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을 오가는 디올의 대서사시가 건네는 묵직한 감동.
2015년 열린 <디올 정신 (Esprit Dior)> 전시 이후 근 10년 만이다. 파리 장식미술관을 시작으로 런던, 상하이, 뉴욕, 도쿄 등 세계 도시를 순회한 전시, <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가 드디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상륙했다. 아트 및 패션계와 긴밀한 작업을 펼쳐온 베테랑 큐레이터 플로렌스 뮐러(Florence Müller)의 손길 아래, 1947년 시작된 크리스챤 디올의 하우스 창립부터 현재까지 75년 넘게 창조적 활기로 넘친 디올의 역사가 펼쳐진다. 풍성한 스토리로 가득한 디올의 오디세이는 단순히 하우스의 역사와 정신을 확인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작품이 한데 어우러져 디올과 한국의 깊은 유대감까지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전시는 디올 역사의 기원, 파리 몽테뉴 30번지의 외관을 패브릭으로 재현한 입구에 들어서며 시작된다.

쿠튀리에의 사무실부터 살롱, 디올 아뜰리에에 이르는 공간을 살피고 나면 디올 스타일의 아이콘 ‘뉴 룩(New Look)’을 만나볼 차례. 1947년 2월 12일, 크리스챤 디올이 선보인 바 재킷과 볼륨감 있는 스커트 조합의 룩이다. 당시 미국의 한 편집장이 “진정 새로운 룩이다(It’s such a new look)”라고 말한 데서 ‘뉴 룩’이라는 전설적인 명칭이 탄생했다. 이 바 슈트를 비롯해 다채롭게 재해석된 뉴 룩들은 빛과 그림자 요소를 활용한 공간에서 아름다운 향연을 펼친다.
거대한 달항아리 모양의 공간에선 중앙에 설치된 라란 컬렉션의 은행나무 벤치에 앉아 미디어 아트로 흐르는 사계절을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 꽃과 정원을 사랑한 무슈 디올의 서정적인 감성이 낳은 다양한 작품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한국 작가 김현주가 한지에 사용되는 닥나무 섬유를 활용해 식물로 표현한 작품들은, 로맨틱한 자수와 프린트 장식의 아카이브 룩들과 조화를 이루며 전시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이후 생동감 넘치는 컬러별 액세서리로 시각을 즐겁게 자극하는 ‘컬러라마’ 존을 지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백색의 공간이 나타나 전시에 몰입감을 더한다. 바로 디올의 재단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디올 아뜰리에’ 존이다. 관람객을 압도하는 거울과 원근법, 빛 반사 등의 연출을 통해 쿠튀리에의 탁월한 노하우와 그 장인 정신을 감각적으로 소개한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공방을 지키는 그들에 대한 디올만의 예찬 방식인 셈이다.
이들을 이끄는 아티스틱 디렉터들에 대한 찬사는 메종의 아카이브를 한곳에 모아둔 전시 공간에서 시작된다. 이곳 역시 우리나라 전통 조각보가 배경으로 자리해 한국적 미감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재미있는 점은 공간의 전반적인 구조도 조각보의 바느질 기법을 연상시키는 곡선 형태로 완성했다는 것. (모르면 지나치기 쉬운 장치 하나하나에 한국에 대한 애정이 스며 있다.) 그 안에서 이브 생 로랑, 마크 보앙, 지안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 그리고 현재 활약 중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이어온 75년 유산이 살아 숨 쉬고, 이 기록은 다시 한국계 캐나다 아티스트 제이디 차(Zadie Xa)가 제작한 크리스챤 디올의 초상화로 돌아오며 마무리된다.
제이디 차는 2022년 디올의 후원으로 개인전을 열고, 2023년에는 레이디 디올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디올과 깊은 인연을 맺은 아티스트다. 이번 작품에선 무슈 디올의 단순한 초상화가 아닌, 그가 소중하게 여긴 것과 특별한 관심사까지 담기를 바랐다고. 그녀가 영감을 받은 한국의 조각보와 텍스타일, 회화 속 상징들은 그의 인물화와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디올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
시대를 초월하는 디올의 시그너처 백, 레이디 디올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 레이디 디올의 공간은 디올 하우스와 한국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예술가의 시각으로 레이디 디올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는 ‘디올 레이디 아트 프로젝트(Dior Lady Art Project)’에서 공개된 작품 9점과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Lady Dior As Seen By)’ 콘셉트로 구현된 작품 17점에선 한국 아티스트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디올의 장대한 서사시가 점차 끝을 향해 갈 때 즈음, 디올의 뮤즈와 그들이 입었던 의상들을 조명하는 자리가 펼쳐진다. 셀린 디옹의 무대 의상 앞에서 어딘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유는, 그녀가 희귀 질환을 앓고 있음에도 올림픽 개막식에서 열창하며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그 기억이 새겨진 드레스이기 때문이다. 지수, 샤를리즈 테론, 제니퍼 로렌스, 다이애나 왕세자비 등이 착용한 디올의 드레스들은 옷을 넘어서 그 시절의 어떤 순간에 응축된 시대의 표정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파티와 무도회를 표현하는 전시 공간은 이전과는 또 다른 차원에 들어선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반짝이는 별이 쏟아지는 듯한 연출이 수 써니 박(Soo Sunny Park)의 설치미술 작품과 함께 비현실적인 분위기에 깊이 빠져들도록 만든다. 이렇게 감동과 몽환이 무한하게 펼쳐지는 디올의 꿈의 세계는 깊은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75년이라는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지만, 그 시간 동안 변함없는 고유성과 철학으로 인류 역사에 발자취를 남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각과 청각을 넘어 오감을 만족시킨 전시가 마무리되는 순간,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세계를 선물하는 이 메종에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유산을 큐레이션한 플로렌스 뮐러의 탁월하고 정교한 구성력과 미학적 통찰, 그리고 공간 연출력 역시 찬사받아 마땅하다. 동시에 하우스를 지탱하 는 힘을 체감하며 디올의 미래를 기대한다. 여유를 가지고, 시간의 흐름을 잠시 잊은 채 이 하우스가 가진 찬란한 신비로움에 흠뻑 빠져보시길. 전시는 7월 13일까지 이어지고, 디올 공식 웹사이트에서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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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KYUNGSUB SHIN, SUNGMIN KIM, JAMES ROBJANT, PIERRE MOU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