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NDI 26 SS 컬렉션
모두가 젊음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집착할 때, 펜디는 특유의 우아한 태도로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를 전했다. 킴 존스가 떠난 뒤 펜디 여성복과 남성복을 모두 이끄는 실비라 벤투리니 펜디는 ‘나는 젊음에 집착하지 않는다’며 즐겁고 낙관적인 여름으로 초대했다.
펜디 2026 SS 컬렉션은 9월 24일, 밀라노 본사에서 열렸다. 무대는 알록달록한 사각형 블록으로 꾸며졌다. 이는 마크 뉴슨(Marc Newson)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이탈리아 아티스트 니코 바스첼라리(Nico Vascellari)가 구현한 것. 관객은 마치 마인크래프트 속 픽셀 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색색의 블록으로 둘러싸인 객석에 앉아 쇼를 감상했다. 테마는 ‘사이키델릭 산책(psychedelic promenade)’. 1988년 마르탱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의 데뷔 쇼 사운드트랙을 제작한 이래 패션계의 사운드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사운드 아티스트 프레데릭 산체스(Frédéric Sanchez)의 사운드트랙이 물결치듯 퍼져 나가고,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블루, 레드, 브라운, 핑크 등 컬러 블로킹 컬렉션이 런웨이에 올랐다.
‘일상복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싶다’는 실비아 벤추리니의 바람이 컬렉션 곳곳에 담겼다. 편안하면서도 격식을 잃지 않는 니트, 재킷, 셔츠, 스커트가 등장했다. 대부분 일상에서도 충분히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웨어러블하지만 위트를 잃지 않았다. 예를 들면, 무릎까지 오는 미디 스커트는 옆라인의 지퍼로 슬릿 깊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했고, 화이트와 블랙 도트 패턴을 교차 배치할 때에는 평면과 입체를 섞었다. 은은하게 비치는 톱 아래 반짝이는 브라렛을 드러내고, 그래니 룩(Granny Look) 스타일의 아란 니트(Aran knit)는 바비 인형의 옷처럼 레드나 핫핑크 컬러 셋업으로 변형됐다.
스포츠웨어의 코드를 곳곳에 넣어 애슬레저 감성을 불어넣은 것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테일러링 재킷의 버튼 여밈에 컬러풀한 버튼홀 탭(buttonhole tab)을 더해 시선을 끄는 것을 시작으로, 스포츠웨어의 상징과도 같은 엘라스틱 스트링은 재킷은 물론 원피스, 스커트 등을 색다르게 변주했다. 울로 만든 남성 트랙수트, 실크 파유(faille) 소재로 만든 스포츠 재킷과 복서 브리프, 레이저 컷 가죽 아우터는 ‘럭셔리 브랜드가 스포츠웨어를 만든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처럼 보였다. 한편, 데이지 꽃잎 모양의 컷아웃과 몽환적인 플로럴 프린트는 ‘사이키델릭’이라는 테마에 힘을 실었고, 펜디가 ‘튀긴 달걀(fried flowers)’이라는 재미있는 애칭으로 부른 플라스틱 디스크 디테일이 곳곳에서 즐거운 분위기를 발산했다.
모피와 액세서리는 언제나처럼 펜디 컬렉션의 주연이었다. 마치 바구니를 엮는 것처럼 각양각색의 모피를 위빙 기법으로 엮어 만든 코트는 펜디의 정교한 기술을 은근히 뽐냈다. 여기에 그로그랭 리본을 위빙한 캐주얼한 빅 토트 백을 함께 매치한 센스도 돋보였다. 바게트 백은 비즈 장식으로 꽃무늬 모티프를 놓았고, 피카부 백은 시스루 디테일과 스팽글 장식 등으로 업그레이드해 여전히 변화를 거듭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실비아 벤투리니의 딸이자 액세서리 디자이너인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Delfina Delettrez Fendi)가 디자인한 산호 모양 FF 귀걸이, 너겟 펜던트, 골드 커프스 등 주얼리는 룩마다 사랑스러운 포인트를 더했다.
무려 83벌의 컬렉션을 선보인 이번 컬렉션의 런웨이에는 다양한 연령의 모델이 기용됐다. 기네비어 반 시너스(Guinevere Van Seenus), 야스민 와사메(Yasmin Warsame), 마리아칼라 보스코노(Mariacarla Boscono), 이리나 라자레아누(Irina Lazareanu), 리야 케베데(Liya Kebede) 등 원숙함 가득한 40대 중후반 모델들은 럭셔리의 시간은 특정 세대를 위해 멈추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했다.
펜디 2026 SS 컬렉션은 실비아 벤투리니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5세대에 걸쳐 무려 100년 동안의 시간 동안 지속되어온 펜디 가문의 저력을 보여줬다.
- 영상, 사진
- Courtesy of Fend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