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OR 2026 SS 컬렉션
10월 1일, 튈르리 정원(Tuileries Garden)에 디올 베뉴가 설치됐다. 이곳에 샤를리즈 테론(Charlize Theron), 조니 뎁(Johnny Depp),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 안야 테일러 조이(Anya Taylor-Joy), 블랙핑크 지수, BTS 지민 등 수많은 셀럽이 모였고, 프랑스 영부인 브리짓 마크롱(Brigitte Macron)도 참석했다. 이번 디올 여성복 컬렉션은 2025년 6월에 열린 남성복 컬렉션에 이어 조나단 앤더슨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보이는 데뷔 무대였다. 조나단 앤더슨은 무슈 디올 이후 남성복, 여성복, 오트 쿠튀르 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총괄하는 최초의 디렉터다. 글렌 마틴스(Glenn Martens), 릭 오웬스(Rick Owens),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 등 동료 디자이너들도 참석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컬렉션은 다큐멘터리 상영으로 시작했다. 무대 한 가운데에 디올 슈즈 박스가 놓였고, 그 위로 역삼각형 모니터가 설치됐다. 세트는 조나단 앤더슨이 2024년 영화 <퀴어(Queer)>를 통해 의상 디자이너로 함께 일한 바 있는 이탈리아 영화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스테파노 바이시(Stefano Baisi)가 만든 것. 역삼각형 모니터로 영국 다큐멘터리 감독 애덤 커티스(Adam Curtis)가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흘러 나왔다. 영상은 ‘디올 하우스에 감히 들어오시겠습니까?(Do you dare enter the house of Dior?)’라는 문구로 시작했다. 창립자 무슈 디올에서부터 이브 생 로랑, 마크 보앙, 존 갈리아노,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등 전임 디렉터들의 창작의 순간들이 담겼고, 레이디 디올 백의 뮤즈였던 다이애나 비도 등장했다. 어쩐지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풍긴 영상은 조나단 앤더슨이 유서 깊은 디올에 입성하면서 느낀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했다. 쇼 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됐다. ‘디올 하우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공감, 집단적 상상력의 언어를 해독하려는 의지, 그리고 모든 것을 상자에 담으려는 결의가 필요하다’.
누가 ‘감히’ 디올의 위대한 유산을 건드릴 수 있을까? 조나단 앤더슨의 고민은 깊었다. 비공식 루트를 통해 1996년부터 2011년까지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했던 존 갈리아노를 만나 조언을 들었다는 후문이다. 조나단 앤더슨은 디올 하우스에 남아있는 코드들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디올의 다양한 아카이브를 파편처럼 가져와 충돌하게 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해독했다. 이는 사운드트랙 선곡으로도 잘 드러난다. 톰 오브 잉글랜드(Tom of England)의 ‘섹스 수도사의 노래(Song of the Sex Monk)’ 위에 로드 바이런(Lord Byron)의 시 ‘그녀는 아름다움 속에 걷네(She Walks in Beauty)’ 낭송을 더한 것. 실험적인 일렉트로닉 음악과 여성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찬양하는 낭만주의 시의 결합이라니, 유서깊은 하우스에 대한 경외와 긴장의 감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조나단 앤더슨은 디올의 전통적 실루엣, 비율, 구조 또한 대담하게 뒤틀었다. 오프닝을 연 스트랩리스 드레스는 과장된 종 형태를 부드러운 화이트 저지 소재로 감싸고 비스듬히 두 개의 대형 리본을 달았다. 연이어 매니시한 체크 셔츠와 미니 스커트가 등장했다. 디올이 1947년에 최초로 선보인 전설적인 바슈트는 매우 짧게 변형되었고, 이는 과장된 볼륨의 미니 주름 스커트와 매치했다. 길이가 짧지 않은 바슈트도 있었는데, 이는 데님 스커트와 매치해 캐주얼하게 해석했다. 미스 디올의 상징인 리본은 오버사이즈로 셔츠, 재킷, 미니스커트, 비즈 원피스 등 곳곳을 장식했다.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턱시도를 그린 저지, 어쩐지 삐걱대는 것 같은 인상의 블랙 샹티 레이스 드레스, 다채로운 길이의 케이프, 조나단 앤더슨도 평소 즐겨 입는 캐주얼한 폴로 셔츠와 데님 팬츠까지 그야말로 디올의 새로운 탄생이었다.
새로운 액세서리 라인업은 탄탄했다. 아카이브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아 새롭게 선보인 ‘시갈레(Cigale)’ 백을 비롯해 디올 까나주를 넣은 부드러운 숄더백, 볼링백처럼 캐주얼하게 재해석한 레이디 디올 백이 새로운 시그니처 가방이 될 준비를 완벽히 마친 모습이었다. 스트랩에 금속 ‘Dior’ 하드웨어가 박힌 느슨한 스웨이드 핸드백은 노트북을 넣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실용적 디자인이 돋보였다. 클래식한 펌프스는 토끼 귀 모양 장식을 얹어 장난스러운 위트를 더했고, 무슈 디올이 사랑한 거대한 플라워 코르사주를 장식한 뮬과 디올의 시그니처 ‘C’와 ‘D’를 오른쪽과 왼쪽에 짝짝이로 장식한 펌프스, 로고를 넣은 금장 거울 펜던트를 박은 로퍼 등이 고루 시선을 끌었다. 특히, 모자 디자이너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가 디자인한 일그러진 형태의 트리콘(Tricorne) 모자에 주목할 것! 이는 과거의 유산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겠다는 조나단 앤더슨의 의지를 상징한다. 쇼 노트에 담긴 일그러진 모자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역사를 상자에 가둬두면 내파가 일어난다. 모자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내파한다(Putting history into a box creates an implosion — hats implode into themselves)’
반응은 어땠을까? 피날레에서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쇼가 끝나고 소셜미디어에는 백스테이지에서 런웨이를 보는 조나단 앤더슨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영상도 볼 수 있었다. 이번 시즌 디올 컬렉션은 오랜 전통의 하우스를 새로운 세대의 언어로 다시 쓰겠다는 일종의 티저였다. 모두의 기대가 쏠린 첫 컬렉션에서 뭔가 대단한 것을 ‘짠’하고 꺼내어놓기보다는, 자신의 고민과 불안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이런 선택에 대한 미리 양해를 구하는 듯한 조나단 앤더슨의 젠틀함과 영민함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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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of Dio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