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의 K퀴진

전여울

지금 세계에서 한식은 가장 뜨거운 퀴진으로 호명되는 중이다.

캐주얼 다이닝부터 파인 다이닝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전방위적으로 한식이 관심을 받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요즘의 이야기다. 지금의 K 퀴진을 만든 것들을 좇아서, 한식을 둘러싼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를 펼쳐봤다.

지금 가장 뜨거운 한식

지난해 뉴욕, 파리, 도쿄 등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각 나라의 거점이 되는 몇몇 도시를 다녀오자 요즘 해외에서 무엇이 ‘핫’하냐는 질문이 날아왔다. 한식이라는 단호한 대답에 잠시 의심 어린 시선도 있었지만, 몇 가지 단서를 달자 물음표는 이내 사라졌다. 어디를 가도 빈자리가 없고, 예약 없이는 먹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현지인으로 가득 차 있는 그 풍경 속에 놓여 있으면 속된 말로 ‘국뽕’을 완전히 걷어내도 지금 대세는 한식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던 중 지난 12월 9일 임정식 셰프가 운영하는 ‘정식당’의 뉴욕점인 ‘정식 뉴욕’이 미쉐린 3스타를 받았다. ‘뉴욕 최초의 3스타 한식당’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들려온 소식은 ‘한식이 절정을 맞이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미국 내 3스타 레스토랑이 단 14개만 존재한다는 수치를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결과다. 레스토랑 밖에서도 한식은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지난 12월 6일엔 유네스코가 공개한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등재됐다. 2013년 김장 문화에 이은 두 번째 등재다. 유네스코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재료 준비부터 발효, 숙성, 보관, 그리고 성공적인 결과물을 위해 부적을 사용하는 의식과 관행까지 모두 장 만들기의 과정”이라고 소개하며, 오랜 전통과 한국만의 독창적인 기술, 장 만드는 과정 속 공동체 정신을 높게 평가했다. 또한 연초 NRA 트렌드 리포트에서 2025 톱 트렌드 3위, 톱 디시 1위로 한국 요리가 선정되기도 했다. 셰프, 레스토라터를 포함한 약 1,600명의 외식업계 관련 종사자의 투표 결과를 기반으로 하는 이 리포트는 글로벌 F&B 업계가 주목하는 기관 발표 중 하나다. 2010년대 후반부터 한식이 리스트에 고개를 들이밀기는 했지만 이토록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외에도 바움앤화이트맨, 웨이트로즈 등 유수의 트렌드 조사 기관에서 고추장, 김치 등의 한식이 잇따라 언급된 가운데 한식에서 절대적 위상을 점유하는 고추장 수출액은 2023년 역대 최대인 6,192만 달러를 기록한 데 이어, 2024년 1분기에는 전년대비 4.9% 증가하며 리스트 너머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왜 지금 한식인가

한식이 유례없는 인기를 끌고 있는 첫째 이유로 한류 콘텐츠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먹는 음식을 직접 먹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며 한식은 자연스레 지금 가장 뜨거운 퀴진으로 부상했다. 음식을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이는 세대로 인해 과거 정부 주도의 한식 세계화에 따라 한식 하면 비빔밥, 불고기, 김치를 떠올리던 때와 비교하면 인기를 끌고 있는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특히 다이닝 영역 밖에서도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달고나는 단순한 인기를 넘어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영어 사전에 ‘Dalgona’ 그대로 등재되기도 했다. 떡볶이, 찌개 등의 단어가 함께 새롭게 등재되긴 했지만 외국인에게 가장 단시간 내에 각인된 한식이 아닐까? 해묵은 이야기부터 시작하자면 무려 10여 년 전 SBS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이 불러일으킨 치맥의 아성은 각종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강 라면’이 이어받은 듯하다. 한강 편의점이 필수 관광 코스로 꼽히더니, 해당 조리 기계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식품박람회에서 900만 달러 수출로 그야말로 잭팟을 터트렸다. 라면 수출액은 2024년 31% 증가해 약 12억만 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라면을 비롯해 즉석 떡볶이 키트, 핫도그, 김치, 고추장 등 한국 간편식을 판매하는 편의점 ‘서울스테이션’이 파키스탄에 2024년 10월 오픈해 첫 달에만 약 5,000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들이 콘텐츠로 인한 즉각적인 반응이라면, 전 세계적인 웰니스, 채식 트렌드와 맞물리며 점진적으로 한식의 건강성이 부각된 점도 짚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발효 음식이 주목받고 있는데, 유네스코는 장 문화를 등재하며 “발효 과정에서 생산되는 필수 아미노산이 균형 잡힌 영양소를 제공한다”고 영양학적 장점을 콕 집어 소개했다. 발효는 전 세계가 오래전부터 택해온 방식이지만, 한식 발효에는 특이점이 있다. 지형 때문에 축산업보다는 농업이 발달하다 보니 한식은 태생적으로 채식을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한국의 전통 발효 식품은 부러 더하거나 빼지 않아도 채식 웰니스 트렌드에 부합하는 셈이다.

열풍은 관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한식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이 발현됐을 때, 이를 충족시킬 만한 ‘플레이스’ 가 존재해야 한다. 경험하지 못한 관심은 쉽게 사그라들기 마련이니까. 그런 점에서 일찍이 해외 시장을 일군 셰프들은 한식의 조용한 혁명가이자 현재 열풍의 또 다른 이유다. 세계 여러 도시 중 특히 뉴욕에서는 올해 ‘정식’ 외에도 ‘아토믹스’가 미쉐린 2스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주옥’을 비롯해 총 9곳이 1스타에 올랐다. 작년에 이어 최고 수준의 별 사냥 성적표를 기록하며 한식 파인 다이닝 신은 막강하고 절대적인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우선 한상차림에서 벗어나 코스 형식과 그에 어울리는 모던한 담음새에 있다. 뉴요커에게 익숙한 문법으로 한국적 재료를 차용해 신선하게 어필하는 것. 이 접근은 ‘뉴 코리안’의 시작으로도 볼 수 있다. 서양식 요리에 한식의 ‘터치’를 가했던 초기 형태에서 벗어나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한식의 색채를 더해가더니, 이제는 한국적인 것에서 요리의 구상을 시작하는 것이 치열한 뉴욕 시장에서 한식 파인 다이닝이 ‘생존’을 넘어 ‘번성’한 비결이다. 한국의 반찬 문화를 풀어낸 프리픽스(Prix Fixe·원하는 메뉴로 직접 코스를 구성하는 것) 메뉴를 선보이는 ‘아토믹스’를 운영하는 박정은 대표는 “뉴요커들의 한식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체감한다. 고추장이 무엇인지 묻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만들며 한국에서는 어떻게 먹는지 구체적으로 묻고 자신이 경험한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말할 만큼, 한식에 대해 한층 깊어진 관심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셰프들의 노력과 한식의 가능성을 알아본 기업 차원의 투자가 이루어지며 뉴욕의 한식 파인 다이닝은 현재 찬란한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현지 록펠러 재단의 러브콜로 오픈한 ‘나로’가 대표적이다. 지난 5월에는 이곳에서 CJ제일제당의 후원 아래 서울 ‘주은’과의 컬래버레이션 디너도 한 차례 열렸는데, 미국 외식업계 리더 등을 초청해 더덕, 잣, 냉이, 참나물, 된장 등 고유의 식재료를 활용해 한식의 품격을 제대로 알렸다. 그 밖에 CJ제일제당은 한식 셰프 육성 프로젝트 ‘퀴진케이’를 통해 팝업 레스토랑 및 스타주 지원 등 한식의 국내외 확장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그리고 보리비빔밥, 제육볶음 등의 메뉴와 함께 기사식당 콘셉트를 내걸며 기분 좋은 웨이팅 몸살을 앓고 있는 ‘키사’, 김치와 보쌈, 고추장 소스와 콩가루를 더한 회무침 등을 선보이는 ‘무아’ 등은 한식당 제2라운드를 펼치고 있다. 외국인들도 된장의 쿰쿰함을 숨긴 요리보다는 ‘한식의 전형’을 훨씬 궁금해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를 제대로 반영한 한식당의 성업, 뉴욕 한복판에 새로운 선택지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맥 일색이 아닌 한국의 전통주나 그를 기반으로 한 칵테일, 혹은 와인 등 음식에 술을 동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식문화를 충족할 주류 리스트를 갖추고서 말이다. 그 밖에 강민구 셰프가 새로운 한식당 ‘세토파’를 오픈한 파리의 경우, 교민 사회에 따르면 현재 400여 곳의 한식당이 파리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싱가포르에는 지난 11월 ‘할매국밥’, ‘한양불고기’, ‘청사초롱’ 등 6개 업장을 모은 건물 ‘한식 다이닝 콜렉티브’가 오픈하는 등 뉴욕 밖 여러 도시에서 한식당의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열풍을 이어 일상으로

한식 열풍이 근래 처음 불어닥친 것은 아니다. 치맥, 막걸리 등 산발적이지만 눈에 띄는 수치로 인기를 실감한 사례들이 지난 시간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한식의 기초가 되는 장부터 삼겹살, 캐주얼 다이닝과 파인 다이닝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전반적인 관심을 받았던 적이 있었나 하면, 확실히 처음이 맞다. 한국의 ‘밍글스’, 홍콩 ‘한식구, 파리 ‘세토파’를 운영하며 해외의 관심을 최전선에서 실감하고 있을 강민구 셰프는 “한식은 열풍을 넘어 세계인의 일상이 되는 길목에 서 있다”면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한식의 매력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게 만드는 콘텐츠가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장을 활용한 일상 레시피 60여 종을 담은 쿡북 <장(Jang)>을 쓴 것도 같은 이유. 장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장만 있으면 무려 ‘셰프가 소개하는’ 음식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불현듯 지난해 말 화제가 된 틱토커 로건 모핏의 영상이 생각났다. 한식 요리를 주로 선보이는 그의 오이 샐러드 레시피 영상은 2,0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머나먼 아이슬란드 땅에서 오이 품귀 현상을 일으키고, 슈퍼마켓 체인 관계자에 따르면 참기름, 고추기름 등 레시피에 들어가는 재료들의 판매량도 두 배로 늘었다고 한다. 음식 자체로도 콘텐츠가 되지만, 여러 장르와 결합해 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한 때다.

글 | 장새별(F&B콘텐츠 공방 ‘스타앤비트’ 대표)

장새별(F&B콘텐츠 공방 ‘스타앤비트’ 대표)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가영, 권민경(101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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