도 없이 문을 박차고 나오는 찰나의 순간을 담았다. 로우 라이즈 데님, 크롭 톱, 벨티드 코트, 일부러 찢어놓은 듯한 드레이프 원피스까지, 익숙한 아이템들은 모두 약간 비틀린 상태로 등장했다.

옷은 하나같이 급하게 입은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됐다. 서랍 속에 곱게 개어둔 셔츠가 아니라, 바닥에 굴러다니던 옷을 그대로 주워 입은 듯한 주름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니트웨어는 겉감보다 안감이 더 큰 이중 레이어 구조를 적용해 안쪽의 원단이 겉으로 밀려 나오거나 뭉치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몸의 곡선을 묘하게 왜곡하는 입체적 실루엣이 완성됐다. 마치 거대한 오버사이즈 니트를 뜨거운 물에 삶아 수축시킨 듯한 보일드 니트(Boiled Knit) 기법으로 표면에 자연스러운 잔주름과 뒤틀림을 더하기도 했다. 거친 남성성을 상징하는 어부의 아란 니트에 섬세한 플로럴 패턴을 더해 젠더 구분을 흐릿하게 한 것도 디젤다운 포인트.

데님은 이번에도 쇼의 핵심 아이템이었다. 주름진 형태를 그대로 고정하기 위해 레진 가공을 더해, 글렌 마틴스 특유의 조각적인 실루엣을 극대화했다. 이밖에도 다채로운 소재 실험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워싱 데님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태우거나 깎아낸 부분 사이로 시스루 안감이 드러나는 데보레(Devoré) 기법이 대표적. 묵직한 데님은 이 과정을 거치며 가볍고 몽환적인 실루엣으로 재탄생했다. 번아웃 처리한 벨벳 역시 오래 입어 해진 빈티지 데님 같은 시각적 효과를 연출했다. 한편, ‘압착된 펠트(Pressed Felt)’ 시리즈는 디젤의 산업 공정에서 나온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라인으로, 단열재처럼 밀도가 높고 단단한 조각적 표면이 시선을 끌었다. 글렌 마틴스가 추구해온 ‘지속 가능한 창의성’을 반영한 아이템이었다.

액세서리는 새롭게 선보인 디원(D-One) 핸드백이 오프닝부터 쇼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디젤의 아이코닉한 아이템인 판타부츠(Pantaboots)는 팬츠와 부츠가 하나로 이어진 구조를 바탕으로 더욱 다양한 길이와 실루엣으로 변주되었고, 로퍼, 힐과 뮬, 아이웨어 등 액세서리 라인업도 한층 강화됐다.

뜨거웠던 지난 밤의 전리품 같았던 26 FW 디젤 컬렉션은 솔직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가장 동시대적인 데님 하우스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영상
Courtesy of Diesel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