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의 불안한 뇌

최수

그냥 내가 다 미안해

무의식적으로 사과를 하는 당신. 겉으론 친절해 보일진 몰라도, 그 안에 불안을 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갈등을 피하고 싶은, 회피형 인간의 전략

@kaiagerber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의 연구(2015)에 따르면, 불안 성향이 높은 사람은 감정 변화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중립적인 표정조차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상황이 아직 갈등으로 발전하지 않았음에도, 미리 자신을 낮춤으로써 위험을 회피하려는 전략을 사용하죠. 사소한 실수에 과하게 반응하거나, 뭔가 잘못된 기분이 들면 “내 탓일 수 있어”라고 자동적으로 생각해 버리면서요. 그 감정을 해소하려는 방법으로 무의식적인 ‘사과’를 꺼내 드는 겁니다.

특히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에게 이런 반응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회피형 애착은 어린 시절 정서적 안정감을 충분히 받지 못했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불편했던 환경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사람은 갈등을 피하고자 선제적 사과를 택하고, 타인의 기분에 과도하게 반응하며 스스로를 점점 작게 만듭니다. 즉, ‘미안해’라는 말은, 관계 안에서 나를 보호하려는 방어적 장치인 셈이죠. 문제는 그 장치가 반복될수록, 상대는 무의식적으로 당신을 더 낮은 위치로 인식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과는 그만, 당신의 자존감을 지키세요

@emrata

자주 미안하다 말하는 습관은 자신을 비난하는 태도와 연결되기 쉽습니다. 반복적인 사과가 타인과의 신뢰를 높이기보다 “나는 늘 잘못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거든요. 처음엔 예의로 시작됐더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존재감을 낮추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는 거죠. 어린 시절 꾸지람을 자주 들었던 경험이 있거나, 감정 표현에 제약이 많았던 사람일수록 이 경향은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불안에 기반한 사과는 결국 진짜 감정을 숨기게 만들고, 건강한 관계 형성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dualipa

사과 대신 “고마워”, “괜찮아”, “그랬구나” 같은 말을 연습해 보세요. 예를 들어, 친구가 고민을 털어놨을 때 “괜히 힘들게 해서 미안해”보다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편이 관계에 훨씬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사과’는 갈등을 피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지는 않거든요. 중요한 건 내가 정말 잘못했는지 아닌지를 먼저 판단하고, 그에 맞는 감정을 선택하는 연습입니다. 말은 곧 뇌의 반응을 바꾸는 신호입니다. 자신을 불필요하게 낮추는 대신, 나를 보호하는 언어를 늘려보세요. 작은 말 습관이 당신의 마음에 근력을 키워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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