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으로도 너무나 영화적인, 쥘리에트 비노슈

권은경, 김민지

감각에서부터

쥘리에트 비노슈가 15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배우가 아닌, 감독의 자격으로. 막 편집을 마친 따끈한 다큐멘터리 필름, <인-아이 인 모션>과 함께. 이름만으로도 너무나 영화적인 인물이 실험적인 무용극에 도전한다면, 또 그 과정을 영화로 담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기, 과거의 자신을 넘어선 듯한 현재의 그녀가 <더블유> 카메라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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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리에트 비노슈(Juliette Binoche)는 잘 웃는다. 웃을 때는 입술이 거의 귀에 닿을 정도로 긴 호선을 그리며 확장되어서, 호탕함과 천진함이 공존한다. 길지 않은 화보 촬영 시간 동안 모든 스태프가 숨죽이고 있을 때, 때때로 공기를 환하게 만드는 것도 그녀의 시원한 웃음이었다. 너무나 영화적인 이 존재가 어느덧 60대를 맞았다니, 놀랍지 않은가? 쥘리에트 비노슈가 레오스 카락스 감독과 처음 작업한 영화 <나쁜 피>(1986)를 지금 다시 보면 더 놀랍다. 새빨간 스웨터를 입은 ‘안나’가 잠에서 덜 깬 표정으로 처음 등장하는 순간. 흑색 커트 머리에 하얗고 동그란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화면을 가득 채울 때, 영화 속에서 잊지 못할 순간을 남기려는 감독의 야심도 같이 보인다.

수십 년 전 영화를 지금 고화질의 스트리밍 서비스(Wavve)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건 시대의 축복이다. 40년 동안 70편이 넘는 영화를 찍은 프랑스의 얼굴이 이제는 감독으로 영화제를 찾는다면 어떨까? 쥘리에트 비노슈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것은 15년 만이다. 30주년을 맞은 영화제는 9월 17일부터 26일까지 다양한 영화인이 내한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비노슈는 폐막식을 포함해 영화제 후반 사흘간 촘촘한 일정을 소화했다. 릴레이로 이어지는 그 숨 가쁜 일정을 지켜본 바, 그녀가 시간을 쪼개 이틀에 걸쳐 <더블유>와 단독 만남을 가진 것이야말로 정말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아직 시차 적응이 덜 됐지만, 여기 있는 게 즐거워요. 배우로서 영화제를 돌아다니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에요. 감독을 하면 책임감이 달라지거든요. 내가 한 선택이 저를 더 발가벗은 듯한 상태로 만드니까요. 사람들이 저를 더 볼 수 있달까요. 제 의도를요.” 기자간담회를 마친 후 조용한 대기실에서 만난 비노슈는 영화제 관계자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좀 사달라고 부탁한 후, 에너자이저처럼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감독으로 사람들 앞에 서면 내가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라는 고백은 연출 경험이 있는 한국 배우 이정재도 한 적이 있다. 배우는 주어진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하고 표현하는 사람이지만, 작품을 쓰고 연출한다는 것은 자기 사상과 철학을 오롯이 드러내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쥘리에트 비노슈가 부산에 들고 온 작품 <In-I In Motion>은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다. 기록에 가까운 이야기를 영화화할 때도, 서사를 쌓고 효과를 주는 그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 그녀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비슷한 기간에 열린 산 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공개한 후, 베이징에서도 상영을 하고서 막 한국에 온 참이었다.

<In-I In Motion>은 쥘리에트 비노슈와 안무가 겸 무용수 아크람 칸(Akram Khan)의 예술적 실험 여정을 담은,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두 사람은 2008~2009년에 전 세계를 돌며 <In-I>라는 무용극을 공연한 적이 있다. 100회 이상의 그 투어 때 서울 LG 아트센터에서도 공연했다. 스토리는 ‘사랑에 관한 탐구’로, 한 커플의 첫 만남부터 변화하는 감정 기복을 표현한 무용극이었다. 비노슈와 칸이 6개월간 호흡을 맞추며 안무를 짜던 과정에 실제로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까지 담은 작품이 <In-I In Motion>이다. 영화 제목에는 ‘움직이는’이라는 의미의 ‘인 모션’이 덧붙었다.

“저도 지난주에야 관객들과 처음 이 영화를 본 거죠. 와, 장면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서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지금 제 목표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이 작품을 좀 더 수정하는 거예요.” 그녀의 표정에선 ‘이걸 어떻게 손볼까’ 하는 궁리가 스쳤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개봉한다면 영화제 때의 버전과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영화제가 그녀에게 일종의 테스트 마켓 역할을 한 셈이다.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에서 <In-I In Motion> 상영 후 GV를 했을 때, 비노슈가 역으로 관객들을 향해 질문을 던진 순간은 그녀다운 유쾌함을 보여줬다. “여러분, 손 좀 들어볼래요? 이 영화 상영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시는 분?” 156분의 러닝타임. 여러 관객이 손을 들었다. 원래 그녀는 무용극을 완성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다. 배급사가 ‘실제 공연 장면까지 함께 보여주자’고 제안했다. 보통의 경우 긴 러닝타임을 고집하는 건 감독 쪽인데, 이건 희한한 일이다. “무대와 무대 뒤편은 완전히 다른 세계죠. 그 두 세계를 연결해 보여주니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길어졌어요.”

어느 날 공연을 마친 쥘리에트 비노슈에게 ‘이걸 꼭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권한 사람은 로버트 레드퍼드였다. 투어 대장정의 끝자락에 그 새로운 발상을 얻은 비노슈는 여동생에게 앞으로 남은 공연들을 촬영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간 기록해둔 리허설 영상도 남김없이 모았다. 촬영본을 다 합하니 170시간 정도의 분량이 나왔다고 한다. “각본이 없었다는 점에서 어려웠어요. 저한테 각본은 지도 같은데, 이번에는 제가 지도를 직접 만들어야 했죠.”

로버트 레드퍼드가 불을 지폈다면, 꽤 과거의 사건을 시간이 흘러 영화로 실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건 케어링(Kering) 그룹의 공식 후원이다. 구찌, 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등 수많은 하우스를 거느린 케어링은 ‘우먼 인 모션(Women In Motion)’이라는 그들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문화예술계 내 여성의 역할과 기여를 조명하고 있다. 로랑 클라캥(Laurent Claquin) 케어링 브랜드 총괄은 <더블유>에 이런 말을 전해왔다. “카메라 앵글 안팎에서 활약 하는 여성들을 조명하기 위해 2015년 출범한 ‘우먼 인 모션’의 일환으로 쥘리에트 비노슈의 작품을 후원했죠. 끊임없는 도전으로 전 세계에 영감을 전해온 여성 영화인이자 선구자, 그리고 진정한 아티스트인 비노슈의 대담한 예술적 실험을 더 많은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안타깝게도 영화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여성 예술가를 지지하는 그룹의 실천으로 또 하나의 귀한 작품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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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 그토록 유려하고 전위적인 쥘리에트 비노슈가 어릴 적 무용을 배운 적도 없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다. <퐁네프의 연인들>(1991)에서 거칠고 자유롭게 날뛰던 여자는 춤과 거리가 먼 인간이었나? 배우는 기본적으로 흉내 내기에 능하다지만, 비노슈는 직업란에 무용수를 추가해야 마땅할 정도다. “세상에, 제가 얼마나 애를 쓰고 실수도 많이 했는지 영화로 다 보셨을 텐데요! 아크람과 작업하려니 정말 숨이 찼어요. 대신 탄력과 힘을 얻었죠. 너무 강도 높은 훈련은 오히려 위험하다는 걸 알았고요. 자꾸 애를 쓰고 실수도 하는 것 자체가 더 나아지고 싶고, 뭔가를 발견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거죠. 평소 연기할 때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무언가 발견하는 그 순간이 올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 하죠.” 아크람 칸은 야성이 넘치는 무용수다. 어떤 동작이든 날렵하게 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칸은 늘 하던 방식으로 <In-I> 안무를 짤 수 없었다. 비노슈와 칸의 수준은 달랐고, 비노슈가 원한 것도 그저 주어진 안무를 익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특정 아이디어를 정해두지 않고 출발했다. 비노슈는 배우로서 무용을, 칸은 무용수로서 연기를, 그렇게 서로 낯선 영역에 도전한다는 비전만이 있었다.

비노슈가 육체적 기억을 몸에 새기기까지, 연기 코치인 수전 뱃슨(Susan Batson)은 결정적 ‘안내자’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여러 배우들의 선생님으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다. 영화를 보면, 비노슈와 칸이 서로 몸을 의지하며 자유롭게 움직임을 만들어 가는데 수전 뱃슨이 소리친다. “밀지 마! 힘을 주지 마! 그건 만들어내는 거잖아!” “일부러 만들어내지 마. 저항은 필요 없어, 몸이 스스로 힘을 찾을 거야.”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열심히 현대무용 비슷한 걸 시도하던 비노슈도 순간 속상한 아이처럼 인상을 찡그렸다가 다시 움직여보는 식이다. “연기와 춤, 이 두 가지를 연결하는 게 정말 중요했어요.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움직이는 법을 이해하는 과정이랄까. 그걸 춤이라고 부르긴 조심스럽지만요. 제가 원한 건 진실한 움직임이었어요. 배우로서 제가 지닌 진실, 그 감각의 진실이요. 수전의 말은 거기서부터 제 움직임이 나와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저는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방법을 찾아가려 했죠.”

‘감각에서부터 시작하라.’ 비노슈의 생각에 그건 실험적 무용극과 상관없이 중요한 화두다. 그 태도를 익히면 무언가를 할 때 내면과의 진정한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순간을 ‘진실에 닿았다’고 부를 수도 있겠다. 비노슈는 서서히 자기 감각과의 연결에서 출발하는 어떤 경로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배우들에게도 익숙한 영역이었다고 한다. ‘접신’하듯이 연기에 몰입하게 될 때의 상태를 말하는 걸까? 그녀는 직접 쓴 ‘감독의 말’에서 이렇게 남겼다. ‘이 감각은 내가 내면으로부터 움직임을 발견하도록 해주었고, 춤을 춘다는 관념에서 나를 해방시켜주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움직임을 찾으려 외부를 탐색할 필요가 없었다.’ ‘아크람 역시 그의 감각들, 뿌리들, 어린 시절을 통해 자기만의 이야기로 움직임을 빚어낼 수 있었다. 감각이라는 아이디어 덕분에 그는 연기라는 기예에 한발 더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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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슈의 표현에 따르면 둘은 너무나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성별도, 피부색도, 종교도, 성장 배경도 다르다. 아크람 칸은 영국인이지만, 무슬림 공동체에서 자랐다. 그는 ‘끈끈한 가족 관계’를 거쳤고(하지만 다소 억압적이며 엄격한 문화였고), 비노슈는 ‘보다 혼란스러운 이혼 가정 출신’이다. 무용수는 ‘몸을 중심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배우는 ‘소리를 내기 전에 내면의 삶에서부터’ 시작한다. “감각에 집중하자는 기준점을 찾았기에 우리도 결국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다른 사람들끼리 어떻게 공동 창작을 할 수 있었겠어요?” <In-I>의 무대 디자인을 맡은 애니시 커푸어는 무대에 거대한 벽을 세웠다. 비노슈에게 그 벽은 두 사람이 넘어서고 서로 변화시켜야 할 상징적인 벽으로 보이기도 했다. 연습 기간 중 그녀는 칸 때문에 화가 나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영화에는 우리 갈등이 담기지 않아서 아쉽다고요? 맞아요, 이 영화를 긴장감 넘치는 장르로 만들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9시간짜리 영화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웃음). 매일이 도전이었어요. 우리가 어디로 가게 될지, 어떤 공연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었죠. 제 생각에 최고의 지혜는 바로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이에요. 적응한다는 건 아무런 생각 없이 수용한다는 게 아니거든요. 스스로에 대해 깨닫고, 상대 곁에서도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터득하고, 느끼고 원하는 바에 진실해진다는 거죠.”

이미 영화라는 궤도에 접어든 지 한참인 배우가 내면의 목소리를 동작화하는 새로운 도전에 착수했듯, 비노슈도 연기를 처음 배우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날의 그녀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죠. 살아남으려니 간절해서 그랬어요. 부모님의 지원도 없었고, 저는 도움 받을 데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바로 그 ‘의지’를 알아채고 자꾸 꺾더라고요.” 그녀가 연기를 시작하려 치면 하도 ‘멈춰봐’ 소리가 들려서, 신인 배우는 길을 잃은 기분으로 울기도 했다. “제가 완전히 길을 잃은 상태가 되면, 선생님이 이러셨어요. ‘좋아. 거기서부터 시작해.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는 지점에서 말이야.’ 저는 그런 연약함으로 대사를 말하고 표현하기 시작했죠. 이런 말도 하셨어요. ‘바로 그거야. 너는 네 의지가 아닌 다른 곳에 들어섰어. 의지는 벽이야. 의지는 네가 존재하는 걸 막는다고. 하지만 네 안에 있는 그곳에 도달하면, 감정이 너를 통해 오기 시작하는 거야. 너 스스로 네 에너지를 통제한다고 생각하는 데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저는 그 가르침을 통해 연기로 무엇을 표현할 수 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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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할리우드에서 쥘리에트 비노슈와 작업해본 사람들은 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녀가 영화를 찍을 때면 감독에게 ‘초반 세 번의 테이크 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연기하게 해달라, 당신이 원하는 연기는 그다음에 하겠다’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최근 작품인 <더 리턴>(2024)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도 그랬다. 이탈리아 출신 감독 우베르토 파솔리니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재해석한 이 작품에서 그녀는 ‘페넬로페’를 연기했다.

“감독님이 촬영 첫날부터 저에게 여러 가지 원하는 바를 얘기하셨죠. 저는 이랬어요. ‘좋아요, 우리 협상을 해요. 당신이 원하는 거, 만족 하실 때까지 다 해드릴게요. 하지만 그 공간은 저에게 맡겨야 해요. 저에게 먼저 자리를 주셔야 합니다. 당신이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원했던 걸 시각화하기 전에 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놓칠 거예요.’” 비노슈는 배우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요구를 관철하는 것도 배우의 덕목 중 하나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영화 편집을 마친 우베르토 파솔리니는 어느 날 비노슈에게 ‘당신이 옳았다’고 말해주었다. 대부분 비노슈가 자유롭게 연기한 초반 시도들에서 장면을 골라 썼다면서. “그 연기들은 만들어진 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온 것이거든요. 더 신비롭고 감정적이며, 이성적이지 않은 거죠. 때로 는 무의식에서 무언가 나오는 일이 벌어지도록 배우를 가만 놔두는 게 중요해요. 그런 다음에 감독이 원하는 구체적인 컨트롤을 한다면 분명 더 흥미로운 결과가 생길 거예요”

비노슈가 감독에게 ‘딜’이 아닌, 간청을 해야 한 적도 있었다. 부산 국제영화제 기간, <세 가지 색: 블루>(1993) GV때 나온 얘기는 <더블유> 인터뷰 때만큼이나 흥미로웠다. 비노슈는 자식을 잃은 한 친구에게 더욱 공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세 가지 색: 블루>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영화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님이 폴란드에서 영화를 찍던 시절엔 제작비가 부족했죠. 그래선지 장면마다 리허설을 여러 번 거친 후 촬영 한 번만에 마치려 했어요. 감독님이 제 연기를 두고 리허설 때와 달라졌다고 하면 저는 소리쳤어요. 당연히 다르죠! 그게 재창조 과정이라는 거예요! 여긴 프랑스잖아요! 제작사에서 필름값은 얼마든지 대주니까 제발 한 번만 더 찍어요!(웃음)”

1990년대 초중반은 쥘리에트 비노슈의 위상이 비약하던 시기다. 키에슬로프스키는 그녀에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제안했지만, 그때는 비노슈가 <퐁네프의 연인들>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찍어야 했기 때문에 작업이 성사되지 못했다. 감독은 그다음으로 <데미지>를 찍던 그녀에게 <세 가지 색: 블루>를 제안했다. “감독님 이 제가 이 작품을 소화하기엔 너무 어린 것 같다고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모습이 담긴 어떤 사진 한 장을 보여드렸어요. 그 사진을 보고서 마법처럼 마음이 바뀌셨죠. 사실 루이 말 감독님도 제가 <데미지>에 출연하기엔 너무 어려보인다고 하다가, 사진을 보고 마음 바꾼 경우예요. 제 눈빛이 연령대를 초월한 것처럼 보인다면서요.” 사연을 품은 듯한 이 깊은 눈빛의 소유자는 키에슬로프스키와 작업하기로 결정하고 며칠이 지나, 놀랍게도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쥬라기 공원>에 출연하지 않겠느냐는 연락이었어요.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이냐!’ 제 인생에 일종의 초월적인 존재가 나타나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느낌이었죠.” <쥬라기 공원>에 등장하는 쥘리에트 비노슈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고질라>(2014) 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2017)에 출연한 것은 자신의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재밌는 선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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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쥘리에트 비노슈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한 사람들은 활자만으로 전달되기 어려운 이 배우의 뜨거운 온도를 확인했을 것이다. 비노슈는 처음 연기 수업을 듣던 열여덟 살 무렵의 기억을 말하다가는 울컥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혼란스러움으로 헤매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 걸까? 한 번 말을 시작하면 긴 이야기를 펼쳐놓는 비노슈의 화법 덕분에 통역사는 고문에 가까운 어려움을 겪었을 듯하다. 그만큼 그녀는 배우 지망생으 로서 조언을 구하는 참가자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배우로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해요. 좋은 선택을 내리려면, 직관을 갈고닦는 게 중요합니다. 막연히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해요. 직관은 우리의 수호천사예요. 당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힘이죠.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눈과 귀와 머리를 써서 지혜롭게 대처하세요.”

‘감각’이 눈에 빛이 들어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이라면, ‘직관’은 그 빛이 무엇을 비추는지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다. 이해하기보다 먼저 느끼기를, 그렇게 통찰해내기를 소중히 여기는 쥘리에트 비노슈의 배우관은 다시 자연스럽게, <In-I In Motion>으로 연결된다. 순수한 감각과 감정을 재료로 몸의 언어를 쓰고자 했던 예술가의 내밀한 여정이 거기 담겨 있으니. 그렇게 살아온 지 40년, 사실 배우로 사는 게 지긋지긋한 순간은 없었을까? “저는 지루해지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고를 때 무척 까다로워요. 연기를 싫어하게 되고 싶지가 않아요. 그런 마음으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고르죠. 제가 연결감을 느끼는 사람들, 혹은 너무 멀거나 가까워서 흥미로운 사람들로요. 이 일을 정말로 사랑해요. 전혀 질리지 않습니다.”

<더블유> 인터뷰를 마친 날 밤,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는 <퐁네프의 연인들> 상영이 있었다. 선선한 가을밤, 야외 공간, 단체로 플래시를 켜며 특별한 손님을 열렬히 맞이하는 관객들. 무대 인사를 하던 쥘리에트 비노슈는 그 분위기에 취했는지 목소리가 들떴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너무 궁금해요. 나, 지금 록스타가 된 기분이에요! 노래라도 한 곡 불러야 할 것 같아.”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흥’을 멈출 수 없던 그녀는 엉덩이를 씰룩 거렸다. <더블유>가 나올 즈음에는 파리에서 첫 연출작의 편집을 새롭게 손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감독 쥘리에트 비노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제 영화를 감상하는 분들이 자신만의 여정을 경험하길 바라요. 누군가 스스로 생각해본 적 없는 시도를 해보도록 영감을 주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거든요. ‘우먼 인 모션’처럼 여성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역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여성들이 세상에 많은 걸 기여할 수 있는데, 충분히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여성을 위하는 동시에 인류를 위한 프로젝트라고도 생각해요. 이런 지원을 받으면, 세상에 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나 무대 뒤를 보여주는 내밀한 작품은 자주 볼 수 없는 거잖아요. 저는 사실 아직도 제작을 마무리할 자금을 찾는 중이랍니다(웃음).”

포토그래퍼
장정우
스타일리스트
Jonathan Hugu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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