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는 지난 한 해를, 걱정 없이 연기하고 사람들과 수다를 넘치게 나눠서 행복했다고 되짚었다.
스스로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 배우 김선호가 선호하는 요즘 나날에 대해.


<W Korea> 2026년이란 숫자가 성큼 다가왔어요. 돌이켜본 김선호의 2025년은 어땠나요?
김선호 걱정 없이 연기하고 사람들과 마음껏 수다를 나눠서 행복했던 한 해였어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부쩍 많아져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죠.
2025년은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의 박충섭을 만난 해이기도 하죠. 더벅머리에 턱수염이 숭숭 난 ‘고슴도치 피카소’는 꽤 새롭고도 다정한 발견이었어요. 특히 결혼식 장면에서 윙크하는 모습은 ‘김선호 챌린지’가 되어 전 세계 소셜미디어를 뒤덮었죠. 아리아나 그란데까지 참여할 줄이야!
저도 모르는 사이에 충섭이의 표정을 따라 하는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고 어느 날 들었어요. 심지어 챌린지 영상마다 제가 연기하는 장면까지 붙어 있는 거예요. 세상에! 지문 그대로를 연기했는데, 하루아침에 이게 무슨 일이야 싶었죠. 너무나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만큼 작품을 사랑해주는 분이 많았다는 걸 실감했고요.
배우에게 특별 출연은 또 다른 도전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제가 김원석 감독님을 좋아해요. 특별 출연이라 스포일러 때문에 16부작 중 8부작만 대본을 받아서 인물 관계를 살피며 집중했는데, 와! 정말 잘 쓰인 제 취향의 이야기인 거예요. 대본을 읽으면서 눈물을 그렇게 많이 흘린 적은 처음이에요. 촬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 작품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후회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요. 작품을 하면서 임상춘 작가님의 팬이 됐어요.


1월 16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요. 다양한 언어를 통역하는 주호진과 글로벌 톱스타 차무희(고윤정 역)가 만나 벌어지는 예측 불가 로맨스물, 설정부터 흥미롭잖아요. 하지만 다중언어 통역사란 캐릭터는 난도가 꽤 높아 보여요. 주호진을 소화하는 과정은 순탄했나요?
생각보다도 쉽지 않았어요. 제가 한국어로 연기의 뉘앙스를 전하면, 선생님들이 각국의 발음과 발성 디테일을 섬세하게 가르쳐주시는 과정이 훈련에 가까웠어요. 언어 선생님들과 긴시간 동고동락하며 친해졌죠. 촬영을 다 마친 순간, 성취감과 뿌듯함에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쑥 빠지더라고요. ‘이 맛에 연기하지’ 싶고요. 다중언어 연기를 곁에서 지켜본 고윤정 배우는 ‘어후, 저는 못하겠다’고 고개를 저으며 웃었죠. 하하.
일본, 캐나다, 이탈리아 등 다채로운 도시를 오가며 촬영하는 시간은 어땠어요?
타지에서 한국어가 들리면 진짜 반갑잖아요. 해외에서 우리 팀을 보면 또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모두들 에너지도 좋아서 팀을 넘어 가족처럼 지냈어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남겼죠. 촬영이 끝나고도 여전히 모여서 함께 운동하고, 밥도 먹고, 다른 작품을 보면서 스터디하고 있어요.
통역이라는 행위는 결국 그 사람의 감정과 맥락까지 읽어내는 일이잖아요. 어찌 보면 배우에게 ‘연기’란 지문 속 캐릭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통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맞아요. 비슷한 지점이 정말 많더라고요. 미세한 차이에도 의미가 다르게 전달될 수 있고, 둘 다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점도 같죠. 작품을 준비하면서, 또 최근 작품 홍보 활동을 하면서 통역사분들을 많이 만났는데요. 그분들의 습관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마저 즐거웠어요. 통역사란 직업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지다는 것도 깨달았죠.


어수룩한 초코송이 헤어로 신선하게 등장했던 드라마 <김과장>의 선상태부터 완벽한 키다리 아저씨인 <스타트업>의 한지평, 한껏 말아 올린 입술로 능글능글하게 웃던 <갯마을 차차차>의 홍두식을 지나며 김선호란 이름을 선명하게 각인했어요. 살인청부업자로 분한 영화 <귀공자>의 귀공자와 극단적인 국수주의자를 연기한 <폭군>의 최 국장도 거쳤죠. 알록달록한 파스텔 컬러부터 채도가 빠진 회색 인물까지, 기어코 마음이 쓰이게 하는 사람 냄새가 밴 연기 스펙트럼은 한계가 없어 보여요. 캐릭터를 택하고, 입고 벗을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고민하는 지점이 있나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너무 감사해요. 정말 기쁘네요. 제 본연의 습관, 이른바 배우의 ‘쪼’를 버리려고 노력해요. 춤을 추기 전에 최대한 릴랙스하면서 유연한 몸을 만드는 것처럼 나를 비우고, 중립적인 자세와 사고를 유지하는 거죠. 대사 없이 서 있기만 해도 ‘저 인물이 누굴까’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완벽한 감정 표현도 중요하지만, 훌륭한 작품에는 보는 이가 상상하게끔 이끄는 배우가 꼭 필요하다’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늘 잊지 않으려 해요.
캐릭터에 관람자의 상상이 들어갈 여백까지 설계하는군요.
왜냐하면 손가락 하나도 허투루 움직이면 안 되더라고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차이가 무겁게 느껴져요. 눈만 움직여도 대사가 되는 연기가 있고, 아무리 많이 움직여도 의미 없이 흩날리는 연기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폭싹 속았수다>의 충섭이는 말을 잘하는 인물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단어를 찾은 뒤에 말을 하는 친구로 의도했어요. 정확하게 의도한 캐릭터의 작은 습관을 층층이 쌓아 올린 뒤, 그걸 매일 연습하는 거예요. 그런 다음 연기할 땐 제가 설정한 나만의 과제를 열심히 수행하죠.
나를 비우고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면, 되돌아오기 어렵지 않아요?
말을 느리게 하려고 연습했더니, 실제 삶에서 한동안 말을 더듬기도 했어요. 제가 건강하기 위해선 한 발 떨어져서, 나와 캐릭터를 동일시하지 않도록 경계를 긋는 연습도 필요해요. 쉽지 않지만 저만의 재미기도 해요.


꾸준히 연극 무대도 찾고 있어요. 최근에 연극 <비밀통로>의 티케팅이 시작됐죠. 낯선 공간에서 기억을 잃은 두 남자가 서로 얽힌 책 속 이야기를 통해 생과 사, 인연과 반복된 삶을 마주한다고요. 1인 다역을 맡으셨죠.
깊고 묵직한 생각거리를 주는 이야기예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막 떨리기도 하고요.
‘우리는 언제 완전히 죽을 수 있는 걸까?’ 극의 핵심 메시지인데요. 잘 죽는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현생과 다음 생, 또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후회가 남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겠어요. ‘지금 이 순간 행복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제 인생 목표가 더 짙어졌어요.
2021년 <갯마을 차차차> 방영을 앞두고 <더블유>와 한 인터뷰에서 무대를 ‘제자리, 원위치’라고 표현했는데요. 2023년 연극 <행복을 찾아서> 이후 3년 만에 집으로 돌아간 기분은 어떤가요?
벌써 3년이라니, 정말 시간이 빠르다는 걸 이렇게 또 한 번 느낀다니까요. <비밀통로>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행복을 찾아서>와 같아요. 무대에서는 호흡이 정말 중요한데, 익숙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이 순간이 정말 따뜻하고 좋아요.
무대를 통해 기대했던 바는 찾았어요?
방송 현장은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급할 때는 제 안에 쌓아둔 경험을 빠르게 꺼내 써야 할 때가 있거든요. 이를테면 대본에는 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현장 여건상 작은 테이블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형태로 바뀔 수 있어요. 그럼 분석한 연기를 버리고 상황에 맞는 빠른 대처가 필요해요. 무대에서 아주 오랫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쌓아 올린 경험치가 그 바탕이 되는 거죠. 바뀐 상황에서 사람들이 칭찬해주면 “네, 접니다! 제가 바로 준비된 배우 김선호입니다”라고 웃으며 넘어갈 수 있잖아요. 기대한 바를 찾았고, 또 열심히 찾아가 충전하는 중입니다.
오랜 시간 연극계의 아이돌로 불리며 활동한 ‘짬바’가 빛나는 순간이군요. 배우 김선호의 궤적을 좇으면서, 함께했던 선후배와 제작진 모두 ‘좋은 사람, 좋은 배우’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특히 ‘어딜 가도 사랑받을 사람’이라 표현한 문세윤 씨 인터뷰도 기억에 남아요. 이 차가운 도시에서 주변인들이 당신을 선호하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제가 편하기 위해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는 거죠. 누군가 불편해하면 오히려 제가 더 긴장하는 스타일이에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촬영하면, 전 아직도 숨 쉬기조차 어려울 때가 있거든요. 제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모두가 행복하고, 그럼 또 행복하게 작품을 만들 수 있잖아요. 저에겐 행복이 가장 중요해요. 제가 행복하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해서 노력하는 면이 있죠. 뭐, 거창한 노력도 아니에요. 배고픈 시간이 되면 밥은 먹었는지, 먼저 물어보고. 같이 맛있는 걸 먹고 대화하다 보면 친구가 되어 있는 거예요.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다정한 편인가요?
계속 나를 점검하는 편이에요. 주변에서 들려주는 좋은 말만 들으면 게을러진다는 걸 잘 알거든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에겐 다정하지 못한 부분이 많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요. 그래도 요즘에는 즐길 필요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작품을 통해 인생을 배울 때가 있거든요.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에서 ‘축제’란 단어가 나와요. 인생에서 마주한 축제는 저마다 시기도, 형태도 다르겠죠. 제 인생에서 지금이 축제 기간일 수도 있는데,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속으로 ‘넌 아직 즐겨야 할 때가 아니다’고 박하게 굴기만 한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됐어요. 이젠 좀 부족해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잘하고 싶어 노력하는 사람에겐 종합 패키지처럼 조바심이나 불안감이 따라오곤 하죠. 그러한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네요.
맞아요. 왜 없겠어요. 요즘 매일 10km를 뛰고 있어요.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달리면서 생각하다 보면 호흡이 가빠져서 복잡했던 고민도 간결해지고 명쾌해져요. 같이 뛰는 친구에게 속이야기를 털어놓으면, 해결되지 않아도 가슴이 시원해지고요. 러닝이 여러모로 도움이 돼요. 지금 인터뷰도 짧은 수다라고 생각해서, 이런 시간으로도 나를 채우려 해요.
일전에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편이라고 언급한 적 있어요. 김선호의 요즘을 한 줄로 정의한다면요?
전 저를 매번 되짚어보는 편이라, 스스로를 속속들이 다 알고있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최근 주변에서 제가 몰랐던 제 모습을 들려주더라고요. 그중 하나는 ‘소신 있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는 말이었어요. 전 제가 우유부단해서 요즘 말로 ‘에겐남’에 가깝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 사이의 간극이 신기하고 흥미로웠어요. 타인에게 제가 어떤 방식으로 비치고 있을지 미처 생각지 못한 지점이었죠. 그래서 의견을 내고, 한번 뱉은 말은 책임지려 노력하면서도 혹여 그 모습이 고집처럼 보이진 않을지 늘 그 적절한 선을 살펴요.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고 더 발전시켜서,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선호 캘린더를 살펴보니, 줄줄이 사탕처럼 여러 작품이 오픈을 기다려요. 2026년 한 해 김선호를 채우고픈 단어 세 가지를 꼽아 볼까요?
기다림, 축제, 그리고 마주함이요. 준비하며 기다렸던 작품들이 기대되고요. 인생의 축제를 기다리기보다 이 순간을 감사하게 즐기고 싶고요. ‘나조차 모르는 내 모습이 있구나,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평생 나를 알아가야 하는구나’ 싶어서 저와 잘 마주하고 싶어요. 물론 다른 사람들과도요.
마지막으로 요즘 당신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더불어 행복한 거요.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거니까요. 아까 유튜브 콘텐츠 촬영 때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물었잖아요. 사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아요. 딱히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은 못했을 거예요. 전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았고, 현재도 하고 있으니까 정말 행복해요. ‘너 오늘 연기 좋았어’ 하면 그 칭찬만으로 사흘을 행복해할 수 있거든요. ‘연기 아쉬웠다’는 반응이 있으면 이틀간 ‘쭈구리’가 되어 앓아누울 수도 있지만요. 다행이죠. 아쉬움은 이틀 만에 비워낼 수 있잖아요.
- 맨 콘텐츠 디렉터
- 최진우
- 포토그래퍼
- 윤송이
- 글
- 박소현
- 스타일리스트
- 박선용
- 헤어
- 박미형
- 메이크업
- 김도연
- 세트
- 박민진
- 어시스턴트
- 박예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