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에 일어나는 일

전여울

일찍 일어나는 새는, 피곤하다. 한평생 이 말을 지론으로 삼던 직장인이 이른 아침부터 낯선 이들과 커피를 마시며 대화 하고, 러닝을 하고, 리듬에 몸을 맡겨 레이브 파티를 즐기는 모닝 커뮤니티에 발을 디뎠다. 출근 전에 일어나는 다소 수상하고도 매혹적인 일들에 대하여.

“각자 자기소개를 간단히 해볼까요? 나이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좋고요. 명함을 주고받는 것도 가급적 삼갑시다. 오늘 대화 주제는 가볍게 ‘올 추석엔 뭘 하며 지낼까’로 해볼까요?” 오전 8시였다. 서울의 한 카페, 이름도 모르는 여덟 남녀 사이에 내가 있었다. 아침형 인간의 반대에 올빼미형이 있다면, 나의 경우 ‘새벽형 인간’이다. 평균적으로 새벽 2시에 취침하고(출근 시), 해가 밝을 때 잠에 드는 경우도 많다(주말). ‘왜 너만 유럽 시차로 사느냐’는 동료들의 말이 농담 반, 걱정 반으로 들릴 때도 있다. 근태 문제로 조만간 직장에서 잘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아주 비현실적 상상만은 아니었다. 그런 내가 타의가 아닌 순전히 자의로, 아침 8시의 모닝 커피챗에 참석하고 있었다. 해가 뜨려는 이른 아침, 커피 향이 가득한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 둘러앉은 채로 말이다.

생각해보면, 서울의 밤은 길었고 아침은 없었다. 야근과 회식, 새벽의 클럽까지 이 도시는 오랫동안 ‘밤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나만 해도 체력이 버텨주던 작년까진 퇴근과 동시에 술집으로 출근해, 지하철 첫차가 다닐 때까지 잔을 부딪치곤 했다. 아침은 지난밤의 피로를 대충 눌러놓은 반창고 같은 시간이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아침은 ‘시작’이 아니라 ‘지난밤의 흔적’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도시의 리듬이 달라지고 있다. 밤의 끝자락이 아니라 해가 뜨기도 전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거나, 러닝화를 신고 아침 강변을 달리고, 심지어 댓바람부터 술 한 방울 없이 춤을 추는 레이브 파티를 즐긴다. 이른 시간대에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모닝 커뮤니티’, 술 대신 갓 추출한 커피가 중심이 되었다 하여 ‘소브리티(Sobriety)’ 트렌드라 불리기도 한다. 쉽게 말해, 회장님들의 네트워킹 장으로 여겨지던 ‘조찬 모임’을 젊은 세대에 맞게 ‘힙’하게 확장하고 재해석한 시도들이다. 대표적으로 ‘서울모닝커피클럽’, ‘더 제로 클럽’, ‘아침(Achim)’ 등 이른 시간대를 공유하는 요즘의 이 낯선 모임들은, 점점 이 도시가 깨어나는 새로운 리추얼로 자리 잡고 있다. 200명 정원에 1,000명이 몰렸다는 서울모닝커피클럽의 ‘모닝 레이브’ 대기 줄은 그 변
화의 상징적 풍경이다.

‘아침을 지배하는 자, 인생도 지배하리라.’ 이 같은 선언이 사실 낯설게 들리진 않는다. 고릿적 조상들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했고, 근면과 성실이 미덕인 산업화 시대에 아침은 도덕적 서열의 정점에 놓인 시간이기도 했다. ‘미라클 모닝’ 열풍이 한때 사회를 휩쓴 것도 기억난다. 그러니 사람들이 아침에 모여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이 완전히 새롭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풍경이 달라졌다. 근면의 윤리가 삶의 표준이던 시절을 지나, 이어진 ‘갓생 살기’ 열풍, 그리고 ‘허슬 문화’로 이어져온 생산성의 신화는 이제 다른 얼굴로 변주되고 있다. 아침은 더 이상 성취의 시간이라기보다, 함께 깨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올해로 론칭 3년 차를 맞은 모닝 커뮤니티 플랫폼 ‘서울모닝커피클럽’의 박재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의 미라클 모닝 열풍은 주로 개인의 자기 계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새벽에 일어나 독서나 운동, 공부를 혼자 실천하는 방식이었죠. 개인의 의지와 성취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의 아침 커뮤니티 문화는 조금 달라요. 요즘은 혼자만의 루틴을 넘어서 ‘함께하는 경험’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어요. SNS를 통해 ‘나 혼자만 일찍 일어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은 시간에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라는 동시성을 느끼고 싶어 하는 거죠.” 그의 말처럼, 지금의 모닝 커뮤니티는 연결을 욕망하는 세대의 감수성과 맞닿아 있다. 팬데믹의 복합적인 트라우마를 거치며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친밀함보다, 필요할 때 가볍게 이어질 수 있는 관계를 선호하게 됐다. 오로지 신청한 사람들만 모이고, 내일은 또 다른 얼굴과 만나는 모임. ‘선의의 타인’들과 느슨하지만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만남. 약간의 위로가 아닌 실체 있는 위로, 수많은 연결이 아닌 단 하나의 확실한 연결. 요즘의 아침 모임은 바로 그 적절한 밀도의 관계망을 제공하는 장인 셈이다.

알람보다 강력한 알람이 있다면, 그건 아침 커뮤니티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 짧고 강렬한 아침을 누리기 위해 익명의 다수가 모인다. 그런데 요즘의 모닝 커뮤니티는 단순히 커피챗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 러닝 열풍에 힘입어 ‘모닝 런’이 열리고, 어딘가에선 해 뜨기 전부터 비트에 몸을 맡기며 춤을 추는 ‘모닝 레이브’가 한바탕 펼쳐진다.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 카페인의 각성과 파티의 에너지가 뒤섞인 낯선 광경. 특히 이 모닝 레이브는 지금의 흐름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2013년 뉴욕의 카페 ‘데이브레이커(Daybreaker)’가 술 없이 즐기는 아침 레이브를 처음 선보인 이후, 작년을 기점으로 미국과 호주를 거쳐 아시아로 번졌다. 홍콩, 방콕, 인도에 이어 서울까지 커피와 비트로 시작하는 도시의 아침이 전 세계를 순환 중이다. “요즘 세대는 밤 문화를 즐기면서도 술은 피하죠. 괜히 ‘소버 라이프(Sober Life)’가 대두된 게 아니에요. 그렇다고 문화를 통째로 거부할 필요도 없으니, 그 빈자리를 메울 새로운 방식을 찾은 거예요. 밤 문화의 규칙에 침범받지 않은 아침, 모닝 레이브는 어쩌면 이 시대의 작은 생추어리 같은 거죠.” 커피, 러닝, 레이브가 결합한 국내 최대 규모의 모닝 웰니스 파티를 개최하는 ‘더 제로 클럽’의 디렉터 김록의 말이다. 확실히 지난밤 한탕의 대가로 받은 술값 영수증은 꽤나 냉정하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숙취다. 취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파티, 밤이 아닌 아침의 레이브, 웰니스와 재미를 동시에 충족하는 새로운 놀이 형식이 필요했다. 모닝 레이브는 이러한 대체 문화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는 가장 완벽한 해답인 셈이다. “다만 아침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유난 떤다는 주변 시선으로부터 무뎌질 용기는 좀 필요합니다(웃음).” 김록이 덧붙였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시간이지만, 그 풍경은 문화권마다 다르다. 서구 도시들에서는 아침 문화가 이미 일상의 일부다. 이른 시각 문을 여는 카페가 많고, 그곳은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여드는 플랫폼이 된다.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건네고, 그 만남이 일종의 루틴으로 이어진다. ‘아침에 갈 곳이 있다.’ 그런데 이 단순한 문장이 한국에서는 좀처럼 성립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20대를 보내다 한국으로 들어온 서울모닝커피클럽의 박재현 대표가 ‘왜 서울에는 아침 일찍 문 여는 카페가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커뮤니티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서울은 오랫동안 밤에 맞춰진 도시였다. 해 뜨기 전 문을 여는 공간도, 그 시간대를 나눌 문화적 인프라도 드물었다. 그 결핍이 오히려 새로운 문화를 싹트게 한 셈이다. “서울에서의 아침 문화는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라, 억지로라도 여유를 계획해내는 것에서 출발했어요. 이 지점이 서울 특유의 요소라고 생각해요. 의식적으로 시간을 비우고, 일부러 아침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아침 모임에 참여하는 행위 자체가 곧 자기 선언이자 자기 관리가 되죠. 그 덕분에 서울의 아침 커뮤니티는 더 강한 의미와 결속력을 가지게 된다고 보고요.” 그의 말처럼 서울의 아침 문화는 도시의 속도를 거슬러 생겨난 실천에 가깝다. 타임 버티컬 플랫폼 아침(Achim)의 디렉터 윤진도 말한다. “전혀 없던 문화는 아니에요. 다만 그 시간에 연결될 방법이 모호했을 뿐이죠. 무엇보다 ‘연결자’가 없었다는 게 커요.” 하지만 이제 서울에도 아침을 위한 다양한 ‘거점’이 생겨나는 추세다. 커뮤니티적 움직임이 가능해진 지금, 박재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는 커뮤니티 리더가 새로운 인플루언서가 될 것이라 봐요. 이제는 팔로워 수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모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니까요. 팬데믹 이후 여행 인플루언서가 주목받았듯, 곧 웰니스 커뮤니티 리더들이 빛나는 시기가 올 겁니다. 지금의 모닝 커뮤니티들은 바로 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서울은 전 세계에서 트렌드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도시다. 일도 유흥도 놓치지 않으려는 한국적 근면함 덕분에, 이곳은 모닝 커뮤니티라는 새로운 문화를 실험하기에 더없이 유리한 장이 된다. 다만, 한국의 모닝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수입품’의 기운이 묻어난다. 스몰토크 문화가 희박하고, 다수 속에서 이질감보다 동조를 택하는 정서상 낯선 사람들과 아침을 공유한다는 건 여전히 약간의 어색함을 동반한다. “물론 한국 사람이 먼저 다가가 낯선 이와 쉽게 어울리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일단 판이 깔리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즐기는 성향이 있죠. 그래서 플랫폼이나 포맷만 제공되면 금세 몰입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아요. 게다가 아침 모임은 내향인에게도 최적이에요. 대개 오전 7~8시에 시작해 1시간 남짓 진행되기 때문에 ‘저 이제 출근해야 해서요’라는 완벽한 핑계를 대며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죠. 사실상 내향인을 위한 커뮤니티 매뉴얼이 이미 내장된 셈이에요.” 박재현 대표의 말이다. 이처럼 서울의 모닝 커뮤니티는 한국적 정서 위에 세워졌지만, 그 밑바탕에는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변화의 흐름도 깔려 있다. 김록 디렉터는 그 점을 이렇게 짚는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피트니스 신 열풍이 지금의 아침 문화를 견인했죠. 혼자 하던 운동에서 그룹 운동으로 수요가 옮겨갔고, 공급자 입장에서도 과도한 출혈 경쟁 속에 그룹 운동에 집중하게 된 거죠. 특히 젊은 층에서는 ‘함께한다’는 감각이 중요해졌고, 러닝 크루 문화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어요. 이런 맥락에서 러닝은 지금 모닝 커뮤니티를 지탱하는 핵심적 요소인 셈이죠.”

갓 눈을 뜬 순간, 무엇이든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대. 아침은 어쩌면 하루 중 가장 많은 가능성을 품은 시간이다. 이 잠재력 높은 시간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단순한 모임은 자연스레 곧 하나의 시장이 된다. 서울모닝커피클럽은 특히 투어리즘에 초점을 맞춰 홍콩관광청과 손잡아 ‘홍콩 와인앤다인 페스티벌’을 연계하고, 하나투어와 제휴해 경북 호미곶 일출 여행 프로그램 등을 기획했다. 피트니스를 중심으로 한 더 제로 클럽은 언더아머와 마케팅 이벤트를 진행했고,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과 파라다이스시티 등 호텔 브랜드와 협업해 ‘런 레이브’ 행사를 개최했다. 브랜드 협업을 넘어, 지난 8월에는 뮤지션 크러쉬가 새 앨범 〈Fang〉을 발표하는 자리로 모닝 레이브 현장을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아침은 도시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소비 영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요. 전시 관람, 조조 영화, 나아가 지역 기반의 아침 마켓까지도 가능하다고 봐요.” 박재현 대표의 말처럼, 아침은 점점 더 많은 산업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아침 프로비전의 윤진 디렉터도 덧붙인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이잖아요. 그래서 웰니스, 식음, 미디어, 플랫폼 등 ‘건강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담을 수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확장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아침은 이제 하루의 출발점만이 아니다. 새로운 문화와 산업이 교차하는 도시의 첫 번째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그게 바로 아침 커뮤니티의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 이른 아침, 평소라면 알람을 미뤘을 시각, 그때 나선 커피챗을 다시 떠올린다. 하루의 시작에 익명적이지만 건강한 연결을 위해 모인 사람들. 시부모에게 센스 있는 명절 선물로 점수를 따려는 예비 신부, 새로운 수입처를 뚫어 회심의 한 방을 노리려는 애견 산업체 대표, 온갖 갈등이 예상됨에도 여자친구와의 동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가구 편집숍 대표까지. 그날 내 앞에 앉은 선의의 타인들과 나눈 대화에는 어떤 거리도, 어색함도 없었다. 사실 커피챗을 마치고 나오는 길, 대화를 통해 나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새롭게 비춰봤다는 사소한 통찰보다도, 아주 오랜만에 삶의 주도성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침 7시 전에 집을 나선다는 건 생각보다 단순한 의지 이상의 선택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간다’는 조용한 선언에 가깝다. “백지 같은 도화지에 점을 찍을지, 선을 그을지, 색을 칠할지 스스로 결정하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주체적인 삶에 대한 욕망이 강한 시대에, 스스로 삶을 끌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아침 커뮤니티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만들고 싶은 건 ‘이른 기상’이나 ‘미라클 모닝’이 아니에요. 그 시간을 주도적으로 채워가는 일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모닝 오너(Morning Owner)’가 될 수 있죠.” 아침(Achim) 커뮤니티 오너 박지완의 말이다. 아침 커뮤니티가 그 자체로 웰니스이자 일종의 럭셔리가 된다는 말, 그 활동이 도시 안에서 지역 기반의 연결을 만든다는 말. 그러나 무엇보다 본질적인 건, 아침을 여는 주체가 ‘타인’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을 뜬다. 세상보다 먼저 깨어 있는 그 잠깐의 시간, 다시 나로 돌아오는 리추얼을 시작한다.

사진
COURTESY OF THE 0 CLUB, AC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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