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ASHA ZINKO 2026 FW 컬렉션
2월 20일 금요일 오후 8시, 런던 워털루역 아래 리크 스트리트(Leake Street)의 터널이 나타샤 진코의 실험 정신으로 다시 한번 물들었다. 2008년 뱅크시(Banksy)가 그래피티 축제를 열었던 이곳은 런던에서 유일하게 24시간 그래피티가 합법인 장소다.
런던패션위크의 나타샤 진코 컬렉션은 언제나 한 가족의 사적 아카이브를 엿보는 듯한 경험을 준다. 이번 26 FW 시즌은 그런 친밀한 감각이 한층 더 짙어졌다. 디자이너는 부모인 올렉(Oleg)과 마르가리타(Margharita)를 스튜디오의 정식 팀원으로 합류시켰다. 쇼 직전까지 이들은 스튜디오에서 플랫폼 컴뱃 부츠를 조립하고, 크로셰 디테일을 완성하며 수공예적 느낌을 담뿍 담아냈다. 어린 시절 런웨이에 함께 서는 등 브랜드의 얼굴이 되어온 아들 이반(Ivan)은 이번엔 쇼 노트를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가족적 협업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나타샤 진코의 개인사에서 흘러나온 진정성 어린 서사다. 1990년대, 구소련 붕괴 직후의 혼란스러운 우크라이나 오데사(Odessa)에서 자란 나타샤 진코에게 패션은 생존의 기술이었다. 부모 세대의 옷을 수선해 입었던 경험은 그녀의 미학적 DNA로 남았고, 이번 시즌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izness)’라는 주제를 통해 디자이너의 기억을 동시대적인 언어로 재해석한 것이다.
남성용 테일러드 팬츠가 여성용 칼럼 드레스로, 안감이 뒤집힌 재킷이 완전히 뒤섞인 가운데 새로운 실루엣으로 태어났다. 로브는 아우터로, 복서 브리프는 쇼츠로 바뀌며 혼돈 속에서 기발한 균형을 찾았다. 의외로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데님의 존재감은 희미했다. 애시드 워시 재킷과 곡선 솔기 진 몇 벌 정도만이 등장했을 뿐 쇼의 중심은 오로지 ‘기억을 재조립하는 수공예’에 맞춰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체크 셔츠는 로맨틱한 원피스로, 할머니의 밍크 코트는 오페라 코트 혹은 슬립 드레스의 트리밍으로 되살아났다. 나타샤 진코가 말했듯, 어머니가 외할머니의 코트를 고쳐 입던 세월은 ‘지속가능성’이라는 용어조차 생기기 훨씬 전의 업사이클이었다.
쓰레기와 장식, 농담과 오브제의 경계가 흥미롭게 흔들렸다. 벨트 버클에는 진코가 직접 씹은 껌을 레진으로 코팅해 단단히 고정했고, 포장용 테이프를 감은 듯한 벨트, 택배 상자를 닮은 ‘파셀 클러치(Parcel Clutch)’에는 ‘NZBUY’라는 가상의 웹사이트와 ‘BUY NZ’라는 익살스러운 슬로건이 새겨졌다. 오븐 장갑은 방한 장갑이 되었고, 비닐 쇼핑백은 뒤집혀 스커트로, 행주는 슬리브리스 탑으로 변주됐다. 하바이아나스(Havaianas)와 협업한 트롱프뢰유 플랫폼 샌들은 두 켤레의 플립플롭을 포장 테이프로 감은 독창적인 형태로 등장하며 이번 쇼의 상징적 오브제로 남았다. 나타샤 진코의 표현처럼, 이번 컬렉션은 ‘트래시하고 동시에 트렌디하다’.
피날레 모델로 나선 스파이스 걸스의 멜 B(Mel B)와 런웨이 모델로 활약한 딸 피닉스 브라운(Phoenix Brown)이 피날레 무대에 함께 올라, 그래피티 터널을 뜨거운 가족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시켰다. 한밤의 리크 스트리트는 이처럼 가족의 기억과 수공예의 온기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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