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패션 하우스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는다. 시간 속에서 이어져온 선택의 흔적이 그 역사의 깊이와 표정을 이룬다. 새로운 디자이너가 등장할 때마다 하우스는 같은 질문 앞에 선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새롭게 할 것인가?’ 조나단 앤더슨이 디올에 합류하며 마주한 질문 역시 그렇다. 지난 10월 1일, 파리 튀일리 정원에서 공개된 그의 디올 컬렉션은 하우스의 유산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데서 출발했다. 과거의 기록을 그대로 복각하기보다, 디올을 상징해온 요소들을 지금 입을 수 있는 옷으로 풀어내며 브랜드 고유의 흐름을 이어갔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요소는 보우, 즉 리본 장식이다. 핀치 프런트 코트와 드레이프가 살아 있는 미니 스커트, 가볍게 흩날리는 레이스 드레스, 디올 시갈 탑핸들백에 이르기까지 보우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작아진 바 재킷에는 조각적인 볼륨이 더해졌고, 케이프와 풍성한 쇼츠는 디올이 지닌 오트 쿠튀르의 전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전통적인 요소들은 강조되기보다 컬렉션 안에서 제자리를 찾는다. 그렇다면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변화는 형태보다 태도에서 먼저 읽힌다. 조나단 앤더슨은 디올의 유산을 특별한 순간에만 꺼내 입는 상징으로 두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옷장 안으로 끌어와, 일상의 옷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만든다. 예를 들어 보우 장식 상의는 데님 스커트와 함께 입어도 무리가 없고, 바 재킷 역시 셔츠나 니트 위에 가볍게 걸칠 수 있다. 디올의 상징은 앞에 나서지 않고, 익숙한 차림 속에 스며든다.


무대 연출 역시 이러한 태도를 반영한다. 루카 구아다니노와 스테파노 바이시가 설계한 공간은 과장 없이 절제된 분위기를 유지했고, 다큐멘터리 감독 애덤 커티스가 제작한 영상은 뒤집힌 LED 피라미드 위에 투사되어 디올의 과거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바라보게 했다. 영상은 곧 디올 구두 상자 안으로 사라지며, 하우스의 기억이 보관되고 다시 꺼내질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디올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옷을 입는다는 단순한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미감과 태도,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미학적 해석이 함께 담겨 있다. 이번 컬렉션은 과거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지금의 삶에 걸맞게 조정해 재해석하는 방식에 가깝다.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은 화려한 설명이나 선언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옷이 놓이는 자리를 바꾼다. 특별한 날을 위해 분리되던 옷은 다시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디올의 유산은 입고 움직이며 완성된다. 반복해서 입고, 다른 옷과 함께 조합되며 살아나는 옷들이다.그렇게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은 과거를 현재로 옮겨오는 데서 출발한다. 그 변화는 극적이지 않지만 분명하다. 디올은 여전히 디올이며, 이제는 더 가까운 거리에서, 더 현실적인 방식으로 우리 곁에 놓여 있다.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이렇게 이어진다.
다시 아이콘이 될, 디올 보우 백

매일 들 수 있는 가방의 조건은 무엇일까? 가볍고 실용적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옷차림에도 무리 없이 어울려야 하고, 자주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결국 눈에 띄기보다 손이 먼저 가는 가방일수록 오래 곁에 남는다.
조나단 앤더슨이 디올에서 처음 선보이는 디올 보우 백은 이런 기준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보우라는 상징을 앞세우기보다 가방의 형태 안에 조용히 담아냈고, 그 덕분에 이 가방은 단번에 시선을 끌기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진다.
가방을 마주하면 먼저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리본의 곡선을 연상시키지만 과장된 느낌은 없다. 선은 단정하고, 전체적인 인상은 우아하고 안정적이다. 잔결이 살아 있는 가죽으로 만든 몸체는 손에 닿았을 때 부드럽지만, 들고 움직여도 형태가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매일 드는 가방에 필요한 기본기를 장착했음을 알 수 있다. 보우가 지닌 특유의 귀여움 역시 이 가방에서는 절제된 방식으로 드러난다. 리본은 자칫 장식적으로 흐르거나 가방의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요소지만, 디올 보우 백에서는 형태의 일부로 녹아 있다. 덕분에 사랑스러운 인상은 남아 있으면서도 유치하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세부 요소도 전체 흐름에 맞춰 정리돼 있다. 잠금장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처리돼 있고, 메탈 링크와 보우 디테일이 이어진 체인 스트랩은 어깨에 메기에도 무리가 없다. 장식을 더했다기보다 쓰임을 먼저 생각한 구성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크기는 작은 사이즈와 중간 사이즈, 두 가지. 소재 역시 부드러운 가죽을 중심으로 광택이 더해진 가죽과 주름 질감의 가죽까지 폭 넓은 구성으로 선보인다. 검정부터 연분홍, 녹색, 노란빛, 베이지, 우윳빛 흰색까지 색상도 다양해, 같은 형태라도 전혀 다른 분위기로 읽힌다. 로고는 과하게 드러나지 않고, 가방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남는다.
이 가방의 완성도는 제작 과정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리본은 덧붙인 장식이 아니라 가방의 틀을 이루는 요소로 설계됐다. 디올 가죽 공방에서는 가죽을 자르고 형태를 잡는 모든 과정에 장인의 손길이 담기고, 소재가 달라져도 최종 인상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가죽은 유연하게 움직이고, 윤곽은 또렷하게 유지된다.
체인 스트랩 역시 같은 기준으로 다뤄졌다. 금속 고리와 보우 장식은 시선을 끌기보다 가방 전체를 단정하게 정리해주며, 장식이 늘어났다는 느낌보다는 균형이 잘 맞는 인상을 남긴다. 무엇보다 디올 보우 백은 특정한 장면을 상정하지 않는다. 셔츠나 니트, 데님 스커트와 함께 들어도 어색하지 않고, 구조적인 재킷과 매치해도 무리가 없다.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기보다, 일상 속에서 반복해 들게 되는 가방이다. 처음에는 형태가 보이고, 시간이 지나면 쓰임이 남는다. 디올 보우 백은 그렇게 기억된다.
디올 보우 백의 제작 과정. 디올 가죽 공방에서는 가죽을 자르고 형태를 잡는 모든 과정 안에 장인의 손길이 담겨있다. 리본은 덧붙인 장식이 아니라 가방의 틀을 이루는 요소이고, 체인 스트랩의 보우 장식은 디올의 섬세함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 SPONSORED BY DIOR
- 포토그래퍼
- ADRIEN DIRAND, PAUL LEH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