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뒤에 남은 것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과연 화제 속에서 막을 내렸다. 승부는 끝났지만, 요리는 남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을 통과 중인 다섯 셰프를 만났다.
유용욱(‘바베큐연구소장’) | 이목스모크다이닝
유용욱은 바비큐를 굽기보다 설계한다. 불과 고기를 다루는 그의 방식은 요리라기보다 실험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셰프 대신 ‘소장’이라 부른다.

출신도 배경도 제각각인 100명의 요리사가 출연한 <흑백요리사>는 어쩌면 요리 서바이벌의 외피를 쓴 캐릭터 쇼에 가깝다. 사찰 음식에 정진하는 스님부터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요리하는 아빠, 탄탄한 엘리트 코스를 밟아 별을 단 미쉐린 셰프까지. 각자의 서사는 이미 충분히 극적이다.
그런 면면 속에서도 유독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바베큐연구소장’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경연에 뛰어든 유용욱이다. 그는 말 그대로 ‘고기 수저’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경매장에서 소 파는 일을 했고, 자연스레 고기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를 따라간 이태원 미군부대 PX에선 웨버 그릴을 처음 봤고, 경기도 수원 이목리의 가족 농장에서는 주말마다 참숯 위에서 삼겹살이 익어갔다. 고기와 불은 이미 그의 일상이었다.
“어려서부터 요리가 익숙했고, 또 좋아했어요. 그런데 당시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장손에 종손이다보니 집안에선 제가 주방에 드나드는 걸 달가워하지 않으셨죠.” 유용욱은 방학이면 부모님이 외출한 틈을 타 EBS 요리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몰래 요리를 따라 했다고 회상한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는 걸 탐탁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있었잖아요. 저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건 시골집 마당에서 고기를 굽는 일이었어요. 아마 그때가 제 바비큐 인생의 시작이었을 거예요.”



부모가 그리던 이상적인 경로는 어쨌든 완주했다. 공부에 매진해 대기업에 골인했는데, 다만 그 회사가 하필 식품기업 CJ제일제당이었다. 셰프들과 미팅하고 음식 행사를 기획하는 일은 그의 일상이었다. 퇴근 후에 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말이면 가족 텃밭에 지인들을 불러 모아 바비큐 파티를 열었고, 그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SNS를 탔다. 어느새 재계 인사와 셀럽이 드나드는 바비큐 자리가 만들어졌고, 그는 회사원 신분으로 소셜 다이닝을 운영하는 기묘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2020년 무렵, 유용욱은 별안간 ‘재벌 총수와 셀럽들이 찾는 바비큐 고수’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직장인과 바비큐 전문가라는 1인 2역은 그해, 오래 몸담은 회사를 떠나며 정리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는 스스로를 셰프가 아닌 ‘소장’이라 불렀다.
“2020년 11월 남영동에 ‘유용욱바베큐연구소’를 열면서부터예요. 저는 요리 전공자도, 해외 유학파도 아닌 회사원이었잖아요. 바비큐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었죠.” 처음엔 전문성과 자신감의 부족을 가리기 위한 방패 같은 호칭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장’이라는 말이 제 다이닝을 설명하는 단어가 됐어요. <흑백요리사>를 거치면서는 더 그렇고요. 지금은 그냥,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소장’이라는 호칭이 어딘가 더 멋있지 않나요?(웃음)”
<흑백요리사> 1라운드 예선에서 유용욱이 꺼내든 카드는 그를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메뉴였다. 소갈비 바비큐. 텍사스식 비프 립을 출발점으로 삼되, 방향은 분명히 달랐다. 달짝지근한 한국식 간장 양념에 소갈비를 재우고, 장시간 저온 수비드로 질긴 결합조직을 풀어낸 뒤 참나무 연기로 훈연해 향의 층을 쌓는다. 미국식 바비큐의 문법 위에 한식의 기억을 겹쳐 올린 설계다. 원래라면 10시간 이상 걸릴 이 과정을 그는 경연에 주어진 100분 안에 압축해냈다. 시간마저 재료처럼 다뤘다.
“갈비이기도 하고, 찜 같기도, 구이 같기도 한 요리예요. 미국식 바비큐 같기도 하고요.” 그의 설명은 짧고 정확하다. 익숙한데 완전히 같지는 않은 맛, 그래서 자꾸 손이 가는 구조다. 그 기준은 뉴욕의 한식 다이닝 ‘아토보이’에서 먹은 한 접시를 기점으로 분명해졌다. 전혀 다른 문화권 속 한식이면서도, 설명 없이 한국적인 맛이 남아 있던 경험. “그때 알았어요. 다음에도 다시 먹게 하려면, 결국 나에게 익숙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걸요.” 그는 바비큐에 한국적 터치를 더해 익숙함을 남기고, 그 위로 약간의 창의적 변주를 덧댄다. 그 선택이 지금의 유용욱식 바비큐를 만들었다.


<흑백요리사>가 끝난 뒤, 유용욱은 오히려 더 바빠졌다. 직원들이 퇴근한 주방에 홀로 남아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저는 기초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타입이 아니잖아요. 톱다운 방식에 가까웠죠. 육각형에 가까운 전문 셰프들과는 출발점이 달라요.” 촬영이 끝나고 남은 건 성취감보다 결핍감이었다. 그래서 그는 규칙을 만들었다. 1년은 52주, 일주일에 하나씩. 테크닉이든 소스든 이론이든 반드시 몸으로 익힐 것.
현재 그의 업장이자 1988년에 지어진 목욕탕을 개조한 ‘이목스모크다이닝’에서도 그의 태도는 같다. 어둑한 실내, 핀 조명이 떨어지는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그는 직접 그릴을 열고 고기를 썬다. 동작은 여전히 연극적이고 설명은 길다. “열두 테이블을 다 돌다 보면 두세 시간이 금방 지나가요. 끝나면 진이 다 빠지죠.” 그럼에도 그는 이 과정을 멈추지 않는다. “저는 이걸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맛보다 경험이니까요.” 한때 물을 데우던 공간에서 이제 불을 다룬다. 그는 그 전환 자체를 경험의 일부로 본다. 유용욱이 바비큐 앞에서 끝까지 내려놓지 않는 건, 바로 그런 과정이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소장’이라 불린다.
김희은 | 소울
김희은은 한식을 전통으로 묶어두기보다 오늘의 식탁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먼저 고민한다. 해방촌 꼭대기에서 파인 다이닝을 연 선택도, 치열한 경연에 뛰어든 이유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그녀의 요리는 늘 현재형이다.

서울 해방촌에서도 가장 높은 언덕, 마을버스가 간신히 몸을 끌어올리는 꼭대기에 셰프 김희은의 레스토랑 ‘소울’이 있다. 이곳이 미식가들의 목적지가 된 건 2019년 소울이 문을 열면서부터다. 파인 다이닝과 해방촌이라는 조합은 당시로선 다소 무모해 보였다. “공사할 때만해도 ‘이런 데까지 누가 칼질하러 올까’ 싶었어요. 강남으로 옮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던 시절이었죠.” 그럼에도 김희은은 맛을 위해 이동하는 수고 자체를 중시했고, 그 선택은 오픈 4년 만인 2023년 미쉐린 1스타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지금 다이닝계에서 김희은은 드물게 분명한 위치를 점유한 셰프다. 대를 잇는 이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한식 파인 다이닝에서 중간 세대를 대표하는 존재이자, 여성 오너 셰프로 업계를 견인하고 있다. 브랜드와 미식 행사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녀의 <흑백요리사> 출연 결정은 단순한 노출이나 도전으로 설명되기 어려웠다. “제작진이 업장에 직접 찾아왔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 선뜻 답을 못 내렸죠.” 대신 돌아온 말은 섭외 멘트치고는 꽤 직설적이었다. ‘당신밖에 없다.’ 그 한마디는 이 프로그램이 김희은에게서 무엇을 보고 싶은지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지속 가능성이 미식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지금, 그녀의 고민은 식자재나 환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람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 그 현실이 늘 마음에 걸렸다고 말한다. 한식학과는 줄어들고, 한식을 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셰프는 점점 드물어지는 상황. “한식은 깊이가 필요한데, 요즘은 트렌드에 너무 빨리 흔들리죠.” 너무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낡게 여겨지고, 그래서 직업으로는 선택되지 않는 장르. 김희은이 <흑백요리사>에 선 이유는 그 지점에 닿아 있었다. 이런 길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아직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20명의 백수저 셰프 중 막내, 김희은은 그 소임을 충실히 따랐다. “방송에선 편집됐지만, 3라운드 흑백 팀전에서 정말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녔어요. 막내에 여자지만 목소리를 낼 땐 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모습이 얌체처럼 비친 건 살짝 속상해요(웃음).”
백수저의 유일한 두 여성 참가자였던 선재 스님과의 대결도 흥미롭다. 2인 1조로 요리를 완성해야 했던 4라운드 흑백 연합전에서 두 사람이 선택한 메뉴는 뜻밖에도 김밥이었다. “제 소울 푸드예요.” 김희은에게 김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미술가 집안에서 자랐기에, 요리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선택은 긴 반대와 단절을 동반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반지하에 살며 끼니를 때운 것도 김밥이었다. 그 개인적인 음식이 경연 한복판에서 요리가 됐고, 파트너는 스님이었다.
하지만 동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같은 라운드에서 탈락 후보로 지목되며 두 사람은 곧장 일대일 대결에 놓였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아쉽게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김희은은 선재 스님과 대기실을 함께 쓰며 나눈 시간을 오래 기억한다고 말한다. “자연에서 오는 것들에 감사하라는 말을 들었어요. 사실 알고 있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스님에게 직접 듣는 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요리의 기술보다 태도를 먼저 배우는 순간이었다. “촬영장을 떠나며 탈락자 명패를 맨 아래에 두고 나왔어요. 그냥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이었어요. 위에서 계속 증명하려고 하기보다, 아래에서 하나씩 다시 쌓아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희은이 <흑백요리사>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세계를 확인하고 싶다면, 답은 간단하다. 소울로 가면 된다. 한식과 양식의 줄다리기를 표방하는 코리안 컨템퍼러리 레스토랑은 많지만, 소울은 출발부터가 다르다. 김희은의 남편이자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스와니예’의 오픈 멤버였던 셰프 윤대현과 함께 운영하는 이 공간에서는 한식과 양식의 결합이 전략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탈리아식 뇨키에서 출발했지만 들기름과 무장아찌를 곁들여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착지하는 감자전, 프랑스식 파이 ‘피티비에’의 구조를 빌려 우엉을 주인공으로 삼은 요리까지, 조리법이나 테크닉은 서양에서 가져오되, 맛의 중심은 끝까지 한국에 둔다. 단순한 한식과 양식의 결합이 아니라, 또 전통의 복원이 아니라, 현대 한식의 식문화를 식탁 위에 번역하는 방식이다. 김희은은 이 접근을 ‘지금의 한식’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지금 우리가 먹고 자란 음식이 언젠가 자연스럽게 전통이 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100년, 200년 뒤엔 우리가 지금 먹는 음식도 전통이 되지 않을까요?” 그 질문이 소울의 요리를 관통한다.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남는다. 그녀에게 있어 ‘좋은 요리’란 무엇일까? 김희은은 그 답이 의외로 단순하다고 말한다. “좋은 사람이 만들고, 좋은 기분에서 만들어야, 좋은 요리가 나온다고 믿어요. 결국 음식에 이 모든 에너지가 연결되는 것 같아요.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진짜예요.”
이찬양(‘삐딱한 천재’) | 오리지널 넘버스
이찬양의 요리는 대체로 호불호부터 만든다. 그런 다음에야 맛으로 설득한다. 이번 <흑백요리사>에서도 그 순서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번 시즌 <흑백요리사>의 신스틸러를 꼽으라면, 답은 어렵지 않다. ‘삐딱한 천재’라는 별명을 단 셰프 이찬양이다. 그는 등장부터 요란했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안전한 선택을 따르는 1라운드 예선전에서 그는 제 발로 불구덩이로 굴러갔다. 이 판에서 당락이 갈리기 쉽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가 꺼내든 카드는 토끼 스테이크였다. 그것도 <별주부전>에서 출발한 발상이었다. “스테이크 하면 늘 소고기부터 떠올리잖아요. 그게 늘 아쉬웠어요.” 잘 구운 토끼 안심을 그물 모양의 돼지대망막 ‘크레핀’으로 감싸 바싹하게 구워내고, 토끼 생간을 갈아 만든 소스를 더해 내장에서 오는 풍미까지 끌어올렸다. 재료는 낯설었고, 조합은 과감했지만, 요리는 설득력을 가졌다. 그의 괴짜 기질은 화면을 뚫고 나왔고, 단숨에 이번 시즌에서 브레이크 없이 일단 가보는 강심장의 표본으로 떠올랐다. “출연 이유는 단순했어요.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요리를 한계 없이 다 해보고 싶었거든요.” 일반 손님에게는 쉽게 낼 수 없는 음식,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는 그걸 이해해줄 심사위원이 있었다. “촬영내내 진짜 신났어요.” 이찬양에게 <흑백요리사>는 경쟁의 장이기 전에, 실험이 허락된 무대였다.

게임으로 빗대자면 이번 시즌에서 ‘끝판왕’ 포스를 풍긴 참가자는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스와니예’를 이끄는 이준 셰프였다. 그런 그와, 과거 스와니예에서 수셰프로 일한 이찬양의 사제 대결은 이번 시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하나의 식재료를 두고 백수저와 흑수저가 외나무다리에서 맞붙는 2라운드 일대일 흑백 대전. 두 사람의 만남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고, 이찬양은 당시를 이렇게 떠올린다. “평생 스승인데 그때 아니면 언제 겨뤄보겠어요. 한 번이라도 이겨보고 싶었습니다(웃음). 셰프님은 굉장히 계산적이고 보수적인 스타일이에요. 저는 기본값이 ‘안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고요. 스와니예에서 근무했을 당시에도 제가 뭐만 하면 셰프님은 ‘하…’ 하고 일단 한숨부터 쉬셨어요. 그간 쌓인 설움을 한 번쯤은 풀어보고 싶었습니다(웃음).”
주제는 의령 메추리. 승부는 이찬양 쪽으로 기울었다. “메추리 가슴살 요리이되 뼈로 둥지를 만들어 접시처럼 쓰자는 생각이었어요.” 다만 그 파격이 이렇게까지 받아들여질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로테스크하다는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예전에 이준 셰프가 말린 게 이해된다. 안 말렸으면 참스승 아니다’라는 댓글도 봤어요.” 웃음이 섞였지만, 결과는 분명했다. 안대를 벗은 심사위원들이 메추리 뼈 둥지를 보자마자 내뱉은 첫 반응. “이게 뭐야, 씨.” 이찬양은 그 순간을 최고의 피드백으로 기억한다. “그 반응을 보려고 한 거였거든요. 의도가 과녁에 정확히 꽂힌거죠.” 경연 내내 손꼽히는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다.

이찬양의 요리가 단순한 장난이나 실험으로만 읽히지 않는 건, 그가 10년 넘게 다이닝 신에서 버텨온 셰프라는 사실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시작은 의외로 단순했다. 고등학생 시절, 요리학원에 다니는 친구 이야기를 듣고 “살면서 처음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후 프랑스로 훌쩍 떠나 르코르동블루에서 배웠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찬오가 이끄는 ‘마누테라스’에서 경력을 시작해 ‘스와니예’를 거쳤다. 지금은 ‘오리지널 넘버스’의 헤드 셰프로, 완성도 높은 창작 요리를 내놓는다.
이는 어쩌면 이찬양의 성향이 고스란히 찍힌 이동 경로다. 재미있다고 판단하면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출발, 요리를 예술의 언어로 보려 했던 이찬오의 태도, 그리고 파인 다이닝과 캐주얼의 중간 어디쯤에서 형식의 부담을 덜고 아이디어를 밀어붙일 수 있는 지금의 자리까지. 결국 이찬양의 요리는 막 나가는 게 아니라, 계산된 선택에 가깝다. “제가 <흑백요리사>에서 했던 것들도, 맛이 없거나 의도가 흐리면 그냥 장난이 되잖아요. 비주얼이 멈칫하게 만들어도, 결국 먹었을 때 ‘진짜 맛있다’가 나와야 해요. 그러려면 준비를 훨씬 더 치밀하게 해야 하고요.”



보통의 셰프들이 식재료에서 레시피를 끌어낸다면, 이찬양은 전혀 다른 경로로 출발한다. 이를테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론 뮤익의 해골 더미에서 요리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식이다. 식욕을 자극하기보다는, 먼저 불편하게 만드는 장면. 그는 오래전부터 그런 역설적인 계획 하나를 품고 있다. 비주얼은 노골적으로 식욕을 떨어뜨리는데, 맛 때문에 도저히 젓가락을 놓을 수 없는 음식. 이른바 ‘맛 대 식욕 감퇴’를 주제로 한 팝업 레스토랑이다. “사실 3년 전 이준 셰프님 몰래 준비했다가 한마디로 정리됐어요. ‘너 그거 하면 요리 인생 끝난다.’” 웃으며 말하지만 아이디어는 구체적이다. 뇌처럼 생긴 대구 이리를 실제 대구 머리 한가운데 올리거나, 카바텔리 면을 벌레처럼 연출한 콜드 파스타 같은 메뉴들. 혐오에 가까울 인상을 맛 하나로 뒤집어보겠다는 발상이다. 이 계획은 사람들이 조금은 관대해지는(?) 만우절이나 핼러윈 때 실행할 생각이라고 덧붙인다.
한편, 그가 자주 언급하는 레스토랑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알케미스트’다. 라스무스 뭉크가 이끄는 이곳은 요리를 미학이 아니라 질문의 도구로 다룬다. “굳이 예쁜 접시에 담으려 애쓰지 말고, 음식을 볼 땐 재료의 눈을 보라.” 그 문장을 이찬양은 꽤 오래 곱씹고 있다. 요리를 더 먹기 좋게 만드는 대신, 먹는 방식을 흔들어보는 것. 이찬양이 끝내 놓지 않으려는 건 바로 그 질문이다.
이준 | 스와니예
미쉐린 2스타 ‘스와니예’의 이준은 한국 파인 다이닝의 정답지에 가까운 셰프다. 과장도 장식도 없이, 정확한 기술과 판단으로 요리를 완성해왔다. <흑백요리사>에서 그의 존재감은 그래서 더 분명했다.



<흑백요리사>가 바꿔놓은 것은 무엇일까. 우선 ‘이븐하다’가 전국적인 유행어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명하다. 사용하는 어휘가 사고의 범위를 규정한다면, 이 프로그램이 꺼내놓은 낯선 미식 언어만큼 우리의 식탁도 한 뼘쯤 넓어졌다. 요리가 더 이상 결과물로만 소비되지 않고, 과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파인 다이닝이 왜 ‘비싸고 양 적은 음식’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지, <흑백요리사>는 셰프들의 손과 머리를 집요하게 따라가며 보여줬다. 이런 변화에 고개를 끄덕인 사람 중 하나가 이번 시즌의 백 중의 백수저, 국내에 단 아홉 곳 뿐인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스와니예’를 이끄는 이준 셰프다.
“파인 다이닝은 그동안 소수만 누리던 문화였죠. 그런데 <흑백요리사>는 사람들이 ‘조금 더 알고 싶다’고 느끼게 만든 것 같아요. 그런 장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죠. 물론 문화가 실제로 확장됐는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요.” 요리사 커리어에 정석 코스가 있다면, 이준은 그 경로를 거의 오차 없이 밟아온 인물이다. 경희대 조리과를 졸업하고 미국 CIA에서 수학한 뒤, 셰프들의 셰프로 불리는 토마스 켈러가 이끄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퍼 세’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0년대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당시만 해도 낯설던 영역에 과감히 깃발을 꽂기도 했다. 국내에서 팝업 레스토랑 시스템을 먼저 시도했고, 동시에 생면 파스타가 거의 소개되지 않던 환경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선보였다. 2013년에는 한식 파인 다이닝 ‘스와니예’를 열었다. 지금의 다이닝 신을 떠올리면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로선 꽤 앞선 선택들이었다. 이쯤 되면 가만히 뒷짐 지고 있어도 박수받을만한 경력이다.
“출연을 두고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잘해도 본전, 못하면 욕먹는 자리잖아요. 그런데 정형화된 미쉐린 셰프의 이미지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어요. 좀 더 편안하고, 가까운 모습으로요.” 그가 스와니예뿐 아니라 ‘도우룸’, ‘루드베키아’ 같은 캐주얼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파인 다이닝을 중심에 두되, 그것만으로 자신을 한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흑백요리사>에 선 선택 역시 같은 연장선에 있다. 의령 메추리를 두고 ‘삐딱한 천재’와 맞붙은 2라운드 일대일 흑백 대전에서 이준은 비교적 이른 시점에 무대를 내려왔다. 결과는 탈락. 하지만 그는 담담했다. “주변에서들 그러잖아요. 제 역할은 적당한 타이밍에 내려오는 거라고. 그래야 그림이 산다고요(웃음).”
짧았지만 밀도는 높았던 <흑백요리사>의 경험은 이준에게 일종의 ‘가능성’을 남겼다. “예전엔 메추리가 비선호 재료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식당에서 메추리를 드신 분들이 ‘방송에 나왔던 그 요리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그리고 꼭 이렇게 말해요. 생각보다 맛있네, 이상하게 입에 맞네.” 그는 그 반응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맛이 바뀐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기준이 바뀌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지식 레이어가 확실히 넓어졌어요. 그러면 셰프가 할 일도 단순해지죠. 방송에서 그랬던 것처럼 요리에 담긴 디테일을 더 잘 전달하면 되니까요.”
이번 시즌은 유독 언더독의 업셋 서사보다, 쌓아온 연륜만큼이나 겸손하고 단단한 백수저가 더 주목받은 시즌이었다. ‘계속 삐딱하게 가되 결승까지는 직선으로 제대로 갔으면 좋겠어.’ 이준이 그의 제자 ‘삐딱한 천재’와의 대결에서 패한 뒤 남긴 이 한마디 역시 경쟁자이기 전에 선배로서의 태도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어린 셰프들이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시작했을 때보다 지금 다이닝 신은 더 어려워졌거든요. 셰프로 성장하는 데 장애물도 많고요. 그러다보니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늘었죠. 저는 분명히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계속 요리하게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요리계의 ‘스티브 잡스’. 이준에게 붙은 이 별명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온 도전적인 시도와 그만의 완벽주의가 동시에 만들어낸 결과다. 그 성향은 스와니예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감지된다. 무균실에 가까운 오픈 키친, 정제된 동선, 불필요한 제스처를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 이런 절제된 공간에서 이준은 ‘현대 서울 음식’을 선보인다. 시그너처 메뉴로 통하는 ‘서래 달팽이’는 그 방향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골뱅이무침과 달걀찜이라는 익숙한 기억을 프렌치 퀴진의 구조로 재배치한 이 요리는, 낯선 형식 안에서 오히려 한국성과 서울성을 또렷하게 끌어올린다.
“저는 ‘한식을 현대화했다’는 표현을 별로 쓰고 싶지 않아요. 한국의 식문화를 지금 우리가 쓸 수 있는 모든 도구와 조리법으로 풀어낸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죠. 서울 음식의 뿌리는 한양 음식이에요. 사람과 물자가 계속 몰리면서, 여기서 자연스럽게 복잡한 일이 벌어졌어요. 저는 그게 곧 ‘컨템퍼러리’라고 생각해요. 또 서울의 특산품은 결국 ‘사람’이고요. 지금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먹고, 움직이고, 살아온 방식. 그게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현대 서울 음식’인 것 같아요.” 미쉐린의 별과 완벽주의적 설계로 상징되는 셰프지만, 이준이 말하는 좋은 음식의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것은 완성도나 기술의 총합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에 닿는 지점이다. “음식이 아직 미술이 되지 못한 이유는 먹으면 사라지고, 다시 와도 완전히 같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음식에 이야기와 공감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더 오래 기억되거든요.” 그는 덧붙인다. “저는 사람들에게 읽을거리를 던지는 요리사로 기억되고 싶어요.”
김시현(‘아기 맹수’)
아직 세상에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지만 맹수 같은 또렷함을 가진 요리사라 하여, 이른바 ‘아기 맹수’. 김시현은 치열한 경연 한복판에서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시라’는 뜻의 ‘박주산채’ 요리를 냈다. 그 말처럼, 그녀의 한식은 소란 없이 깊다.

‘앙!’ <흑백요리사> 초반, 유난히 빠르게 이름이 퍼져나간 얼굴이 있다. ‘아기 맹수’라 불린 셰프 김시현이다. 양손을 번쩍 들고 내뱉은 짧은 외침은 방송이 공개되자마자 화면을 탈출해 SNS 피드를 점령했다. 80인의 흑수저가 저마다의 필살기를 꺼내는 예선전. 도마 위에서는 큼직한 고기가 거침없이 썰리고, 팬 위에서는 플랑베 불꽃이 요란하게 솟구치던 그때, 김시현은 한쪽에서 나물을 만지고 있었다. 소란의 중심이 아니라, 소란의 바깥에서 말이다. 그가 내놓은 요리는 ‘박주산채’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시라는 뜻의 한국적 정서가 담긴 사자성어를 그대로 메뉴명으로 삼아, 다섯 가지 나물을 전면에 내세운 접시였다. 반찬의 자리로 밀려났던 나물이 이날만큼은 주인공이었다.
2000년생의 젊은 셰프가 예선에서 나물을 택했다는 사실은 이 장면을 더욱 낯설게 만든다. 나물은 누구에게나 기억이 앞서는 음식이다. 부모가 해주던 맛이 기준이 되고, 계절에 묶이며, 공을 들여도 성과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어려운 재료다. “예선에서는 제일 자신 있는 요리를 내잖아요. 저는 나물을 정말 좋아해요. 자주 먹다 보니, 그 성질을 정말 잘 알고 있고요.”


김시현에게 요리는 누가 시켜서 시작한 일이 아니다. 중학생 때부터 김장철이면 자연스럽게 부엌에 붙어 있었다. “시험 기간이어도 김장한다고 하면 바로 집으로 뛰어 갔어요(웃음).” 배추를 절이고 속을 무치던 시간이, 이상하게도 가장 즐거웠다.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조리고 입시설명회에서 본 풍경은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수백 명이 조리복과 조리모를 갖춰 입고 일사불란하게 서 있던 장면. 방 안에서 혼자 요리하던 시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그때 생각했어요. 아, 나 여기 있어야겠다.” 그날 이후 선택지는 빠르게 정리됐다. 조리고에 진학해 양식, 중식, 일식을 두루 배웠지만 손은 늘 한식으로 돌아왔다. 기능경기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어진 재료를 보고 누가 봐도 양식이 나와야 할 상황. 그런데 결과는 늘 엉뚱했다. “어떻게 요리를 시작하든 끝은 항상 한식이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아, 나는 한식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식은 모두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세계다. 집에서 먹던 맛이 기준이 되고, 조금만 달라도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다’가 되기 쉽다. 그래서 젊은 셰프들이 한식을 쉽게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는 잘 안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것도 ‘여기 한식 하는 젊은이 있습니다!’라고 공표하는 느낌에 가까웠어요. 한식의 대가 끊기고 있다는 느낌이었거든요. 현장에서 백수저 셰프님들께서 정말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이제 네가 다음 세대다’, ‘한번 잘 날아봐라’라고 하시는데 책임감이 생기니까, 오히려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더 공부 중이에요”.


어쩌면 ‘박주산채’는 김시현의 요리가 어디서 출발하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접시다. 나물과 해산물을 한데 묶는 방식부터 그렇다. 어린 방풍에 암꽃게 알을 더하고, 숯에 살짝 그슬린 냉이에 오징어를 곁들여 합자장으로 무친 구성은 얼핏 실험처럼 보이지만, 김시현에게는 오히려 몸에 밴 풍경에 가깝다. 통영에서 배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스물두 살 겨울에 처음 통영에 갔어요. 그때 완전히 반했죠. 저는 여행 가면 꼭 백반집이나 기사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통영 음식은 딱 먹자마자 알겠더라고요. 집집마다 액젓을 담가 먹고, 바다 자체가 이미 간을 하고 있으니 참기름이나 액젓 정도만 더해 감칠맛을 살려요.”
화려함 대신 재료를 믿는 조리법, 그 방식이 박주산채의 바탕이 됐다. 한편 박주산채의 중심을 잡고 있는 건 끝내 나물이었다. 김시현에게 나물은 가장 한국적인 식재료에 가깝다. “비름, 냉이, 세발나물 같은 건 외국에선 대체가 안 돼요. 계절이 지나면 사라지고, 같은 이름이어도 산지에 따라 향부터 다르죠.” 그래서 그는 나물을 ‘한정판’에 비유한다. 박주산채는 그 한정판들을 한 접시에 모은 결과다. 기술을 드러내기보다는 태도를 말하는 접시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시라는 말, 저는 그게 한식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백반’이라는 단어 역시 만든 사람은 몸을 낮추고 먹는 이를 먼저 세우는 의미잖아요. 저는 그 정서가 한식의 아이덴티티라고 봐요. 제 요리에도 결국 그 마음을 담고 싶고요.


“씨앗이 다른 친구예요.” <흑백요리사>에서 김시현의 스승이기도 했던 셰프 김희은의 이 한마디는 꽤 정확한 진단이다. 같은 한식을 다루더라도, 출발점이 다르면 자라는 방향도 달라진다. ‘권숙수’, ‘비채나’, ‘솔밤’ 등 미쉐린 별의 계보를 두루 거친 김시현은 지금도 여전히 파인 다이닝의 언어로 한식을 말하지만, 그 고민의 초점은 점점 ‘사람’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각을 세운 코스와 격식을 앞세운 한 끼가 아니라, 한식이 원래 지녔던 정서를 어떻게 지금의 식탁 위로 되돌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다.
“한식의 고급화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쓰였지만, 사실 제일 어려운 게 그 중간을 찾는 것 같아요.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음식. 특별한 날, 괜히 마음을 가다듬고 먹고 싶어지는 정성스러운 한식을 선보이고 싶어요.” 그가 특히 아쉬워하는 건 상차림 문화의 소멸이다. 여러 접시가 한꺼번에 놓이고, 손이 여기저기 오가며 자연스럽게 식탁의 대화가 만들어지던 장면들. 그래서 그는 언젠가 열다섯 코스를 네 코스로 압축한 상차림 코스를 꿈꾼다. 공예가들과 함께 기물을 만들고, 음식을 담는 방식부터 다시 생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진이 되고, 기록이 되고, 그렇게 다시 살아나는 식문화. “지금은 일하던 레스토랑을 떠나, 저만의 무대가 없잖아요. 언젠가 정성을 들인, 다정한 상차림 코스를 꼭 현실화하고 싶어요. 정말 재미있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신기사
- 포토그래퍼
- 하태민
- 스타일리스트
- 김성덕
- 헤어
- 구민정, 본비
- 메이크업
- 여경
- 어시스턴트
- 박예니, 황수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