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윤과 로몬, 어느 멋진 날에

권은경, 이예진, 최진우

굳이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은 구미호와 자기애 넘치는 남자가 있다

팽팽하고 만만치 않은 두 존재가 만들어가는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의 김혜윤과 로몬이 여기 특별한 서사를 선사한다.

김혜윤이 입은 비즈 장식 톱은 드리스 반 노튼, 코트는 돌체앤가바나 제품. 로몬이 입은 화이트 셔츠와 코트는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

LOMON

<W Korea> 어느 인터뷰에선가 사주 오행에 ‘금’이 없다고 말한 걸 기억합니다(웃음). 저는 ‘금’이 좀 있는 사람이어서요.
로몬 와, 정말요? 저는 ‘금’이 없고 ‘목’은 많대요. 친한 동생이 사주를 공부해서 제 것을 좀 봐 줬는데, 그 친구 말로는 제가 ‘열매 없는 나무’라고 해요.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금’이 없어서 열매가 안 나온대요. 그 동생은 저와 반대로 ‘목’이 별로 없어요. 그래선지 마음도 서로 잘 맞고, 동생인데도 제가 기대곤 해요.

신년을 맞아 정답게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외국 팬들이 보면 무슨 얘긴가 하겠어요. 요즘 대체로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시즌 2 촬영이 거의 막바지이고, 또 다른 작품도 촬영에 들어갔어요. 이렇게 SBS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을 위한 화보 촬영과 홍보 활동도 열심히 하고, 사이사이 계속 공부도 해야 하니 하루가 금방 가요.

어떤 공부를 하죠?
아, 대본 보면서 하는 공부요. 그리고 독서도 좀 하고요.

로몬은 어떤 책을 읽나요?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을 재밌게 읽었어요. 작년에 본 자서전들도 떠오르네요. 일론 머스크와 젠슨 황의 자서전을 봤어요. 책들이 대체로 두껍더라고요(웃음).

얻은 게 좀 있어요?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어떤 마인드를 가졌을까’ 싶어 봤는데요. 그런 훌륭한 분들의 공통점이 있긴 있는 거 같아요. 효율적으로 산다는 걸 알았죠. 제가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면 ‘쉼’을 얻기가 어렵거든요. 순수하게 즐긴다기보다는 자꾸 공부하듯이 보게 되더라고요. 책은 현장에서 대기 중이나 차로 이동할 때 보기 편해요. 그렇게 틈날 때 자기라도 하면 밤에 또 잠이 안 와서, 그냥 책을 읽든지 해요.

코트는 김서룡 옴므 제품.

로몬 씨가 2022년 <지금 우리 학교는>을 통해 해외에도 널리 알려졌는데, 데뷔한 지는 벌써 10년쯤 되셨죠. 저는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 계획>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생각보다 안 하셨어요. 이번 작품으로 드디어 본격적인 로코를 해본다는 마음이 있었을 듯합니다.
맞아요. ‘드디어 도전할 순간이 왔구나’ 했죠. 저는 대본을 볼 때 재미를 가장 중요시하거든요. 재미라는 게 장르마다 성격이 다르잖아요. 로코는 즐기면서 재밌게 볼 수 있는 장르이지만, 그만큼 배우 입장에선 어려운 도전이에요. 감각도 살아 있어야 하고, 케미스트리도 중요하고, 여러모로요. 티격태격하는 케미를 살리자니 내가 어떻게 연기해야 상대방이 더 자극 받을 수 있을까, ‘은호’라는 캐릭터를, 혜윤 누나를 어떻게 하면 입체적으로 받쳐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서로를 받쳐주고자 할 때 케미스트리가 살아날 수 있다는 현명한 생각을 하셨나봐요. 그런 궁리를 하면서 재미난 순간이 나오기도 하죠.
인간이 된 은호를 두고 ‘이제 넌 김옥순이야’ 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냥 그 정도로 끝내기가 너무 아쉬운 거예요. 제가 중간중간 ‘옥순아!’ 하면서 놀리면 좋겠더라고요(웃음). 혜윤 누나와도 너무 잘 어울리는, 귀엽고 러블리한 순간이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가님께 부탁드리고 추가한 장면이 우리 둘이서 ‘옥순아’, ‘나옥순이 아니야!’ 하는 장면이에요. 그 모습이 예고편에도 쓰여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김혜윤 씨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중식당에서 처음 만났는데요. 아기자기하고 밝은 느낌이면서, 한편으로는 짐작했던 것보다 많이 차분했어요. 보호 본능을 일으킨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고요. 사실 우리가 여러 관계로 연결되어 있어서 누나에 대한 얘기를 자주 들었거든요. 예전에 같은 매니저와 일했고, 연기 선생님, 다니는 숍의 선생님까지 같아요. 착하고 성실하고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말을 들었죠. 이미 내적 친밀감이 있어서, 드디어 만났을 때도 오래 봐온 사이처럼 어색함이 없었어요.

실제로 호흡을 맞추면서는요?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나 이렇게 준비해봤는데 어때?’, ‘여기서 이렇게 해보면 어때?’ 하는 제안을 서로 많이 했어요. 누나는 생각보다도 더 단단한 사람 같았어요. 에너지도 좋고, 열려 있고. 대본에 나와 있는 것과 달리 실제로 연기하면 잘 풀리지 않는 지점이 있거든요. 그런 건 현장에서 바로 풀어가야 하는데, 누나가 확실히 감각이 살아 있다고 느꼈어요. 든든했습니다.

‘강시열’을 연기하면서 스스로도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을까요?
시열이는 텐션이 높다고 해야 하나, 좀 방방 뛰고 통통 튀는 면이 있어요. 그런 매력을 이번에 처음 표현해본 거 같아요. 코믹하고 망가지는 모습도 꽤 보여주는데, 제가 실은 망가지는 걸 좋아합니다(웃음). 작품을 할 때면 그 캐릭터의 텐션에 저를 맞추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래서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제 생각도 성격도 조금은 바뀌는 편이에요. 시열이로 사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좀 더 밝게 지낸 듯해요.

그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죠. “나는 내가 나인 게 너무 자랑스러워.”
자기애 과잉이라고 할수 있죠(웃음). 저는 그런 자기애와 자신감이란 실력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시열이는 그만큼 피나는 노력으로 실력을 쌓고 쟁취했기 때문에 자기애가 ‘뿜뿜’일 거예요. 시열이가 축구 선수인데, 그냥 선수가 아니라 글로벌 스타거든요. 제가 사실 구기 종목을 썩 안 좋아해요. 우선 공과 친해지는 것부터 하려니 축구 선생님을 주 5회씩 만나서 배웠죠. 축구 팬들을 생각하면서 강시열 정도의 선수에 맞게 예의를 갖추려니 그렇게 열심히 해야 했어요.

페이턴트 가죽 소재의 트렌치코트는 끌로에 제품.

강시열과 은호는 ‘혐관’으로 시작해 점점 끌리는 사이가 되죠. 로몬씨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로맨스는 어떤 모습, 어떤 형태인가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의리 있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는 서로 좋은 점에 끌리기 마련이지만, 지내다 보면 점점 단점도 알게 되잖아요. 상대방의 그런 면까지 받아들이는 게 사랑아닐까 해요. 키워드로 치자면 의리, 희생, 책임같은 것들요.

어려워도 처음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핵심일 때가 있는데, ‘의리’를 꼽으시네요. 의리, 희생, 책임은 결국 한 맥락의 가치들이죠.
이상적이라고 하면 완벽한 걸 말할 텐데, 저는 이런 게 떠오르거든요. 계산적이지 않고 순수한 것. 진정한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한 거 같아요. 다칠 용기, 손해 볼 용기도 있어야 해요.

로몬 씨도 로몬이어서 자랑스러운 경험이 있나요?
그저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거죠. 저는 저로부터 어떤 만족감을 얻는다기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좀 더 만족감을 얻는 사람이에요.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뿌듯해져요. 부모님에게 좋은 아들, 누나에게 좋은 동생, 친구들에겐 좋은 친구… 그런 역할을 해내는 거 같을 때 좀 만족해요.

엄마에게 애교도 부리는 아들인가요?
저, 완전 애교쟁이죠(웃음). 저에겐 사랑이 가득합니다. 여행도 가족과 잘 다니는데, 최근의 가장 마지막 여행은 엄마와 둘이서 다녀왔어요. 일본 미야자키로. 제가 서핑을 배웠는데, 너무 재밌어서 엄마도 입문시켜주고 싶었거든요.

엄마와 단둘이 여행 간 것도 조금 놀라운데, 엄마에게 서핑을 권했다니 더 놀라운데요? 칭찬합니다. 그런데 어머니, 괜찮으셨나요?
보드에 올라타고는 한 번에 섰어요, 한 번에. 우리 엄마 코어가 너무 좋아요. 뭐 파도만 왔다 하면 그냥…. 서핑을 하면 딱 파도에만 집중해야 해서 딴생각을 안 하게 된다는 점이 좋아요.

아가일 패턴 코트는 김서룡 옴므, 니트 팬츠는 베리, 로퍼는 아미리, 링은 크롬하츠 제품.

작품이 없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편인가요?
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에요. 작품을 마치면 일단 여행을 가고. 평소에는 루틴대로 사는 편인데, 해외에 나가야 그나마 좀 늘어지거나 쉬는 거 같거든요. 제가 파워 J입니다. 보통 아침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눈이 떠져요. 오전부터 저녁 6시 정도까지 운동, 연기 레슨, 발성 연습, 독서처럼 이것저것 저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일상으로 채워요.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다’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하는 거예요. 그 이후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그러는 거죠.

건강한 인생이네요. 로몬 씨가 은근히 취미 부자인 거 같더군요. 러닝을 하다 마라톤에 도전하고, 최근에는 기타를 치기 시작한 거 같던데, 또 새로 생긴 취미가 있나요?
있습니다. 식물을 키워요. 방울토마토를 키우고 있어요! 키우기 시작한 지 한 달 조금 넘었어요.

제가 본 20대 남성 중에 방울토마토 이야길 가장 화사한 표정으로 하네요?
이게요, 정말 정성과 애정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에요. 친한 형이 방울토마토를 키워보면 정서에 좋다고 해서 처음엔 ‘뭐 그런 걸 키우나’ 했거든요. 한번 해보려고 심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싹이 안 나더라고요. ‘아, 얘는 안 나오려나 보다’ 했죠. 어느 날 보니까 정말 요만한 싹이 나 있는 거예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어요. 뭐랄까, 생명에 대한 감사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너무 고마웠어요.

사랑이 가득하다더니, 로몬 씨는 그 사랑을 주면서 관심 기울이는 일에 소질이 있나 보군요.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거예요.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보살핌이 중요하죠.
저는 무언가를 줘야 제가 채워지는 사람 같아요. 싹이 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방울토마토 키우는 법에 대해 찾아봤죠. 식물한테 왜 그렇게 통풍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몰랐는데, 겨울에 안과 밖의 온도차나 습도차가 생기니까 알겠더라고요. 잘못하면 토양에 곰팡이가 생겨요. 그래서 방울토마토를 위한 선풍기를 하나 샀고, 전용 LED 등도 샀어요. 방울토마토가 정성에 정성을 다해야 잘 자라는 식물이래요. 왜, 식물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면 잘 자란다는 말도 있잖아요.

방울토마토 가까이 다가가서 혹시 예쁜 말도 속삭이고 그래요?
그러진 않아요(웃음). 대신 아침에 토마토 앞에서 기타 연주를 한다든지…. 밖에 나갈 땐 백색 소음이라고, 새 소리 같은 걸 몇 시간 정도 틀어놓고 나갑니다. 요즘 친구들에게 방울토마토 키우기를 전파하고 다녀요. ‘토마토 단톡방’까지 생겼어요. 얘를 키우면서 저의 ‘에겐력’이 한껏 올라갔습니다.

머지않아 토마토가 열리면, ‘금’은 없지만 사랑이 많은 로몬에게 열매 맺는 일이 생기겠네요. 사랑을 쏟은 일이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
매일매일,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요. 다다음 주엔 분갈이를 해야 해요. 예쁜 화분으로 하고 싶어서 어제도 2시간 동안 검색했어요. 저는 실행력이 좋아요. 뭘 하나 하면 제대로 하고 싶어요. 얘가 주인을 잘 만났지.

코트는 막스마라 제품.

HYEYOON Kim

<W Korea> 로몬 씨와 유튜브 촬영을 할 때 게임 용어가 등장했죠. 보는 사람은 답답하면서도 재밌고 엉뚱한 순간들이 있었어요.
김혜윤 로몬이랑 저의 공통점이 좀 있더라고요. 우리 둘 다 게임을 좋아해요. MBTI가 J라는 점도 같아요. 그리고 주변에 겹치는 지인이 많아요. 전에 같은 매니지먼트에 있었던 데다 연기 선생님, 숍 선생님도 같아서 자주 소식을 듣곤 했어요. 열정적이고 바른 친구라는 점은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죠. 이번 작품으로 만나기 전부터 저는 살짝 내적 친밀감을 갖고 있었어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말하는 양상도 같은 거 알아요? 로몬 씨도 딱 그런 흐름으로 말했거든요. 내적 친밀감이라는 단어까지 똑같이 등장하네요.
그래요? 작품을 해보니 듣던 대로 착하고 바르고 열정적인 친구더라고요. 그리고 성실했어요. 첫인상 그대로의 느낌이더라고요.

SBS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을 하면서 말로만 듣던 구미호로 살아본 경험은 어땠나요?
제가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누군가의 운명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게 재밌었어요! ‘은호’가 도력을 부리면 원하는 대로 일이 벌어지거든요. 제 손가락 움직임 한 번에 무언가 일사천리로 척척척 진행된다는 게 즐겁더라고요. 은호는 인간을 좀 하찮게 봐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구미호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잖아요. 사람의 간 아홉 개를 먹어야 인간이 될 수 있으니, 사람들을 홀리죠. 은호는 구미호로서의 삶에 너무나 만족하는 캐릭터예요. 자신을 휘황찬란하게 꾸미고, 취미 부자로 즐기면서 살아요. 연애도 한 번 안 해봤고요.

9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애의 필요성조차 못 느낀 은호가 ‘강시열’이라는 인간과 얽힙니다. 두 사람은 소위 ‘혐관’으로 시작해 변화하게 되죠. 혹시 혜윤 씨도 누군가와 처음엔 참 안 맞았다가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게 된 적이 있나요?
이걸 혐관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문득 친언니가 생각나네요. 언니랑 어릴 적에 자주 싸웠어요. 그런데 언니가 딱 스무 살이 된 후로는 거의 부딪치지 않더라고요. 다섯 살 차이가 나거든요. 제가 중학생 때 언니는 대학생이 된 거죠. 둘 다 10대일 때는 집에서 계속 붙어 있다가 언니가 성인이 되니 생활 패턴도 달라지고, 점점 얼굴 보는 시간이 줄었어요. 그러니까 저도 모르게 그리워지더라고요(웃음). 언니없는 자리에 외로움을 느꼈달까요.

‘꼬리 아홉 달린 여우’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보통은 누군가 앞에서 다르게 굴 때 감춰둔 꼬리가 살랑거리는 법인데, 그 자체로 여우인 은호의 꼬리는 강시열을 만나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실제로 연애할 때의 김혜윤은 어떤 모드로 변하죠?
평상시 제가 좀 무뚝뚝한 편이거든요. 연애할 때도 그런 편인 거 같아요. 표현을 많이 안 한다고 저 스스로는 생각해요. 이건 남자 쪽 의견을 들어봐야 알겠는데….

김혜윤이 입은 가죽 재킷은 코치 제품,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로몬이 입은 트렌치코트와 팬츠는 아미리 제품.

평소 김혜윤의 가장 스윗한 모습을 주로 목격하는 존재는 혹시 한 집에 사는 고양이일까요?
맞아요! 그 존재가 유일할 거예요. ‘홍시’를 대할 때는 제 목소리 톤 자체가 아예 달라져요. 홍시 앞에선 일단 낮은 목소리를 내지 않아요.

혜윤 씨는 어떤 사람에게 반하나요?
저는 좀 비전 있는 남자를 좋아합니다(웃음). 그리고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이상적인 로맨스라고 생각해요. 서로 좋은 영향을 끼치고, 두 사람 다 점점 더 발전할 수 있는 관계요. 비전, 윈윈이라고 하니까 뭔가 거창한 얘기를 하는 거 같네요?

김혜윤의 남자가 되려면 그 정도 자격은 갖춰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목표하는 바가 뚜렷한 사람이 좋달까요. 현재의 상황에서 가고자 하는 길이 뚜렷한 사람 있잖아요. 아르바이트 하나를 하더라도 그 일을 하는 목적이나 원하는 방향, 가고자 하는 길이 뚜렷하다면 비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대상을 보면서 ‘열심히 사는구나, 매력 있다’고 느끼죠. 그럼 저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할 수 있고요.

로맨틱 코미디물을 좋아하는 편인가요?
배우가 아닌 김혜윤으로서 좋아해요. 저는 제가 출연했던 로코물을 다시 봐도 여전히 설레요. 이야기에서 어떤 포인트들이 보일 때가 있거든요. 왜, 설레고 심쿵하는 포인트요. 그런데 남자 감독님들이나 남자 배우들은 ‘이런 데서 설렌다고? ‘왜지?’ 하는 경우가 꽤 있더라고요. 그 차이가 재밌고 신기해요.

그거, 흥미로운 대목인데요? 예를 하나만 들어볼 수 있어요?
음. <선재 업고 튀어>에서 솔이가 만두를 먹다가 목에 걸리는 순간이 있었어요. 너무 뜨거워서 ‘컥’ 하고 만두를 뱉어버리는데, 그때 선재가 이렇게 손을 내밀어 받아줘요. 그 장면을 두고 주변에서 대체로 ‘이게 왜 설레는 포인트야? 엥?’ 하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먹다 뱉은 음식을, 세상에서 아빠 말고 대체 어떤 남자가 손으로 바로 받아주겠어요? 처음에는 저도 ‘이러이러해서 좋은 포인트가 된다’고 잘 설명하기가 어려웠어요.

붉은색 니트 후디와 데님은 셀린느 제품.

김혜윤 일타강사님, 귀한 말씀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사실 그런 건 말로 설명하긴 어렵고 감으로 캐치되는 부분이긴 하죠.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고, 지금껏 제가 했던 로코물의 작가님들은 다 글을 너무 잘 써주셨어요. 저는 뭘 덧붙였다기보다 쓰인 그대로 한 거죠. 그런데 말랑말랑한 감정을 글로 담아내기도 어렵지만, 그걸 표현하는 입장도 정말 어렵거든요. 지금 말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어릴 적부터 로코물이나 하이틴물을 워낙 많이 봤기 때문에 무언가를 알게된 거 같아요. 저는 유치한 이야기도 참 즐겼어요. 그러면서 ‘이 대목에서 남자 주인공이 이렇게 해주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들을 했어요. 어쩌면 저만의 망상일 수도 있죠(웃음). 대본을 보면서도 ‘여기가 설레는 포인트다’, ‘이건 무조건 설레야 하는 장면이다’ 할 때가 있어요.

망상이라면 망상을 하는 취미가 배우의 상상력과 공력이라는 무기로 자라난 거죠. 혜윤 씨는 현장에서도 사랑받는 배우라고 하더군요. 잘하는 배우인데, 거기에 열심히 하니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고. 이 정도 사랑을 받는 배우가 될 줄 본인은 알았어요?
전혀요. 전혀 몰랐어요.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신기해요. 대학에서 연기를 배우기도 전부터, 저는 연예인을 하기엔 외적으로 승부를 보기 힘드니 오로지 연기에만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기 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것처럼요. 그래서 제가 시간이 되고 촬영 장소에 갈 수만 있다면 가리지 않고 연기했어요.

인기 있는 배우라고 해서 모두 ‘사랑받고 예쁨받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가지는 건 아니거든요. 제 눈에, 혹은 팬들 눈에 예뻐 보이는 걸까요?
바로 그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보이는’ 거. 제가 단역을 맡던 때나 연기 생활 초반에는 결코 그렇게 여겨질 만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여러 작품을 하면서 그 안에서의 캐릭터를 좋아해주는 분이 많아지니,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거 아닐까요. 제 생각은 그래요.

컷아웃 디테일 톱과 팬츠는 YCH 제품.

혜윤 씨가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탐나는 재능이나 무엇을 가진 인간은 어떤 유형이에요?
저는 꼬꼬마 시절부터 질투를 자주 했어요. 누군가의 특정한 면을 부러워한다기보다, 누가 칭찬을 받으면 ‘저 친구는 뭘 어떻게 했길래 칭찬받을까? 나도 잘해서 칭찬받고 싶다’ 식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열등감이죠. 저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긍정적인 열등감이요. 남들이 잘하는 면에 대한 질투심, 부러워하는 감정이 ‘나도 잘 해내야겠다, 이뤄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어요.

‘질투는 나의 힘’ 같은 거군요. 저는 김혜윤에게서 입을 앙다물고 주먹을 꽉 쥔 소녀의 모습을 자주 느꼈거든요. 서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와중에도 그런 면모가 배어난다는 게 희한한 일이죠. 연기를 배우던 시절에 받은 칭찬 중 기억나는 거 있어요?
기억나는 칭찬이라고 할만한 게 없어요. 연기가 잘 안 돼서 선생님들을 붙들고 울었던 기억만 나요. 비명 지르는 연기가 잘 안돼서 너무 답답했던 적이 있거든요. 비명질러야 하는 장면을 생각만 해도 막 무서워지는 거예요. 교수님을 찾아가 울면서 하소연했더니 이런 말씀 해주시더라고요. ‘지금 그 울음과 속상한 마음을 잊지 마라, 평생 갖고 있으면 너는 계속 발전할 거다.’ 또 한번은 청소년 연기 콘테스트에서 제가 뒤에서 2등을 한 적이 있어요. 이건 처음 밝히는 얘기예요. 정말 부끄러웠어요.

자존심 상했겠어요. 충격을 크게 받았나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연기학원 선생님이 결과를 물어보시는데, 같이 콘테스트에 나간 친구들이 ‘몇 등 했어요’라고 말할 때 저는 ‘뒤에서 2등했어요’ 하려니까 그 순간 눈물이 왈칵 나는 거예요. 나는 승부를 볼 게 연기밖에 없다고 여겼는데, 그것마저 못한다는 생각에 분해서 울었어요. 그때도 선생님이 ‘그 마음 잃지 마’ 하셨죠. 후회하는 마음이 있어야 발전한다고요.

무뚝뚝하고 눈물이 없는 편이라더니, 오늘은 ‘울었다’는 고백이 몇 번 등장한 줄 아세요?
소싯적에, 20대 초반까지의 혜윤이는 좀 울었네요(웃음). 이후 점점 눈물이 없어졌답니다.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은 1월 16일부터 방영 시작이고, 그전 드라마인 <선재 업고 튀어>는 2024년 봄에 방영했어요. <선재 업고 튀어>이후 부담감이 생기기도 했을까요? 히트작을 내놓은 배우가 으레 가질 법한 부담감이요.
저는 사실 매 작품을 하기 전에 부담감을 느껴요. ‘이걸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이전 캐릭터의 모습이 자꾸 나오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이 습관적으로 들면서 압박감이 생기는 거죠. 그런데 의식적으로 떨쳐내려고 하면 더 안 되더라고요. 그냥 나는 하얀 도화지이고 거기에 새로운 그림을 입혀나간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해요.

로몬이 입은 가죽 트렌치코트는 아미리 제품. 김혜윤이 쓴 베레모는 발렌티노 가라바니, 오버사이즈 재킷과 체크 셔츠는 코치 제품.

은호는 이렇게 쓰인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구미호죠. ‘소원을 이뤄드립니다.’ 만약 그런 명함을 받는다면 무슨 소원을 빌 거예요?
‘만수무강, 무사무탈’. 별 탈 없이, 사건 사고 없이, 큰 병없이 가게 해달라고요. 그런데 제가 촬영하면서 6개월 동안 그 명함을 내밀고 다녀봤잖아요. 뭘 느낀 줄 아세요? ‘세상에 공짜 없구나, 대가라는 게 진짜 무섭구나’ 하는 거예요. 아무 이유도 대가도 없이 소원을 이룰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램프의 지니 같은 존재가 저에게 나타나 그런 말을 한다면 저는 무서울 거 같아요. 그 소원을 위해 뭘 담보로 걸게 되는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르니까요.

2026년을 맞아, 2025년의 김혜윤을 넉넉히 칭찬해준다면요?
지난해 동안 작업한 세 작품이 2026년에 모두 공개될 거 같거든요. 저는 늘 색다름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해왔고, 그 결과도 정말 각기 다르게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에서는 명령조의 말투를 구사하거나 한쪽 눈썹이 올라가는 것처럼 미세한 표정에도 신경쓰면서, 화려한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했죠. 영화 <살목지>에서는 감정 변화가 거의 없는 무채색 캐릭터로, <랜드>에서는 처음으로 ‘막둥이’ 캐릭터로 나와요. 네, 2026년은 결실을 맺는 해라 뿌듯합니다.

포토그래퍼
박배
스타일리스트
조운진(김혜윤), 이정주(로몬)
헤어
은지 at 위위(김혜윤&로몬)
메이크업
왕빛나 at 오레어(김혜윤), 아라 at 위위(로몬)
어시스턴트
나혜선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