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하고 쾌락주의적인 ‘힙스터슬리즈(Hipstersleeze)’ 트렌드를 다시 맞이하며.


한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누적 재생수 6,000만 회를 넘어선 코르티스의 ‘FaSHioN’은 가사에서 동묘, 홍대(빈티지의 성지)를 외치는 것이 신선하고, ‘빈티지저스’라고 일컫는 본인들이 ‘후르츠패밀리(패션 중고 거래 어플)’를 애용하는 것을 밝히며 지속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밀레니얼과 알파 세대의 공감을 산 것이 인기의 큰 요소였다. 멤버들은 중고 거래 위시리스트도 공개했는데, 흥미로운 지점은 지금 유행하는 브랜드 대신 과거 에디 슬리먼이 디올 옴므의 수장이던 시절의 스키니진, 하이톱 스니커즈, 나폴레옹 재킷 등이 위시리스트에 올라와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주훈은 스타일 롤모델이 에디 슬리먼, 성현은 피트 도허티임을 함께 밝혔는데, 이 두 사람이 바로 힙스터슬리즈(Hipstersleeze) 스타일을 대중적으로 퍼트린 장본인들이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커 사이에서도 이런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며 힙스터슬리즈가 귀환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세련되면서도 다소 지저분하고, 꾸밈없는 듯한 퇴폐적인 매력이 혼합된 스타일을 의미하는 힙스터슬리즈는 주로, 2010년대 초중반의 패션 트렌드를 설명할 때 자주 소환되는데, 이를 정의하고 대중화한 핵심 인물이 바로 에디 슬리먼이다. 2000년대 초반 디올 옴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절, 당시 유행하던 넉넉한 핏의 남성복과 달리 극단적으로 슬림한 재킷과 스키니진을 선보이며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편안한 테일러링 이후 남성복에서 일어난 가장 혁신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 바로 에디 슬리먼이다. 당시 슬리먼은 패션과 음악 서브컬처를 성공적으로 연결해 새로운 트렌드의 기반을 마련했는데, 펑크, 그런지, 인디 록 등 음악계의 반항적 에너지를 컬렉션에 주입하며 슬리먼식 스타일을 구축했다. 그의 디자인은 너바나(Nirvana), 라몬스(Ramones)같은 밴드의 영향을 받은 낡은 컨버스 운동화, 플란넬 셔츠, 가죽 재킷 등으로 표현한 세련된 느낌이 특징이다. 리버틴스(The Libertines), 스트록스(The Strokes), 저스티스(Justice) 같은 당시 인기 인디밴드 멤버들에게 옷을 입히거나 그들에게 영감을 받곤 했는데, 특히 리버틴즈의 리더 피트 도허티는 슬리먼의 영원한 뮤즈로 여겨졌다. 슬리먼은 리버틴즈 특유의 퇴폐적이고 낭만적인 로큰롤 스타일과 도허티의 마르고 반항적인 느낌을 자신의 디자인에 적극 반영했으며, 특히 2006 S/S 시즌 디올 옴므 런웨이는 도허티를 모티프로 탄생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렇게 탄생한 헤디 보이(Hedi Boy) 스타일은 스키니진, 부츠, 가죽 재킷으로 구성된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공식을 갖추지만 헝클어진 머리와 다크서클 같은 슬리즈 요소를 더해 요즘 SNS의 알고리즘을 다시 주도하고 있다.

2000년대 초는 난잡하고 화려하며 흥미로운 일화가 흘러넘쳤다(개인적으로는 SNS의 발달이 세상을 지루하게 만든 데 일조한 바도 있지 않나 싶다…). 오래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2001년 샤넬의 수장인 칼 라거펠트가 에디 슬리먼의 옷을 입기 위해 무려 42kg의 체중 감량을 단행한 일은 당대 패션계 거물의 스타일 변화와 그에게까지 영향을 준 디자이너의 위상을 보여주는 일례다. 피트 도허티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와 교제했는데, 둘은 그 시절 가장 상징적인 ‘로큰롤 커플’로 불리며 서로의 스타일과 당시 패션계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낡은 티셔츠, 스키니 스카프, 페도라, 베스트 등을 하이패션과 믹스매치하며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했고, 또 케이트 모스 덕분에 피트 도허티는 주류 세계에 빨리 진입할 수 있었다. 글래스톤베리 같은 록 페스티벌에서 찍힌 커플 파파라치 컷은 지금도 수시로 인용되며, 둘의 코카인 중독과 난잡한 파티에서 찍힌 사진은 하이패션에 흐트러진 파티 문화가 결합된 완벽한 장면을 만든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 하나의 논쟁거리였던 2000년대 초중반 런던의 사교 모임 ‘프림로즈 힐’의 멤버였던 케이트 모스, 시에나 밀러는 연애와 스타일에 있어서도 라이벌 관계였는데, 케이트 모스가 “내 스타일을 도용하지 마”라고 시에나 밀러에게 경고한 것은 패션계의 뜨거운 가십거리였다. 낡은 티셔츠, 가냘픈 회색 스키니진, 부츠나 그런지한 컨버스 잭퍼셀 같은 차림은 선글라스를 끼면 둘 중 누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고, 연애사까지 얽히며 논쟁과 유행이 뜨겁게 소용돌이쳤다. 이처럼 2000년대는 셀러브리티와 스타일, 가십이 뒤섞여 패션계가 무척 흥미진진한 무대였던 시기다.


패션의 큰 유행은 약 20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경향이 있는데, 한동안 뜨겁게 유행한 Y2K와 미니멀리즘을 뒤로하고 힙스터슬리즈는 자연스럽게 다음 주자가 됐다. 2026 S/S 런웨이에서는 앤 드뮐 미스터, 알렉산더 맥퀸, 디올 등의 브랜드에서 나폴레옹 재킷, 가죽 라이더 재킷이 등장했고, 크롬 하츠, 앙팡 리쉬 데프리메가 럭셔리 그런지, 반항적인 로큰롤 스타일의 계보를 잇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얼 웨이에서는 티모시 샬라메가 스키니 스카프를 착용하거나, 제나 오르테가가 나폴레옹 베스트를 매치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몇 년간 헤일리 비버를 선두로 유행한 ‘클린 걸’처럼 완벽하게 정돈된 스타일에 대한 피로감이 커졌고, ‘신경 쓰지 않은 듯한(Uncurated)’ 지저분한 매력을 추구함으로써 진정성 있고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알파 세대의 욕구를 정확하게 충족시킨다. 올해 에스파가 ‘Dirty Work’라는 곡으로 더티 코어를 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팬데믹 이후 제한되었던 사교 활동과 파티 문화에 대한 열망과 당시의 자유분방하고 쾌락주의적 분위기를 갈망하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알파 세대의 흥미를 가장 끈 중요한 지점은 지속 가능성과 흔치 않은 개성의 만남일 것이다. 빈티지한 의류, 중고 제품 스타일을 선호하는 힙스터슬리즈 스타일은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다음에 올 유행도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빅뱅과 2ne1이 애정한 제레미 스캇, 필립 플레인, KTZ 등의 힙합과 아방가르드가 섞인 메가 스타일의 유행이 다시 올까? 에디터는 유행을 감당할 자신은 아직 없다.
- 포토그래퍼
- 최나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