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을 입은 미니멀리즘, 26 FW 캘빈 클라인 컬렉션

명수진

CALVIN KLEIN COLLECTION 2026 FW 컬렉션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캘빈 클라인이 관능을 입었다. 26 FW 캘빈 클라인 컬렉션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베로니카 레오니의 세 번째 시즌으로, 더 쉐드(The Shed)에서 열렸다. 베로니카 레오니는 브랜드의 황금기였던 80년대의 파워 드레싱 코드를 조명하고, 여기에 탐미주의를 얹으며 미니멀리즘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덜어낸다’는 것이 과연 비움을 뜻하는가, 아니면 가장 강렬한 욕망만을 남기는 것인가?

컬렉션은 먹색의 맥시 코트에 오버사이즈 인조 모피 트라이앵글 스카프를 덧댄 룩으로 시작했다. 블랙보다 오히려 더 미니멀한 분위기를 내는 차콜을 기본으로 아이보리와 그레이지(Greige) 컬러 팔레트는 조용한 럭셔리 무드를 밀도 있게 이어갔다. 파워 슈트를 변주하는 캘빈 클라인 특유의 정교한 테일러링이 돋보였다. 80년대풍 하이 버튼 재킷과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이 매력적으로 등장했고, 칼라와 라펠을 하나로 합쳐 네크라인까지 끌어올린 재킷은 파워 슈트의 아방가르드한 진화를 보여줬다. 특히 앞에서는 포멀한 재킷처럼 보이지만, 돌아서는 순간 등의 대부분이 컷아웃 되어 재킷의 라이닝과 이너로 입은 란제리까지 모두 노출되는 해체적 재킷은 이번 캘빈 클라인 컬렉션의 반전의 미학을 집약적으로 드러냈다.

남녀 구분을 없앤 젠더리스 슈트 사이에 관능적인 드레스가 눈길을 끌었다. 드레이핑 가운과 슬립 드레스는 몸의 곡선을 따라 유연하게 흘러내리며 신체를 하나의 조각처럼 강조했다. 미니멀한 블랙 드레스는 가슴 한쪽 브라톱이 드러나는 구조로 ‘옷자락이 막 흘러내린 듯한 순간’의 관능을 강조했다. 앞은 굳건한 그레이 트위드로, 뒤는 부드러운 아이보리 실크로 만든 드레스는 마치 두 개의 자아를 지닌 캐릭터처럼 이중적 매력을 보여줬다. 한편 거대한 볼륨감의 페이크 퍼 코트와 머프는 할리우드 무성 영화 시대의 디바와 같은 글래머러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다리를 타이트하게 감싸는 삭스 부츠가 탐미주의적 분위기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번 캘빈 클라인 컬렉션의 또 하나의 포인트는 실험적 소재 사용이었다. 종잇장처럼 얇게 가공한 페이퍼 씬 가죽으로 트렌치코트와 재킷을 선보였고, 언뜻 보기에는 테리 타월 로브 같지만 정교한 레이저 커팅 가죽으로 만든 아우터는 미니멀한 디자인에 스민 장인 정신을 대변했다. 극도로 가벼운 반투명 하이테크 합성 소재도 등장했는데, 이는 채도를 살짝 낮춘 옥스블러드(Oxblood) 컬러로 시선을 끌었다. 아이코닉한 데님 소재의 세련된 변주 또한 흥미로웠다. 1976년, ‘디자이너 데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캘빈 클라인의 유산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었는데, 오랜 시간 입어서 자연스럽게 바랜 듯한 더스티한 컬러와 보다 중성적인 분위기의 그레이지 컬러가 뉴욕식 미니멀리즘의 표정을 한층 풍부하게 했다.

피날레 드레스는 보다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반짝이는 디테일을 더한 블랙 시스루 드레스와 고대 그리스, 로마의 키톤(Chiton)이나 토가(Toga)를 연상케하는 섬세한 드레이핑 기법의 드레스는 미니멀리즘의 원형을 소환했다. 컬렉션 초중반이 정확한 테일러링의 선과 각으로 이루어진 현대적 미니멀리즘이었다면, 피날레는 유기적 곡선으로 완성한 궁극의 미니멀리즘이랄까. 이러한 전환은 베로니카 레오니가 캘빈 클라인에서 세 시즌에 걸쳐 구축해 온 서사와도 맞닿는다. 25 FW 첫 시즌에 브랜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26 SS 시즌에 스타일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면, 26 FW 시즌에는 관능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만의 아우라를 구축하고 있는 것. 질 샌더, 셀린느, 몽클레르를 거치며 다져 온 실용적 럭셔리와 절제된 여성성을 캘빈 클라인이라는 캔버스 위에 펼쳐 보인, 베로니카 레오니의 존재감이 선명하게 드러난 컬렉션이었다.

영상
Courtesy of CALVIN KL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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