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쓰여지는 듀란 랜팅크의 장 폴 고티에

김민지

“패션은 자유다”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를 동경하던 소년, 듀란 랜팅크(Duran Lantink)가 하우스의 새로운 수장으로 2026 S/S 레디투웨어 데뷔 무대를 치렀다. 그의 첫 프레타포르테 컬렉션 제목은 ‘JUNIOR’.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이어진 ‘Junior Gaultier’ 라인에 대한 오마주다. 젊고, 반항적이며, 클럽 문화의 뜨거운 에너지를 머금은 그 라인은 랜팅크가 처음으로 하우스에 매료되게 만든 계기이자, 여전히 그에게 “패션은 자유다”라는 믿음을 심어준 존재다. 익숙한 코드들은 뒤틀리고, 낯선 형식으로 재탄생한다. 마리니에르 스트라이프, 타투 메시, 비대칭 실루엣이 새로운 시대의 언어로 다시 쓰인다. ‘JUNIOR’는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듀란 랜팅크가 만들어갈 장 폴 고티에의 새로운 심장 박동이자, 새로운 출발점, 그리고 새로운 자유의 선언이다.

<W KOREA>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공식 취임한 소감이 어떤가?
듀란 랜팅크 설렌다. 동시에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다. 놀라운 역사를 가진 브랜드이기에, 이곳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신나고 기대된다.

첫 데뷔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나 이미지는 무엇이었나?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도발적(Provocative)’이었다.

이번 시즌 컬렉션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오늘날의 레이브 문화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나만의 해석을 보여주고 싶었다. 밤 문화가 어떻게 존재하고, 또 어떻게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는지를 표현하려 했다. 그건 나에게도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이번 컬렉션의 콘셉트를 세우는 데 가장 큰 영감을 준 건 무엇이었나?
<The RoXY Archive(Het RoXY Archief. 1988-1999)>라는 포토북이었다. 밤 문화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꾸며 입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RoXY는 암스테르담에 있던 유명 디스코텍인데, 고티에도 자주 갔다고 들었다. 나 역시 네덜란드 출신이기에, 두 세계가 만나는 느낌이 있었다. 자유롭고 대담한 그들의 표현이 큰 영감이 됐다.

브랜드의 상징적인 코드들 — 코르셋, 세일러 스트라이프, 젠더의 유동성 등은 어떻게 재해석했나?
고티에에는 아주 많은 코드가 있다. 한 쇼에 다 담는 건 불가능할 정도다. 이번에는 젠더 플루이디티(성의 유연성)와 프린트에 집중했다. 어릴 때 큰 영감을 받았던 ‘Jean Paul Gaultier Junior’ 라인을 떠올리며, 그 세계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조형해보았다. 코드를 새로 발명하기보다 그가 가진 에너지와 정신을 내 방식으로 이어가고 싶었다.

유산을 잇는 책임감이 창작 과정에서 부담이 됐나, 아니면 영감이 됐나?
둘 다였다. 물론 압박감도 있었지만, 동시에 큰 동기부여가 됐다. 고티에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테일러링을, 또 다른 사람은 콘브라나 코르셋을 좋아한다. 그 다양한 커뮤니티를 존중하면서 내 언어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당신의 언어로 정의한다면, 장 폴 고티에의 정신은 무엇인가?
동시대적(Contemporary), 절박함(Urgent), 자유(Freedom), 유머(Fun), 정치성(Political), 그리고 도발(Provocative).

당신의 시그너처인 업사이클링과 해체주의는 하우스의 DNA와 어떻게 어우러졌나?
장 폴과 나는 옷을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것에 흥미가 있다. ‘티셔츠 한 장으로 얼마나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을까?’같은 탐구는 언제나 새로움을 준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닮았다. 그는 전설이지만, 같은 코드 위에서 소통하고 있다고 느낀다.

장 폴 고티에가 해준 조언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내 초창기 때 정말 잔인했어. 언론도 마찬가지였지.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네 비전을 믿어. 어떤 반응에도 휘둘리지 마.” 정말 좋은 말이었다. 쇼가 끝난 후엔 “자랑스럽다. 이번 컬렉션은 딱 이 모습이어야 했다. 첫 쇼인데도 훌륭했다”라고 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 감격해서 울었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강하게 이끌린 감정은 무엇이었나?
흥분감이다. 즐거움과 설렘. “나를 진짜로 설레게 하는 건 무엇인가?”를 계속 탐구했다. 컷아웃, 탱크톱, 변형된 형태들 — 옷을 변화시키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중요했다.

하우스의 장인들과 협업하며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인내심이다(웃음). 정말 놀랍다. 뛰어난 손자수 기술과 장인 정신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게. 내가 아무리 대담한 아이디어를 내도, 그들은 실제로 구현해낸다. 완벽한 서포트 시스템이다.

혁신과 고티에만의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은 어떻게 찾았나?
아직 찾는 과정이다. 첫 시즌이니까. 나는 서로 다른 세계를 융합하는 걸 좋아한다. 쿠튀르 아틀리에에서 3D 프린팅된 타투 프린트를 손자수로 메시 위에 수놓았다. 기술과 수공예, 스포츠웨어와 테일러링. 이런 대비의 결합이 곧 고티에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이번 컬렉션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고 들었다. 무엇일까?
보수적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장 폴 고티에 세대가 싸워 쟁취한 표현의 자유가 요즘 다시 위태롭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번 쇼는 컬러풀하고 자유로운, 퀴어 커뮤니티의 축제 같은 톤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핵심이었다.

당신이 만드는 고티에는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
큰 변화를 주려는 건 아니다. 유산을 존중하면서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려 한다. 오랜만에 프레타포르테(ready-to-wear) 쇼를 했기에, 지금의 시대 감각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과거에 머무르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고티에를 만들고 싶다. 유산을 존중하면서 현재와 미래를 향한다.

당신이 이끄는 하우스의 장기 비전은 무엇인가?
고티에의 아카이브를 보면 시즌마다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낭만주의, 사이버펑크, 테일러링… 그런 ‘챕터’ 구조가 좋다. 이번 시즌이 ‘퀴어니스와 축제, 나이트 라이프’였다면 다음엔 ‘테일러링’이나 ‘젠더’일 수도 있다. 하나의 긴 이야기보다, 시즌마다 다른 이야기를 펼치는 방식이 더 흥미롭다. 변화 자체가 고티에의 매력이다.

첫 모델이 런웨이에 들어섰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예스! 드디어 시작됐다.”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었다. 이제 사람들도 이 변화를 받아들일 때라고 생각했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마음에 든 순간은 무엇이었나?
특정 하나를 꼽긴 어렵다. 전체적으로 만족한다. 도발적이었고, 그게 핵심이었다. 이번 쇼는 “이제 내가 이 공간을 차지한다”는 선언이었다.

그래도 가장 아끼는 룩은 없었나?
(웃음) 없다. 하지만 선글라스가 특히 좋다. 드래곤 선글라스, 그리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실루엣의 선글라스들. 처음으로 액세서리에 본격적으로 접근했는데, 아주 즐거운 시도였다.

앞으로 하우스의 이미지나 소비층을 어떻게 확장하고 싶나?
기존 팬층을 존중하면서도 오늘의 젊은 세대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다. 고티에는 언제나 음악과 영화를 사랑했다. 그래서 문화적 연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

다가오는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어떻게 준비 중인가?
“화난 사람들.”(웃음) 이번 쿠튀르는 혁신과 새로운 탐구에 관한 이야기다. 쿠튀르는 언제나 ‘이전에 본 적 없는 것’을 보여주는 무대라고 생각한다. “이건 정말 처음 보는 거야!”라는 감정을 주는 것. 물론 요즘은 이미 다 본 것들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이번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6층 쿠튀르 아틀리에 팀과 함께하는 지금이 무척 기대된다.

요즘 패션계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무엇인가?
자유다. 표현의 자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는 장 폴 고티에가 ‘안전한 브랜드’로 머무는 걸 원하지 않는다. 활기차고, 도발적이며, 목소리가 큰 브랜드여야 한다고 믿는다. 요즘 세상은 너무 안전하다. 과감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듀란 랜팅크 시대의 장 폴 고티에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지금 이 시대를 반영하는, 철저히 동시대적인 브랜드. 그것이 전부다.

포토그래퍼
전미연
사진
JEAN PAUL GAUL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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