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하우스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를 만나다

이현정

가브리엘 샤넬에게 기회는 언제나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향기, ‘샹스 오 스플렌디드’의 론칭을 맞아 <더블유>가 샤넬 하우스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를 도쿄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 Chanel 샹스 오 드 빠르펭, 샹스 오 땅드르, 샹스 오 후레쉬 각 100ml, 28만4천원. 샹스 오 비브 100ml, 23만1천원. 샹스 오 스플렌디드 100ml, 28만4천원.

샤넬 하우스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Olivier Polge)

샤넬 향수 크리에이션 및 개발 연구소의 책임자. 아버지 쟈끄 뽈쥬에 이어 2015년 샤넬 역사상 네 번째 조향사로 이름을 올렸다. 레 젝스클루시프 드 샤넬, 레 조 드 샤넬, 가브리엘 샤넬, N°5 로(L’eau)등 샤넬에서 출시한 최근의 가장 인상적인 향수 컬렉션은 모두 그의 코끝에서 탄생했다.

<W Korea> ‘샹스 오 스플렌디드’를 구상할 때, 이 향수에 담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올리비에 뽈쥬(Olivier Polge) 5개의 샹스 컬렉션은 모두 다른 향이지만, 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바로 기쁨과 긍정의 메시지죠!

당신은 ‘샤넬에서는 마치 화가가 컬러 팔레트로 작업하듯이 원료를 사용합니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죠. ‘샹스 오 스플렌디드’의 향기를 구성할 때 당신의 팔레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시작할 때부터 기존 샹스 라인을 먼저 떠올렸어요. 4가지 향수 모두 사용한 원료는 각각 다르지만 향수의 핵심엔 끌릴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죠. 톱 노트가 강렬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다양한 원료와 느낌을 찾던 중 톱 노트가 강렬하고 컬러풀한 라즈베리를 주목하게 되었어요. 라즈베리 향에서 바이올렛과 장미의 터치가 느껴지는 것이 흥미롭더군요. 라즈베리로 톱 노트를 정하고나니, 로즈 제라늄의 플로럴 노트를 가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제라늄은 잎에서 장미 같은 플로럴 향이 매우 짙게 나는 재미있는 식물이죠. 샤넬 그라스 농장에서 우리가 원하는 제라늄을 찾아, 허브향이 깔린 로즈 노트를 첨가할 수 있었어요.

장미 향을 내기 위해 굳이 장미 대신 로즈 제라늄을 사용한 이유는 뭔가요?
마지막에 풍성하면서도 상쾌한 향이 나길 바랐는데, 그러려면 제가 선택한 모든 원료가 향수의 상쾌함에 기여해야 하거든요. 제라늄은 일반적인 장미보다 톱 노트가 더 진하고 신선해요.

앙젤에게 ‘샹스 오 스플렌디드’를 시향하고 있는 올리비에 뽈쥬.

저도 집에서 로즈 제라늄을 기르는데, 잎을 만지면 허브처럼 시원하면서도 은은한 꽃향기를 풍기는 게 참 독특해요.
제라늄 오일은 꽃이 아닌 잎에서 얻을 수 있어요. 흥미롭지 않나요? 그래서 꽃이 거의 없어도 향기가 나죠! 오일이 풍부해 심지어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느낄 수 있고, 비가 오면 잎의 오일이 흘러서 땅에 스며들기도 한답니다. ‘샹스 오 스플렌디드’는 이런 풍성하고 우아한 플로럴 하트 노트에 시더우드와 화이트 머스크를 베이스로 사용했죠. 특히 시더우드는 재증류 과정을 거쳐 진하고 무거운 향을 없애고, 시더우드 자체의 미들 노트만 사용해서 아주 잔잔하게 느껴집니다. 최근에 개발된 재증류 기술을 활용하면 우리가 사용하고 싶은 오일의 특정 부분만 정밀하게 추출할 수 있답니다.

그래서 향이 깊이 있으면서도 가볍고 신선하게 남는군요! 다시 ‘샹스 오 스플렌디드’의 주역 라즈베리로 돌아가볼까요? 라즈베리는 기억에 아주 선명하게 남는 향 같아요.
그렇죠. 이 향수를 구상할 때 강렬한 첫인상을 기대했는데, 라즈베리는 결코 잊히지 않는 톱노트인 동시에 피부에 뿌리면 잔향도 오래 지속됩니다. ‘샹스 오 스플렌디드’는 프루티 향이 압도적인데, 저는 이 라즈베리 프루티 향이 마음에 들어요. 너무 부담스럽지 않고, 끈적거리지 않으면서 상쾌한 프루티 향이죠.

오늘 아침 ‘샹스 오 스플렌디드’를 뿌렸는데, 지금은 아주 부드럽고 은은한 무드의 잔향이 남아 있어요. 처음에는 상큼 그 자체였는데!
제가 원했던 게 바로 그거였어요(웃음).

‘샹스’ 하면 사랑스러운 보틀 컬러를 또 빼놓을 수 없죠. 향을 먼저 정하고 주스의 컬러를 정했나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매번 달라요. ‘샹스 오 스플렌디드’의 경우엔 향을 개발한 뒤, 바이올렛 컬러를 떠올렸어요. 어떤 향수는 그 반대로 가기도 하죠. 컬러가 향에 영감을 줄 때도 있거든요. 이번엔 향이 먼저 완성되었고, 컬러는 그다음에 결정했어요. 그런 뒤에 ‘스플렌디드(Splendide)’라는 이름을 지었죠.

제품을 개발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기존 샹스 라인과 잘 어울리는 동시에 이전과는 또 다른 느낌의 향수를 만들어내는 것이 도전이었죠. 처음부터 라즈베리에 끌렸는데, 그때만 해도 이렇게 프루티 노트가 강한 향수가 나올지는 몰랐어요. 완성된 향기에 저도 놀랐죠.

샤넬은 브랜드 유산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언제나 동시대적인 터치로 젠지가 열광할 만한 것을 창조해내는데, 이 새로운 세대를 위해 당신이 가미한 터치가 있나요? 아니면 그런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나요?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샤넬에서 무엇을 만들 때 직관적으로 이곳에 의미 있는 것을 창작하려고 노력해요. 샤넬의 스타일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샤넬의 모든 향수 라인은 연결되어있고, 나이대로 구분되지 않아요. 특정 향수가 어떤 사람에게 어울릴지, 어떤 연령대에 어울릴지 이런 생각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져요.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잖아요? 나이도 사실 생각하기 나름이고요. 나이가 들어도 젊은 마인드를 가질 수 있고, 반전이 있을 수 있고. 향수를 만들 때 어떤 사람이 정말 내 향수를 애용할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샹스 오 스플렌디드’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50ml, 커다란 라운드가 매력적인 100ml 보틀 두 가지로 선보인다.

샹스 라인을 작업할 때, 다른 샤넬 향수와 비교해 특별히 신경 쓰는 지점이 있나요?
샹스 컬렉션을 연결하는 공통분모는 직설적이고 미적으로도 한눈에 사로잡는 것이죠. 특히 심플하면서 진솔한 느낌을 표현하려고 하는데, 이런 것을 향수로 표현하기란 참 어려워요. 그래서 매번 향수 하나하나가 탄생할 때까지 할 일이 참 많답니다. 샹스는 상쾌하고 컬러풀한 면모를 강조하는 반면 샤넬의 다른 향수 라인은 좀 더 차분한 편이랄까요? ‘레 젝스클루시프 드 샤넬’이나 ‘코코 마드모아젤’ 같은 향수는 ‘샹스’보다는 텍스처가 더 강하고 조금 더 무거운 느낌이죠.

당신에게 가장 큰 샹스(Chance), 기회는 무엇이었나요?
커리어에 있어 가장 큰 기회는 샤넬과 일하게 된 것이죠. 좀 뻔한 답인데, 사실이니까. 크리에이터에게 완전한 자유와 도구, 기술을 제공하는 브랜드는 샤넬밖에 없을 겁니다.

예상했던 답변인데, 수긍할 수밖에 없군요! 샤넬에서 당신이 마음껏 작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나요?
네, 전적으로요. 향수가 탄생할 때까지 얼마나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지 다들 잘 모르실 거예요. 근데 그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식물에서 향을 추출하는 새로운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답니다. 이것이 각 향수를 다르게 완성하는 방법 중 하나죠.

마지막으로, 샤넬의 하우스 조향사인 당신이 평소 즐겨 쓰는 향수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오늘은 ‘뿌르 무슈’를 사용했어요. 1950년대에 나온 샤넬의 첫 남성 향수인데, 사실 매일 쓰진 않아요. 작업할 때 향수를 뿌리면 안 되니까요. 오늘은 작업을 안 하니까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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