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이 더욱 기대되는 새로운 얼굴들 – 2

권은경, 전여울

WHO ME?

한 해 동안 제작되는 드라마와 영화 편 수가 예전만큼은 아니라고 하지만, 눈길 가는 새로운 얼굴은 늘 곳곳에 존재한다. 당신은 언젠가 어느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 배우들을 보았거나, 앞으로 만날 이야기에서 마주칠 것이다. 2026년이 더욱 기대되는 그들을 <더블유> 카메라 앞에서 만났다. 다분한 재능과 매력을 바탕으로 성장 서사를 써 나아갈 열 명의 이름. 좋은 배우를 발견할 때의 기쁨이, 시작하는 청춘의 흥미로운 면면이 여기에 있다.

김민

체크무늬 코트는 드리스 반 노튼, 모자는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

1999년생
@rlaalls
영화 <왕과 사는 남자>(2026), <로비>(2025), <리바운드>(2023),
MBC <수사반장 1958>(2024),
U+모바일TV <하이쿠키>(2023) 등

김민을 배우로 각성하게 만든 곳은 군대다. 국방의 의무를 진 자신이 친구들처럼 공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을 때, 그는 그리운 연기를 향해 비로소 전투력을 장전할 수 있었다. 김민이 싸워본 적도, 화를 내본 적도 없었다가 누군가와 처음 다툼을 벌인 무대도 군대였다. 분출을 모르던 그는 그제야 자기 감정에 직면할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슬플 때 슬프고, 화날 때 화내고, 행복할 때 맘껏 행복하려면 어떤 사람에겐 훈련이 필요하다. 김민의 각성기를 들으며 군대를 배경으로 한 독립영화 한 편을 상상했다. 전투력 만렙 상태로 전역한 배우 지망생이 장항준이라는 감독을 만나 감독의 페르소나로 부상한다는 스토리는 어떨까? 영화 <리바운드>로 김민을 발견한 장항준 감독은 <더 킬러스>에 이어 2월 4일 개봉하는 <왕과 사는 남자>에도 김민을 원했다. 한창 연기하는 즐거움을 알아가야 할 때, 즐거움만큼 고통도 함께 느껴버린 신인. 좋은 연기를 하고 싶어서 골몰하는 김민에겐 아직 내보일 것이 많다. 2025년을 여러 촬영장에서 보낸 김민이니, 2026년에는 이야기들 속에 나타나는 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체크무늬 코트와 삭스, 슈즈는 드리스 반 노튼, 모자는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

장항준이라는 남자_ <리바운드>를 시작으로 <더 킬러스>, 개봉을 앞둔 영화 <왕과 사는 남자>까지, 감독님과 세 작품이나 같이 했어요. 글쎄요, 왜 자꾸 저를 찾아주시는지 여쭤본 적은 없네요(웃음). 이런 표현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장항준 감독님은 이제 저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에요. ‘이달에 누구랑 제일 자주 놀았지?’ 따져보니 감독님인 적도 몇 번 있어요. 유머 코드가 잘 맞아요. 일하는 분들과 함께 자주 봐요. 감독님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해요.

2023년, 영화 <리바운드>_ 농구는 한 팀에서 5명이 경기를 뛰는데, <리바운드>의 부산중앙고 농구부에는 6명의 선수가 있어요. 농구를 잘 못해서 경기에 나갈 수 없는 한 명이 저였어요. ‘허재윤’이요. 팀에 부상자가 생기면서 재윤이도 드디어 뛰게 되죠. 누구보다 농구를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아이였어요. 재윤이는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메시지가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리바운드>는 농구 오디션도 따로 진행했거든요. 오디션에 거의 뭐 선수 수준의 친구들이 많았어요. 저는 실제로 농구를 잘 못해요. 역할에 잘 맞았죠(웃음). 연습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늘었는데, ‘그만해. 슛 폼 예뻐져서 안 돼.’ 그래서 남들 보다 먼저 집에 가고 그랬어요.

군대에서 운 이유_ 한예종 입시 때부터 연기를 늘 열심히 하긴 했어요. 재밌게 했고요. 그런데 전투적이진 않았거든요. 군대에서야 실감했어요. 너무 갈증이 나는 거예요. 의무경찰이라 종종 외출을 나갈 수 있었는데, 친구들이 공연하는 걸 보고 복귀해서 운 적이 있어요. 나도 연기를 너무 하고 싶어서. 못하고 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내가 이렇게 연기를 원했나?’ 싶었어요. 익숙할 때는 간절함을 모르다가 비로소 전투력이 생겼죠. 그때부터 제가 좀 달라 졌어요. 연기를 더 사랑하고, 더 열정이 생기고, 더 어려워지고, 고민하고, 힘들어졌어요. 전역 직후에는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어요.

오버사이즈 폴로 스웨터는 셀린느 제품.

2026년, 영화 <왕과 사는 남자>_ 현장에서 다들 어떤 책임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컸어요. 드라마도 그렇지만, 영화 제작 편수가 많이 줄었잖아요. 제작비를 적게 쓴 작품도 아니다 보니 다 같이 책임감을 느꼈어요. 제 생각에 이 영화는 장항준 감독님과 결이 비슷해요. 사랑스럽고, 귀엽고, 재밌고, 따뜻하기도 하고. 폐위되어 산골 마을로 유배를 온 어린 선왕을 둘러싼 이야기인데, 저는 마을 촌장의 아들로 나와요. 유해진 선배님의 연기를 현장에서 보는 건 귀한 경험이죠. (박)지훈이도 명연기를 펼쳤어요. 저는 영화의 중요한 덕목이 ‘재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우리 영화 재밌어요. 가족들과 보기도 좋고, 대중성 있는 작품이에요.

어쩌다 한 번, 희귀한 순간_ 연기하면서 캐릭터와 가까워지는 작업에 큰 흥미를 느껴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잖아요. 그런데 모순되게도 그 과정 때문에 힘들어요. 가까워지지 못한다고 느끼면 너무 숨이 막혀요. 어렵고, 고통스럽고. 가끔 무서울 정도예요. 그런데 연기하다가 한 번씩, 아주 짧은 순간, 해방감 비슷한 걸 느낄 때가 있어요. ‘블랙아웃’처럼 잠깐, 휙 오기도 하고, 현장에서 그냥 그 캐릭터로서 2초 정도 사는 순간이요. 쉽게 찾아오지 않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해서 계속 연기하는 것 같아요. <리바운드> 때도 그런 순간이 있었어요. <더 킬러스>랑 <왕과 사는 남자> 때도 아주 잠깐 있었고요.

“어떻게 하면 형처럼 연기할 수 있어요?”_ 너무 어려울 때는 주변에 도움을 청해요. <왕과 사는 남자>를 하면 서는 전미도 누나에게 이것저것 여쭤봤어요. 같은 작품을 함께하고 있는 경우라면 디테일하게 질문하기 좋으니까요. 누나는 늘 응답을 정성껏 해주어서 참 고마워요. 안재홍 형에게는 그냥 이렇게 묻는 거죠. ‘어떻게 하면 형처럼 연기를 잘할 수 있어요?’ 형은 이런 식이에요. ‘나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 그냥 지금처럼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재밌게, 열심히 살면 돼.’ <리바운드> 때부터 주기적으로 물어보는데, 확답을 얻은 적은 없어요(웃음).

체크무늬 코트와 삭스, 슈즈는 드리스 반 노튼, 모자는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

10대 시절_ 친구들을 웃기고 싶었어요. 장난도 잘치고, 웃기기 위해 나름 연구도 했죠. ‘내일 학교 가서 이거 하면 애들이 웃겠지?’ 하면서(웃음). 고등학생 때는 체대에 가려고 잠깐 준비한 적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예체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친척들이 다 가까운 동네에 살았는데, 음악 하는 형, 미술 하는 형, 운동 하는 형이 있어서 그런지 예체능이 저에게 자연스러웠어요. 영화의 재미를 알려준 작품은 <바람>이에요. ‘재밌다’, ‘나도 이걸 잘 해보고 싶다’고 마음먹게 한 종목이 연기였달까요.

노래방 애창곡_ 제일 자주 부르는 건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알고리즘으로 비슷한 시기의 다른 가요들을 발견하곤 해요. 주변 어른들이 듣는 곡을 같이 듣다 빠진 경우도 있고요. 요즘 전유나의 ‘너를 사랑하고도’를 자주 들어요. 뭐랄까, 시대를 보여주는 노래 같아요. 제 플레 이리스트가 워낙 ‘짬뽕’입니다. 힙합도 있고, 변진섭의 ‘숙녀에게’도 있는 식이죠. 장항준 감독님 영향도 받았어요. 감독님이 종종 노래를 틀어놓으면 좋은 게 많더라고요.

루카 구아다니노의 <챌린저스>_ 때마다 꼽고 싶은 영화 리스트가 좀 달라지는데요. 최근엔 <챌린저스>가 너무 좋네요. 몇 번을 봤어요. 음악도 영화에서 너무나 중요한 요소잖아요. 이 영화는 음악은 물론 미장센도 좋고, 몰입력을 높여주는 샷이 많아요. 등장인물 셋의 서사가 완벽 해서 지루함이 하나도 없고요. 기자님은 무슨 영화를 좋아하세요?

꿈_ 질리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가 참 많잖아요. 그런데 미래는 불분명하고요. 오래 연기하려니 ‘사람들에게 안 질려야지’, ‘좋은 연기, 매력적인 연기를 해야지’ 같은 생각을 자주 해요.

우현준

점퍼, 톱, 네크리스, 팬츠, 부츠는 발렌시아가 제품.

2001년생
@nnekorea
지니TV 오리지널 <아너>(2026),
KBS <마지막 썸머>(2025)

이 맑고 해사한 얼굴의 소유자는 2025년 이재욱과 최성은 주연의 드라마 <마지막 썸머>로 배우 데뷔식을 치렀다. ‘고된 밤샘 작업이 일상인 건축사무소에서, 노동으로 찌들어 마땅하나 밝은 기운을 숨길 수 없는 막내’ 역할로 우현준은 적격이었다.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은 시청자라면, 우현준이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기 전 홍석천의 유튜브 채널 ‘보석함’에 출연한 과거를 떠올렸을 것이다. 배우의 얼굴은 그가 대사를 뱉기 전부터 이미 연기의 일부다. 앞으로 어느 이야기에서 우현준의 싱그러운 얼굴이 그다운 청춘 캐릭터를 입고 등장한다면 온전히 누리는 즐거움을, 싱그러움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발견의 쾌감을 얻을 거라고 기대한다. 우현준의 다음 스테이지는 이나영, 정은채, 이청아가 변호사로 등장하는 미스터리 추적극 <아너>다. 2026년에는 우현준을 포함한 신인 배우 네 명으로 구성된 배우팀, ‘뉴네임’의 소식에도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점퍼, 톱, 네크리스, 팬츠, 부츠는 발렌시아가 제품.

첫 리딩의 기억_ <마지막 썸머> 첫 리딩을 앞두고, 한 일주일 전부터 떨리기 시작했어요. 리딩 날에 극 중 팀장님으로 나오는 이태구 선배님이 “처음이에요?” 하면서 챙겨 주셨는데, 그때부터 좀 긴장이 풀렸어요. 그 한마디와 챙겨 주시는 마음이 저에게 큰 힘이 됐어요.

<마지막 썸머>라는 경험_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현장에선 연기 학원이나 연습실에서 연기 준비만 할 때와 달리 이것저것 생각해야 할 게 많더라고요.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준비하는구나’를 생생하게 느꼈어요. 경험이 없는 저는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채로 촬영을 시작한 거예요. 촬영장에서 ‘이제 처음 하는 친구’라고 응원해주시는 분위기가 감사했어요. 한편으로는 대본 속에서만 보던 다른 캐릭터와 눈앞에서 함께 연기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한 신을 위해 배우끼리 호흡을 맞추고, 미리 아이디어 상의하는 모습을 실제로 접하니 신기하고 설렜고요. 저는 이재욱 선배님이 소장으로 이끄는 플루토 아틀리에의 막내 건축가, ‘박현’ 역할이었어요. 지금 생각나는 제 대사라면 “또 설계 변경?”(웃음). 스토리상 팀원들이 밤새 수정 작업을 하며 고되게 일한다는 내용이 많았는데, 현이는 ‘우당탕탕’ 하면서 열심히 하려는 면모가 귀엽기도 한 인물이었어요. 막내답게 긴장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면이 제 실제 상태와 비슷하기도 했고요.

뉴네임(Newname)_ 저는 김준, 김태영, 원규빈이라는 친구들과 ‘뉴네임’이라는 배우팀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신예 넷이서 세상을 한번 접수해보자는 큰 꿈을 가지고 결성한…(웃음). 제가 맏형이에요. 김준이라는 친구는 2001년생 동갑내기인데 제가 생일이 더 빠릅니다(웃음). 우리 팀원들은 저를 분위기 메이커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제가 두루두루 잘 지내는 성격이거든요. 앞으로 제 개인 활동뿐 아니라 뉴네임 팀으로 선보일 수 있는 활동도 준비 중이니 기대해주세요.

트랙슈트, 부츠는 발렌시아가 제품.

연기 수업_ 연기 수업을 할 때, 선생님이 다양한 대본을 주시거든요. 대체로 대본 속에 주어진 상황 묘사가 적어요. 그 짤막한 상황 정보를 가지고 자유롭게 상상하고 무언가를 추가해서 표현하는 작업이 즐거워요. 처음 연기를 배우기 시작할 때는 ‘이게 연기 훈련법인가?’ 싶은 것들이 있었죠. 지나고 보니 그런 연습이 다 필요했고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특히 공을 던지는 훈련법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말을 뱉거나 소리를 지르면서 공을 던지는데, 공과 말이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거죠.

10대 시절_ 충청북도 음성이 고향이에요. 집 앞에 수정산이라고, 푸른 산이 내다보이는 풍경 속에서 자랐어요. 어릴 때는 동네 친구들과 축구, 배구 같은 운동하는 걸 아주 좋아했어요. 초등학생 때는 골키퍼를 했는데, 필드에서 좀 뛰고 싶어서 고학년 때는 공격수를 했죠. 끼요? 고등학교 크리스마스 축제 때 친구들과 캐럴을 부르면서 작은 율동 정도를 소화했는데… ‘나는 못해’ 하다가도 친구들이 끌고 가서 시키면 또 나름 잘하는 아이였던 것 같아요(웃음).

키_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많이 자랐어요. 179cm였죠. 지금 185cm니까, 중학교 입학 전에 이미 성인만큼 다 자란 거예요. 배우가 되기 전에는 런웨이를 걷는 모델이 참 멋져 보였어요. 하지만 제 키가 모델을 할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 키 큰 분들을 동경하기도 했어요.

트랙슈트, 부츠는 발렌시아가 제품.

반려동물, 도마뱀_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물고기 어항을 가꾸셨어요. 그렇게 가꾸고 키우는 모습을 보고 자란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파충류나 다양한 생물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즐겨보거든요. 그러다 ‘크레스티드 게코’라는 도마뱀을 알게 됐어요. 그 도마뱀이 밥을 먹다가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의 영상을 봤는데, 너무 귀엽더라고요. 사육 난도도 높지 않고, 매력적인 도마뱀이라 관심이 생겼어요. 그리고 몇 년 전 크리스마스 때 드디어 입양했어요. 도마뱀은 하루에 16시간 정도 자요. 움직임이 아주 적은 동물이에요.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게 있을 때, 특히 밥 먹을 때는 동작이 아주 빨라요. 거의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아이들이라 올라갈 곳이 있으면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하고, 먹을 게 눈앞에 있으면 먹고, 움직이는 건 먹이로 인식하고, 그런 식이에요. 일단 집에 들어가면 아이를 들여다보는데, 저를 알아보지는 못할 거예요. 생각해보면 좀 서운하지만… 밥 먹일 때 숟가락을 넣으면 그 숟가락은 알아보는 것 같더라고요.

드럼과 피아노_ 드럼을 배운 지 8개월 가까이 됐어요. 평소에 밴드 영상을 자주 찾아봤는데, 드러머들이 박자를 쪼개면서 리듬감 있게 연주하는 모습이 멋지더라고요. 실제로 배워보니 과정도 재밌어요. 선생님이 ‘어? 꽤 리듬 감 있으시네’라고 말하신 적 있거든요. 네, 감이 좀 있는 편인 것 같아요(웃음). 피아노도 배워요. 발라드 연주곡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 부르고 싶어서요.

TMI_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루에 두세 잔씩 마셔요. 여행을 좋아해요. 여행지로는 도시보다는 자연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가족과 다낭 여행을 갔을 때의 좋은 기억이 떠오르네요. 최근 가수 정승환 님 콘서트에 다녀왔는데,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유정후

프린트 티셔츠는 코치 제품.

1997년생
@u_junghoo
<하렘의 남자들>(2026 예정),
KBS <내 여자친구는 상남자>(2025),
KBS <수상한 그녀>(2024),
TV조선 <아씨두리안>(2023),
웹드라마 <뉴연애플레이리스트>(2022) 등

유정후는 수더분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 여자친구는 상남자>로 ‘KBS 연기대상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는 말을 전할 때도 상기되는 기색 없이 사실과 정보를 전달하는 자의 태도였다. 그가 자신에 대해 ‘조급하지 않고 여유 있는 편’, ‘웃을 때도 그렇게 깔깔대고 크게 웃지 않는 것 같다’라고 할 때, 그 무던한 인상의 앞뒤가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평소 그러한 유정후가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발산하며 느끼는 희열과 기묘한 작용은 지극히 내밀한 영역일 것이다. 지난 수년간 배우 유정후의 그래프는 완만하게 상승해왔다. 촬영 경험을 쌓기 위한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장학금을 모아 연기를 배우고, 아무것도 모르는 기분으로 시작해 하나를 배우면 둘을 알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지금은 부족하지만 이대로 계속 가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과 자신감을 얻으면서. 추월과 극적인 상승을 바라기보다 차근차근 걸어갈 생각을 하는 신예에게 2026년은 어쩌면 극적인 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케이프는 로로피아나, 데님 팬츠는 자크뮈스, 슈즈는 맥퀸 제품, 모자는 에디터 소장품.

<내 여자친구는 상남자>의 그 ‘상남자’_ 함께 출연한 산하, 아린, 츄와 또래 사이였어요. 다들 친구처럼 지내는 환경에서 연기하니까 서로 시너지가 잘 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첫 주연작이기도 하고, 저에게 의미가 큰 작품이에요. 내 분량뿐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알았고, 작품을 만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뭔가 좀 더 보이기 시작했어요.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잘하면 된다’를 넘어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즐거움도 느꼈죠. 신 하나를 만들어도 더 재미있게, 또 남다르게 만들어가고 싶다는 자세가 생겼어요. 그렇게 작업할 때마다 ‘내가 정말로 배우 일을 원하는구나’ 새삼 느껴요. 여러모로 좋은 기억만 남아 있어요. 2025 KBS 연기대상 신인상 후보에도 올랐네요.

공대생_ 목동에서 자랐어요. 예체능을 하는 친구는 거의 없고, 이과생은 주로 의대나 공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다 몇몇 친한 친구들이 연기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그제야 ‘배우라는 직업이 너무 먼 이야기는 아니구나’ 싶으면서 저도 도전해보고 싶었죠. 어머니가 너무 놀라시더라고요. 어릴 적에는 누구나 화면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멋져 보이잖아요. 그런 모습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당시 부모님 말씀대로 막연했던 것 같아요. 하던 공부를 계속해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어요. 저희 때 학생수가 110명 정도였는데, 그중 남학생이 101명이라 ‘프로듀스 101’이라는 우스갯소리가…(웃음). 입학해보니 학업도 잘 맞더라고요. 학교 생활을 즐겼어요.

군대에서부터_ 연기에 대한 생각은 잠시 잊고 1학년을 보낸 후 입대했어요. 군대에서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져요. ‘앞으로 뭐하지?’ 같은 고민을 자주 하게 돼요. 그러면서 잊었던 연기 생각이 자꾸 났어요. 한번은 도전해 보고 싶은 거예요. 카메라 경험을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며 이것저것 서치했어요. 전역 후에는 팬데믹이 닥쳐서 제가 시간만 잘 활용하면 학업과 그 외의 것을 병행하기 좋았죠. 작은 광고 촬영부터 시작했는데, 점점 큰 광고에서 저를 불러주더니 프로필을 쓰면 꽤 길 정도로 건수가 늘어났어요. 그렇게 번 돈과 성적 장학금을 모아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가죽 재킷, 팬츠, 슈즈는 맥퀸 제품.

자신감과 소통 능력_ 학창 시절 공부는, 해야 하니까 억지로 한 거죠. 저는 공부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연기는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물론 어려운 만큼 성취감이 커요. 어렵지만 재밌고요. 지금껏 오디션을 적지 않게 봤어요. 어느 순간 합격률이 높아졌는데, 자신감 있게 임하고 나서부터예요. 배우에겐 자신감이 중요한가 싶어요. 어떤 때는 ‘감독과 대화가 잘 통할 배우인가’를 중요하게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경험치가 쌓이면서 저도 하나씩 알아가고, 눈치껏 파악해가는 과정에 있어요.

음악과 함께_ 음악 영화를 좋아해요. <싱 스트리트>, <위플래쉬>가 인생 영화입니다. <싱 스트리트>를 계기로 일렉 기타도 배웠어요. 최근에는 새로운 취미 생활이 딱히 없지만, 늘 뭔가 하나씩 건드려보곤 했어요. 제가 좀 가만히 지내지는 못하는 성격이에요. 촬영이 없는 시기에는 학원에라도 다니면서 뭘 배워보려고 해요. 자기 발전한다는 느낌이 없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거든요. 마지막으로 관심 가진 게 디제잉이네요. 턴테이블과 LP에 스피커까지, 집에 음악 장비가 많아서 뮤지션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해요.

러닝_ 유행하기 전부터 엄청 좋아했어요. 군대 훈련소에서 500명 정도가 다 같이 장거리 달리기를 한 적 있는데, 6등인가 했거든요. 처음 제대로 뛰어본 거였어요. 그 정도면 재능 있다는 거잖아요.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전역할 때까지 하루 일과가 끝나면 매일 뛰었어요. 밤에 잠을 푹 자고 싶어서 뛴 이유도 있고요. 헬스를 할 때는 의무적인 기분이 들고 재미가 없는데, 러닝은 계속 잘하고 있어요. 뛰면 잡생각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애교 있는 아들_ 엄마랑 완전 친해요. 엄마한테는 어떤 아들보다 잘한다고 자부해요(웃음). 나이 들수록 아빠보다 엄마와 더 가까워지는 것 같네요. 시사회라도 있으면 엄마를 모시고 가고, 주말이면 꼭 시간 내서 데이트하려고 해요. 여동생보다 제가 엄마한테 더 애교도 부리고 그래요.

가죽 재킷은 맥퀸 제품.

여유 있다는 것_ 저는 여유가 있어요. 그래서 잘 기다릴 수 있고요. 그게 저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감독님이 저에게 ‘경력도 많지 않으면서 왜 이렇게 여유 있니’라고 하신 적 있는데, 저는 데뷔 전부터 이랬어요. 빨리 스타가 되고 싶다는 조급함이 없어요. 요즘 업계가 힘들다고 하잖아요. 다행히 배우 생활을 하면서 다른 일을 병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제 벌이를 하고 있어요. 그 점만으로도 저는 현재에 만족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배우_ 저 자신에게 냉정한 편이에요. 남들을 볼 때보다 저를 볼 때 부족함을 잘 찾고, 부끄러운 순간이 많고, 채찍질하려 해요. 계속 성장해 나아가겠지만, 그럼에도 부족함이 많은 배우일 거예요. 그래서인지 저는 ‘인정받는 배우’보다는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스스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상태라면,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일 것 같거든요. ‘나는 배우로서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만 들어도 제 배우 인생이 성공했다고 봅니다.

차기작_ 요즘 <하렘의 남자들>을 준비 중이에요. 첫 번째 후궁으로 출연합니다. 이응복 감독님이 ‘대화해 보니 네 성격과 딱 맞다, 이 역할을 보면 네가 떠오른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아직은 밝힐 수 없는 작품을 위해 수 개월 동안 춤 연습에 매진했어요. 연기보다 어려운 게 춤이더라고요(웃음).

이태빈

재킷, 셔츠, 넥타이는 발렌시아가 제품.

1996년생
@taevin.lee
숏 드라마 <파이트 스쿨: 랭커들의 전쟁>(2026),
OTT 드라마 <연애 지상주의 구역>(2024),
SBS <펜트하우스>(2020~2021) 등

<펜트하우스>의 ‘헤라 키즈’ 중 한 명. 배우 이태빈이 연기한 ‘이민혁’은 4대째 법조인 집안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반전 없이 안하무인에 철없는 인물이지만 묘하게 미워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부모 덕에 사는 작품 속 ‘이민혁’은 그러나 실제 이태빈과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확신이 분명한 독립적 성향, 무엇이든 꽂히면 바로 움직이는 화끈함을 지닌 그는 스스로 배우의 꿈을 찾아 과감히 자신의 길을 개척해온 타입이다. 2024년에는 BL 소재의 OTT 드라마 <연애 지상주의 구역>으로 여름을 닮은 청량함을 보여줬다면, 2026년 콘텐츠 기업 ‘리디’의 플랫폼 ‘칸타’에서 공개하는 숏 드라마 <파이트 스쿨: 랭커들의 전쟁>에서는 액션 연기에 제대로 도전한다. 이태빈은 고운 선의 맑은 얼굴 뒤로, 맹렬한 추진력을 감추고 있다. 아직 더 보여줄 게 많은 그는 익숙한 얼굴로 시작해, 낯선 쪽으로 이동 중이다.

후디와 쇼츠는 아크네 스튜디오, 슈즈는 드리스 반 노튼 제품.

무조건 도전_ 부모님 심기 거스르지 않고 딱 시키는 것만 하는 아들. 어릴 때 저는 그 정반대였어요(웃음). 아마 부모님 입장에서는 육아 난도가 꽤 높았을 거예요. 저는 독립적이고, 도전하는 걸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무조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요. 공부에 대한 욕심도 컸어요. 중학교 2학년 때 부산에서 혼자 서울로 올라왔고, 고등학생 때는 자취를 했어요. 어차피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김에, 아예 해외로 나가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훌쩍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고요. 물론 부모님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죠. 혼자 몰래 아르바이트해서 번 용돈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으니까요…(웃음).

다시 한국으로_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땐 “물 주세요”라는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어요. 언어가 안 되니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았고요. 자연스럽게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죠. 그때 유일하게 위로가 됐던 게 영화와 드라마였어요. 말할 사람은 없는데, 감정은 계속 쌓이잖아요. 드라마를 보며 웃고, 울고, 화내면서 그 감정들을 조금씩 풀어냈던 것 같아요. 배우들을 보며 위로를 얻은 만큼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문제는 학교에서 성적이 꽤나 좋았다는 거예요. 그대로 공부만 잘했으면 됐을 텐데… 또 사건 하나가 벌어졌습니다(웃음). 당시 학생 한인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국의 대형 음악 기획사들이 뉴질랜드에서 합동 오디션을 열었어요. 저는 오디션을 보러 온 친구들을 인솔하는 역할이었고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 뜻밖의 캐스팅 제안을 받았어요. 어렴풋하게나마 배우를 꿈꾸고 있던 시기라, 솔직히 너무 반가웠죠.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저는 또다시 몰래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웃음).

후디와 쇼츠는 아크네 스튜디오 제품.

<펜트하우스>라는 찬스_ 배우가 되고 치른 두 번째 오디션이 <펜트하우스>였어요. 아마 대한민국의 10대, 20대 배우들이 다 모인 자리였을 거예요. 곁눈질로 보는데 다들 자기소개부터 어필을 정말 많이 하더라고요.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떤 경험을 쌓았고. 그런 분위기에서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어필할 게 없습니다. 아직 아기입니다. 그냥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고, 속에 없는 말을 하는 성격도 아니거든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오히려 꾸짖으셨어요. 없어도 있다고 말하고, 너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고요. 그렇게 오디션은 끝났어요. 당연히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그 모습을 좋게 봐주셨나 봐요. 그렇게 2년에 걸쳐 <펜트하우스> 시즌 1부터 3까지 함께하게 됐어요. 저에게는 정말 복권 같은 작품이에요. 배운 게 너무 많은 현장이었어요. 촬영이 다 끝났을 땐 꼭 졸업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반전의 얼굴_ <펜트하우스> 속 ‘이민혁’으로 저를 기억하는 분이 많아요. 그래서 실제 성격도 어딘가 철없고 밝을 거라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오히려 ‘생각보다 차분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실제 저는 어떤 그림자 속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에 가까워요. 저를 넘겨짚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반대로 앞으로 제가 걸어야 할 길이 잡히는 기분이 들어요. 저는 ‘반전’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제 얼굴에서 어떤 서늘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이를테면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임시완 선배님이 맡은 역할처럼요.

오싹한 이야기들_ 추리소설 마니아예요. 애거사 크리스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아요. 드라마도 미스터리 장르를 특히 좋아하고요. 실화 기반 다큐멘터리도 즐겨 봐요. 넷플릭스 <괴물: 에드 게인 이야기>와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는 최근에 본 작품 중에서도 유독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어요.

셔츠, 넥타이, 팬츠 슈트, 슈즈, 링, 러버 밴드는 발렌시아가 제품.

눈빛만 봐도_ 대사보다 행동이나 눈빛이 먼저 움직일 때, 그런 연기가 참 섹시하게 느껴져요. 저 역시 아무 대사 없이 눈빛만으로 슬픈지, 기쁜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고요. 상대 배우와 연기할 때도 눈을 특히 유심히 보게 돼요. 서로 완전히 호흡이 맞아서 눈에서 스파크가 튈 때가 있거든요. 그 순간이 가장 짜릿해요. 일종의 동물적인 교감 같달까요. 상대방이 준비해온 계획을 다 흩트리는 연기, 거기서 큰 재미를 느껴요. 상대가 저에게 그런 자극을 줄 때 너무 즐겁고요. 그래서 촬영이 끝나고 “오늘 수고하셨습니다”보다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누구나 가진 결핍_ 한 캐릭터를 준비할 때 늘 ‘결핍’부터 찾으려고 해요. <연애 지상주의 구역>에서 맡은 ‘태명하’는 어찌 보면 결핍덩어리의 인물이었어요. 부모에게서도, 친구에게서도, 사랑과 인생 전반에서,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결핍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죠. 그런 ‘태명하’를 보면서 저와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특히 뉴질랜드 유학 시절의 기억이 자주 떠올랐고요. 그 시간은 도전의 연속이기도, 좌절의 연속이기도 했거든요. <연애 지상주의 구역>은 웹소설이 원작인데, 거기서 ‘태명하’를 이렇게 설명해요. ‘불 켜진 집 주위를 서성이는 사람.’ 그 문장이 너무 와닿았어요. 태명하라는 인물이 가진 막막한 외로움을 저 역시 잘 이해하고 있었으니까요.

2026년에 주고 싶은 것_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행복한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어요.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이 있어요. 지금 제가 받고 있는 사랑이 과분하다고 느껴요. 저는 원래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익숙한 사람이라, 팬분들이 보내주신 조건 없는 애정을 어떻게든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어요. 우선 2026년에는 <파이트 스쿨: 랭커들 의 전쟁>이 공개될 예정이에요. 속이 시원해지는 액션 장르인데, 과장 좀 보태 러닝타임의 90% 정도를 제가 싸우고 있을 겁니다(웃음). 이 작품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제대로 된 쾌감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이홍내

나이트 가운, 슬리브리스 톱은 톰 포드 제품.

1990년생
@hongnaelee
티빙 <취사병 전설이 되다>(2026),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2025),
영화 <뜨거운 피>(2021),
OCN <경이로운 소문>(2020) 등

화면 속 럭비공처럼 튀어 오르던 남자. 어디로든 튈 수 있다는 불안정한 에너지를 가진 배우의 이름은 이홍내였다. 2022년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안긴 영화 <뜨거운 피>에서는 등장하는 순간마다 긴장을 끌어올리는 건달 ‘아미’를 연기했고, <경이로운 소문>에서는 극의 중심을 위협하는 핵심 빌런 ‘악귀’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불온하고 위태로운 캐릭터의 자장 안에 있던 이홍내의 행보가 달라진 건 2025년부터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에서 투철한 정의감으로 희생을 불사하는 ‘양 기자’ 역할을 맡아 결을 바꿨고, 2026년 공개 예정인 티빙 <취사병 전설이 되다>에서는 단순하고 어딘가 사랑스러운 취사병 캐릭터로 코미디 연기에 도전한다. 장르도, 인물의 온도도 쉽게 고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배우의 궤적은 어쩐지 럭비공 같다.

파자마는 코치, 부츠는 자라 제품.

씨네키드_ 경남 양산이 고향이에요. 그곳에서도 꽤 외진 동네에서 자라 연기는 특별한 사람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학창 시절 공부에는 딱히 흥미가 없었는데요(웃음). 대신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늘 만화책이랑 무협 소설을 끼고 살았거든요. 돈을 모아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부산으로 영화를 보러 갔어요. 부산역 근처에 있던 오투 시네마.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네요. 서울이든, 일본이든, 뉴욕이든 영화 속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었어요. 그 시절 영화로 세상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우연에 가까운 시작_ 휴일이면 아버지는 늘 거실에서 전쟁 영화를 보셨어요. 그때 막연히 ‘배우가 되면 좋겠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양산은 공업 도시로 유명하잖아요.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졸업 후 공장에 취직했어요. 그런데 어쩐지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는 건 싫더라고요. 그래서 ‘반대로 가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영화계 구인·구직 사이트 ‘필름메이커스’에 촬영팀, 제작부, 배우 가리지 않고 지원서를 넣었는데, 가장 먼저 답장이 온 곳이 배우 쪽이었어요.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었고, 일단 인사나 드려보자는 마음으로 오디션 현장에 갔죠. 그 자리가 결과적으로 제 데뷔작이 된 독립영화 <지옥화>였어요. 운이 좋게도 작품이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됐는데, 마침 그때 군 복무 중이어서 휴가를 내서 영화제에 간 재미난 기억이 있어요.

싱크로율 99%_ 지금 한창 <취사병 전설이 되다>를 촬영하고 있어요. 군에 입대한 주인공이 취사병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에요. 제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완전 재미있습니다. B급 코미디 요소가 다분한데, 코믹 연기는 거의 처음이라 고민이 많아요. 저희 엄마를 웃기라면 자신 있는데 말이죠(웃음). 저는 강림초소의 유일한 취사병 ‘윤동현’을 맡았어요. 요리에 대한 열정만큼은 넘치는데, 문제는 요리를 잘 못해요. 어느 날 부대에 들어온 신참 취사병에게 텃세를 부리면서 모질게 굴지만, 결국엔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여는 인물이에요. 여태까지 맡아온 캐릭터 중 가장 저라는 사람과 흡사해요. 거의 저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나답게 접근하자’는 마음으로 저를 많이 투영시켰어요. 저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꽤 ‘러블리’할 겁니다(웃음).

파자마는 코치, 부츠는 자라 제품.

기다리던 대본_ <애마>는 근래 본 대본 중 최고였어요. ‘드디어 한국에서 이런 드라마가 나오는구나’ 싶었죠. 어떤 배역이든 무조건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운명처럼 ‘양 기자’ 역할을 맡게 됐어요. ‘양 기자’는 정의감이 남다른 인물이에요. 필요하다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약자의 편에 서는 사람이죠. 그 시대 기자가 가졌을 법한 태도와 책임감을 표현하고 싶어서 안경 같은 소품 하나까지도 고민했어요. 그동안 악역을 맡은 경우가 많았던 터라 이 캐릭터를 믿고 맡겨주신 이해영 감독님께 감사한 마음이 커요. “생각보다 잘생겼는데?”라고 하신 말도 덤으로 오래 남아 있어요(웃음). 언젠가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던 연출자였어요. 현장에서 매일 ‘아, 진짜 좋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은 배우가 캐릭터로 살아 있을 수 있도록 미장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분이거든요.

짝사랑 중_ 유수민 감독님의 팬이에요. 2017년 연출하신 단편 독립영화 <악당출현>을 보고 혼자서 오래 짝사랑 해왔어요. 인스타그램 팔로우도 했고요(웃음). 최근에 연출하신 <약한영웅> 시리즈 역시 완전히 ‘취향 저격’이었어요. 하이틴 드라마라는 틀 안에서 이렇게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요. 저는 감독님이 불안하고 미숙한 존재들을 표현하는 방식을 좋아해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불안 속에서 선택하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울컥할 때가 많거든요. 원래 한 작품을 여러 번 보는 편은 아닌데, 감독님 작품은 자주 다시 보게 돼요.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약한영웅>을 연출하신 분이 <악당출현>의 유수민 감독님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그걸 알고 나니 작품이 더 좋아지더라고요. 언젠가는 꼭, 작품으로 만나뵙고 싶어요.

취향 저격_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라면 자연스럽게 끌려요.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과 <파이트 클럽>, 마틴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는 제 인생 영화고요. 이 작품들은 저에게 일종의 마음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에요. 집에서 그냥 틀어놓고, 명상하듯 볼 때도 많아요. <세븐>에서 브래드 피트가 균열 속에서 점점 괴물처럼 변해가는 과정이나, <택시 드라이버>에서 주인공이 전쟁 후유증으로 혼란의 수렁에 빠져드는 모습은 특히 잊을 수 없어요. 인물이 무너지는 과정을 집요하게 끝까지 따라가는 점이 오래 마음에 남아요.

안경, 나이트 가운, 슬리브리스 톱, 팬츠, 슈즈는 톰 포드 제품.

아껴둔 카드_ 언젠가 진득한 멜로물에 도전하고 싶어요. 이를테면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같은 작품이요. 판타지적인 멜로보다는 땅에 딱 붙어서 ‘나도 저런 사랑을 했었지’라는 기억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좋아요. 사투리 연기도 자신 있어요. 지금은 좀 아껴두고 있는 편이에요. 언젠가 때가 오면 정말 미친 듯이 해볼 자신이 있어요.

최선이라는 양날_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에요. 아주 작은 순간에도요. 그런데 이게 또 제 약점이기도 해요. 최선을 다하는 것과 고집을 부리는 건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끔은 내 최선이 어긋난 의욕이나 과한 파이팅이 될 때도 있고요. 사실 오늘 촬영도 그랬어요. 오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엄청나게 시뮬레이션을 그려왔는데, 막상 화보 의상으로 갈아입는 순간 ‘아, 여기서 멈춰야겠구나’ 싶더라고요. 결국 고수들은 툭툭 하잖아요. 성격상 요령이 생겨도 일부러 그 요령을 잊으려고 해요. 너무 편해질까 봐요. 양날의 검이죠.

2026년의 포부_ 2025년에 쉬지 않고 촬영했는데, 정작 인사는 제대로 못 드린 것 같아요. 사실 작품이라는게 저희끼리 찍고 저희끼리 재미있자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엔 관객, 시청자분들을 만나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려고 만드는 거니까요. 그래서 2026년이 더 기다려져요. 기가 막힌 영화와 드라마가 줄줄이 공개될 예정이거든요. 관객과 만나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짜 기가 막힌 작품 많습니다.

이효인

데님 재킷과 스터드 장식 장갑은 발렌시아가 제품.

1998년생
@uiolny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메리 베리 러브>(2026)

아직 어떤 작품도 대중에게 선보이지 않은, 그러므로 앞으로 보여줄 얼굴이 무궁무진한 파릇파릇한 백지의 신인. 지창욱, 이마다 미오 주연의 한일 합작 시리즈 <메리 베리 러브>로 데뷔하고 하반기 기대작인 판타지 장르물에 등장할 이효인의 에너지는 넘쳐흘렀다. 카메라 앞에서 머리칼을 마구 흩날리고 거침없이 포즈를 취하며 에디터의 마음속에 훅 들어온 그녀는 인터뷰에서도 톡톡 튀는 개성을 발산했다. 스탠리 큐브릭의 대담함과 바스키아의 자유분방함, 독특하고도 강렬한 아름다움을 좇는 이효인은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닮아 있다. 바야흐로 새 시대의 새 얼굴이 아닌가. 매캐한 장미 향기가 나는, 순천에서 온, 우리가 처음 본 그 여자.

레오퍼드 패턴 코트는 돌체앤가바나, 레오퍼드 패턴 모자는 로로피아나 제품.

향기_ 오늘 뿌린 향수요? 프레드릭 말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예요. 조금 묵직하고 스파이시한 장미 향이라 겨울에 딱 맞고, 제일 좋아하는 향입니다.

데뷔작_ <메리 베리 러브> 촬영을 앞두고 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선배 배우님들과 촬영할 수 있어 무척 기뻐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찍을 예정인데 대사의 절반이 일본어라, 일본어 수업을 따로 받으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죠.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공부해서 조금은 아는데, 같은 일본어라도 캐릭터에 따라 말투와 억양이 다르잖아요. 제 캐릭터가 ‘차도녀’ 스타일이라 그에 맞는 말투를 구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델에서 배우로_ 사실, 지금의 소속사 대표님이 4년 전에도 연락을 주셨거든요. 당시에는 모델 일에 열중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꾸준히 해가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모델이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일지 고민이 찾아오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향수나 모자 사업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죠. 배우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어서 주저하다가 일단 배워보기라도 하자 싶어서 냅다 연기학원에 가서 첫 수업을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제가 하지 않을 법한 말과 행동을 하고, 아예 딴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게. 그곳에서 연기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 이미 데뷔한 신인들과도 함께 연기를 배웠어요. 그러다 4년 전 연락을 주신 소속사를 다시 만났고, 2026년부터 배우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저 설레고 감사하고 벅차요. 하늘이 도운 것처럼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지고 있어요.

롤모델은 천우희_ 워낙 스펙트럼이 넓은 선배님이잖아요. 일상적인 로맨틱 코미디 <멜로가 체질>과 센 장르극 <더 에이트 쇼>까지 오가는 선배님의 연기를 보면… 밝고 명랑한 인물부터 뻔뻔하고 강렬한 인물까지, 극명하게 다른 캐릭터 연기에 감탄사가 그냥 절로 나와요. 저도 그렇게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떤 작품 오디션에서 제가 롤모델로 천우희 선배님을 꼽으니, 감독님께서 영화 <곡성> 속 선배님의 연기를 해보라며 큐사인을 주시는 거예요. 정말 당황한 와중에도 ‘무명’의 대사를 다양한 버전으로 했던 기억이 있네요. 결과가 어땠냐고요? 붙었습니다(웃음).

레터링 티셔츠는 마크공, 슈즈는 코치 제품.

스탠리 큐브릭_ 가장 좋아하는 감독입니다. 일단 그의 영화는 너무 아름다워요. 미술, 촬영, 음악 모두 빼어나고 독특한 개성이 있어요. 제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데, 그의 영화 장면 장면을 캡처해서 인테리어할 때 참고할 정도예요. 지금 사는 집에도 큐브릭의 영화 포스터가 잔뜩 걸려 있죠. 최애 작품은 <시계태엽 오렌지>. 강렬하고 쨍한 색감과 대범한 미술이 너무 좋았고, 캐릭터와 서사가 도발적이고 파격적이라 몰입하면서 보게 되더라고요. 전 일상성과 거리가 있는 작품에 더 끌리는 사람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큐브릭의 아름다움은 대담함이죠. 미술가 중에선 바스키아의 자유로움을 사랑해요. 형식에 갇혀 있지 않은 자유분방함에 끌려요. 한국 감독님 중에선 박찬욱 감독님을 제일 좋아해요. <올드보이>를 좋아하고, <헤어질 결심>은 극장에서 세 번 봤네요. 탕웨이의 연기가 어찌나 가슴을 치던지요.

좋아하는 패션_ 옷장이 온통 알록달록해요. 무지개 색에 패턴에 스트라이프에…(웃음) 하지만 배우가 되면서부터는 좀 더 절제해서 입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순천에서 온 여자_ 순천에서 나고 자랐어요. 철새와 짱뚱어가 있는 멋진 곳이죠. 저는 서울말을 쓴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감독님은 저에게 사투리 억양이 있다고 눈치채시더라고요(웃음).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비 오면 그냥 맞고 다니고, ‘야자’ 끝나면 친구들과 서로 데려다준다고 집 앞을 밤늦게까지 서성이면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곤 했어요. 저는 순천이 참 좋았는데 부모님께서 큰 도시 가서 더 많은 걸 보고 살아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죠. 대학 진학을 하면서 상경한 케이스예요. 항공서비스학과에 진학했는데,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신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순천 본가에 종종 가요. 마당이 있는 집에서 강아지와 놀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한 일주일 정도 있으면 서울이 그리워지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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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봉사_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피드에 온통 강아지 영상뿐이에요. 본가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보호소에서 데려왔고, 유기견 봉사를 가기도 해요. 겨울엔 방한 작업이 필수거든요. 귀여운 아이들도 보고,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일석이조라 뿌듯합니다.

빈티지 캠코더_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모델 일을 하며 해외 촬영이 정말 많았어요. 거의 20곳 가까이 되는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몇백 벌을 입었네요. 리스본에서 촬영을 마치고 갑자기 파리에 가고 싶어져서 난생처음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했죠. 2시간 거리라기에 즉흥적으로 비행기표를 끊고 날아갔어요. 파리 구석구석을 빈티지 캠코더로 종일 찍었는데, 그 소중한 캠코더를 잃어버려서 자전거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샅샅이 뒤져 간신히 찾았어요. 그때의 모습은 아직 어떤 SNS에도 공개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꼭 직접 편집해서 보여드리고 싶은 연출적 욕망이 있답니다(웃음).

야심_ 저를 처음 보실 모든 분들께, 신선하고 개성 있는 뉴페이스를 만났다는 인상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박찬욱 감독님과 함께 작품을 해보고 싶습니다!

조준영

가죽 셔츠는 아미리 제품.

2002년생
@aim0__2
tvN <스프링 피버>(2026),
티빙 <스피릿 핑거스!>(2025),
MBC <바니와 오빠들>(2025),
티빙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2023) 등

2025년의 조준영은 어느 때보다 밀도 높은 한 해를 보냈다. 공개된 작품 수만 총 네 편. 그의 이름처럼, 정확한 ‘조준’으로 흔들림 없이 매진한 결과다. 그중 웹툰을 원작으로 한 두 드라마는 그에게 ‘웹툰을 찢고 나왔다’는 수식어를 안겼다. 누적 조회수 1억7,000만 회 웹툰을 실사화한 <바니와 오빠들>은 이채민, 노정의 등 지금 가장 파릇한 얼굴을 그러모은 기대작이었다. 그 가운데 조준영은 누구나 한 번쯤 마음에 품었을 법한 다정한 대학 선배 ‘차지원’으로 성공적인 지상파 주연 데뷔를 치렀다. 무채색 청춘들이 저마다의 빛깔을 찾아가는 드라마 <스피릿 핑거스!>에서는 직진밖에 모르는 ‘남기정’ 역으로 원작 팬들의 인정을 얻어냈다. 그 속엔 현장에서도 웹툰을 들여다보며 표정과 눈빛을 다듬던 치밀한 노력이 겹쳐 있을 테다. 곧 웹소설 기반의 <스프링 피버>에서 전교1등 ‘선한결’로 또 다른 얼굴을 꺼내 보인다. 새 얼굴이 ‘하이틴물 남주’의 계보를 잇는다면, 그 바통은 지금 조준영에게 향해 있다.

재킷은 모스키노, 시스루 톱은 아크네 스튜디오, 팬츠는 펜디, 슈즈는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 모자는 에디터 소장품.

눈에 띄지 않으려던 아이_ 어릴 적 저는 부끄럼도 많고 소심한 아이였어요. 심지어 고등학생 때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학교에서 뛰어다니지도 않았어요. 이를테면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에서 제가 맡은 ‘고준희’처럼요. 세훈이 형이 연기한 ‘고유’ 같은 친구랑 있을 땐 장난이 툭툭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얌전하고 공부에 전념하는 부분은 저랑 많이 닮았어요.

첫 연극의 여운_ 목동에서 자라 성실히 공부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러다 공부만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예체능 쪽으로 눈을 돌렸죠. ‘키가 크니까 모델을 한 번 해볼까?’ 하는 호기심으로 모델과를 준비했는데, 특기가 필요했어요. 특기란을 채우기 위해 연기 학원을 찾아갔죠. 그때 마침 연극 준비가 한창이었고, 저는 막내로 뒤늦게 합류했어요. 연습 때만 해도 두려움이 앞섰는데, 막상 무대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다 내려놓고 연기했어요. 극 중에 울부짖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신기하게도 커튼콜을 마치고 대기실에 가서까지 울음이 멈추지 않더라고요. 저와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보는 경험도 재밌었고, 그때 연극이 남긴 감정의 여운이 저를 여기까지 이끈 것 같아요.

오디션에서 배운 점_ 첫 오디션 때는 정말 긴장했어요. 준비도 많이 해서 갔고, 현장 분위기가 크게 엄숙하지 않았는데도요. 얼어붙은 채로 ‘넵’만 반복하다가 제 모습을 많이 못 보여드린 게 큰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여러 오디션을 거친 끝에 내린 결론은 ‘편하게, 릴랙스한 상태로 내 모습을 보여주자’예요. 저라는 사람을 꾸며내거나 과하게 포장하지 않고, 인간 ‘조준영’ 자체로 임하면 분명 알아봐 주실 거라고 믿어요.

가죽 셔츠는 아미리, 타이는 폴로 랄프 로렌, 팬츠는 라코스테, 슈즈는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 wkorea.

<스피릿 핑거스!>의 ‘남기정’_ 저에게 정말 소중한 작품이에요. 이 작품 전후로 제가 많이 변했다고 느끼거든요. 현장에서 처음으로 ‘즐겁게 논다’는 경험을 했어요. 물론 ‘기정’이가 단순하고 발랄한 캐릭터라 가능했던 부분도 있지만, 복잡한 생각은 덜어내고 편하게 연기했어요. 그랬을 때 저도 모르게 자연스러운 모습이 튀어나오더라고요. 안정된 현장에서 편안함을 느낄 때 연기가 잘 구현된다는 걸 깨닫게 해준 작품이에요. 원작과의 싱크로율에도 특별히 신경 썼어요. 웹툰 속 ‘기정’이의 특징을 몇 가지 뽑고, 거기에 제 색깔을 더하는 식으로 인물을 만들어갔죠. 촬영장에서 모두가 장면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던 만큼, 더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내겐 너무 소중한 남동생_ 다섯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있어요. 주변에서는 형제끼리 많이 싸운다고들 하던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동생이 마냥 예뻤어요. 오죽하면 엄마가 “네가 동생 좀 한번 제대로 혼내라”고 하실 정도였죠. 그래서 마음먹고 혼내려던 적이 있는데, 엄마가 문틈으로 살짝 보니 제가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최근에 독립했는데, 올해 중순까지만 해도 저희는 같은 방을 썼어요. 저를 아직도 ‘형아’라고 부르거든요? 연습생 시절에는 집에 함께 살아도 얼굴을 거의 못 마주쳤는데, 나중에 엄마를 통해 동생이 “나 형아가 없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는 걸 듣고 슬펐어요.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사이예요. 곁에 없으면 허전하고요. 동생도 지금 저처럼 배우의 꿈을 꾸고 있어요.

키_ 187cm예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조금씩 컸어요. 큰 키의 비결은 유전인 것 같아요. 아빠는 183cm, 엄마는 165cm, 심지어 동생은 190cm거든요. 물론 어릴 때 우유도 많이 먹었어요.

뮤지컬 덕후_ 최근에 본 뮤지컬은 <팬텀>이에요. 카이 배우님 캐스팅으로 관람했죠. 처음 뮤지컬에 빠지게 된 건 넘버가 너무 좋아서였어요. 노래를 찾아 듣다 보니 좋아하는 배우가 생기고, 배우를 따라가다 보니 아끼는 작품이 생기더라고요. 재연, 삼연까지 찾아볼 만큼 관심이 깊어졌고, 지금은 거의 모든 작품을 섭렵했어요. 함께 뮤지컬을 보러 다니는 친구는 저보다 더 열정적인데, 티케팅도 잘해요. 둘이서 노래방에 가면 뮤지컬 넘버만 부르고, 유산소 운동할 때 플레이리스트도 뮤지컬 넘버입니다.

재킷은 모스키노, 시스루 톱은 아크네 스튜디오 제품, 모자는 에디터 소장품.

좋아하는 영화_ 너무 많지만,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브래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가 출연한 <스타 이즈 본>이에요. 추천으로 보게 된 영화인데, 한동안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했어요. 인물들이 지닌 개성과 아픔, 서로 간의 갈등에 깊이 공감했죠. 세 번 정도 돌려봤고, 지금도 종종 클립을 찾아봐요. OST를 제 컬러링으로 해둘 만큼 애정하는 영화예요.

사투리 연기 도전_ 1월 5일 공개되는 <스프링 피버>에서 처음으로 사투리 연기에 도전했어요. 그동안 영화로만 접해온 사투리를, 모범생이자 평범한 남자아이에 대입하려니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선생님과 정말 많이 연습하고, 이번 작품을 위해 울산 출신 매니저 형과 함께 다니고 있어요. 또, 경상도 출신 감독님과 부산 출신 안보현 선배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신 덕에 이제 제 대사만큼은 마스터한 것 같습니다.

나에게 보내는 새해 카드_ 늘 스스로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도록 경계하고, 평소에는 잔잔함을 유지하려는 편이에요. 그런데 2025년은 그 성격의 이면을 조금씩 마주한 시간이기도 했어요. 감정을 자꾸 숨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둔해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죠. 그래서 이렇게 쓸래요. “2026년에는 예민해지지는 않되, 감정에 더 솔직해지자. 지금보다 진취적인 자세로, 많은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해를 보내자.

주해은

구조적인 드레스와 삭스는 그라운즈, 슈즈는 레페토 X 자크뮈스 제품.

1994년생
@12.24_12.25
영화 <얼굴>(2025), <야구소녀>(2020),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나인 퍼즐>(2025),
넷플릭스 시리즈 <선산>(2024), <지옥> 시즌2(2024) 등

온 얼굴로 웃는 환한 미소, 종종 삐죽대는 입, 드라마 <땐뽀걸스>의 발랄한 ‘양나영’과 영화 <야구소녀>의 꿈는꾸 ‘한방글’이 주해은의 첫인상이었다. 풋풋하던 주해은은 연상호 유니버스에 진입해 <선산>, <지옥> 시즌2, <얼굴>까지 강렬한 인장을 찍었고, 윤종빈이 연출한 <나인 퍼즐>에서는 손석구와 팽팽히 맞서기도 했다. 일상물 속 명랑한 소녀에서 장르물 속 사연 있는 여자가 되기까지, 주해은은 작은 역할이나마 꾸준히 성장해왔다. 철학과를 졸업한 후 니체의 생의 열정을 좇고, <토지> 전권을 독파하며 ‘최서희’를 닮고 싶어 한 뚜렷한 배우. 물리적으로 세상을 겪는 일과 책으로 세상을 만나는 일의 균형을 아는 그녀는 경험과 사색의 조화를 일찍이 파악한 특별한 사람이기도 하다. 준비된 배우, 주해은은 2026년에도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두 작품을 선보인다.

헤어밴드는 오픈와이와이 제품.

연상호 유니버스_ <선산>, <지옥> 시즌2, <얼굴>까지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게 큰 기쁨이죠. 계속 불러주신다는 건 잘하고 있다고 인정해주시는 것만 같아서. 관성적으로 캐스팅하는 게 아니라, 계속 배우들을 관찰하고 뭔가를 새로이 찾아내시는 것 같더라고요. 감독님과의 첫 작품인 <선산> 오디션 때는 아주 큰 감정을 써야 하는 대본을 주셨는데, 집중해서 연기를 마치고 뒤를 돌아서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어요. “좋네요”라는 피드백을 받고 합류한 기억입니다. 촬영 뒤풀이 자리에선 늘 저에게 ‘잘될 거야’라고 해주세요. 감독님에게 배우는 건, 감독님께선 작품 속 세계에 들어가서 노는 느낌을 준다는 거예요. 배우보다 한 걸음 먼저 더 깊이 들어가서, ‘이리 와 봐, 여기 재미있는 거 있어’라고 선보여주시죠. 그걸 따라가다 보면 더 몰입하게 되고, 현장도 재미있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더라고요.

손석구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합_ <나인 퍼즐>은 톤앤무드가 명확하고 큰 그림의 채도와 명도까지 잡혀 있는 작품이었고, 저는 그 세계에 작은 부품으로 들어가 이미 자리하고 있는 배우님들과 합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손석구 선배님은 후배 배우가 훅 따라올 수 있게 많은 걸 건네는 연기를 하시더라고요. 연기라는 건 작용과 반작용인데 반작용의 힘을 크게 쓸 수 있도록 힘을 나눠주셔서 팽팽한 장면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해맑은 <땐뽀걸즈>와 사연 있는 <얼굴> 사이_ 연기를 하던 초반엔 그저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마냥 발랄한 연기를 할 수 있었고요. 차차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현장에 머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어요. 그러한 깨달음이 성숙해진 분위기를 풍기는 게 아닐까요?(웃음) 사람들과 만나 좋은 에너지를 내려면 그만큼 혼자서 사색하고 침잠하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물리적으로 사람과 만나는 시간 외에,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 느리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다스릴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실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머 재킷, 안에 입은 터틀넥 톱, 팬츠, 슈즈는 발렌시아가 제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_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어요. 제가 고 3 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창 베스트셀러였죠. 그 책을 읽고 윤리학, 근본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철학과에 진학했는데, 막상 전공하려니 정말 어려운 거예요. 어려운 길을 계속 가는 힘을 길러준 전공이 아닌가 싶어요.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는 니체인데, 그는 땅에 발을 붙이는 직관적인 철학을 하고 운명에 대한 사랑, 생의 의지를 다잡게 해요. 니체의 ‘초인’ 사상을 보며 내가 한없이 작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곤 하죠.

배우를 꿈꾸게 한 한마디_ 대중문화 비평을 복수 전공했거든요. 수업 중 연기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가장 슬픈 한마디를 반복해서 해보라는 지시를 주셨어요. 누군가는 ‘사랑해’를, 누군가는 ‘미워’를 연기했는데, 저는 그 한마디를 ‘안 돼’라는 말로 정했어요. 수십 번에 걸쳐 조금씩 다른 감정을 실어 ‘안 돼’를 연기하는데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듯한 경험을 했죠. 이런 게 연기인가 싶었고, 그때부터 배우를 꿈꾸게 됐어요.

“왜 그렇게 연기했어요?”_ 제가 오디션에서 가장 듣고 싶어 하는 피드백이에요. 이 질문을 받으면 신나서 다다다 얘기하곤 하죠. 저는 대본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많이 생각해요. 이 인물이 아침엔 뭘 먹는지, 어떤 지병이 있을지, 습관은 무엇일지 같은 것까지 상상했을 때 인물이 더 생생해지거든요. 제게 주어진 배역을 특별하게,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만들고 싶어요. 대본에 드러난 것보다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배우가 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소견입니다.

발산과 절제_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감정을 폭발시키고 에너지를 정확하게 쏘는 연기예요. 그런 역할을 자주 하면서 기술적으로 습득한 부분이 있거든요. 지금의 제가 해보고 싶은 연기는 뭔가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감정을 꽉 눌러서 절제하는, 끝까지 표현하지 못하는 연기예요. 슬픈 짝사랑의 주인공도 좋겠어요(웃음).

박경리의 <토지>_ 대하소설 <토지> 전권을 17세부터 19세까지 2년에 걸쳐 읽었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그냥 같이 머물렀다고 봐도 되겠네요. 그럼에도 읽기를 멈출 수 없던 이유는, 타자기도 없이 손으로 써 내려갔을 그 장대한 이야기의 마력 같아요. ‘서희’라는 강인한 여성이 매번 삶 앞에 들이닥치는 사건들을 헤쳐 나가는 걸 보면서 세상엔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다는 걸,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어린 나이에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그리고 사람은 얼마나 연약하면서 강인한지를 배웠달까요. 지금도 그녀의 대장부 같은 면모를 닮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요즘 드라마 회차가 점점 짧아지잖아요. 이런 원작의 대하드라마 같은 것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다시 오면 좋겠어요.

구조적인 드레스는 그라운즈 제품.

말하지 않아도_ 왕가위의 작품들을 좋아해요. 본능적으로 아름답잖아요. 붉은 조명, 검은 머리, 녹색 치파오… 또한 그의 작품은 대사를 최소한으로 쓰면서 감정을 밀도 있게 전해요. 저는 실제로 사람 사이에서도 말보다 느낌으로 더 많은 접점이 생긴다고 생각하는데,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면 그런 직관적인 느낌으로 사람 사이의 연결됨을 느껴요. 신비로운 대목이죠.

지금 이 순간_ 2025년을 돌이켜봤을 때 오늘이 가장 인상깊어요. 이렇게 멋진 화보도 찍고 마음을 담아 인터뷰도 하고… 한 해 중 오늘이 가장 특별한 하루입니다.

차기작_ 포스트 아포칼립스물과 시대극을 선보여요. 세트, 의상, 분장과 소품이 굉장히 큰 역할을 하는 장르인데, 그 세계에 들어가서 살아본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운 일의 연속입니다. 대중이 제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봐주시고, ‘주해은이다’라고만 해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한 일이에요.

차주완

재킷은 산쿠안즈, 모자는 꼼데가르송 제품.

1999년생
@chajoowan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재혼 황후>(2026),
OTT 드라마 <연애 지상주의 구역>(2024),
영화 <빅토리>(2024) 등

학창 시절 내내, 그러니까 12년 가까이 축구에 매진한 시간은 배우 차주완을 몸부터 반응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라운드 위에서 치열하게, 때로는 자기 자신과 싸우며 외롭게 보낸 시절은 그에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태도를 남겼다. 이런 성장 배경과 특유의 와일드한 인상 덕분에 그는 데뷔와 동시에 여러 작품에서 운동선수 역할로 얼굴을 알렸다. KBS <학교 2021>에서는 태권도부, OTT 드라마 <연애 지상주의 구역>에서는 육상부, 영화 <빅토리>에서는 축구부 선수로 등장하며 화면 속에서 늘 땀이 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배우라는 두 번째 꿈은 이제 그를 다른 방식으로 단련시키는 목표가 됐다. 달리는 법을 몸으로 배운 사람답게, 차주완은 지금도 속도를 조절하며 앞으로를 향해 묵묵히 전진 중이다.

재킷, 데님 팬츠는 앙팡 리쉬 데프리메, 니트 톱은 꾸레쥬, 벨트는 디젤, 슈즈는 어니스트 W. 베이커 by 10 꼬르소 꼬모 서울 제품.

슛돌이 시절_ 축구를 12년 했어요. 학창 시절 골키퍼로 선수 생활을 했거든요. 축구를 하면서는 별의별 일을 다 겪었어요. 부상은 일상처럼 따라다녔고, 50명이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트러블도 피할 수 없었죠. 그때 사람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웬만한 상황은 다 겪어본 것 같아요. 덕분에 눈치 하나는 정말 빨라요. 선후배 문화도 꽤 엄격해서 예의를 자연스럽게 배웠고요. 당시에는 불만이 많았는데, 돌이켜보면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시간이었어요. 공부만 하다 연기를 시작했다면 지금보다 성장이 훨씬 더뎠을 거예요.

몸이 먼저 기억하는 역할들_ 운동선수 역할을 유독 많이 맡았어요. <연애 지상주의 구역>에서는 육상부, <빅토리>에서는 축구부, <학교 2021>에서는 태권도부 선수였고요. 2024년부터 출연 중인 예능 프로그램 JTBC <뭉쳐야 찬다>에서도 여전히 공을 차고 있네요. 이런 역할에는 자신 있을 수밖에 없어요. 특히 코치님에게 혼나거나 선후배 사이 기강을 잡아야 하는 장면이요. 워낙 제 일상이었거든요(웃음).

두 번째 꿈_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축구를 하며 늘 따라다닌 생각이에요. 솔직히 과거 그다지 인정받는 선수가 아니었어요. 재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고요. 그러다 생긴 제2의 꿈이 연기였어요. 축구를 그만둘 땐 그만큼의 각오가 필요했어요. 부모님 반대도 컸고요. 지금껏 부모님께 지원을 많이 받았으니 연기만큼은 내 힘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유튜브에 ‘배우 되는 법’을 검색해서 남몰래 준비했고, 중식당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프로필 촬영까지 했어요. 어느 날 아버지께 계약서를 보여드리며 말씀드렸죠. “축구 그만하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증명은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었어요.

재킷, 데님 팬츠는 앙팡 리쉬 데프리메, 니트 톱은 꾸레쥬, 벨트는 디젤 제품.
재킷, 데님 팬츠는 앙팡 리쉬 데프리메, 니트 톱은 꾸레쥬, 벨트는 디젤 제품.

나의 성격_ 단순한 편이에요. 막 화내다가도 하루 지나면 기억이 잘 안 나고요. 친구랑 치고받고 싸웠다가도 다음 날 얼굴 보면 그냥 ‘어휴’ 하고 넘겨요. 승부욕은 강해요. 뭐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려요. 최근 제과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못하는 저 자신에 화가 나더라고요. 손을 덜덜 떨면서 마카롱을 만들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잘 만든다는 게 뭔지 보여줘야지.’(웃음) 그런데 또 여린 구석도 있어요. 촬영이 끝나고 나면 혼자 자책할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요즘엔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나 자신을 조금 덜 몰아붙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에요.

<연애 지상주의 구역>_ 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작품이에요. 사실 이 작품을 만나기 전, 다른 BL 드라마의 최종 오디션에서 한 번 떨어진 적이 있어요. 그때 괜히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두고 보자. 내가 BL 찍으면 1등 한다.’ 그런데 <연애 지상주의 구역>이 정말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죠. 극 중 ‘태명하’(이태빈)와 사랑에 빠지는 ‘차여운’은 육상선수로 저와 닮은 구석이 많은 인물이었어요. 마음속에 그늘을 안고 사는 캐릭터인데, 그 외로움이 낯설지 않았어요. 운동선수라는 직업은 끝없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잖아요. 그 과정이 얼마나 외로운지 잘 알고 있어요. 너무 하고 싶은 역할이어서 오디션을 앞두고는 잠도 거의 못 자고 목이 쉴 정도로 연습해서 갔어요. 그만큼 간절했던 작품이에요.

<재혼 황후>로 보낸 나날_ 대선배님들이 계신 현장이었어요. 긴장도 부담도 커서 현장에서 준비한 걸 제대로 못 펼치겠더라고요. 제가 덜덜 떨고 있는 게 보였는지 선배님들께서 먼저 다가와 많이 다독여주셨어요. “신인 때는 원래 혼나고 주눅 들기 마련이야. 그게 다 거름이 될 거야.”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상심해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그 한마디가 너무 큰 힘이 됐죠. 작품에 시대극 요소가 있다 보니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참고하기도 했고, 주지훈 선배님이 네이버 시리즈 캠페인 영상으로 참여한 <하렘의 남자들>도 여러 번 돌려봤어요. 2026년 <재혼 황후>가 공개되는데,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재킷, 팬츠, 슈즈는 산쿠안즈, 모자는 꼼데가르송 제품.

쉬는 날에_ 주로 도자기 공방에 가요. 손재주가 있는 편이라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거든요. 평소엔 좀 산만한데, 물레를 돌리기 시작하면 신기하게 차분해져요. 잡생각도 사라지고요. 그리고 소질도 꽤 있어요(웃음). 초등학생 때도 늘 1등으로 작업을 끝냈고, 대학에서 들은 도예 수업에서 A+도 받았어요. 접시, 컵, 수저 받침대, 저금통까지 웬만한 건 다 만들어봤어요. 팬 미팅 때는 직접 만든 반지를 나눠드린 적도 있고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_ 요즘 푹 빠져 있는 배우예요. 그의 일대기와 필모그래피를 차근차근 정주행하고 있어요. <타이타닉> 속 디카프리오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디카프리오는 정말 완전히 다른 사람이잖아요. 그 간극이 너무 신기해요. 필모그래피를 순서대로 따라가다 보면, 한 배우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가 선명하게 보여요. 작품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꺼내드는 것, 그게 제가 지향하는 연기이기도 해요.

“의심하지 마”_ 2026년을 이 한마디로 열어보려고요. <뭉쳐야 찬다>에서 구자철 감독님이 자주 하시던 말이에요. 사실 프로그램 초창기에는 악플도 많이 받았어요. 선수 출신치고는 못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죠. 그때 감독님이 말씀하셨어요. “너 자신을 믿고, 의심하지 마.” 신기하게도 그 말을 들은 뒤로 플레이가 술술 풀리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2026년에도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가고 싶어요. 아, 그리고 곧 MMA에도 도전할 생각이에요. 요즘 부상 때문에 몸이 근질근질했거든요. 이제 다시 달려봐야죠.

최유리

셔츠, 재킷은 오니츠카 타이거 제품.

2009년생
@choi_yuri.0212
영화 <좀비딸>(2025), <외계+인>(2022, 2024), <원더풀 고스트>(2018),
JTBC <이태원 클라쓰>(2020) 등

최유리를 보고 두 번 크게 놀랐다. 처음 봤을 때는 빛이 날 만큼 예뻐서, 대화할 때는 아이와 소녀와 어른이 한 몸에 다 있는 것 같아서. 친구들이 ‘장래 희망’란에 뭘 적을지 고민할 때, 유리는 늘 담담하게 ‘배우’라고 썼다. 2015년 김유정의 아역으로 영화 <비밀>에, 2016년 <아이가 다섯>이라는 주말연속극에 출연한 귀염둥이는 2025년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 <좀비딸>의 ‘수아’에 이르렀다. 그 사이 드라마 <마더>, <미스터 기간제>, <이태원 클라쓰>, 영화 <원더풀 고스트>, <외계+인>, <소풍>, <검은 수녀들> 등등 많은 작품을 거치며 성장사도 썼다. 자신의 최고선은 ‘즐거움’이라고, ‘즐거움으로 인해 마음이 동하면 꽃힌다’고 말하는 열일곱 살. 유리는 정갈한 언변과 다종다양한 호기심, 캐릭터 해석의 중요함을 아는 경험치까지 갖췄다. 유리가 저항 없이 활짝 웃을 때는 해맑고 밝아서 안심이 된다. 발견의 기쁨을 안겨준 이 배우가 소녀에서 숙녀로 가는 순간을 화보로 남길 수 있어서 행운이다.

안경은 끌로에, 후디는 잉크, 스커트는 준지 제품.

<좀비딸>의 수아_ 제가 몸치였어요. 좀비 연기와 ‘넘버 원’에 맞춰 춤추는 연기를 위해 안무가 선생님이 저를 잘 이끌어주셨죠. 저도 열정을 가지고 했고요. 연습실에 가면 늘 스트레칭 후에 ‘좀비 걸음’을 연습하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그러곤 장면 연습을 했죠. 영화 마지막 장면에 대해 말해도 되려나요? ‘수아’가 아빠 앞에서 엉엉 울잖아요. 감독님이 ‘컷’, ‘오케이’를 하신 후에도 계속 훌쩍거렸어요. <좀비딸> 후반으로 갈수록 제가 정말로 수아가 된 것처럼 연기했거든요. 그 장면 때는 연기를 한 것도 아닌 듯도 해요. 그냥 제가 수아였어요.

연기 코치가 되어준 우리 집 ‘강만두’_ 제가 네 살 때 우리 집에 만두가 왔어요. 머리가 정말 만두만 해서 ‘만두’라는 이름을 붙여줬어요. 강아지 ‘강’씨고요(웃음). 만두는 제가 <좀비딸>을 찍을 때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준 선생님이기도 해요. 감독님이 동물의 움직임을 참고해서 준비하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제 생각도 같았어요. 수아는 좀비여도 수아만의 사랑스러운 매력이 있는 캐릭터거든요. 동물 친구들을 참고해 연기하면 사납지만 깜찍하기도 한 그 매력이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했죠. 강아지가 ‘으르렁’거리면 살짝 무섭기도 하지만, 그럴 때 귀엽고 더 놀아주고 싶기도 하다는 걸 만두 덕분에 알았어요.

캐릭터가 된다는 것_ 우선 대본을 계속 읽어봐요. 좀 읽고 나서는 ‘이 캐릭터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알아가려 해요. 알아갈수록 캐릭터와 친해지는 느낌인데, 분석을 마치고 나면 제가 그 캐릭터 자신이 된 느낌이에요.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캐릭터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해석인 것 같아요.

연기의 재미_ 꾸준히 느낀 건데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게 저한테 큰 흥밋거리였던 것 같아요. ‘삶이 드라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이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존재하지 않는, 혹은 존재하는 사람의 삶을 경험해보면서 최유리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된다는 것이 재밌어요. 또 제가 ‘이야기’를 워낙 좋아해요. 작품이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과정에서 성취감도 느끼고요.

셔츠, 재킷, 팬츠는 오니츠카 타이거, 슈즈는 로에베 제품.

요즘 고민이라면_ 아무래도 학생이니 학업 관련해서 좀 고민이 있긴 해요. 다른 친구들처럼요. ‘성적이 조금만 더 높으면 좋을 텐데’ 싶어요. 배우도 하나의 예술인이라는 점에서 음악을 사랑하는데,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어요. 최근에는 오페라에 관심이 생겼고요. 좋아하는 만큼 잘 외우고 싶거든요. 고전 음악이다 보니 낯설어서 생각만큼 잘 안 외워진다는, 그런 사소한 고민도 있네요.

좋아하는 과목은 과학_ 과학을 제일 좋아해요. 이과 성향은 아니에요. 제일 자신 없는 과목은 수학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너무 많았는데, ‘이거는 왜 이렇게 된 거지?’ 하면서 특정 원리나 현상에 대해 알아가는 게 신기했어요. 고등학교 입학해서는 생명과학이 정말 재밌더라고요. 시험 공부를 할 때도 과학을 편애하는 편이에요(웃음). 관심과 열정을 가진 만큼 결과가 나와서, 저번 중간고사 때는 과학 시험에서 하나 빼고 다 맞았어요! 과학 다음으로 좋아하는 과목은 국어와 사회예요.

<고양이 전사들>에서 <이방인>까지_ 배우 말고 또 어떤 직업에 관심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작가’라고 대답해요. 글 쓰는 걸 좋아해요. 시 쓰는 것도요.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준 책이 <고양이 전사들>이라는 소설이에요. 어린이나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이지만 기자님한테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책이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구나’,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하면서 저도 펜을 잡게 됐어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잠 없는 꿈’도 좋아해요. 최근 재밌게 읽은 책은 <죄와 벌>. 네? 학교 도서관에 있었어요. 어떻길래 그렇게 유명한 책인가 싶어 읽어봤는데 재밌더라고요. 요즘은 <이방인>을 읽고 있어요. 잠들기 전에 책을 읽는 일이 많다 보니 침대에 책이 하나둘 쌓였어요.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시곤 이러세요. “그 책들 좀 치워보는 게 어떻겠니?”

어느 날 갑자기, 새_ 새를 사랑하게 됐어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날아와서 제 가슴에 꽂혔다고 해야 할까요. 까마귀, 부엉이, 소쩍새를 특히 좋아해요. 까마귀요? 너무 귀엽잖아요. 까마귀가 똑똑한 거로 유명해요. 저보다 똑똑한 것 같기도 해요. 유튜브로 새에 대해 찾아보다가 이젠 조류도감도 보고 있어요.

안경은 발렌시아가(위), 젠틀몬스터(아래) 제품.

해보고 싶은 역할_ 말하기가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좀 나쁜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제 인상이 순하다 보니 밝거나 좀 묘한 캐릭터를 많이 맡았는데, 반대로 나쁘거나 날카로운 캐릭터를 해보면 정말 재밌겠다 싶어요. 학원물에도 관심 있어요. 학생 역할을 더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꿈_ 어릴 때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주목받는 걸 좋아했어요. 다들 ‘잘한다’ 해주시니까 그게 즐거웠던 것 같아요. 어렴풋하지만 ‘내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다’, ‘이거 재밌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드라마 <마더>를 촬영할 때부터인 듯해요. 화면 너머로 감동과 울림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때로는 눈물 흘리게 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배우요. 언젠가 저도 그렇게 김태리 배우님 같은 배우가 된다면, 그때는 ‘아, 꿈을 이뤘구나’ 할 수 있을 것 같답니다.

TMI_ 화장에는 별 관심이 없는데, 옷에 관심 많아요. 정장처럼 갖춰 입는 스타일을 좋아해서 옷장에 셔츠가 다양하게 있어요. <좀비딸> 들어가기 전에 체력을 키울 겸 잠깐 복싱을 배웠고, 그 후엔 발레를 배우다가 최근 들어 필라테스를 해요. 아, 장미를 기르는 중이에요. 햇빛 잘 받으라고 옥상에 올려놨어요. 장미를 보면서도 느끼는데, 제가 운치와 낭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좀 뜬금없죠?

피쳐 디렉터
권은경
피쳐 에디터
전여울
패션 디렉터
김신
패션 에디터
김현지
홍수정(조준영), 이예지(이효인, 주해은)
포토그래퍼
박현경(김민, 이태빈, 이효인), 니콜라이 안(우현준, 유정후, 이홍내, 조준영, 주해은, 차주완, 최유리)
헤어
홍현승(김민, 조준영, 주해은), 임안나(우현준, 유정후, 이홍내, 차주완), 장해인(이태빈), 광효(이효인), 박세민(최유리)
메이크업
유혜수(김민, 우현준, 이홍내, 차주완), 조혜미(유정후), 임정인(이태빈, 조준영, 주해은, 최유리), 김태영(이효인)
어시스턴트
박예니, 김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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