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아름다움이 켜켜이 쌓여, 26 SS 샤넬 오트 쿠튀르 컬렉션

명수진

CHANEL 26 SS 컬렉션

‘버섯 위의 새 / 찰나의 아름다움 / 날아가 버렸네’

익명의 일본 하이쿠에서 출발한 샤넬 2026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덧없음의 미학’을 마티유 블라지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지난해 4월 샤넬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마티유 블라지는 ‘시그니처를 지우면 샤넬에는 무엇이 남을까’라는 질문으로 자신의 오트 쿠튀르 데뷔 무대를 열었다.

샤넬의 베뉴인 그랑 팔레는 마법의 숲으로 변모했다. 연분홍으로 채색된 바닥에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의 대형 버섯과 버드나무가 설치되어 동화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런웨이는 숲속의 오솔길처럼 나선형으로 배치됐다. 자연에서 버섯은 죽은 것을 분해해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존재다. 마티유 블라지는 버섯이라는 상징을 통해 전통을 해체하고 다시 세우는 자신의 창조적 태도를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샤넬의 아이코닉한 실루엣은 한층 가볍고 투명한 물성으로 재해석됐다. 공기처럼 가벼운 실크 모슬린 소재의 오프닝 룩은 샤넬 슈트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상기시켰다. 깃털과 오간자로 완성된 룩은 하이쿠의 새처럼 자유롭게 유영했다. 모델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빛이 원단 사이로 스며드는 장면은, 고대에 양피지 위에 새 글을 덧써도 지워낸 옛 문장이 희미하게 다시 떠오르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를 연상시켰다. 이처럼 마티유 블라지는 가브리엘 샤넬의 위대한 유산 위에 동시대적 감각을 덧입히며 샤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가벼운 위트도 돋보였다. 컬렉션 곳곳에는 버섯과 새 모티프가 자수, 깃털, 비즈 등 정교한 디테일로 새겨졌다. 한편, 티셔츠와 데님처럼 보이는 룩은 실크 모슬린으로 제작해 착시 효과를 준 것으로 마티유 블라지 특유의 유희를 느끼게 했다. 색채는 절제된 가운데 깊이 있게 펼쳐졌다. 블랙과 진주빛 화이트를 중심으로, 모스 그린과 더스티 로즈 등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뮤트 파스텔 톤이 베이스를 이루었다. 여기에 새의 깃털을 연상시키는 일렉트릭 블루와 선명한 옐로우가 더해지며 컬렉션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 모든 시도는 르사주, 르마리에, 몽텍스 등을 포함한 le19M 공방의 수작업을 통해 극한의 완성도로 완성됐다. 플루(Flou) 아틀리에의 유려한 드레이핑과 딸리에(Tailleur) 아틀리에의 정교한 테일러링이 더해져, 샤넬만의 사부아 페르(Savoir-Faire)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이번 컬렉션에서 샤넬의 아이코닉 액세서리는 섬세한 방식으로 현대화됐다. 클래식 플랩 백은 투명한 실크 모슬린 소재로 재해석됐는데, 특히 가방 내부에 숨겨진 러브레터 자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는 코코 샤넬이 연인에게서 받은 편지를 숨기기 위해 플랩 백 안쪽 지퍼 포켓을 만들었다는 일화에서 출발한 디테일로, 마티유 블라지는 이를 ‘감정적인 유물’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했다. 브랜드의 역사적 서사를 착용자 개인의 친밀한 기억과 연결하는 흥미로운 시도다. 슈즈 역시 전통적인 투톤 토 캡을 기반으로 슬링백, 펌프스, 건축적 실루엣의 삭스 힐까지 폭넓게 변주됐다. 특히 버섯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초현실주의적 힐 디자인은 굽 자체를 하나의 조형 오브제로 끌어올리며, 슈즈를 단순한 액세서리 이상의 존재로 격상시켰다.

피날레에서 모델들이 숲속의 새떼처럼 잠시 모였다 흩어지는 장면은 완벽한 메타포였다. 찰나에 피어났다 사라지는 아름다움, 그 덧없음 속에 새롭게 꿈틀거리는 샤넬의 생명력이 있었다. 25세의 모델 바비타 만다바(Bhavitha Mandava)는 샤넬 오트 쿠튀르 역사상 처음으로 오프닝과 클로징을 장식한 인도 출신 모델이었으며, 이는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쇼에는 김고은, 틸다 스윈튼, 두아 리파, 니콜 키드먼, 페넬로페 크루즈, 마가렛 퀄리, 에이셉 라키 등 샤넬 앰버서더가 자리해 이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다.

“오트 쿠튀르는 샤넬의 진정한 영혼이다. 하우스의 근원이자 완전한 표현이다. 디자이너만큼이나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옷을 입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이야기를 갖게 된다.” 마티유 블라지의 말처럼 2026 SS 샤넬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찰나의 런웨이를 넘어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담아내는 ‘이야기의 캔버스’로 기능했다. 섬세한 모슬린 레이어처럼 시간 위에 켜켜이 더해질 서사들은, 샤넬 하우스를 새롭게 살아 움직이게 한다.

사진
Courtesy of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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