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ENTINO 26 SS HAUTE COUTURE 컬렉션
발렌티노 26 SS 오트 쿠튀르는 지난 2025년 11월 타계한 창립자 발렌티노 가라바니를 향한 오마주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남긴 위대한 유산을 자신의 맥시멀리즘으로 재해석했다.
이번 쇼는 파리 16구 테니스 클럽 드 파리(Tennis Club de Paris)에서 열렸다. 쇼장에는 19세기 광학 장치 카이저파노라마(Kaiserpanorama)를 연상케 하는 12개의 거대한 원형 목재 부스가 설치되어, 광활한 공간까지 간 관객들은 굳이 좁은 창(Aperture)을 통해 모델들을 훔쳐보듯 관람했다. 이는 ‘스페쿨라 문디(Specula Mundi, 세상의 거울)’라는 테마로 시선과 응시의 본질을 탐구한 것. 정보 과잉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응시’하는 법을 잃어버렸음을 지적하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쿠튀르는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숭배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발디의 <니시 도미누스 RV 608: 쿰 데데리트>의 웅장한 사운드가 첫 BGM으로 흘러나오고, 작은 구멍으로 모델을 바라보는 행위는 관음적이면서도 성스러운 의식으로 변모했다.
이탈리아 작가 파솔리니의 글에서 비롯된 ‘반딧불이(Fireflies)’ 모티프는 25 SS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발렌티노 RTW 데뷔 컬렉션에 이어 다시 한번 인용됐다. 이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오트 쿠튀르라는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창작자의 사명감을 드러냈다. 컬렉션은 20년대 플래퍼 스타일의 루스한 드레스, 40년대 테일러링 수트, 80년대 글래머 가운까지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아카이브를 전면에 드러냈다. 여기에 과장된 슬리브, 힙 라인, 트레인, 케이프에 르네상스 실루엣과 빅토리안 레이스의 요소를 과감히 더해 마치 판타지 영화나 만화의 캐릭터 같은 모습을 만들어냈다. 과거를 복원하는 오트 쿠튀르가 아닌 상상 속 귀족 서사를 창조하는 방식이랄까. BGM의 라틴어 제목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는 ‘꿈’과 ‘밤의 빛’이라는 이번 시즌 모티프와 맞닿아 쇼 전체를 관통했다.
깃털과 퍼는 코트, 드레스, 모자, 신발의 장식으로 대담하게 사용되었다. 이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반딧불이의 움직임을 시각화했다. 레이스, 자수, 비즈, 아플리케 또한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사용되었다. 이는 단순히 디테일이 아닌 구조의 일부처럼 역할하며 입체 오브제 같은 드레스를 완성했다. 그만큼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진두지휘에 따라 오트 쿠튀르 아틀리에의 노동 집약도가 전면에 드러난 시즌이었다. 컬러 팔레트는 발렌티노 레드가 컬렉션 전반에 깊이감 있게 사용되었는데, 좀 더 바랜 석류석처럼 빈티지 고혹적인 뉘앙스를 강조했다. 이는 아이보리, 블랙, 골드, 파우더 톤과 대비되어 극적인 무대 효과를 냈다.
26 SS 시즌 발렌티노 오트 쿠튀르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쿠튀르 언어로 번역한 첫 완성형 시즌이다. 그는 패션을 ‘고단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꿈과 탈출구’로 정의하며,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원하는 연약하지만 강력한 힘’이라고 공식 쇼 노트에 적었다. 발렌티노 오트 쿠튀르를 브랜드 유산이 아닌 서사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그의 야심이 반딧불이처럼 은은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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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of Valentin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