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징하게 직조해낸 과거와 현재, 26 SS 보테가 베네타 컬렉션

명수진

BOTTEGA VENETA 2026 SS 컬렉션

샤넬로 이적한 마티유 블라지의 뒤를 이어 지난 1월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가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했다. 까르벵의 부활을 이끈 이력이 있는 그녀는, 대규모 인사 이동 속 거의 유일한 여성 디렉터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사실 2023년 런던의 패션 플랫폼 <원 그래너리(1 Granary)>가 케링 그룹의 남성 중심 인사를 비판한 이후, 여성 디렉터 수적 열세는 패션계가 꾸준히 지적해온 화두였다.

이번 컬렉션은 9월 27일, 밀라노의 파브리카 오로비아(Fabbrica Orobia)에서 열렸다. 과거 공장이었던 공간은 보테가 특유의 공예적 감각으로 새롭게 꾸며졌다.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 가죽으로 만든 그물이 설치미술처럼 천장을 가로질렀고, 좌석은 그린, 옐로, 네이비, 그레이 톤의 직육면체 무라노 유리 스툴로 채워졌다. 로렌 허튼(Lauren Hutton), 우마 서먼(Uma Thurman), 양자경(Michelle Yeoh), RM 등 스타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사운드트랙은 영화 감독이자 아티스트인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과 협업을 통해 완성했다. 스티브 맥퀸은 각각 1966년과 1976년에 녹음된 니나 시몬(Nina Simone)과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와일드 이즈 더 윈드(Wild Is the Wind)’를 교차 편집했는데, 두 가지 다른 시기와 감성의 음악을 엮어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창조했다는 의미에서 스티브 맥퀸은 이를 ‘청각적 인트레치아토’라고 불렀다.

컬렉션 노트에는 ‘베니스의 화려함, 뉴욕의 에너지, 밀라노의 본질주의’라는 설명이 적혔다. 이는 보테가 베네타 최초의 여성 리더였던 로라 브래기온(Laura Braggion)에게서 착안한 구절이다. 루이스 트로터는 또,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American Gigolo)> 속 로렌 허튼이 들었던 인트레치아토 클러치에서 영감을 받아 액세서리를 재해석했다. 실제로 로렌 허튼은 당시 영화에 사용된 것과 똑같은 클러치를 들고 쇼장에 와서 상징성을 더했다. 2026년이 보테가 베네타의 60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루이스 트로터는 브랜드의 강점인 장인 정신을 전면에 더 강하게 내세웠다.

오프닝은 깔끔하게 재단된 피코트가 열었다. 칼라에는 섬세한 인트레치아토 패턴을 얹었고, 단추 대신 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토마스 마이어(Tomas Maier, 2001~2018)가 선보인 낫 박스 클러치를 연상시키는 매듭 장식을 달았다. 이후 블레이저의 칼라, 코트, 케이프까지 인트레치아토를 다채롭게 활용한 룩들이 이어졌다. 트로터는 이를 ‘두 갈래 실이 하나로 얽히듯, 브랜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은유’라고 설명했다. 컬렉션은 후반으로 갈수록 독특한 텍스처와 유희적 요소를 더해갔다. 마이크로 플리츠 드레스의 옆선에서 프린지가 찰랑이며 리듬을 만들었고, 모델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깃털 장식 재킷과 스커트가 흩날리듯 움직였다. 재활용 유리 섬유로 만든 이 소재는, 들판의 핑크 뮬리를 스칠 때처럼 몽환적인 반짝임을 연출했다. 부드럽게 무두질된 나파 가죽 아우터는 몸을 따라 흐르며 실크 같은 유연함을 보여줬고, 구조적인 미디 드레스는 절제된 실루엣에 과감한 어깨 스트랩 디테일을 더해 은근히 도발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기본 니트웨어조차도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각진 어깨로 힘을 주었고, 여유로운 팬츠는 지적인 균형을 완성했다. 액세서리 역시 주목을 끌었다. 거대한 인트레치아토 가방은 마치 가죽으로 완성한 건축물 같았고, 키튼 힐 플립플롭은 여유로운 분위기를 더했다.

루이스 트로터의 강점은 여성들이 원하는 바를 직관적으로 읽어낸다는 점이다. 차분하면서도 실용적인 접근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고, 여성들이 일상에서 실제로 입고 싶은 옷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루이스 트로터의 보테가 베네타 데뷔 쇼는 많은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영상, 사진
Courtesy of Bottega Veneta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