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심각할 필요는 없어요, 26 FW 자크뮈스 컬렉션

명수진

JACQUEMUS 2026 FW 컬렉션

20년 SS 시즌, 자크뮈스가 프로방스 라벤더 밭에서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 순간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든다’는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의 말처럼, 그에게 런웨이는 하나의 연극 무대에 가깝다. 장소적 특징과 스타일, 음악까지 조화롭게 엮인 컬렉션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든다. 자크뮈스 26 FW 컬렉션은 다시 한번 그의 극적인 연출 감각을 드러낸 시즌이었다.

26 FW 자크뮈스 컬렉션 초대장에는 빗과 함께 파티 헤어스타일 연출법이 적힌 안내 카드가 동봉되어 있었다. 장소는 파리 마레 지구에 위치한 피카소 미술관(Musée national Picasso-Paris). 자크뮈스는 신예 디자이너였던 18년 SS 시즌, 디자이너로서는 처음 컬렉션을 선보였던 이 장소로 다시 한번 사람들을 초대했다. 테마는 야자수를 뜻하는 ‘르 팔미에(Le Palmier)’. 디자이너의 쌍둥이 남매가 머리를 묶었을 때 야자수처럼 솟아오른 모습을 보고 영감이 시작됐다는 설명은 너무나 사랑스럽다.

자크뮈스는 보석 디자이너이자 파블로 피카소의 딸, 그리고 80년대 사교계의 아이콘이었던 팔로마 피카소(Paloma Picasso)의 스타일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여기에 이사벨 아자니(Isabelle Adjani) 등이 출연한 80년대 프랑스 영화의 관능적인 분위기를 더해, 파티 전후의 긴장감과 나른함을 런웨이에 펼쳐냈다. 컬렉션은 남성복과 여성복이 섞인 코-에드(co-ed) 형식으로 진행됐다. 모델들은 테마에 맞춰 야자수처럼 솟은 사과 머리를 하고 등장했다. 힘을 뺀 헤어스타일과 달리 실루엣은 고전적인 아워글라스 형태였다. 바스크 지방 전통 의상에서 유래한 베이스크(Basque) 재킷과 나팔 형태로 퍼지는 미디 스커트, 여기에 넓은 챙의 모자가 더해지며 ‘고전 디올’을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남성복은 클래식한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위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턱시도에 복서 브리프처럼 보이는 쇼츠를 믹스 매치하거나, 알록달록한 컨페티(Confetti) 같은 멀티 컬러 도트를 블루종과 커머밴드 등에 장식 요소로 활용했다. 바람에 나부끼듯 어깨 뒤로 넘긴 넥타이, 고깔모자와 폼폼 장식, 키스 마크가 찍힌 행커치프 디테일의 백, 복슬복슬한 양 모양 백 등 액세서리 역시 쇼의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강화했다. 컬러는 오트밀 베이지, 블랙, 그레이, 화이트를 바탕으로, 80년대 컬러 Tv에서 튀어나온 듯한 스칼렛 레드, 버터 옐로, 일렉트릭 블루, 코랄 핑크 등 인공적인 원색 포인트로 구성됐다.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건축 양식을 지닌 피카소 미술관 공간은 자크뮈스 특유의 위트와 대비를 이루며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었다.

컬렉션 곳곳에는 자크뮈스 특유의 사랑 넘치는 헌사가 가득했다. 80년대 프랑스 패션계에서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예술적 위트를 결합했던 디자이너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Jean-Charles de Castelbajac)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반복 등장했다. 원색 컬러와 초현실적인 액세서리 조합은 그의 철학을 자크뮈스식으로 다시 풀어낸 방식이었다. 한편 자크뮈스는 쇼 노트를 통해 이번 시즌 에르메스에서 마지막 컬렉션을 여는 아티스틱 디렉터 베로니크 니샤니안(Véronique Nichanian)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컬렉션에 등장한 승마복 모티프는 그녀의 마지막 에르메스 시즌을 향한 오마주였다.

디자이너는 이번 시즌 컬렉션을 구상하는 내내 무드 보드에 헬무트 뉴턴(Helmut Newton)의 흑백 사진 한 장을 붙여두었다고 한다. 팔로마 피카소가 드롭 스트랩 블랙 드레스를 입고 긴 유리잔으로 상반신을 가린 채 서 있는 이미지다. 이 장면은 피날레에서 직접적으로 재현됐다. 밤새 파티를 즐긴 뒤 남은 여운과 느슨해진 애티튜트까지, 시즌 무드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장면이었다. ‘패션은 너무 심각할 필요가 없으며, 즐겁고 해방감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디자이너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요약하는 피날레였다.

영상
Courtesy of JACQUE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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