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 코리아 Vol.10 베스트 퍼포먼스 – 송중기

이예지, 권은경

올해의 많은 영화와 드라마 중 존재감을 선명히 각인시킨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Best Performances’ 프로젝트.

“어떤 배우가 좋은 배우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행간과 위트를 아는 점을 꼽겠다. 그런 어떤, 부여받은 듯한 감각을 가진 배우를 만나는 건 행운이다. 그는 그걸 갖고 있다, 장난스런 얼굴로 우수를 감추며. 덕분에 우리는 아직도 그의 등장을 궁금해하지 않나. 잘 벼른 칼처럼 굴지, 세공된 유리잔처럼 놓일지.” – 드라마 <마이 유스> 작가 박시현

<W Korea> 여전히 청년의 얼굴이 있으시네요. 나이 들어도 그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 남자가 있죠.
송중기 그런가요? 모르겠어요, 저는.

송중기 씨의 지난 작품들을 돌아보면, 의외로 로맨스나 멜로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얘길 들었어요. 네, 저 생각보다 그런 작품을 많이 안 했어요. <늑대소년>이나 <태양의 후예> 같은 작품의 임팩트가 강했기 때문에 사랑 이야기를 꽤 한 듯한 인상이 있나 봐요.

저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를 참 좋아했어요. 2012년 가을이 송중기에게 결정적인 시간이었던 거 알아요? 그 드라마가 시청률도 높았는데, 방영 중에는 또 <늑대 소년>이 개봉했어요.
그랬네요. 자주 하는 말이지만, 늘 안 해본 색깔의 작품을 하고 싶어요. 저는 이번 드라마 같은 작품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더 끌렸고.

JTBC <마이 유스>는 어릴 적 마음속 첫사랑과 재회하는 이야기입니다. 송중기 씨가 맡은 ‘선우해’의 학생 시절을 남다름 배우가 연기하는데, 외모는 다르지만 느낌이 통한다는 점에서 최적의 캐스팅 같아요.
다름 씨는 아역계에서 워낙 베테랑이죠. 사실 군대도 다녀온 20대 초반이에요. 얼마나 하고 싶은 배역이 많겠어요? 대본이 다름 씨한테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역은 이제 그만하고 싶지 않을까’ 했는데, 수락해줘서 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아역 분량이 꽤 많거든요. 저는 우리 드라마에서 아역들의 분량 쪽을 많이 좋아해요. 그쪽 정서가 잘 나와야 성인인 저와 천우희 배우의 정서가 잘 살아날 텐데, 다름 씨가 중심을 잡아줘서 든든했죠.

드라마 제작사가 송중기 씨의 매니지먼트이기도 한 하이지음스튜디오입니다. 그러면 작품 준비 단계부터 의견을 꽤 냈나요?
이런 경우에는 저도 의견을 좀 더 쉽게 낼 수가 있죠. 박시현 작가님과도 인연이 있어요. <태양의 후예> 때 김은숙 작가님의 보조 작가로 처음 만났고, <런 온>으로 입봉한 이후에도 작가님을 늘 응원해왔어요. 사적으로도 아는 친구라고 할 수 있고요. 워낙 글을 예쁘게 써요. 그런데 작가님은 아역 시절도 성인 배우가 연기하길 바란 것 같아요. 저는 ‘그것만 바꿉시다’ 제안했어요.

아무리 송중기라도 마흔에 교복을 입고 고등학생 시절을 연기하기엔 무리가 있겠네요.
네, 애써 만들려는 정서가 다 깨질 것 같았어요. 아역과 성인 간의 콘트라스트가 있어야 더 풋풋하고 아련함이 담길 거라고 판단했어요.

극 중 선우해는 어떤 남자입니까?
세상의 풍파를 너무 일찍 다 겪어버려서 안쓰러운 친구. 국민 아역 배우로 불리면서 인생의 피크를 너무 이른 시기에 찍어버렸고, 세상에 대한 상처도 많죠. 성장이 좀 멈춰버린 느낌이에요. 그런 친구를 천우희 배우가 연기하는 ‘성제연’이 어루만져줘요.

송중기와 천우희의 감성 로맨스 혹은 멜로네요. 오랜만의 멜로 연기에 임하면서 필요했던 과정이 혹시 있을까요?
상대 배우와 활발히 의견을 주고받는 게 중요했어요. 멜로 장르에서는 배우가 채워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서로 호흡이 진정으로 맞지 않은 상태에서는 뭔가 자꾸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있어요. 케미스트리도 케미스트리지만, 배우들 각자가 살아오며 형성된 색은 숨길 수 없는 거니까. ‘진짜 대화’를 할 수 있는 파트너를 바랐는데, 그런 점에서 천우희 배우를 만난 것도 굉장한 복이었어요.

7개월간 촬영하셨죠. 그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천우희 씨에게선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무척 건강한 친구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생각하는 거나, 평소 생활이나, 현장에서의 애티튜드를 보면 그래요. 소통 능력도 뛰어나요. 본인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소통할 때 진솔하고, 오픈되어 있어요. 대본을 두고 상대 배우와 직접적으로 소통을 깊게 한 경험이 오랜만인 것 같아요. 다른 작품에서 또 만나고 싶어요.

어떤 이야기를 자주 나누셨어요?
누구나 가슴 한켠에 묻어놓은 아련한 존재가 있게 마련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우리 드라마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띤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표현하는 입장에서는 쉽지가 않았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한 대화를 많이 했어요. 우희 씨도 ‘우리가 채울 게 많다’는 생각이었죠. 보시는 분들이 개인적인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고, 어떻게든 공감할 여지가 있으니 배우들로서는 그 부분을 기대해보면서 최선을 다하자는 결론이었고요.

첫사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뭔가요?
갑자기 왜 최수종 선배님이 생각나죠?(웃음) 어릴 때 본 드라마라 기억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

마지막 회 시청률이 65%가 넘은 강렬한 주말연속극이니까, 인정하겠습니다.
첫사랑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과거 제 개인적인 첫사랑이 떠오르는데, 모든 사람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언제 첫사랑을 하셨나요?
와··· 그게, 6학년.

성숙하셨네요.
늦은 편 아니고요? 누군가로 인해 처음으로 속앓이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걸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6학년 때 그런 기억이 있어요.

기억에 묻어둔 첫사랑이 있다면, 이어질 듯 말 듯 자꾸 어긋나는 사랑도 있죠. 혹시 2000년대 중반에 나온 한국 영화 <사랑을 놓치다>를 보셨나요?
제가 한국 멜로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예요. 그 영화를 보고 안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요? 성인의 감정을 다루는 데는 최고봉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설경구, 송윤아 선배님의 연기도 너무나 좋았고.

‘지나간 사람은 그저 지나갈 정도의 인연이었나 보다’ 하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현실에서는 사느라 바쁘니까 그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건지도 모르죠.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 전지적 시점의 관찰자로서 ‘인연은 붙잡아야지!’ 모드로 변합니다(웃음). 동시에 이상할 정도의 여운이 감돌아요.
그런 쪽으로, 저도 좋아하는 취향이 있어요. 예를 들면 허진호 감독님의 영화 중에서도 특히 <봄날은 간다>를 좋아하는 분이 워낙 많잖아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사가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호우시절>을 더 좋아해요.

오! 그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는 길에도 계속 여운이 맴돈 기억이 나네요. <호우시절>의 어떤 점이 좋으세요?
재회의 설렘이라는 게 또 다른 것 같아요. 썸을 탈 때라거나 누군가에게 처음 빠져들 때의 설렘도 좋지만, 과거에 한번 인연을 맺었다가 타이밍이 어긋나서든 어떤 이유로든 지나가버린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오는 설렘. 그런 포인트에서 제가 좀 더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더라고요.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는데, 안 보셨으면 나중에 한번 보세요. <사랑을 놓치다>와 <호우시절>을 좋아하신다면 그 작품도 밤을 새워 볼 거예요. <마이 유스>와 구조가 비슷한 데도 있어요. 제가 그런 정서에 잘 끌려요.

<조 블랙의 사랑>과 <가을의 전설>도 아끼는 영화라고 들었어요. 남녀노소를 떠나 그 시절의 브래드 피트를 안 좋아하기가 어렵긴 합니다.
일부러 찾아보고 그런 게 아닌데, <트루 로맨스>도 그렇고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에는 신기하게 브래드 피트가 계속 있더라고요(웃음). 예전에 <조 블랙의 사랑> 판권까지 알아본 적도 있어요. 그 작품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사극으로 만들어도 좋을 거라고, 저 혼자 상상의 나래를 막 펼쳤는데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어서 포기했죠.

‘사자 보이즈’의 인기를 생각하면 사극 버전 <조 블랙의 사랑> 정말 괜찮겠는데요? 저는 <가을의 전설> 포스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저는 그 영화를 정말 수없이 많이 봤어요. <가을의 전설>은 그냥 저한테···.

교본 같은 영화인가요?
작품 들어가기 전이나 영감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할 때, 제일 기대고 싶은 영화예요. 촬영 기간 동안 심적으로 다운되거나 뭐가 잘 안 풀린다고 느낄 때도 그냥 그걸 봐요. 일종의 루틴이에요.

브래드 피트도 궁금해할 얘기네요. 흥미로워요, 그 영화가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가을의 전설>은 뭐랄까, 주말연속극 같거든요. 모든 정서가 다 담겨 있어요. 구수하죠. 가족애와 형제애, 남자들의 질투, 부자지간의 이야기, 그리고 사랑···.

전쟁과 평화도 있죠.
네, 전쟁과 평화까지. 온갖 것이 들어 있기 때문에 페이소스가 짙어요. 그렇게 많이 봤는데도 다시 볼 때 또 새롭게 보이는 게 있고. <마이 유스> 촬영 들어가기 전에도 한 세 번은 봤네요.

그러고 보니, 영화 <화란>에서 조직의 중간 보스와 소년 사이에도 어느 정도 멜로가 있었습니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나와 닮은 아이를 보듬어주고 싶은 연민이 누아르를 지탱하고 있었죠.
네. 그렇게 미묘하게 해석될 수 있겠다는 얘기를 홍사빈 친구와 제작사 대표님과도 나눈 적 있죠. 제 최근 행보에서 가장 반가웠던 작품이에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해보지 않았던 장르를 선택하자는 게 최우선이거든요. 흥행이 될 것 같은 작품이어도 이전에 했던 성격과 겹치면 손이 안 가는 편입니다. 자꾸만 안 해봤던 것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거죠. 그 욕심이 계속 스스로를 푸시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주고요.

이를테면 <화란>과 같은 작품에 끌리는 취향은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것인가요, 아니면 스타가 되기까지 쌓아온 이미지
와 상업성을 벗어나고픈 심리에서 비롯된 건가요?

음. 과거에는 저 스스로도 일종의 반발 심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제 본래 취향이 그래요. 결핍 있는 캐릭터에 곧잘 끌리는 듯해요. 소위 말하는 좀 마이너한 것에 끌린다고 할 수도 있겠어요.

<마이 유스>의 선우해 역시 결핍이 눈에 띄는 인물입니다. 일찍이 고된 가장의 삶을 사는 그에게 성제연은 반짝거리는 존재였죠. 중기 씨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떤 것인가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드는 가장 큰 감정 말이에요.
뭘까요, 사랑한다는 게···. 일단 시작은 가슴이 아린 거겠죠. 출발은 그런데, 사람마다 각자 자기 안에 뭐 하나쯤은 불편해하면서 살아가는 게 있는 것 같거든요. 상대방의 그런 부분까지 내가 치유해주고 보듬어주려고 하는 게 가장 예쁜 감정 아닐까 싶
어요. 내가 그렇게 해주고 싶고, 또 나도 그런 걸 받고 싶기도 한 것.

‘소년과 소녀가 자라, 다시 만난다.’ 이렇게만 써도 이미 설레는 <마이 유스>의 이야기에 치유적인 성격까지 부여하는 건, 송중기라는 설득력이다.
“재회의 설렘이란 또 다른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처음 빠져들 때의 설렘도 좋지만, 과거에 한번 인연을 맺었다가 타이밍이 어긋나서든 어떤 이유로든 지나가버린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오는 설렘. 그런 포인트에서 저는 좀 더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더라고요.”

단 하나의 장면, 단 한 줄의 대사만으로도 그해의 감정을 가로지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더블유> Vol.10은 그들을 위한 빛나는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올해의 많은 영화와 드라마 중 존재감을 선명히 각인시킨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Best Performances’ 프로젝트. 고현정, 김우빈, 박찬욱과 손예진, 소지섭, 송중기, 임윤아, 주지훈, 한지민. 그 이름을 되새기는 건 지금 한국의 스토리텔링이 도달한 감정의 깊이와 밀도를, 작품의 성취를 다시 확인하는 일입니다. 이제 그들의 독자적인 순간이 찬란하게 펼쳐집니다.

포토그래퍼
안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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