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짐을 털어놓고 가벼움을 누리는 시간. 지금 존박은 이런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작년 11년 만에 발매한 정규 2집 <PSST!>는 리스너들 사이 박수갈채를 받았고, 그 힘을 입은 덕인지 유튜브 채널 <존이냐박이냐>도 순풍 속에 항해 중이다. 취미처럼 음악 하기, 하지만 여전히 진지할 것. 서울재즈페스티벌의 첫째 날, 그것도 오프닝을 장식할 존박이 요즘을 걷는 마음에 대해 말했다.

<W Korea> 언젠가 뮤지션 킴 고든은 자신에게 흔히 붙는 수식어 ‘그런지의 대모’가 가장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라 말한 적이 있죠. 그렇다면 존박 하면 사람들이 자주 떠올리는 ‘감미로운 발라더’는 본인에게 어떻게 다가갈까요?
존 박 데뷔 초엔 발라드 위주로 곡을 냈으니 그렇게 기억해주는 분들이 아무래도 많죠. 그런데 작년 발매한 정규 2집 <PSST!>부터 확실히 팝 기반의 사운드를 추구한 만큼, 제 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분들은 ‘존박은 이제 발라더가 아니다’라는 걸 아실 듯해요. 그래도 대중에게 발라더라고 인식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란 생각을 해요.
<PSST!>로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팝 음반상’을 받았죠. 11년 만에 들고 온 야심작인 만큼, 재즈와 소울에 기반하되 다양한 장르적 탈주가 돋보였고요. 이 앨범은 존박이라는 뮤지션에게 어떤 분기점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음악, 잘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끌리는 음악을 마구잡이로 작업한 케이스예요. 홍소진 프로듀서가 함께했는데 합도, 음악 취향도 잘 맞았고요. 그동안 풀어내고 싶었던 응어리를 풀었고, 내고 싶은 욕심을 다 냈어요. 그래서 속이 다 시원했어요. 당분간은 이렇게까지 욕심 안 부려도 될 정도로(웃음).
어떤 응어리가 있었을까요?
‘가요 시장에서 과연 내 위치는 어디일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발라드곡, 소위 대중적인 곡을 뽑아보자는 취지로 싱글을 냈는데 그때마다 아쉬움이 있었고요.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제 온전한 모습을 음악에 담지도 못했거든요.
응어리를 풀고자 시작한 앨범인 만큼 협업자가 중요했겠어요. <PSST!>에는 유독 홍소진 프로듀서와 합을 맞춘 트랙이 많죠?
제가 워낙 오랜 팬이에요. 그러다 2016년경 우연히 안면을 트게 됐고요. 그 당시 싱글 ‘네 생각’을 발매했는데, 편곡에 참여한 적재가 소진 씨와 친분이 있거든요. 언젠가 함께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만 품다가 이번 앨범에서 서로 타이밍이 딱 맞은 거죠. 소진 씨가 정말 바쁘기로 소문이 자자해요.

<PSST!>는 재즈를 포함한 여러 팝 장르가 두드러진 앨범이잖아요? 그러니 올해 서재페도 이 앨범의 수록곡이 현장과 잘 어울리겠다 싶어요.
이번 앨범을 밴드와 함께 라이브로 선보이는 건 처음이기도 해서 원곡을 최대한 살릴 예정이에요. 그리고 특별한 무대가 준비돼 있어요. 제가 페스티벌 첫날 오프닝 무대에 서는데요. 주최 측에서 공연의 20분 정도는 아예 재즈 구성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마침 <PSST!>의 첫 트랙 ‘Bluff’가 딱 재즈다운 곡이거든요. 그 곡을 필두로 커버 곡도 들어가고, 제 기존 발라드곡도 재즈풍으로 편곡할 예정이에요. 피아니스트 남메아리의 연주도 그렇고 마치 라이브 재즈바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실 거예요.
앨범이 나오고 거의 반년이 지났는데 밴드 세션의 라이브 공연이 처음이군요. 의외인데요?
시간이 필요했어요. 작년에는 앨범을 작업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공연까지는 계획하지 못했거든요. 서재페를 시작으로 아마 올해 안에 단독 공연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앨범 작업이 정말 치열했나 봐요.
곡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서 구상한 건 아니에요. 소진 씨와 함께 다 늘어놓고 놀이터에 온 것처럼 작업했어요. 그렇게 완성한 모든 곡이 다 앨범에 들어갔고요. 초안 작업한 것까지 합치면 30여 트랙은 될 거예요. 그런데도 전체를 놓고 들어보니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있었고요. 좀 더 따뜻하고 둥글둥글한 곡이 이어주는 역할로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작업한 게 ‘꿈처럼’이에요. 공교롭게도 그 트랙이 앨범의 타이틀로 낙점되었죠.
수록곡 대부분이 존박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꿈처럼’은 어찌 보면 팬들을 위한 음악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렇죠. 하나쯤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 따라 부르기 편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공연장에서 사람들이 흥얼거릴 수 있는 곡이요. 그런데 그 곡도 그렇게 정박자의 부르기 쉬운 음악은 아니네요(웃음).
‘꿈처럼’을 비롯해 <PSST!>는 존박의 내밀한 일기장을 엿보는 기분도 들어요. 보통 음악 작업을 할 때나 가사를 쓸 때 ‘나’로부터 시작하는 편인가요?
대부분 제 얘기를 하죠. 물론 제 얘기만으로 음악을 만들진 않고요. 그러면 똑같은 말만 반복하게 되니까요.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도 받고, 소설처럼 써 내려갈 때도 있어요. <PSST!>에도 제 속마음, 심지어 친한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두세 곡 담기도 했어요. 참 신기한 게요. 제 인생에 있었던 일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느낀 슬픈 감정 등을 곡에 담으면 팬분들이 그 곡을 귀신같이 알고 좋아하세요. 대중적인 곡도 아니고 표면적으로도 다를 게 없는데 그게 느껴지나봐요. 그 과정에서 저 스스로 마음 정리가 되는 것도 재밌고요.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사실 조금 망설여지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부끄러울 때도 있고요.
실제로 이번 앨범의 수록곡 ‘Somebody Better’는 저 혼자 비밀스럽게 트랙 순서도 어중간하게 잡고 편곡도 미니멀하게 한 곡이거든요. 가장 의미 있고 가사도 잘 썼다고 생각해서 아끼는 곡인데, 어떤 면에선 애정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완성도에서 아쉬움이 좀 남아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그 곡을 가장 좋아하더라고요. 특히 가사가 너무 슬프대요. 요즘은 듣는 사람들이 다 너무 똑똑해요. 정직하게 음악 만들어야 해요.

예전 <더블유>와 나눈 인터뷰에서 ‘병맛 코드’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최근 진행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존이냐박이냐>에서도 존박이 애정하는 그 코드가 유독 자주 엿보여요.
웃겨야겠다, 우스꽝스러운 짓을 해서 주목받아야겠단 욕심은 없어요. 오히려 이제 안 했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러다 <존이냐박이냐>를 함께하는 솔파 스튜디오를 만나면서 좀 바뀌었어요. 담당 PD님들이 진짜 재밌어요. 촬영장에 도착해서 카메라를 들 때까지 뭘 찍을지도 안 알려줘요. 도착하면 ‘삐끼삐끼 챌린지’ 보여주고 “이거 하시면 됩니다”하는 식이에요(웃음). 저는 일단 사전 정보 없이 시키면 하고, 솔파 팀은 잘 만들고. 그런데 조회수가 또 잘나와요. 그럼 제 입장에선 할 말이 없죠. 처음엔 정말 꼭두각시처럼, 싫어도 이 악물고 했는데 이제는 서로 어느 정도 협의를 하며 사이좋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계약 연장도 했으니 또 열심히 달려봐야죠(웃음).
확실히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 예전보다 부담을 내려놓고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음악에 집중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다 보니 다른 건 좀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2집을 준비하는 과정, 발표하고 나서 되게 건강해졌어요. 그래서 유튜브도 큰 욕심 없이 내려놓고 시킨 거 하고, 사람들이 좋아해주니까 저도 좋았죠. 사실 예전엔 음악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음악을 더 채우려 들었죠. 무조건 시간이 필요한 과정인데도 조급할 때가 있었어요. 심지어 ‘예능이 너무 잘 되면 안 되는데’라는 걱정까지 했다니까요. 제 음악에 악영향을 미칠까봐요. 근데 이제야 강박, 걱정을 내려놓은 것 같아요. 음악은 음악대로 열심히 하면 되고, 콘텐츠는 콘텐츠대로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까요.
언젠가 “음악은 진지하게 해서 나를 힘들게 만드는 뭔가가 아니라 취미 같았으면 좋겠다”라는 말도 했죠.
어려워요. 2집 작업 때 노는 것처럼 만든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약간 식었던 음악에 대한 애정이 훨씬 커졌고요. 그런 의미에서 취미처럼 만들었다고 말할 순 있겠지만, 진짜 ‘취미’는 절대 안 될 것 같습니다. 하면 할수록 진지해질 수밖에 없고, 아는 거만큼 모르는 게 많아져서 고민도 함께 늘어요. 한 곡을 쓰더라도 신중해지고요. 마치 신인 래퍼처럼 믹스테이프 30곡짜리 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근데 안 되네요.
마지막입니다. 오프닝이란 중책을 맡은 올해 서재페 무대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주신다면?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인데요. 제 목소리와 무대에는 확실한 색이 있어요. 서재페에 내한하는 해외 뮤지션과 국내 뮤지션의 중간 지점일 것 같은데요. 저는 정말 오랫동안 팝 음악을 듣고 자랐고, 그 영향이 가장 많이 담긴 앨범을 라이브로 들려드릴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20분의 재즈 구성도 집중도 높고 매력이 있을 거고요.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 좀 그렇지만, 요즘 노래에 물이 올랐어요. 그러니까 늦게 오지 마시고, 오프닝 시간에 맞춰 오시면 즐겁게 해드리겠습니다.
- 포토그래퍼
- 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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