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스에서 피어난 재스민이 샤넬 N°5로 우리의 코끝에 당도하기까지, <더블유>가 그 향기로운 여정에 동행했다.

여름 불볕더위가 한풀 꺾이기 시작하는 8월부터 10월까지, 프랑스 남부 그라스에선 꽃잎을 활짝 피운 재스민의 꽃 내음이 공기 중에 향긋하게 떠다닌다. 그라스 재스민의 90% 이상은 바로 이곳, 샤넬 하우스와 1987년부터 파트너십을 맺어온 뮬 가문의 농장에서 재배된다. 이른 아침부터 재스민 수확이 한창인 가운데, 농장주 죠세프 뮬 가문의 사람들은 농장을 둘러보며 수확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줄기 안쪽에 미세 관수는 잘 이뤄지고 있는지, 재스민의 개화 상태가 나쁘지는 않은지 등을 꼼꼼히 살펴본다. “한번 직접 맡아보시겠어요?” 농장주가 갓 따서 건넨 새하얀 재스민꽃에서 샤넬 N°5의 우아한 향이 달콤하게 피어났다. “재스민꽃 향기는 한번 맡으면 코끝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요. 이제 막 수확한 꽃잎을 이렇게 한 가득 만지고 나면 온종일 손에서 향기가 나죠. 재스민 꽃잎은 정말 연약하고, 햇볕에도 취약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따야 하고, 꽃잎을 담은 바구니에는 항상 이렇게 젖은 천을 덮어둬야 해요. 또 너무 가벼운 꽃이라 아주 많이 따야만 귀중한 정수 한 방울을 얻을 수 있답니다. 아, 이제 바람이 좀 불어오기 시작하네요.” 뜨겁고 건조한 햇빛 아래 거짓말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현재 죠세프 뮬과 함께 이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그의 사위 파브리스 비앙키는 꽃을 키우는 건 아이를 성인으로 키우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어떤 화학 비료나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토양이 고갈되는 위험 없이 최고 수준의 꽃을 재배하기 위해 기술을 꾸준히 개선하고 있어요. 작물을 재배한 다음엔 휴경해 땅을 쉬게 하고, 토양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진행합니다. 가장 향기로운 꽃을 생산하는 동시에 그 향의 품질을 미래에도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자 의무죠.”
“나는 꽃 속에서 태어났다”

죠세프 뮬의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향수 원료 재배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라스에서도 무려 5대째 가업을 이어오며 독보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뮬 가문은 샤넬이 몇 년 전 매입한 추가 10헥타르를 포함한 총 30헥타르에 이르는 농장에서 재스민뿐만 아니라 메이로즈와 아이리스, 제라늄, 투베로즈까지 샤넬만을 위한 5가지 특별한 작물을 키우고 있다. 1987년 샤넬 하우스 조향사 쟈끄 뽈쥬의 주도로 시작된 이 특별한 파트너십은 위기에서 비롯됐다. “그라스 지역 재스민 생산량은 점차 감소했고, 우리는 향수에 사용할 충분한 양의 포뮬러를 얻지 못할 상황을 걱정해야 했죠. 당시 그 누구도 재스민을 다시 재배하는 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향수의 수도로 불리기 전, 그라스는 12세기엔 가죽 산업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가죽에 여전히 남아 있는 마구간 냄새를 지우기 위해 17세기 초 가죽에 향을 뿌리기 시작했고, 비옥한 토양과 이상적인 기후로 그라스는 가죽 향수에 필요한 꽃 재배지로 이름나기 시작했다. ‘향수의 발상지’라는 명성을 얻으며 향 추출 공장부터 무역상, 조향사들까지 모여들며 향수 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난 것. 그러나 향수의 성지도 20세기 부동산 개발의 열풍을 피해갈 순 없었다. 개발자들이 농장을 사들이면서 꽃들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샤넬 하우스는 식물 원료 재배에서 추출 과정에 이르는 모든 생산 공정을 추적 관리할 수 있는 일련의 혁신에 돌입한다. 뮬 가문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향수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시작했으며, 농장 중앙에 향료 추출 공장을 설립해 갓 수확한 신선한 꽃들을 이슬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모아 최상의 정수를 추출할 수 있도록 했다.
향의 근원과 미래

쟈끄 뽈쥬의 뒤를 이어 샤넬 하우스 조향사를 맡고 있는 올리비에 뽈쥬는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전통 그 이상의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그라스 재스민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 1921년 에르네스트 보가 만든 샤넬 N°5의 오리지널 향기와 품질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그라스 재스민을 사용했으니까요! 이 농장은 프랑스 전체 꽃 재배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 농장만큼 규모가 큰 원료 재배지를 가지고 있는 단일 브랜드는 없을 거예요. 꽃을 수확하는 인력을 구하기도 어렵고, 여러 까다로운 작업 공정이 필요하니까요. 프랑스 현지에서 꽃을 재배하려는 농장주는 이제 많지 않죠. 그만큼 그라스 재스민은 희귀하고, 그래서 더 귀한 꽃이죠.’’ 그를 필두로 한 샤넬 팀은 매년 필요한 향수 원료를 모아 한 해 한 해 다시 시작한다. 1월 초에는 시트러스 계열의 원료를 재배하는 이탈리아 파트너들과 함께하고, 3월에는 튀니지에서 오렌지꽃을 수확하며, 5월에는 이곳 그라스 농장에서 메이로즈를 따고, 지금이 바로 재스민의 계절이다. “제가 샤넬 하우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이러한 장인 정신이에요. 고도로 숙련된 장인들의 전문성 덕에 최고의 원료들이 유지 및 생산되고, 더 많은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죠. 사실 저는 전통이나 유산이라는 개념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하죠. 스타일을 지킨다는 것은 장인 정신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그건 바로 살아 숨 쉬는 것이니까요. 샤넬은 장인들의 노하우와 혁신 사이, 그 균형을 놀랍도록 잘 잡아내고 유지하는 브랜드죠. N°5 한 병을 만들기 위해 재스민 보호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공정을 개선하고 보다 나은 향을 찾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것처럼요. 전에 없던 새로운 원료를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향수 업계에선 거의 수백 년 동안 새로운 식물을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해온 전문가들이 있었고, 새로운 향을 찾더라도 재배를 위한 거대한 농장이 다시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죠. 그보다는 이미 잘 알려진 원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추출해내는 것이 오히려 흥미롭고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원료의 다른 면을 발견하면 새로운 조향의 가능성이 열리니까요. 그래서 추출 공장에선 매년 수확한 꽃들의 향기를 테스트하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원료들의 새로운 향과 특성, 추출법 등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죠.”
수만 송이의 재스민이 향수 한 병에 담기기까지
농장 한편에서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은 향의 샤넬 N°5를 만들어 온 이들을 조망하는 전시 <샤넬 향수 크리에이터 55인의 보이스>가 열렸다. 조향사, 화학자, 헤리티지 큐레이터, 컨설턴트, 아트 디렉터, 수확자… 각자의 자리에서 숙련된 손길로 자신의 일에 열정과 재능, 정교한 손길, 창의성을 쏟아부은 이들의 집약된 노력의 결실이 바로 샤넬 N°5에 담긴다. 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올리비에 뽈쥬가 고백하듯 말한다. “저는 그라스가 좋아요. 향수를 만드는 장인들의 탁월한 전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거든요. 하루 일과가 끝날 때쯤, 이곳에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 속에 주의를 끌어당기고 환상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존재해요. 이 모든 것이 흙 속에서 자라나는 원료로부터 시작되고, 그 주변에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죠. 이 향수 한 병을 만들기 위해 꽃을 수확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저처럼 조향하는 사람, 공장에서 향을 추출하는 사람, 품질을 관리하는 사람 모두가 필요하죠. 매우 상이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하나의 사슬 같아요. 몇 주 전 태국을 방문했는데, 현지 샤넬 매장에서 향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다 보니 소비자에게 향에 대해 설명하는 이 부분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기치 못한 직업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향수를 만드는 전 과정에 연결돼 있다는 걸 새삼 확인했죠.’’ 전시된 55인의 사진에서 본 그 자부심 넘치는 표정들은, 내가 만드는 것이 최고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라스에서 돌아와 샤넬 N°5의 향을 다시 맡았을 때, 그 향기는 나비의 날개처럼 가볍게 하늘거리던 재스민 꽃잎과 함께 다른 기억도 소환했다. 꽃잎을 따는 그을린 손들, 그 능숙한 손놀림, 커다란 실린더에서 리드미컬하게 꽃을 휘젓던 작업자들, 뽈쥬의 꿈꾸는 듯한 얼굴, 그리고 그라스의 새파란 하늘과 등을 데워주던 따스한 햇볕, 그 모든 것이 N°5의 향과 함께 부드럽게 떠올랐다 흩어졌다. 그 향기에 이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대지에서 향수로
1. 재스민은 밤이 되면 향기가 가득한 연약한 꽃잎을 펼친다. 향을 보존하기 위해 태양이 뜨거워지기 전, 재스민 꽃잎을 하나씩 빠르게 따서 천으로 덮은 바구니에 담는다.
2. 수확이 끝난 재스민을 모아 무게를 잰다. 수확자 1명은 이른 아침부터 점심까지 매일 2kg 정도의 재스민을 수확하는데, 이는 재스민 2만 송이를 땄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꽃은 금속 상자에 담겨 농장 내 추출 공장에 즉시 이송된다.
4. 그날 수확한 꽃을 모두 모아 향 추출 과정에 들어간다. 꽃잎은 압착한 뒤 향을 흡수하는 용매제에 담가둔다.
5. 용매제가 증발하면 꽃은 향을 응축한 왁스 농축물(콘크리트)이 된다.
6. 조향사의 지침에 따라 향기 성분을 분리해 샤넬 N°5 빠르펭에 담기는 액체 형태의 고농도 농축액, 앱솔루트를 만들어낸다. 1kg의 재스민 콘크리트에는 무려 350kg의 재스민꽃이 들어가며, 이로 약 550g의 앱솔루트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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